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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일본

일본 대마도 엔쯔지(원통사圓通寺)

 

일본 대마도 엔쯔지(원통사 圓通寺)

 

 

엔쯔지에 도착하였다. 신사와 사찰을 구분하는 것이 도리이라니~ 입구에 도리이가 없는 걸로 보아 이곳은 사찰인가 보다. 여전히 날은 흐리다. 비가 안 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엔쯔지는 1408년 대마도 제7대 도주 종정무가 구주의 치쿠젠에서 건너와 최초로 도부를 개청한 곳으로 7~9대 3대에 걸쳐 쓰시마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때를 사가(佐賀)시대라고 하며 60년 동안(1408~1468, 불분명하다. 78년간이라도 책도 있고...) 존속했다. 그 중 제8대 종정인 소 사다모리(종정성 宗貞盛)의 법호가 원통공이었으므로 이곳을 원통사라고 했단다.

원래는 원통사 동쪽 본존불과 원통공 위패를 모신 묘천사가 보리사였는데, 1871년에 본존불과 원통공의 위패를 원통사로 옮겨 와 이곳이 원통공의 보리사가 되었단다. 명치 초기에 친황 권력 강화를 위해 불교 세력을 약화시키는 차원에서 많은 사찰 통폐합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명치 당시에 통합된 것...

 

* 보리사 : 한집안에서 대대로 장례를 지내고 조상의 위패를 모시어 명복을 빌고 천도와 축원을 하는 개인 소유의 절

 

이곳에는 고려 약사여래불과 고려 범종이 있고, 조선 초기 통신사였던 이예(李藝)선생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원통사

계단 위로 본전이 보이고, 계단 입구 오른쪽으로 통신사이예공적비, 뒤로 고려범종이 보인다

 

 

통신사 이예 공적비

이예 선생은 학봉 이씨의 시조로 시호는 충숙공이다.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절 중 6회(전기 18회, 후기 12회, 총 30회 중 6번)에 걸쳐 정사 또는 부사로 외교관 역할을 한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종과 세종 대에 일본, 유구, 대마도에 40여회 파견되어 667명의 조선인 포로를 쇄환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본인의 조선 입국 허가와 관련한 문인제도와 양국의 교역조건을 규정한 계해약조를 정약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 세종의 명으로 대장경을 일본에 전달하고 조선에 자전(自轉) 물레방아를 도입하였으며 일본식 상가제도의 시행을 건의하는 등 양국 문화 및 경제의 교류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418년, 대마도주 종정무가 사망하자 왕명으로 대마도에 파견되어(이곳 원통사에서 조문) 쌀, 콩, 종이를 부의하여 그의 충성을 후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범종과 이예공적비

 

 

원통사 고려 범종 

한국 범종의 특징인 종유 9개를 보이고 있다.

종의 높이는 108cm, 용뉴는 쌍용으로 되어 있다.

종 하단으로 파도 무늬와 팔괘가 보인다.

대마도 재야 사학자 나가도메히사에는 이 종을 엔쯔지 창건시에 조선에서 선물로 받은 것일 거라고 주장하고 있단다.

 

 

 

 

 

 

종각

 

본전

 

본전 내부 왼쪽

 

본전 내부 중앙

 

본전 내부 중앙에 고려 약사불이 안치되어 있다.

 

고려 약사불 좌우에는 일본불이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앉아 있다.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의 일본불

 

고려 약사불

 

일본불

 

 

중앙의 고려 약사불

금동약사여래좌불상으로 왼손에는 약병을 얹어 들고 무릎 앞으로 손을 내밀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모으고 가부좌를 튼 모습이다.

신라 불상을 이어받은 것으로 고려 후반기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본전 내부 오른쪽

 

 

 

본전 바깥 왼쪽의 납골당 지역

 

2012.02.2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