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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발트3국+러

[발트 3국+러시아] 27. 시아울리아이(샤울랴이) 십자가 언덕

리투아니아 시아울리아이 십자가 언덕 (2018.8.6. 월)
발트 3국+러시아 여행지도와 순서
리투아니아 여행 순서와 시아울리아이(샤울랴이)의 위치


 

(2018.08.06. 월)

아침 8:30, 카우나스의 숙소 출발 3시간 정도(휴식 20분 포함) 걸려서

11:20경, 시아울리아이 십자가 언덕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아울리아이 십자가 언덕은 리투아니아인들의 성지이다.

8:30, 카우나스 출발. 네리스강 페트라스 빌레이시스 다리에서 바라본 카우나스성

건물이 독특해서 찰칵. 무슨 의미 있는 건물인 것 같은데...
고속도로에 접어든 듯~ 제법 차가 많다.
10:10, 카우나스 출발 1시간 40분 걸려서 도착한 Orlen 주유소 휴게소
구조물에 얹힌 돌은 무슨 의미일까?
작은 마을에도 어김없이 성당이...
시아울리아이 가는 길 이정표. 라트비아 리가 표시도 보인다.
   
시아울리아이 인근 철로
손에 잡힐 듯 낮게 깔린 구름

 

 

시아울리아이(샤울랴이, Šiauliai)

리투아니아 북부에 있는 도시로 

리투아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십자가의 언덕으로 유명하다.

13세기 이전에 세워진 도시로 여겨지며,

19세기에 직물의 중심지,

19세기에 가죽산업,
2020년 기준으로 인구 약 10만 명.

8:30 카우나스 출발. 11:20, 3시간 정도 걸려서(휴식 시간 20분 포함) 시아울리아이 십자가 언덕에 도착했다.

 

시아울리아이 십자가 언덕

시아울리아이 북쪽 12㎞ 거리에 있는 십자가의 언덕.

이곳 십자가 언덕에 십자가를 처음 세운 것은

1830~1831년의 11월 봉기(폴란드-러시아 전쟁의 일부) 이후라고 한다.

11월 봉기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이 언덕에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현 십자가 언덕 북쪽에 있는 주르기치아이(Jurgaičiai) 언덕에 세웠단다.

1918년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선포하고 독립전쟁에 돌입하던 시기에 리투아니아인들은

평화, 독립, 잃어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찾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리투아니아가 소비에트 연방에 점령된 1944-1990년에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종교와 애국심의 발로로 이곳 십자가의 언덕을 순례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를 없애기 위해

불도저로 언덕을 밀어내고 십자가를 없애는 일을 세 차례 반복했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언덕에 십자가를 다시 세우는 일을 반복했단다. 

1990년에 약 55,000개의 십자가,

2006년에 약 10만개 이상,

2018년 방문 당시만 해도 세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했던 기억.

1993년 9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 십자가의 언덕을 방문해서

희망, 평화, 사랑, 희생자를 위한 장소라고 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이 새겨진 돌과 십자가가 언덕 입구 가운데에 놓여 있다.

"리투아니아인 여러분, 이 십자가의 언덕에 감사드립니다.

이 십자가의 언덕은 유럽 국가와 전 세계에 이 땅 사람들의 믿음을 증거합니다."

 

 

전해오는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14C에 처음 생겨났다고도 하며,

1810년대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도 한다.

십자가의 언덕 근처에 부녀가 살고 있었는데,

딸이 병에 걸려서 아버지가 기도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

언덕에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를 하면 딸의 병이 나을 거라고 말하였고,

그 여인의 말대로 하여 딸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후 기도의 장소로 알려지고 십자가가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운동 시 희생자들을 묻은 곳이라고도 한다.

 

시아울리아이 십자가 언덕 입구의 기념품점. 미리 십자가를 준비해서 오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이곳에서 사서 세우는 경우가 많단다.
다양한 십자가를 팔고 있으며 누구라도 십자가를 준비해서 십자가 언덕에 세울 수 있다.
주차장에서 입구의 기념품점을 지나 작은 터널도 지나오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결혼의 최고 조건을 사랑으로 치며다른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의 결혼 풍습에는 신랑이 신부를 업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시아울리아이 성지에서 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의 경우,

십자가의 언덕 성지까지 가려면 거리가 제법 되므로 

덩치가 큰 신부는 업기가 무리인지라 

저곳 터널 위를 건너가는 것으로 대체한다고 하네.

 

십자가의 언덕으로 가는 길. 구름이 너무도 멋져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가네.

악기 연주하시는 분
악기 연주하시는 분

많은 사람들이 찾은 십자가의 언덕
가까이 갈수록 뭔가 영적인 기운이 감도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고...
수많은 십자가가 신기해서 이쪽 저쪽을 살피게 된다.
소원을 비는 돌탑을 세우는 이치와도 같은 듯 느껴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이 새겨진 돌과 십자가가 십자가 언덕 입구 가운데에 놓여 있다.
"리투아니아인 여러분, 이 십자가의 언덕에 감사드립니다. 이 십자가의 언덕은 유럽 국가와 전 세계에 이 땅 사람들의 믿음을 증거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가신 곳임을 알려주네.
예전에 마리아상이 있던 자리라고 하며, 마리아상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그 사람 스스로 치웠다고 한다.
빼곡하게 놓인 십자가들
정면의 십자가를 지나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 이 언덕에서 나무로 된 계단길은 메인 길로 넓은 길이다.
크고(3m를 넘으면 안 된다던가~) 작은 수많은 십자가에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적혀 있는 글들이 있다.
리투아니아인의 성지에서 세계인의 성지로 변하나 보다.
더러는 중간에 좁은 길이 이어지는 곳이 있다.
메인 도로
이어지는 좁은 길
나는 종교가 없지만 가톨릭 신자라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리라...
구름과 어우러진 풍경을 두고 가기 아까워 자꾸만 돌아보네.

 

리투아니아인의 성지를 넘어

지금은 세계인의 성지로 다가가는 시아울리아이 십자가의 언덕~

수많은 십자가들을 보니 

평화와 독립을 바랐던 리투아니아인들의 애국심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지극한 가족애가 느껴졌다.

앞으로도 영원한 평화가 지속되기를 기원해본다.

 

시아울리아이를 끝으로 리투아니아 방문을 마친 우리는

발트 3국 중 마지막 여행지인 에스토니아로 넘어가게 된다.

 

(2018.08.06.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