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인천 옹진] 2박3일 백령도 대청도 여행 5 - 백령도 최초의 교회인 중화동교회, 연화리 무궁화

[인천 옹진] 2박3일 백령도 대청도 여행 5

- 백령도 최초의 교회인 중화동교회, 연화리 무궁화


중화동교회

(2018.10.7.일)



다시 전용버스를 타고 중화동교회로 이동하게 된다.

10월 초,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생각 외로 제법 너른 들판의 모습~~~


백령도가 까나리액젓 생산지로 유명하다더니

여기도 까나리젓을 담아둔 통들이 많이 보였다.


중화동교회 앞 동네와 벼가 익어가는 들판

옹기종기 집들이 정겹고 평화로워 보이며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보니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중화동교회에 도착.

언덕 위로 오르는 계단 옆으로

동네와 교회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커다란 보호수 팽나무가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다.

전에 방문한 분들 사진을 보면

계단 입구 양 옆으로 오래된 돌기둥이 있던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싶었다.


중화동교회


백령도 최초의 교회이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

백령도 교회들의 모교회(). 

 참사 벼슬을 지낸 허득이 황해도 소래(송천)교회의 도움을 받아

한학서당에 1898년 10월 9일 중화동교회 설립.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하던 언더우드 목사가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회장이 됨.

교회 옆에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 박물관인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521호 연화리 무궁화 설명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

보통 무궁화의 수령은 40~50년이라는데,

이 무궁화는 수령 약 100년.

높이 약 6.3m.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가지 끝에 겨우 명백을 유지하며 꽃을 피우고 있는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

지금까지 살아온 게 신기한데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옆에 있는 동백들이 푸름을 자랑하며

무궁화를 응원하는 듯 느껴지고...


계단 위 높은 곳에 위치한 백령도 중화동교회

연화리 무궁화는 이 계단 오른쪽에 있다.


중화동교회 종탑

주위에 작은 무궁화를 많이 심어 놓았다.

이 무궁화들도 천연기념물인 연화리 무궁화를 응원하는 것 같다.


중화동교회백령 기독교 역사관


중화동교회 예배당


교회 앞 오래된 향나무


옛 종


백령기독교역사관 앞 기념비

가운데 마주보는 기념비

한국 기독교 선교의 개척자인 언더우드 선교사가

중화동교회를 방문하여

학습과 세례문답을 통과한 허득을 비롯한 7명에게

세례를 준 성례식 집전 기념비,

백령도 기독교 신앙의 선각자인 허득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아담한 백령 기독교 역사관


중화동교회가 생기기까지의 역사


1816년 머레이 맥스웰 대령이 이끄는 팀이 복음을 전함.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백령도 중화동에 들러 전도.

1865년 토마스 선교사가 두무진에 상륙하였고,

이듬해 중화동에 들러 성경을 전달하고

대동강을 향해 순교의 길을 감.

1893년 백령도 토호인 허득이 당상관에 제수되고

이후 황해도 장연군 관아에서 동학란과 청일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치외법권 지역인 소래교회(1884년 설립)를 보게 됨.

당시 소래교회 담임목사는 캐나다인 매캔지 선교사.

허득은 관군, 동학군, 일본군도 얼씬 못하는

교회의 힘있는 모습을 보고 기독교에 심취하게 됨.

동학군 토벌 후 다시 백령도로 돌아온 허득은

백령도에 유배왔던 김성진이 조카로부터 입수한 성경책으로

성경 지식을 얻음.

1898년 6월 선교에 대한 나라의 해금이 풀린 후

소래교회로 가서 백령도에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뜻을 밝힘.

1898년 10월 9일 중화동의 한문서당에서

서경조 장로의 집전으로 중화동교회 설립 예배.

 1899년 초가 6칸 규모로 최초의 중화동교회를 세움.



중화동교회 설립사


중화동교회백령도의 여러 교회들

작은 섬에 교회가 무려 몇 개인가~~~

놀라울 정도다.


1816머레이 맥스웰 대령이 이끄는 팀이 복음을 전함.

한국 최초의 복음, 백령도에 전해짐.


한국을 찾은 최초의 선교사 귀츨라프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백령도 중화동에 들러 전도.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

1865년 토마스 선교사가 두무진에 상륙하였고,

이듬해 백령도 중화동에 들러 성경을 전달하고

대동강을 향해 순교의 길을 감.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 이야기

기독교 역사의 현장인 대동만 지역...


1890년대의 소래교회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

1884년 황해도 장연군 소래(송천)에 서상륜, 서경조 형제가 세움.


기독교 역사의 현장, 대동만 지역~

그리고 1898.10.9. 중화동교회 창립...


중화동교회 창립 이야기

처음 대청군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에 복음이 전해지고,

이후 귀츨라프의 전도,

토머스 선교사의 성경 전달,

허득의 기독교 심취 및 교회 설립 의지,

서경조 장로의 중화동교회 설립 예배 집전,

최초의 중화동교회 설립으로 이어짐.


한국 선교의 개척자 언더우드가 중화동교회 방문

언더우드, 중화동교회 초대 당회장이 됨.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

1885년 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에 입국.

1886년 한국 최초의 고아원(경신학교의 전신) 설립.

1887년 9월 새문안교회 설립.

1915년 경신학교에 대학부 설치(연희전문학교 설립의 바탕).


언더우드 가문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언더우드 2세(원한경)는 1912년 9월 선교사로 내한,

1917년 연희 전문학교에서 한국 최초로 '사회학' 과목 개설 강의.

1919년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림.

언더우드 3세(원일한)는 한국전쟁 때 해군 대위로 참전,

연세대에서 한국 교육의 발전과 한미 우호 증진에 힘씀.

언더우드 4세(원한광)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 학살을 세계에 알렸다가 한국에서 추방당함.

2004년 정부에서 언더우드 가문에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

(출처: 다음백과)


백령도 최초의 교회이자 모교회인 중화동교회


유교 문화가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던 시절에

한학서당에 교회를 세웠다는 건 참으로 획기적인 일...

이번 여행 중 백령도 땅을 밟은지 얼마지 않아

'백령도에는 교회가 참 많구나' 싶었는데,

중화동교회를 방문해서 백령도의 기독교 역사를 알아보니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복음이 자연스럽게 전파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었다.

이번 중화동교회 방문은 백령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기독교의 역사를 자세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2018.1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