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5. 일)
트라카이 출발 1시간 10분 정도 걸려서 카우나스에 도착했다.
네만(네무나스) 강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댄 모양이고,
카우나스 구시가의 몇 곳을 돌아보게 된다.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라고 한다.
한때 임시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단다.
카우나스(Kaunas, 리: [ˈkəʊ.nəs]
리투아니아 제 2의 도시.
인구는 289,380명 (2020년 추계).
네만(리: 네무나스) 강 항행의 출발지,
지류인 빌리야(리: 네리스) 강이 흘러든다.
근처에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카우나스 저수지가 있다.
1030년 요새로 건설된 카우나스는 1317년 시가 되었고,
1408년 자치 인가를 받았다.
튜튼(튜턴) 기사단에게 공격을 받았으며,
1410년에 튜튼 기사단을 물리칠 때까지 통치자가 여러 번 바뀌었다.
그후 상업이 활발해졌고 도시도 번창했다.
1795년 제3차 폴란드 분할(1569년 폴란드에 합병되었음) 때 러시아에 넘겨졌다.
1812년 나폴레옹의 진군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되었으며,
1842년에 지방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구도심의 동쪽에는 신도심이 있으며,
1847년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시가지가 조성되자 신도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세기 후반 철도가 부설되면서 도시의 상거래가 증가하고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920~40년 카우나스는 독립국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다.
1940년 소련에 합병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었고,
전쟁을 전후해 많은 시민들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소련의 통치를 받는 동안에도
계속 리투아니아 민족이 높은 인구비율(1970년 84%, 빌뉴스 43%, 클라이페다 61%) 유지,
리투아니아 민족 의식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왔다.
1972년 소련 정권에 대항해 분신자살한 학생의 장례식에 따른 민족주의자들의 운동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카우나스의 구도심 '센트라스'는 네만(네무나스) 강과 빌리야(네리스) 강이 만나는 지역에 있으며
성지를 비롯하여 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남아 있다.
구도심의 주요 명소로 카우나스 성, 카우나스 시청, 카우나스 대통령궁 등이 있다.
성 옆에는 구시가지의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와 골목들이 있고,
구시가지에는 비타우타스 교회(1400년 세움), 성삼위일체 교회(1634), 예수회 교회(1666) 등이 있다.
카우나스 중심부에는 보행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자유의 거리(Laisvės alėja)가 유명하다.
(참조: 다음백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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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네만 강가의 비타우타스 대성당을 만난다.
지나가면서 외관만 보는 거지만......
비타우타스 대성당(Church of Vytautas the Great)
카우나스에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
카우나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이며 중요한 리투아니아 고딕 건축.
1400년 경 프란체스코 수도사들과 외국 상인들을 위해 세워짐.
영토를 킵차크 한국의 땅 안쪽으로 넓히고 싶어했던 비타우투스 대공이
1399년 보르스클라(Vorskla) 강 전투에서 큰 패배를 겪은 후
자신의 생명을 구한 축복 받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표창으로 주문하고 자금 지원.
강 가까이에 있어 봄철 홍수로 여러 번 피해를 입었고,
1812년 나폴레옹이 리가로 들어가지 않고 네리스강을 건너 들어왔고
교회는 프랑스군에 의해 불탔다고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11월 봉기 이후 러시아 행정부에 의해 폐쇄.
1845년에 가톨릭 교회는 폐쇄되었다가
나중에 정교회의 교회로 재건되어 재개.
1903년부터 군사 막사로 사용.
1915년 독일인들이 이곳에 창고를 마련.
1919년 가톨릭 교회로 반환.
리투아니아의 가톨릭 신부이자 작가인 후오자스 투마스가 교회 복원,
그는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비타우타스 그레이트 교회 총장.
후오자스 투마스(Juozas Tumas-Vaižgantas, 1869–1933)는 이곳에 묻혀 있단다.
1931~1938년과 1978~1982년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
리투아니아 벽돌 고딕 양식.
이어서 페르쿠나스의 집을 만나는데,
외관만 보며 간다.
페르쿠나스의 집(House of Perkūnas )



이어서 만나는 곳은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성 프란체스코 사비에르 대성당
1643년에 예수회가 페르쿠나스의 집을 사들여 예배당으로 쓰면서
1666년부터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짓기 시작해서
1722년에 완공한 성당이다.
로욜라와 함께 예수회를 세운 성 프란치스코 사비에르에게 봉헌한 성당.
러시아가 리투아니아를 지배한 19세기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쓰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예수회 성당,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연방이 된 뒤에는 기술학교가 되어 실내경기장으로 쓰였다.
1989년 다시 예수회 성당.


카우나스 시청(Kauno rotušė)과 시청 광장
카우나스 시청은 중세 시대에 교역과 축제, 범죄자의 처형 등이 이뤄지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1542년 최초의 시청 건설, 아치형 지하실이 없는 단층 건물.
1463년에 화재로 소실, 1486년까지 재건.
16세기에 2층 추가, 건물의 동쪽에 8층 타워.
지하실은 물품 보관, 탑의 지하실은 감옥으로 사용.
1638년에 르네상스식 재건.
1771-1775년에 재건축되었는데,
17세기에 철거된 건물의 일부 재건, 건물을 다시 계획, 탑에 1층 추가,
바로크와 고전주의 스타일의 장식, 페디먼트를 재건,
리투아니아 대공의 조각품 배치(19세기까지 있었단다).
1824년에 시청은 정교회의 건물로 사용, 나중에는 탄약 보관소로 사용.
1836년에 시청은 다시 재건, 러시아 황제의 거주지가 그곳에 만들어졌다.
1862년과 1869년에는 카우나스 타운 클럽, 러시아 클럽, 소방관 사무실 및 러시아 극장.
1869년에는 시청에 Kaunas 시정촌 설립.
1944년에는 기록 보관소, 1951년에는 기록 보관소가 Kaunas 기술 연구소로 대체.
1973년에는 1층에 웨딩홀(결혼 등록 사무소) 개설.
오늘날 이곳 지하에는 도자기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시청에서는 귀빈 환영 행사, 조약 체결, 공식 행사도 자주 열린단다.
카우나스 시청은 흰색 이미지와 53m의 시계탑이 솟아 있는 모습이
백조를 닮았다고 해서 '하얀 백조'라고도 불린다.
2005년에 마지막 재건축을 하여 일부 훼손된 부분을 없애고
흰색이 아닌 상아색으로 칠했다.
입구에 카우나스 시 박물관(영: KAUNAS CITY MUSEUM)이라고 쓰여 있다.
시 박물관에는 도시 열쇠, 시장 마크, 1930년 임시 수도의 깃발, 유명 인사들의 방명록,
도시의 문장과 깃발 샘플, 전통 종 등이 보관되어 있단다.
2018년에 17세기의 게디미나스의 기둥이 발견되어 시청 벽 중 하나에 복원되었단다.
높이 53m의 타워는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다.
시계탑은 화재를 감시하는 전망대로도 쓰였단다.
시청 앞 광장이 시청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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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빌레이시스(Jonas Vileišis) 동상
1872년 출생, 1942년 사망.
리투아니아의 변호사이자 정치가.
임시 수도인 카우나스의 시장 역임(1921-1931).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교 교수 역임.
요나스 빌레이시스 시장 시절에 카우나스가 빠르게 성장했단다.
네무나스 강과 네리스 강에 3개의 현대식 다리 건설.
2,500개 이상의 건물 건설.
거리 포장, 말 대신 버스, 공원과 광장, 공공 도서관 설립 등
현대적인 도시 건설에 힘씀.
1933년, 리투아니아 국무원으로 리투아니아 민법전 집필.
카우나스에서 사망했으나
묘지는 가족 예배당이 있는 빌뉴스의 라소스 묘지.
카우나스 시청 광장에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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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광장에서 인증사진 찍고
이어서 카우나스 대성당으로...

카우나스 대성당(성 베드로 바울 대성당, Cathedral of St. Peter and Paul)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한 곳이란다.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세기 초(1408년)라고 하며
현재의 고딕 양식 모습이 갖춰진 것은 1624년 경이라고 한다.
내부는 리투아니아 바로크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네.
기적을 일으킨 17세기의 이콘이 있고,
1882년의 오르간이 유명하단다.
19세기 말 이 성당에서 주교로 일하며 리투아니아 민족 의식 부흥에 앞장섰던
신부이자 시인인 요나스 마이로니스(Maironis)의 화강암 영묘가
카우나스 대성당 외부 벽에 안치되어 있다.
소련 연방 시절에는 군 창고, 미술 박물관으로 사용.
1993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다녀가심.
2018년 우리 방문 바로 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가실 곳이기도 해서
방문 당시에 성당 벽에 프란치스코 교황 모습이 걸려 있었다.
다음 일정은 카우나스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카우나스 성~
발란시우스(M. Valančiaus) 거리-요나보스(Jonavos) 거리를 이어 걸어서 카우나스 성을 만나게 된다.
(2018.8.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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