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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동유럽,발칸

음악과 함께한 발칸 여행 10 - (크) 풀라의 로마 유적들(원형경기장, 세르기우스 개선문, 아우구스투스 신전)

음악과 함께한 발칸 여행 10

- (크) 풀라의 로마 유적들

(원형경기장, 세르기우스 개선문, 아우구스투스 신전)


크로아티아 첫 여행지 로빈(로비니)을 뒤로 하고

풀라로 향하였다.

크로아티아에서 로마시대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는 도시다.

풀라에서 우리가 보게 될 로마의 유적들은

원형경기장, 세르기우스 개선문, 아우구스투스 신전 등~~~

크로아티아에서 로마의 유적들을 보게 되다니

신기하게도 느껴지고 기대 되기도 한다.


풀라 아레나(원형경기장, 원형극장)

(2017.7.31.월)


풀라(Pula)


풀라는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 최남단에 위치,

이스트라 반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도시란다.

BC 2세기에 로마에 정복되었고

고대 로마 시대에 이스트라 반도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

12~18세기에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받음. 

1798~1918년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령,

1919-1947년에는 이탈리아령.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에 건설된 해군기지가 남아 있다.

오랜 전통의 포도주 양조업, 어업, 조선업, 관광업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공원(Valerijin park)과 풀라 아레나(풀라 원형경기장, 원형극장)

공원의 동상은 공산 정권 시절에 세운 것이겠지...

왠지 저 유적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풀라 원형경기장(원형극장)


지름 130미터, 높이 32.5미터의 3층 구조이며

주재료는 석회암과 화강암을 사용했고, 23,000명 수용.

베시파시아누스 황제가 로마의 콜로세움과 함께 세웠다고 한다.

기원후 1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80년 걸쳐 만들어졌단다.

로마제국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건설 되었는데

여자 죄수들도 건설에 참여했다고 한다.

과거 로마 검투사와 사자의 사투가 벌어진 곳이며

규모는 로마의 절반 크기란다,

현재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아레나 중

원형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다는 경기장이란다.

서로마시대에는 잔인함 때문에 투우로 대체되었고,

중세에는 이곳에서 소나 양 등을 키웠다고 한다.

이곳 돌들로 개인 집을 지은 때도 있었다고 하니

하마터면 위대한 건축물이 없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로아티아 10쿠나 화폐에 그려져 있기도 한 유명한 건축물이다.


풀라 원형경기장은 현존하는 원형극장 중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단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은 시대에 축조 되었다는~

특히나 네 개의 측면 탑과 세 개의 로마건축양식의 기둥이

모두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경기장이란다.

그래서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규모면에서도 5대 원형극장에 속할 정도...


23,000명이나 수용할 수 있단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건설된 경기장


이스트라의 흰 석회암과 화강암을 사용하였고

 건설 당시 최고 아름다운 경기장이었단다.


오늘날에는 검투사 경기는 없고,

엘튼 존, 스팅 등 유명 팝 가수 공연이 개최되기도 했단다.

풀라 영화제(매년 7월말 개최)에서는

이곳에서 예술 영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과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27년부터 기원 68년에 이르는 사이에 지어졌다고 한다.

바다 쪽은 3층, 다른쪽은 2층으로 지은 구조이다.


로마 제국 때, 권력투쟁을 막으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아들인 크리스푸스를 처형하고

사촌 동생인 부제 갈리우스를 처형한 곳이기도 하단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것이라는데,

이렇게 오래도록 유지되어온 것이 놀라웠다.



폰으로 인증사진 하나~


로마 콜로세움의 절반 크기라고 하며

현재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 중

원형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다는 경기장이란다.



외부 한 바퀴를 다 돌아보지 못했고

내부까지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렇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움을 느꼈다.


풀라 원형경기장을 본 후

세르기우스 개선문과 아우구스투스 신전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길가의 유도화가 여름 분위기를 느끼게 하네...


천주교 성당을 지나며~


 

크로아티아 풀라의 거리 카페에도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현지 가이드님과 같이 세르기우스 개선문으로 이동 중~~~


 

구시가의 오래된 모습들...

세르기우스 개선문 앞 포르타라타 광장



세르기우스 개선문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한 세르기우스 가문의 세 형제를 기리기 위해

기원전 27년에 세워진 개선문.

악티움 해전은 카이사르(그동안 케자르, 시저로도 불렸었다)의 사망 이후에 벌어진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 사이의 일전이다.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고 그가 로마 최초의 황제(아우구스투스)이다.

세르기우스 개선문(Triumphal Arch of the Sergi)

세르기 가문의 세 형제, 특히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루시우스 세르기우스 레피두스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개선문의 위에 세 형제(레피두스와 두 형)의 입상이 있었다고 한다.


풀라의 구시가를 감싸는 성벽의 문으로 양편으로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성벽의 흔적.

세르기우스 개선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카페가 보이고 그곳에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이 있다.

(파라솔 보이는 창가 베란다)


개선문의 앞뒤에는 아름다운 소년들과 화관들로 장식했다.

말이 끄는 전투용 전차가 새겨져 있고,

날개가 달린 승리의 여신도 새겨져 있다.


세르기우스 개선문(Triumphal Arch of the Sergi)

포르타라타 광장쪽을 바라보며...


세르기우스 개선문 안 울리카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을 발견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시기적으로 아주 오래된 건물인 듯~


울리카(ulica) 카페 입구


제임스 조이스(1882. 아일랜드 더블린~1941. 스위스 취리히) 동상


이곳에 왜 제임스 조이스 동상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가이드님과 일행은 멀어지고 당시에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조이스는 1904년 10월에 더블린을 떠나

이곳 폴라에 있는 베를리츠 스쿨에 자리를 잡았고

틈틈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당시에 풀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토에 속했었다.

1905년에 트리에스테로 이사하기 전까지 이곳 풀라에 머물렀던 모양이다.

대표작 : <율리시스(즈)>,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세르기우스 개선문을 통과하여 조이스 동상을 본 후

아우구스투스 신전으로 가는 길~~~


골목마다 이런 정겨움이 있는 곳~


거리의 다양한 상점들을 지나며~~~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정면 왼쪽의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오른쪽의 현 시청사


아우구스투스 신전



아우구스투스 신전

정면 4개 측면 2개의 코린트식 기둥을 가진 구조이다.

기원전 2년부터 기원후 14년에 걸쳐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단다.

기독교가 전파됨에 따라 신전의 역할은 끝나고

지금은 고고학 박물관의 분관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1944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폭격을 맞아 재건되었다.

그래도 앞쪽은 옛것 그대로란다.


 

 

결혼식이 었었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신전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신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려는 모양이다.

오래된 역사의 유적이 현재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신전의 앞쪽은 초기의 모습 그대로란다.

2000년이나 된 것이라니~~~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파괴의 흔적은 2차대전 때의 폭격 때문이라는 아픔이...


눈을 돌리니 바로 바다가 바로 인접해 있는 곳~

조선소쪽인가 보다.


아우구스투스 신전 뒤편은 보수가 이루어진 것이란다...


아우구스투스 신전

정면쪽에서는 네 개의 기둥이, 측면으로는 두 개의 기둥이 보인다.

지금은 고고학 박물관 분관으로 쓰이고 있고,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주어진 시간이 짧은지라 내부 관람은 패스~~~


일행의 폰으로 인증사진 하나 찍고...


   

  한번 더 시청 앞 광장을 돌아보며...


 

 

크로아티아의 학생들도 견학을 많이 왔다.

또다른 무리의 관광객들도 만났다.

역시 이곳은 풀라의 관광 명소인가 보다...


시청 광장을 지나 버스를 타러 가는 길~

벽돌이 박힌 모습, 중세 느낌이 폴폴 나는 길을 따라서...



대성당

5세기에 지어진 풀라 대성당의 대제단은 로마의 석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세기 이후 성인들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단다.

바닥에는 5-6세기 모자이크 조각이 드러나 보인다고 하며,

종탑은 원형 경기장의 돌을 이용해 17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성 마리 대성당

저 종탑이 원형경기장의 돌을 이용해서~?
원형경기장이 워낙 방대하여 돌을 가져가기 쉬웠을 테니

여기저기서 돌을 갖다 쓸 수 있었을 게다.

개인 집들도 원형경기장의 돌을 가져다 지은 적이 있었다니......


성 마리 대성당

갑자기 '우리 엄마 아빠가 안 보여요'라는 일행 학생의 말에

그분들을 기다리느라 이곳 그늘에서 기다리게 됐다.


덕분에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고 쉬어 간다.


일행을 확인한 후 다시 이동하는 중에

티토 공원(Tito's park)을 지나며~

공원 곳곳에 동상, 흉상이 세워져 있다.

티토 공원의 동상들도 공산 정권 시절의 산물이리라......


또 올 수 있을까 싶어 풀라 원형경기장을 다시 바라보며...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인류의 유산인 그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풀라 선착장 옆을 지나~


풀라 여객선 터미널


풀라 기차역 주변에 잠시 정차 중인 버스를 탔다.


아드리아 해 북부 이스트라 반도의 풀라에서

원형경기장, 세르기우스 개선문, 아우구스투스 신전 등을 보았다.

로마 당시의 유적을 크로아티아에서 보게 되다니~~~  

로마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된다.

이제 크로아티아 최대의 로마 유적 도시 풀라를 떠나

아름다운 휴양도시 오파티야를 향해 가게 된다.

역시 차 안에는 음악이 흐른다...

음악과 함께한 행복한 발칸 여행은 계속된다~~~


(2017.7.3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