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7. 화)
뚱뚱한 마가렛 타워를 지나와 톰페아 언덕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을 만나고,
톰페아성(국회의사당)을 만나고,
성 마리아 대성당을 만나고,
이어서 파트쿨리 전망대에서 탈린 구시가의 아름다운 모습과 발트해를 바라보게 된다.
탈린 알렉산더 네브스키(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
(Aleksander Nevski katedraal, St. Alexander Nevsky Tongzheng Cathedral)
1901년에 러시아 정교 교회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제국주의를 과시하기 위해 세웠단다.
러시아를 외적으로부터 보호한 알렉산더 네브스키의 이름을 딴 성당으로
13세기에 처음 지어질 때는 고딕 양식, 이후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
탈린에서 가장 크고 가장 웅장한 정교회 대성당으로
핀란드 화강암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붉은 벽돌색과 흰색의 외벽에 꼭대기에 러시아 스타일의 양파 머리 형태의 첨탑.
교회 입구 불꽃 형태의 문이 인상적이다.
러시아 통치 시절의 잔재라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곳만은 아니기에
러시아로부터 1차 독립을 이룬 후 철거 의견이 있었으나
비용 등의 문제로 철거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1991년 2차 독립 후 재공사,
현재는 에스토니아 탈린 소속 사도교회라고 한다.
대성당 탑에는 11개의 종이 있고,
그 중에는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종이 포함되어 있단다.
탈린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내부는 촬영 금지...
에스토니아의 상징이랄 수 있는 톰페아성 바로 앞에 위치.
톰페아성(Toompea Castle), 에스토니아 공화국 의회(The Parliament Of Estonia, Riigikogu)
톰페아(Toompea)성은 에스토니아인들이 요새로 사용하였던 지역으로
1219년 덴마크의 발데마르 국왕이 접수하였다고 한다.
1227년 리보니아 형제기사단이 톰페아성을 접수하여 오늘날의 톰페아성 완공.
이후 스웨덴, 독일, 러시아의 지배자들이 거주했던 곳.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 들어섬.
'최고의 머리'라는 뜻을 지님.
소비에트 시절에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 의사당으로 사용되었고,
현재 에스토니아 국회의사당(Riigikogu)으로 쓰이고 있다.
러시아는 톰페아성 바로 앞에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을 세웠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발트의 길 인간띠 시종점인 나침반 바닥 타일이 있다.
발트의 길(발트해의 길 Baltic Way, Baltic Chain)
1989년 8월 23일, 발트해 연안 3국은 서로의 손을 잡고 독립을 요구했다.
에스토니아 국회의사당 앞 나침반 바닥 타일은
구 소련 점령기 중에 비폭력 저항 노래 혁명인 발트의 길 인간띠 시종점이다.
이 요구 이후 발트3국은 독립의 길이 열렸다.
에스토니아는 1991년 8월 20일, 소련으로부터 독립.
* 라트비아 리가에서 만난 발트의 길 발자국 : https://blog.daum.net/leeke2000/16509463?category=913865
*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만난 발트의 길 발자국 : https://blog.daum.net/leeke2000/16510026?category=913865
키 큰 헤르만 타워(Tall Hermann, Pikk Hermann)
톰페아 성 남서쪽 모퉁이에 서 있는 방어 타워.
1371년 건축 추정.
15세기 후반 현재의 높이(45.6m).
215개의 돌계단.
해발 95m의 탑 꼭대기에 에스토니아 국기. 파란색, 검정색, 흰색 국기가
1918년 12월 12일 이곳에서 처음으로 나타났고
소련의 수 년간의 점령 후인 1989년 2월 24일에 다시 세워졌단다.
6월 23~24일의 승전기념일과 한여름날을 제외하고
매일 일출 시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연주하며 일몰 시 내린단다.
탈린 성벽
탈린 성벽은 13세기에 방어 목적으로 지어졌다.
원래 탈린의 성벽은 2.35km, 총 46개의 성탑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85km, 26개의 방어용 탑이 남아 있단다.
덴마크 왕의 정원
공원은 덴마크의 국기인 Dannebrog가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곳.
전설에 의하면 1219년 6월 15일 덴마크의 발데마르 2세 국왕이
에스토니아 원정 린다니세(Lindanise, 현재의 탈린) 전투에서 고전 중일 때
하늘에서 하얀색 십자가가 그려진 붉은색 깃발이 나타나면서
덴마크 군대가 승리했다고 한다.
공원 이름은 탈린과 북부 에스토니아에서 100년 넘게 지속된 덴마크 통치에서 유래했단다 .
올드타운의 모습을 보기 위해 더 높은 언덕 전망대로...
톰페아 언덕 위에는 세 곳의 전망대가 있는데,
올드타운 전망을 내려다보기 좋은 곳은 코투오차와 파트쿨리 전망대라고 한다.
두 곳이 지척이라 두 곳 모두를 들르면 좋다.
우리는 톰-콜리(Toom-Kooli) 골목을 걸어서 먼저 파트쿨리 전망대를 향해 이동.
에스토니아 음악과 연극 아카데미 건물을 만나고,
이어서 성 메리 대성당을 만나고,
관공서들, 외국 대사관들 앞을 지나 파트쿨리 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파트쿨리 전망대에서는 탈린 구시가와 발트해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
인근 코투오차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
에스토니아 음악 및 연극 아카데미(Eesti Muusika- ja Teatriakadeemia lavakunstikool)
탈린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 서쪽에서 이어지는 톰 콜리(Toom-Kooli) 골목을 따라 가다 보면
볼데마르 판소(Voldemar Panso)의 얼굴과 손목 부조판이 붙어 있는 곳.
부조판이 특이해서 담아봄.
그가 살았던 집인데 현재 음악과 연극 아카데미로 사용하고 있단다.
볼데마르 판소는 1938년부터 1941년까지 탈린 음악원에서 운영된 드라마 학교 설립.
전후(1946년) 에스토니아 주 연극연구소를 설립했으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탄압 과정에서 1950년 폐쇄.
1957년에 확립된 전문 연극 교육의 토대 마련.
성 마리아 대성당(세인트 메리 대성당, St. Mary's Cathedral, 에: 톰교회, Toomkirik)
에스토니아 본토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란다.
돔교회(톰교회, Toomkirik)로 불린다.
덴마크 사람들이 톰페아를 차지한 1219년에 나무로 된 교회가 처음 세워짐.
1229년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목조건물 대신 석조교회를 짓기 시작,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축성, 1240년에 완공, 대성당으로 명명.
이 교회의 존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233년 로마에 새로 봉헌할 수 있는 허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
1330년대에 통로 하나인 건물을 통로 세 개인 건물로 확장하기 시작,
거의 100년 동안 지속.
1430년대에 29m의 교회의 새로운 세로 부분 완성.
1684년의 톰페아 대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으나
살아남은 유일한 건물이란다.
이후 에스토니아의 조각가 크리스티안 아케르만(Christian Ackermann)이
1868년에는 사도의 모습, 1896년에는 주 제단 제작.
본당 서쪽 바로크 양식의 첨탑은 1778~1779년 사이에 세움.
내부에는 13~18세기의 묘비들, 17세기의 석관, 17~18세기의 종들, 제단과 샹들리에,
17~20세기의 문장 비문, 1914년의 파이프 오르간 등.
69m 높이의 바로크 양식의 종탑에 올라 탈린의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데,
현재 타워는 보수 공사 중이며 2022년 가을에 개장할 예정이란다.
대성당의 지하실에는 탈린의 많은 귀족과 유명 인사들이 묻혀 있는데,
스웨덴 군인 폰투스 드 라 가르디(Pontus De la Gardie)와 아내 소피아 질렌힐름(Sophia Gyllenhelm),
보헤미안 귀족 인드르지흐 마티야시 투른( Jindřich Matyáš Thurn), 사무엘 그리그(Samuel Greig) 제독,
아담 요한 폰 크루젠스턴(Adam Johan von Krusenstern) 제독 등이라네.
원래 로마 가톨릭 성당이었으며,
1561년 루터교 교회, 현재 에스토니아 복음주의 루터교 교회.
전망대를 향하여!
교회광장에서 북쪽으로 교회광장 골목을 지나고
에스토니아 기사단(Estonian Knighthood House) 앞을 지나
라후코흐투(Rahukohtu)라고 쓰인 골목을 걸어서
파트쿨리 전망대(Patkuli viewing platform, Patkuli Vaateplatvorm)로 향한다.
에스토니아 정부청사(Government Office of Estonia)
179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벽에 Stenbocki maja(Stenbock House)라는 안내 설명이 붙어 있다.
소비에트에 항거하다 사망한 정치인들 명단도 걸려 있다.
피의 골목(Rahukohtu 5)
중세시대 때 귀족 여성들이 폭이 넓은 치마를 입었기에
반대편에서 오는 귀족들과 마주치게 되면
좁은 골목 탓에 치마가 서로 부딪치는 일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입씨름을 하게 되었으며
양 가문의 수행기사들 사이에 큰 싸움이 번져
피를 보는 일도 생겼다고 한다.
싸워서 이기는 편이 먼저 지나갔다나...
나중에는 연소자가 길을 비켜주는 것으로 해결책을 세웠다고 한다.
파트쿨리 전망대
툼페아 언덕의 북쪽 석회암 절벽에 위치한 플랫폼.
동화 같이 아름다운 탈린의 풍경을 보여주는 전망대로,
성벽 타워, 성 올라프 교회, 항구까지 잘 바라보이는 위치.
오른쪽으로는 성벽과 방어 타워가 멀리 뻗어 있고,
왼쪽으로는 탈린역, Kalamaja 및 Pelgulinn 지역이 보인다.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157 계단(Patkuli Stairs)은 1903년에 건설되었다고 하며,
툼페아 언덕과 아래 마을을 연결한다.
파트쿨리 계단 아래는 스넬리 공원( Šnelli park).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온전하게 전망대 주변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
가슴 벅찬 환희와 감정의 깊이가 최대로 수직 상승되는 기분을 느꼈던 곳.
파트쿨리 전망대 주변
코투오차 전망대(Kohtuotsa vaateplatvorm)
파트쿨리 전망대와 가까운 곳 긴다리문 옆 언덕 위에 위치.
탈린의 오래된 성탑들, 교회의 첨탑들을 볼 수 있으며
멀리 TV 타워까지 바라보인다.
평화롭게 앉아 있는 건물들의 붉은 지붕이 동화 속 풍경처럼 보이고,
탈린만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정말 동화 속 나라가 따로 없다.
탈린만에는 거대한 크루즈 선박들이 정박 중이고,
탈린의 구시가는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코투오차 전망대 역시 사진 찍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탈린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전망대일 듯.
구시가 저지대를 향하여!
톰페아 언덕 전망대에서 바라본 탈린의 모습을 뒤로 하고
이제 구시청사 주변의 저지대로 내려가기로 한다.
톰페아 언덕에는 에스토니아의 정부청사를 비롯하여
국회의사당, 외국 대사관들이 많이 모여 있다.
예전에도 이곳은 왕족들과 귀족, 교회의 영역이어서
톰페아 성을 비롯하여 성 마리아 대성당과 그 외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저지대에 비하면 규모가 크기도 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이 많다.
에스토니아를 침략한 나라들에 의해 다양한 건축물들이 세워지기도 했는데,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은 러시아 지배 때 건축되었다.
약소국의 아픔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에 의해 차례로 지배된 아픔과는 달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탈린 구시가는 동화 속 풍경 그 자체였다.
(2018.08.07.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