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5. 일)
카우나스 성을 나와 숙소로 향하는 길,
카우나스 시내 어디에서나 다 보인다는 언덕 위의 하얀 교회인
예수부활성당(Kaunas Christ's Resurrection Basilica)이 보여서 얼른 찰칵~
카우나스 역 인근의 숙소(Ibis Kaunas Centre) 도착 후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 주변을 조금 돌아보게 된다.
카우나스 이비스 호텔(ibis Kaunas Centre)
유명한 보행자 거리인 라이스볘스 알례야(Laisvės al.)까지 900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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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월)
새날이 밝았다.
십자가의 언덕이 있는 시아울리아이(샤울랴이)로 가는 날이다.
아침 식사 후에 출발 시각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잠시 카우나스 역을 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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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나스 역
카우나스역은 1862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며,
1948년에 이전 건물의 기초 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소비에트 점령기에 재건되어서 그런지 소비에트 스타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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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하라 지우네(Sugihara Chiune, 1900.01.01.~1986.07.31)
1939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있는 일본 영사관의 부영사로 부임.
1940년 소련이 리투아니아의 주권을 장악하자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뿐만 아니라 폴란드에서 온 유대인 난민도
출국 비자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
스기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박해를 받고 있던
수천 명의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유대인 학살로부터 구했다.
난민들은 일본 비자를 받기 위해 카우나스에 있는 일본 영사관을 찾았다.
전쟁이 임박했을 당시, 리투아니아 유대인은
리투아니아 도시 인구의 3분의 1과 모든 도시 거주자의 절반을 차지했단다.
1940년 여름에 나치 점령 하의 폴란드에서 탄압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도망쳐온 많은 유대인들이
각국 영사관 및 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병합하고,
리투아니아에 있던 여러 나라들의 영사관과 대사관의 폐쇄를 요구했기 때문에
유대인 난민들은 아직 업무 중이던 일본 대사관에 통과 비자를 얻기 위하여 몰려들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유대인에 대한 중립 정책이 공식 입장.
그러나 실상은 비자 발급 자격 조건을 다른 난민에 비해 까다롭게 함으로써
유대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
1940년 7월 끝 무렵, 스기하라는 일본 정부의 지시에 반하여
일본 통과 비자를 자격 조건 미달의 유대인에게도 제한 없이 발급.
베를린으로 임지를 옮겨가는 9월 초까지 약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비자를 계속 발급.
기록된 것이 2,139장,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하면 수천 장일 거란다.
당시에 비자 1장만 있어도 가족이 모두 건너갈 수 있었으므로
스기하라의 도움으로 국외 탈출한 유대인 수를 약 6,000명으로 추산한단다.
유럽계 유대인 난민은 1940년 7월에 일본에 도착하기 시작하여 1941년 9월에 떠났단다.
당시 일본인으로서는 참 드물게 의로운 행동을 했다.
그러나 이후 총영사직에서 해임, 좌천, 퇴출의 과정,
나치 게슈타포의 감시, 소련군에 의한 구속 등으로 인한 고초를 겪었다.
자신이 구했던 유대인들의 소식을 듣고 싶어 이스라엘 대사관에 자신의 주소를 남긴 덕에
그의 선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홀로코스트~
주로 유럽에 있는 유대인을 집단학살하려 했던 나치의 대학살이 이뤄지던 중에
나치 정권 당시 수감된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출했다는 오스카 쉰들러가 있다.
그에 견주어 스기하라 지우네는 일본의 오스카 쉰들러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박해를 받고 있던 수천 명의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해서 많은 생명을 구한 스기하라 지우네~
일본의 오스카 쉰들러~~
카우나스역에서 그를 만나며 다시 한 번 나치의 만행을 상기하게 되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소비에트 점령자들의 리투아니아 민간인 박해 이야기도 가슴 아팠다.
호텔 앞길을 걸어 카우나스역까지 아침 산책을 마친 우리는
이제 십자가의 언덕이 있는 시아울리아이(샤울랴이)로 이동하게 된다.
(2018.08.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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