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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경기 여주] 눈이 내리면 신륵사에 가고 싶다

[경기 여주] 눈이 내리면 신륵사에 가고 싶다


남한강변 신륵사 강월헌과 삼층석탑

(2017.1.24)


눈이 내린 신륵사~~~

참 근사하지 않은가!

신륵사는 꽤 여러 번 들른 곳이다.

그런데도 또 들렀던 건 순전히 눈이 내렸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기념품점을 지나 장터를 지난다.

주변에도 볼거리가 참 많다.

원호 장군을 기리는 비부터 가마터 등등~


신륵사 일주문

주차장에서부터 이것저것 곁눈으로 살피다가

한참만에야 일주문에 닿았다.




남한강 조포나루터와 황포돛배

또 곁눈질~

남한강변에 발이 묶여 있는 황포돛배도 만나고,

건너편 산 언덕의 영월루도 만나고...


신륵사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원효

아홉 마리의 이 승천한 연못을 메우고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고려의 고승인 나옹이 머물러 절이 크게 확장됨.

나옹은 1376년(우왕 2)에 신륵사에서 사망하였는데,

1379년(우왕 5)에 나옹의 제자들이 절을 크게 짓고,

나옹의 사리탑을 세웠다.

이후 목은 이색이 이곳에 대장각을 짓고 대장경을 봉안.

1440년(세종 22)에 중수,

1473년(성종 4)에 세종의 능인 영릉을 여주로 이장하면서

 영릉의 원찰이 됨.

사찰명은 보은사(報恩寺)로 바뀌었다.

이후 원찰로서의 의미가 약해진 후에 다시 신륵사로...

벽돌로 만든 전탑이 있어

예전에는 벽절로 불렸다고 한다.


여주 신륵사 전각들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한옥 건물이 보이는데

템플스테이 공간이다.

 불이문을 지나 오른쪽의 누각, 왼쪽의 비들을 지나면

신륵사의 중심 사찰 구역~~~

범종각도 구룡루도 세심정도 눈에 들어온다.


여주 신륵사 구룡루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륵사의 중심 전각인 극락보전이 나오지만

남한강이 보이는 강월헌쪽을 먼저 찾기로 한다.

신륵사에 가면 늘 그러하듯~~~


보호수 은행나무

아무래도 이런 고목이 있는 곳은 영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층전탑과 강월

처음 신륵사를 방문했을 때는

사찰부터 주욱 돌아보았었는데,

이제는 남한강변을 먼저 찾게 되는 것이다.


남한강 풍경

물오리떼들이 여유롭게 노니는 풍경~


신륵사 다층전탑과 강월헌


남한강과 강월헌


강월헌(江月軒)

이 건물은 1972년에 홍수로 옛 건물이 떠내려가서

1974년에 지금의 자리에 재건축한 것이란다.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로,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

신륵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제일 경치로 친다.

나 역시도 여기에 한 표를 던지리라...



문화재자료 제133호 여주 신륵사 삼층석탑

나옹화상의 화장지에 세워진 석탑.

그의 사리탑은 신륵사 서북쪽 기슭의 보제존자 석종이다.


삼층석탑과 강월헌

이곳은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다비 장소였다는 곳.

이제는 삼층석탑이 남아 그의 혼을 위로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 나옹선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다층전탑 앞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강


옛 사람들이 남한강 중 이곳을

특별히 여강(麗江)이라 불렀다 하지 않는가!

강월헌에 서면

신륵사 앞을 흐르는 여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보물 제226호 신륵사 다층전탑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

2단의 기단과 3단의 계단은 화강암 재질.

탑신부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아 올렸는데,

그 위에 다시 몸돌 하나를 올려놓고 있어

7층 같아 보이기도 하는 구조.
탑의 북쪽으로는 수리할 때 세운 비가 전해오는데,

조선 영조 2년(1726)을 뜻하는 글이 나왔지만

이 때 다시 세워진 것이므로,

지금 탑의 형태는 만들 당시의 원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처음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 수리되는 과정에서

벽돌의 반원 무늬 배열상태가 어지럽혀지고,

전체 형태가 다소 변형된 것으로 보여진다.

(내용 출처 : 문화재청)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각



보물 제230호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대장각의 조성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을 적어 놓았는데,

비몸이 많이 파손되어 전체 내용 파악은 어렵단다.

불경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비문 뒷면에 적혀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우왕 9년(1383)이고,

비문 글씨는 권주의 글씨란다.


모처럼 사찰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숲길을 걸어보았다.

수목장을 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산 눈길~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길가에 놓인 돼지 기부함~

이런 산길에까지 기부함은 좀...

다른 때와 달리 사찰 오른쪽 숲길을 걸어서

나옹스님 부도쪽으로...


숲길을 20여 분 걸어서 나옹스님 부도탑(보제존자 석종)에 도착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나옹화상) 석종

 나옹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종모양을 닮았다하여 석종이라 불린다.

나옹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으로 밀양에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니,

그 제자들이 절 뒤에 터를 마련하여 이 탑을 세웠다.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석종 측면에 있는 석종비에 의하면

나옹화상의 입적(1376년) 3년 후인 우왕 5년(1379년)에 건립된 것으로

고려말 조사 부도의 형식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내용 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229호 보제존자 석종비

보제존자 나옹의 탑비이다.

보제존자 나옹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였던 승려이다.

나옹이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자

이후 그를 따르던 문도들이 절안에 터를 마련하여

사리를 안치한 석종과 석비를 세웠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이 짓고,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가 글씨를 썼다.

(내용 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231호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

신륵사 서북쪽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이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보제존자석종 및 석비와 함께 세워진 작품으로,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며,

고려 후기의 대표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 출처 : 문화재청)



보제존자 석종, 보제존자 석종비,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



보제존자 석종, 석종비, 석등을 본 후 조사당쪽으로 내려가는 길...


보물 제180호 신륵사 조사당

신륵사 조사당은 3화상(지공, 나옹, 무학)을 기리고 숭모하려고

영정을 모신 전각이다. 


문화재자료 제167호 여주 신륵사 삼화상 진영

가운데 앞쪽으로 나옹화상의 나무 독존,

뒤편 벽면 영정은 왼쪽부터 무학, 지공, 나옹화상의 영


여주 신륵사 원구형 석조부도, 팔각원당형 석조부도


여주 신륵사 팔각원당형 석조부도, 원구형 석조부도

아래로 보이는 전각은 왼쪽 작은 것이 조사당,

가운데 큰 전각이 극락보전




가장 왼쪽이 조사당, 가장 오른쪽이 명부전


보호수 향나무와 조사당


명부전, 왼쪽 작은 전각은 봉송각


봉송각은 사십구재, 혹은 기타 재를 모신 후

마지막으로 전송하는 전각


명부전 앞에서 본 조사당과 향나무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

스님들만의 공간이겠지...


삼성각


극락보전 뒤에서...

극락보전 지붕은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을 보여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신륵사 극락보전,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신륵사 극락보전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

숙종 4년(1678)에 지어진 후

정조 21년(1797)에 수리되기 시작해서 정조 24년에 완공.
앞면 3칸·옆면 2칸, 지붕은 팔작지붕.

내부에는 불단 위에 나무로 만든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위에 화려한 닫집이 꾸며져 있다.

또한 영조 49년(1773)에 제작한 범종과 후불탱화가 있다.
극락보전의 정문 위에는 나옹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오는

 ‘천추만세’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입체감 있게 쓰여져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이함이 있다.
(내용 출처 : 문화재청)


경기도 유형문화재 신륵사 극락보전,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2단의 기단.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의 세부적인 조형 방법은 전혀 달라서,

기단에서부터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8층 몸돌 위에 지붕돌 하나와 몸돌 일부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층수가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8층 탑신의 아래까지만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하얀 대리석이 주는 질감은 탑을 한층 우아하게 보이게끔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과 돌의 재질, 조각양식이 비슷하다.

신륵사는 조선 성종 3년(1472)에 대규모로 새 단장을 하였는데,

이 탑도 이 때에 함께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내용 출처 : 문화재청)


적묵당, 신륵사 종무소


신륵사 심검당

 

봉미산 신륵사 현판이 걸린 구룡루 안쪽


신륵사 구룡루

이렇게 사찰까지 대충 돌아보고 나온다.

왼쪽의 범종각은 왜 온전한 사진도 없냐며 삐질 법도 하다.



신륵사 강월헌과 삼층석탑이 보이는 풍경~

이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


눈이 내리는 날, 다시 신륵사에 가고 싶다.

건너편 영월루에도 올라 보고 싶고,

강월헌에 서서 여강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2017.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