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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발트3국+러

[발트 3국+러시아] 25. 리투아니아 제 2의 도시 카우나스 구시가 2 - 두 강(네만 강과 네리스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카우나스 성과 주변 풍경

카우나스성 (2018.08.05. 일)
8일간의 발트 3국 여행 순서. 리투아니아의 위치 별표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위치


 

 

(2018.08.05. 일)

카우나스 대성당을 나와 카우나스 성을 향해 걷는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

카우나스 대성당 앞에서 시작되는 발란시우스(M. Valančiaus) 거리
발란시우스 거리의 쉼터에는 장식물들이 주렁주렁
벌란시우스 거리에 이어 요나보스 거리를 걸어와 약스토 거리를 보며... 사진 오른쪽으로 카우나스 성이 보이네.
카우나스 성으로...
성으로 가는 목교 못 미처 주차장 인근에 큰 석상은 긴 수염을 늘어뜨린 천둥신(번개와 천둥과 폭풍의 신) 페르쿠나스(Perkūnas) 조각상.
천둥신(번개와 천둥과 폭풍의 신) 페르쿠나스(Perkūnas) 조각상. 오른쪽 끝 건물에 담배 피는 노인 그림
왼쪽 끝 건물에 담배 피는 노인 그림, 시청광장에서 카우나스 성으로 올 때 걸어온 길이 가운데 골목길.

 

장인(The Master, 현명한 노인 The Wise Old Man)

조지 마시우나스(George Maciunas, 리: 저기스 마치우나스 Jurgis Mačiūnas, 1931~1978)를 기리기 위한 작품.

조지 마시우나스는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선구자로 이곳 카우나스 출신.

리투아니아의 예술가 타다스 심쿠스(Tadas Šimkus)와 지기만타스 아멜리나스(Žygimantas Amelynas)가 

옛 신발 공장 4층 건물의 440㎡ 외벽에 잠옷과 맨발 차림으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노인을 그렸는데,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선구자인 조지 마시우나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렸다고 한다.

 

* 플럭서스: 1960년대에 형성된 국제적인 전위 예술가 집단, 1970년대 초까지 활동.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

리투아니아 출신 조지 마시우나스가 사용.

1960~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예술의 상업화와 엘리트 예술가들이 예술계를 지배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

모든 예술적 의도는 인위적 성격을 가진다고 보고 기존의 예술과 문화를 거부하는 실험적인 작품 시도.

게릴라 극장, 거리 공연전자 음악 연주회 등과 같은 예상 밖의 이벤트 시도.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할  없도록 작품에 사인을 하지 않거나 지속되지 않는 행위의 공연 시도.

뉴욕 소호 지역의 버려진 건물을 공개 스튜디오, 공연 및 전시공간으로 활용,

쇠락해가던 곳에 생기를 불어 넣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대표 작가로 조지 마시우나스, 오노 요코, 요나스 메카스,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 등 *

옛 신발 공장 4개 층 건물 벽을 장식한 그림. 장인(The Master, 현명한 노인 The Wise Old Man)
다시 카우나스 성으로~
페르쿠나스 상 옆을 지나 카우나스 성으로~
카우나스 성으로 들어가는 목교. 아래는 해자. 예전에는 이곳에 물이 찼으리라...
일단 기념은 해야겠지...

 

카우나스 성

4~5세기에 이미 나무와 점토로 둘러싸인 정착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단다.

독일 튜튼 기사단의 침공을 막기 위해 건설한 방어용 요새로

12세기 경 건설한 걸로 추정된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에서 만든 최초의 성이라는 견해.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벽돌 건축물.

독일 연대기에 의하면

1361년에 독일 튜튼(튜턴)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인 윈리히 폰 크니프로데(Winrich von Kniprode)가

카우나스 성 공격을 위한 정보 수집에 나섰는데,

당시 성벽 높이는 11m라고 문서에 나타나 있단다.

이 사실로 보아 1361년 이전에 카우나스 성 분명히 존재.

1362년에 튜튼 기사단이 카우나스 성을 공격해 3주간의 공방전 끝에 장악.

이후 리투아니아 대공 케스티투스가 바로 카우나스성 수복, 재건.

2번째 성은 먼저 있던 성의 기단 위에 두께 3.5m, 높이 9.5~12m로 벽돌로 쌓음. 

성곽의 네 구석에 탑을 세웠는데,  두 개는 원형,  두 개는 사각형.

성벽 둘레에 해자 설치, 벽 내부에 작은 총포를 쏠 수 있는 나무 회랑 설치.

1398년에 튜튼 기사단을 이 성에서 완전히 쫒아냈단다.

1410년, 그룬발드 전투(Grunwald, 혹은 타넨베르크)에서 
폴란드 왕 브와디스와프 2세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가 힘을 합쳐 승리한 후

폴란드의 힘이 강화되고 영역이 확장되었으며

카우나스 성은 그 기능을 잃고 주거지로 남게 되었단다.

1549년, 야기에우오가(家)의 마지막 왕인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Zygmunt II August)가

그의 아내 바르바라 라지비우(Barbara Radziwiłł, 1520~1551)에게 이 성을 준다.

1601년에는 법원기록소,

1611년에는 강이 범람해 일부 파괴.

17세기에는 핀란드 군인이 장악.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

러시아 점령기(1795~1918)에는 성역에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권한 부여.

1930년부터 보존을 위한 발굴 시작.

본격적인 복원은 1950년대에 이루어짐.

1960년대에 복원, 둥근 탑이 비타우타스 박물관으로 개관했으나

탑의 구조적 악화로 인해 박물관은 다른 곳으로 옮겨짐.

2011년, 카우나스 시립 박물관의 분관으로 복원.

 

방어탑 위의 풍향계에는 '1361 카우나스'라고 쓰여 있는데,

튜튼 기사단에 의해 처음 기록으로 남은 해를 나타낸단다.

성벽의 일부와 해자만이 옛날 건축 당시의 것이고,

현재의 성은 복원된 것.

성 중앙 언덕에 카우나스의 상징인 들소가 그려진 깃발이 세워져 있다.

남은 성곽 해자 건너에 성 조지 순교자 교회가 있다.

주변이 산타코스 공원이고,

아래 광장에 비티스 기사상을 세워 놓았다.

 

해자 위 목교를 걸으며 바라본 카우나스 성
해자 위 목교를 걸으며 바라본 해자 지역과 계단식 관람석. 평소 쉼터가 되기도 하고, 한자동맹 재현 축제 때 사람들이 앉는 자리인 듯.
네만(네무나스)강쪽 해자 지역. 예전에는 이곳에 물이 찾겠지...
걸어 들어왔던 목교와 해자. 가운데 뒤로 보이는 건물에 담배 피는 노인 그림.

 

비티스(Vytis) 기념비(자유의 전사상)

Vyčio paminklas "Laisvės Karys"

리투아니아의 국장에 등장하는 기사상으로 높이 7m.

2018.07.14. 제막.

비티스(Vytis)는 추격자란 뜻.

리투아니아 동전에도 이 기사상이 새겨져 있다.

리투아니아의 조각가와 우크라이나의 조각가가 공동으로 제작했다고 하며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주조되었단다.

리투아니아의 조각가인 사칼라우스카스는 빌뉴스의 루키스키(Lukiškių) 광장에 세우고 싶어했지만

여의치 않아 카우나스 성 광장에 세우게 됐단다. 

리투아니아의 국장에 등장하는 자유의 전사상. 추격자를 뜻하는 비티스(Vytis)

 

비티스(Vytis) 기념비. 우리가 방문하기 직전에 제막된 기사상이다.
네리스 강과 산타코스 공원. 네리스 강은 바로 네만 강과 합류. 네만 강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주와 경계를 이루며 흘러 발트해로 들어간다.
타워 안은 박물관으로 운영된다고 하나 별 볼거리도 없다고 하고 일정에도 타워 내부 관람이 없으니 주변만 돌아보기
카우나스 성 타워 박물관 내부는 대충 이런 모습이란다.(카우나스 시청 자료)
'1361 카우나스' 표시. 튜튼 기사단에 의해 카우나스 성이 처음으로 기록에 나타난 해를 나타냄.
성 광장에서 복원된 카우나스 성 타워를 바라보며...
성 마당에 세워진 들소가 그려진 깃발. 성 너머로 성 조지 순교자 교회(오른쪽).
타워 입장은 유료이나 성벽 계단 위로는 가 볼 수 있다니 일단 올라가 봐야지.
계단 위에 올라 주변을 바라본다. 깃발이 펄럭이는 언덕 아래에 조금 전에 들렀던 기사상이 보이고 네만 강이 흐르는 모습도 보이네.
비티스(Vytis) 기념비와 네만(네무나스)강
성루에서 바라본 성벽과 왼쪽 해자 너머로 성 조지 순교자 교회
성루에서...
왼쪽 해자 너머로 성 조지 순교자 교회, 해자 지역에 설치된 계단식 관람석.
고개를 더 왼쪽으로 돌리면 타워 아래로 옛 성벽 아래 석축 유적이 이어져 보이고, 해자에 설치된 계단식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이네.
매년 5월에 한자동맹 재현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계단식 의자는 축제 때 사람들이 앉아서 구경하는 자리가 되겠지...
옛 성벽 아래 석축

입구라고 쓰여진 문을 통과하여 주위를 돌아본다.
성벽 뒤편
카우나스 성 성벽과 뒤편 해자로 이어지는 언덕
카우나스 성 성벽

 

 

성 조지 순교자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1471년,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궁정 원수가 카우나스 외곽의 토지를 기부하고,

카우나스의 장로가 목조 교회와 Bernardine 수도사를 위한 수도원 건축.

20년 후에 교회와 수도원을 벽돌 고딕 양식으로 재건.

재건 기간은 1492~1502년으로

빌뉴스의 성 안나 교회와 베르나르딘 교회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고 함.

2018년 방문 당시 기준으로 내부는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상태란다.

성벽을 해자가 둘러싸고 있고, 해자 건너에 성 조지 순교자 교회
성 조지 순교자 교회 왼쪽으로 가톨릭 국제 단체(Lietuvos caritas). 계단식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몇 명...
오른쪽이 리투아니아 가톨릭 국제 단체, 뒤로 구시청사 타워와 성 프란체스코 사비에르 성당 첨탑의 모습.
다시 성으로... 카우나스 성 성벽과 타워, 옛 성벽 석축, 그리고 해자
옛 성벽 석축 안쪽
성 입구 문과 옛 성벽 석축 안쪽. 옛 성벽 석축은 우리나라의 성 성문에 나타난 옹성처럼 보인다.
카우나스 성과 해자. 우리가 진입한 목교쪽에서 본 모습...
카우나스 성과 해자를 보며 카우나스 성을 돌아나온다.

카우나스에서는 구시가의 몇 곳(시청사, 시청 광장, 카우나스 대성당 등)을 돌아보았고,

이어서 카우나스 성까지 돌아본 후 하루 묵어갈 숙소를 찾아가게 된다.

(2018.08.05.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