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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발트3국+러

[발트 3국+러시아] 23. 아름다운 갈베호수와 잘 어우러진 트라카이성 2 - 걸어서 돌아보기

트라카이성 (2018.8.5. 일)
발트3국 여행 순서와 리투아니아의 위치
리투아니아 트라카이의 위치


(2018.8.5. 일)

요트 타고 돌아보기에 이어 트라카이성 안으로!

트라카이성. 성벽을 둘러싸고 뾰족한 고깔 모양의 방어탑들이 있다. 왼쪽의 타워는 감옥으로 쓰였다고 한다.

 

트라카이 트라카이성(리:Trakų salos pilis)

트라카이는 빌뉴스로 천도하기 전 잠시 수도였다고 한다(1321~1323년).

새로운 리투아니아 왕조의 창시자 게디미나스는 

빌뉴스를 비롯한 여러 곳에 성을 건설했다.

 

<구 트라카이성(세니에지 트라카이성, Senieji Trakai Castle)>

 

전설에 따르면 게디미나스 대공은 당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였던 

케르나베(Kernavė)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을 쌓기로 했는데,

그것이 구 트라카이성(세니에지 트라카이성, Senieji Trakai Castle)이란다.

처음에는 새로 건설된 트라카이로 수도를 옮겼고(1321년),

1323년에 빌뉴스에 영구 수도를 건설.

게디미나스가 빌뉴스에 정착한 후

세니에지 트라카이는 아들인 켕스티투스(케스투티스)에게 상속.

 

게디미나스가 건설했다는 세니에지 트라카이성은

1391년에 튜튼(튜턴) 기사단에 의해 파괴되었고,

1405년에 이 성 유적은 손자인 비타우타스에 의해 베네딕트 수도사에게 양도되었으며,

현재 트라카이의 수도원 건물(15세기 건축물) 자리가

게디미나스 성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단다.

 

 

<새로운 트라카이성(페닌슐라성과 아일랜드 캐슬)>

 

켕스투티스(케스투티스, 게디미나스의 아들)트라카이에 새로운 성을 세운다.

그것이 트라카이 반도 성(페닌슐라성)갈베호수의 섬 성(현 트라카이성, Island Castle).

 

1350-1377년에 트라카이 반도 성(페닌슐라성)을 건설,

켕스투티스 대공이 거처로 사용했다고 하며,

켕스투티스는 1382년에 요가일라 측에 의해 이 성에서 살해되었다네.

1422년에 멜노(Melno, Lake Melno) 조약 이후 중요성 쇠퇴.

* 멜노조약: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평화 동맹 *

16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성의 대부분은 17세기에 파괴되었단다.

 

갈베호수의 섬 성(현 트라카이성, Island Castle)

14세기 후반에 켕스투티스(케스투티스) 대공에 의해 건설.

튜튼(튜턴) 기사단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단다.

켕스투티스가 암살된 이후에

요가일라 대공(게디미나스의 손자. 알기르다스 대공의 아들.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2세)과

비타우타스(게디미나스의 손자, . 켕스투티스 대공의 아들)는

리투아니아 대공의 자리를 놓고 권력 투쟁을 벌인다.

당시 트라카이성은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 양측으로부터 포위되었다고 한다.

요가일라(리: Jogaila, 폴: Władysław II Jagiełło)는 1386년 2월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 왕국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해 브와디스와프 2세 왕이 된다.

브와디스와프 2세는 야기에우워 왕가의 창시자.

튜튼 기사단 방어를 위한 선택으로 폴란드와 동맹을 맺었다.

튜튼 기사단은 폴란드의 왕위를 위해 거짓 개종했다면서 계속 공격.

1392년에 브와디스와프는 비타우타스에게 리투아니아 대공 자리를 제안.

1392년에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는 싸움을 끝냈고,

비타우타스가 리투아니아의 대공이 된다.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의 화해로 트라카이성의 2단계 공사 시작,

1409년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단다.

비타우타스는 1409년부터 트라카이성(섬 성)을 석성으로 짓기 시작.

1410년, 비타우타스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군과 튜튼 기사단 간의 전투인

그룬발트(Grunwald, 영: 타넨베르크 Tannenberg, 리: 잘기리스 Žalgiris) 전투에서 대승.

비타우타스는 트라카이 섬 성에서 7일간 화려한 연회를 개최했단다.

1413년, 브와디스와프 2세는 그룬발트 전투의 승전 대가로 

비타우타스를 정식으로 리투아니아의 대공으로 인정.

1430년에 트라카이성 완공.

켕스투티스에 의해 1단계 건설이 시작된 후

비타우타스에 의해 3단계 건설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황폐와 재건을 거쳐 현재 15세기 건축 양식대로 재건.

트라카이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

 

* 게디미나스(Gediminas, 1316-1341 재위)

* 야우누티스(Jaunutis, 게디미나스의 4남, 1341~1345 재위)

* 알기르다스(Algirdas, 게디미나스의 아들, 1345~1377 재위)

* 요가일라(Jogaila, 알기르다스의 아들, 1377~1392 재위, 폴란드의 왕 1386~1434 재위).

* 켕스투티스(케스투티스, Kęstutis, 게디미나스의 아들, 1381~1382 재위)

* 비타우타스(Vytautas, 켕스투티스의 아들, 1392~1430 재위)

트라카이성에 들어서서 성문 안쪽 모습. 가운데 성문이 있고, 좌우 끝으로 타워가 갖춰진 모습
성 안으로 들어와서 입구 문의 왼쪽으로 보이는 타워(밖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으로 보이던 타워)
성 안으로 들어와서 입구 문의 왼쪽. 우리 일정에는 박물관 관람이 없어서 건축물만 바라보고 나가게 된다.
트라카이성 안내도를 보며 대충 어떤 시설물이 있나 확인... 안내도 아래가 방어성(선수루), 위로는 궁전(공작궁). 방어성과 공작궁 사이에 참호 수로
트라카이성으로 들어오는 문... 정면 모습

입구 문 들어와서 바로 오른쪽의 전시관 관람 표 끊는 곳
매표소와 감옥으로 쓰였다는 타워. 전시관(박물관) 입장구역

성 안 입구 오른쪽 부분. 사진 왼쪽에 내부 관람 매표소가 있고, 기념품 가게, 감옥으로 쓰였던 탑이 보인다.
내부 전시관 관람 표를 확인하는 모습

 

트라카이성1단계 건설

14세기 후반에 켕스투티스(케스투티스) 대공에 의해 건설.

튜튼(튜턴) 기사단의 공격으로 파괴됨.

켕스투티스가 암살된 이후에

요가일라 대공(알기르다스 대공의 아들. 게디미나스의 손자,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2세)과

비타우타스(켕스투티스 대공의 아들, 게디미나스의 손자)

리투아니아 대공의 자리를 놓고 권력 투쟁.

당시 트라카이성은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 양측으로부터 포위됨.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가 화해하면서 트라카이성의 2단계 공사 시작,

1409년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단다.

감옥으로 쓰였던 타워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건물이 있는데, 현재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섬 성 내부(트라카이 역사 박물관 홈페이지 자료)

보이는 이곳은 트라카이성의 방어성(선수루). 가신들과 병사들이 주로 거주했단다.

2단계 건설은 2개 건물에 날개 부분 추가.

궁 남쪽에 6층(높이 35m) 규모의 천수각 건설.

천수각은 트라카이성을 구성하는 건물과 선수루를 나누었고,

이들 사이에 이동이 가능한 문 설치.

붉은 고딕 벽돌 사용.

석재와 벽돌은 건물의 기초, 건물 상부, 탑, 벽에 사용.

유리 타일로 만든 지붕, 구운 벽돌,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사용.

2단계 공사 이후의 전체 양식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을 포함한 고딕 건축 양식을 띰.

성 안 이곳은 선수루. 왼쪽으로 긴 건물(박물관), 선수루 북쪽으로 궁전(공작궁)이 있다. 선수루와 공작궁 사이에 이동 통로

 

천수각과 공작궁

천수각은 방어용 건축물 기능, 예배당, 생활 주거 공간 갖춤.

구내 뜰에 있던 여러 층의 공작궁과 연결.

공작궁의 정원 안에는 내부의 벽 주변에 나무로 된 회랑이 있는데,

궁전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도 다양한 지원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사용.

비상시에는 나무 계단 등을 철거해서 외부 침입을 늦추려 했단다.

공작궁도 박물관으로 쓰인다. 우체국과 사격장이 이 건물쪽에 있다. 박물관 관람은 일정에 없어 좀 아쉽긴 하나 큰 볼거리는 없다니 아쉬움 접는다.
대공들이 살았던 궁전의 모습, 예배당, 역사적인 사실 기록 등을 볼 수 있다네. 건물 외부에 나무 계단과 복도. (사진은 구글맵의 사진 참조)

 

3단계 건설

15세기 초에 시작.

선수루의 벽에 회랑 설치, 두께도 2.5m로 강화.

트라카이성의 구석에 3개의 대형 방어탑 건설.

남쪽 탑은 감옥으로도 사용.

탑의 꼭대기에는 많은 대포를 설치할 수 있었다.

중심이 된 문루는 공작궁처럼 이동이 가능한 문 설치.

이 문루는 회랑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보강.

내부의 벽 인근에 마굿간, 주방 등 건설.

선수루. 처음 들어온 성 입구 문이 보이는 곳. 구글지도에 올라온 사진 참조
박물관 관람은 못 하니 방문 사진이나 몇 장 찍자!
여름에는 섬 성에서 축제와 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무대와 간이 상점 흔적들이 보인다.
유료인 전시관 관람은 못 하고 일행이 같이 성 한 바퀴 돌아보러 나가게 된다.

황폐 재건

17세기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모스크바 대공국 간의 전쟁으로 크게 파괴됨.

19세기에는 리투아니아를 지배하고 있던 러시아 제국이 트라카이성 재건 계획 마련.

1888년에는 트라카이성의 잔해 조사 시작.

1905년에는 러시아 제국의 관리들이 트라카이성의 일부를 복원하기로 결정.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인 전문가들이 파견되면서 트라카이성의 복원을 여러 차례 시도.

1935년부터 1941년까지 공작궁의 벽의 일부 보강.

트라카이성의 남동쪽에 위치한 선수루의 탑과 그 벽의 일부 복원.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대규모 재건 계획 시작.

1951년부터 1952년까지 공사가 크게 진행됨.

1961년에 재건 공사의 대부분 마무리.

재건은 15세기의 건축 양식대로 건설되었다.

(위키백과에서...)

15세기의 건축 양식대로 재건된 트라카이성 성벽. 아래는 석성, 위는 벽돌성
뒤돌아보기도 하면서 성 한 바퀴~
트라카이성 선수루의 북서쪽 타워. 돌과 벽돌로 건설되었다. 보기에도 아주 튼튼해 보이네...
갈베호수를 보며...

참호

공작궁과 선수루 사이에는 작은 보트가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만든 참호가 있다.

이 참호는 적군이 트라카이성을 공격했을 때 일어나는 문과 접속되어 있다.

15세기에 트라카이성이 확장되었을 때 갈베호의 수면 높이는

현재의 높이보다 몇 미터(2m 정도) 높은 편이었단다.

궁전과 성벽 사이를 걸어본다. 원래 이곳은 참호 역할을 하던 곳으로 작은 배가 지나갈 정도. 건설 당시 호수면이 지금보다 2m 정도 높았단다.

돌과 벽돌을 이용해서 쌓은 성
처음 건설 당시에는 이곳이 참호 역할을 했었네...

비상시에는 궁전(공작궁)과 성벽(선수루) 사이 저 구조물을 없애면 적이 침입하는 속도를 많이 늦출 수 있겠지...
트라카이성 궁전 천수각. 선수루와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 있다.
이 참호는 적군이 트라카이성을 습격했을 때 일어나는 문과 접속되어 있던 곳.
왼쪽 천수각, 가운데 연결 다리, 오른쪽 선수루. 좀 전에 둘러보고 나온 곳이 오른쪽 성벽 안 부분.
공작궁과 선수루 사이 참호를 돌아본 후 갈베호숫가로 나간다.
호숫가로 이어지는 성벽...
호수를 유유자적 유람하는 분들
행복한 사람들의 미소. 아~ 저쪽에 우주트라키스 매너 저택도 보이네. 저곳에서도 이곳이 잘 보이겠네...
공작궁과 성벽
공작궁과 성벽
공작궁과 성벽

 

공작궁을 빙 돌아 남쪽 선수루 성벽이 보이는 곳으로...
선수루 성벽
참호와 공작궁
트라카이성을 한 바퀴 돌아 나가는 길~
트라카이성 앞 목교에서...
갈베호수
성 앞 목교에서...
언제 또 와 보랴~
신나게 찍어 주고...
공원의 비타우타스(트라카이성 완성한 대공) 상
갈베호수와 보트. 호수를 누비는 여유로운 모습... 아~ 그리운 시절!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이 보이고, 왼쪽은 트라카이성 들어오는 첫 번째 목교이다.
트라카이성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목교에서 바라본 상업 지역. 왼쪽 끝에 보이는 타워는 옛 트라카이 반도 성(페닌슐라성) 흔적인 듯...
트라카이성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목교에서 바라본 상업 지역. 이쪽 방향은 하늘빛이 넘 예쁘네...
트라카이성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목교에서 바라본 상업 지역과 페닌슐라성터
트라카이 반도 성(페닌슐라성)터를 배경으로...
트라카이성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목교에서 바라본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
여러 가지 탈것들을 보는 재미~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 관람 인파를 보는 재미...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 기념품 고르는 일도 즐거운 일~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에서 바라본 트라카이성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에서 바라본 트라카이성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에서 바라본 트라카이성 배경으로 마지막으로 한 장 더 찍고...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에서 트라카이성 들어가는 첫 번째 목교를 보며...
전망 광장의 중심 상업 지역에서 바라본 트라카이성과 두 번째 목교
갈베호수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트라카이성 (출처: 선박회사 갤러리에서... https://baltis.lt/en/gallery/)

 

호수와 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아름다움으로 인해

두고 떠나는 아쉬움이 컸던 트라카이성(Trakai Island Castle)이다.

600년 전에 처음 세워졌다는 긴 역사를 가진 트라카이성 관람을 마치고 

리투아니아에서 세 번째로 방문하게 될 카우나스로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