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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일본

일본을 세계5대강국으로 만들어준 전승지, 도노자키(殿崎)

 

일본을 세계5대강국으로 만들어준 전승지, 도노자키(殿崎)

 

일본이 1905년 5월 27일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하고 미국과 대등한 힘을 가진 국가 반열에 오르게 된 전승지, 도노자키...

도노자키 해전에서의 러시아 전사자는 4836명, 포로 6106명. 러시아 군함 38척 중 침몰 21척, 나포 12척, 도주 2척, 블라디보스톡 귀항 3척. 러시아 사령관인 로제스트벤스키도 체포되었다. 일본에선 전사자 117명, 부상자 583명, 침몰 군함 3척으로 일본의 대승이었다.

우리에겐 치욕의 역사를 안겨준 러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버스에 앉아 잠시 신호를 기다리며 설명을 들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의 승리일인 5월 27일을 해군의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도노자키 해전의 일본 전사자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전몰자 위령비는 1912년에 제정 러시아 황제가 세워 주었단다.

 

러일전쟁 승리 100주년 기념비

히타카츠로 가는 길에 잠시 도노자키 전승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사세보 해군병원장, 로제스트벤스키(러시아 발틱함대 사령관), 도고헤이하치로(러일전쟁 당시 일본 사령관)...

 

 

히타카츠 가는 갈림길에서 바라본 도노자키 러시아 전몰자 위령비

1912년에 제정 러시아 황제(니콜라이 2세)가 이 위령비를 세워주었다고 한다.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나의 학창시절에는 을사보호조약, 을사조약 등으로 불렸던 을사늑약...

을사늑약은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불평등조약이다.

체결 당시 정식 명칭은 '한일 협상 조약'이었지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맺은 조약이라고 해서 을사늑약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는 제2차 한일협약이라고 부른다.

이 조약은 1965년에 이뤄진 한일국교 정상화조약인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무효임을 서로 확인하였다.

 

1903년 말에 이미 한국을 일본 아래에 둘 것을 각의에서 결정한 일본은

1904년에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조선에는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하였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로 러시아는 조선에서 손을 떼고 일본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어 제1차 한일협약을 강요...

이에 불만을 품은 고종 황제가 제1차 한일협약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밀사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삼아 조선의 외교권 박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2차 한일협약을 강요하였다.

이것이 을사늑약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1906년 6월에 고종은 을사늑약이 불법 무효임을 선언하고,

우호통상조약을 맺었던 국가들에 친서를 보냈다.

1907년에는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을사늑약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국권 회복을 노렸으나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강제 퇴위 협박을 받게 되었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순종 즉위,

이어서 제3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여 군대 해산,

결국은 1910년의 한일 합방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아~ 애달픈 우리의 역사여!!

 

2012.02.2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