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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터키,그리스+UAE

그리스 여행 13 - 고대 코린토스(코린트, 고린도) 유적

그리스 여행 13 - 고대 코린토스(코린트, 고린도) 유적


< UAE+그리스 전체 여정 >

2019.1.8.(화) 00:15 인천 출발~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두바이~아부다비(1박)

~그리스 아테네(1박)~산토리니(1박)~코린트(코린토스, 고린도)~올림피아(1박)~델피(델포이)

~메테오라(1박)~아테네(1박)~아부다비 경유~기내(1박)~1.16.(수) 11:45 인천 도착


고대 코린토스의 레카이온 거리와 아크로코린트

(2019.1.12.토)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을 나와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를 돌아보게 된다.

현대의 코린트 외곽과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아크로코린트 (해발 575m)의 성채 아래에 위치.

아크로코린트의 성채에서는 고대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와 현대의 코린토스, 코린토스 운하의 위치

고대 코린토스와 현대의 코린토스는 약 5km 거리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 안내도


고대 코린토스 복원도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

B.C. 700년에 세워진 도시였으나

B.C. 146년에 로마 장군 뭄미우스에 의해 파괴됐고

약 100년 후인 B.C. 44년에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재건.

이후 몇 차례의 지진에 의해 다시 무너짐.

1896년 미국 고고학회에 의하여 발굴이 시작되었단다. 

 이곳에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아폴론 신전,

옥타비아 신전, 오데온, 대극장,

페이레네 샘과 글라우케 샘, 상가,

사도 바울이 신성 모독죄로 고발당하여

재판을 받던 자리인 비마(Bema) 터 등이 남아 있다.  

아폴론 신전 외에 아고라를 둘러싼 대부분의 건물들은 로마 유적.


그리스 신화에 의하

 이 도시는 1세대 태양신인 헬리오스의 후손인

코린토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신화에 의하 

 타이탄 신 오세아누스의 딸인

에피라에 의해서 건설되었다고도 한다.

또는 시시포스 왕이 세웠다고도 한다.

6세기 중반까지 주요한 도기 수출 국가였단다.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에도 여러 가지 도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글라우케의 샘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슬픈 전설의 샘, 글라우케의 샘~

 ‘글라우케’는 그리스어로 '푸른 물빛'을 뜻한단다.

글라우케의 샘은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인 글라우케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얽힌 샘이다.


 그리스의 신화 속 영웅 이아손~

테살리아의 도시인 이올코스의 아이손 왕이 쇠역해져

동생에게 잠시 왕위를 물려주었으나,

동생은 조카에게 왕위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숙부는 이아손에게 콜키스의 황금 양털가죽을 가져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아손은 자기와 함께 떠날 영웅들을 모아

아르고 원정대를 꾸며 원정길에 나선다.

개중에는 헤라클레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아손은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 양모를 얻어 돌아가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왕위는 돌아오지 않았고,

메데이아는 마술을 이용하여

숙부의 딸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를 죽이게 만든다.

그 일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코린토스로 추방당했으며,

10년간은 행복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인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고 한다.

배신에 화가 난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죽이고,

글라우케마저 죽일 계획을 세운다. 
메데이아는 결혼 선물로 독이 묻은 아름다운 옷을 글라우케에게 전한다.

그 옷을 입은 글라우케는 온 몸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고,

아버지 크레온 왕은 딸을 껴안고 죽게 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차라리 샘이 해 달라고 신께 비는 글라우케~

고통 받는 글라우케를 외면하지 못한 신들은

그녀를 푸른 물이 솟는 샘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앞에 위치한 글라우케의 샘

입장 구역 뒤편 글라우케의 샘 너머로 오데온이 자리잡고 있고,

입장 구역 건너편은 대극장(원형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글라우케 샘과 아폴론 신전 사이쯤에 원래 헤라 신전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빈터로 남아 있다. 


코린트 고고학 박물관과 뒤편 아크로코린트를 바라보며... 


아폴론 신전으로 다가간다.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신전이다.


아폴론 신전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들 중 그리스 시대의 것이 별로 없는데,

아폴론 신전은 그리스 시대에 건축된 것이란다.

B.C. 6세기에 38개의 기둥(높이 7.2m, 원주 직경 1.8m)으로 건설,

웅장한 도리아(도리스)식으로 건축되었단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 중에서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으로

기둥 7개가 현재까지 비교적 보존이 잘 돼 있는 신전.


아폴론 신전에서 보는 고대 코린토스 아고라 지역~

앞쪽이 북서 상점가...


아고라 지역과 뒤로 보이는 아크로코린트


비 맞은 묵주나무...


아크로코린트 높은 곳에 보이는 성채



아크로코린토스  

그리스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에 구축된 아크로폴리스로

성채의 견고함이나 규모면에서도 그리스 최고의 성채.

성곽 둘레 약 2km.

그리스 시대의 아크로폴리스

이후 이곳을 지배했던 로마, 프랑크, 베네치아인들이

여러 번 개축과 증축을 한 성채가 남아있다.

1821년에 오스만 투르크와 독립전쟁 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요새란다.

1문을 시작으로 3문까지 통과하면 산꼭대기에 이르는데,

그곳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단다.

당시에 코린토스는 상업과 무역으로 번성했으며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퇴폐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 신전에 소속된 천 명에 가까운 여사제들도 매춘을 했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전에 바칠 제물을 구입할 돈이 필요해서였을까~~~


아크로코린토스와 관련해서 시시포스 이야기도 뺄 수 없다.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시시포스~

시시포스를 예전에는 시지프스나 시지푸스로 발음했었는데,

사전을 찾다보니 시시포스라고 나와 있네...


시시포스의 형벌에 대한 이야기 하나~

처음 코린토스에 도시를 세우려니 물이 부족해서

강의 신 아소포스에게 샘을 부탁했다고 한다.

아소포스는 시시포스에게 자기 딸을 납치한 이가

제우스임을 알려준 대가로 샘을 만들어 주었다.

제우스는 그 일로 시시포스에게 무거운 벌을 내렸다.

무거운 바위를 산으로 굴려 올리는 일...

그런데 그 바위를 정상에 올리면 다시 굴러 내려가버려서

시시포스는 아래로 내려가 다시 산으로 밀어 올리는 일을

끝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시포스의 형벌에 대한 이야기 둘~~

지상 세계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시시포스...

죽어서 지하 세계의 지배자인 하데스 앞으로 나아가

울지 않는 아내를 벌하겠다며 지상 세계로 잠시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는

영원히 지상 세계에 살고 싶어서 지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았고,

시시포스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하데스는 화가 나서

거대한 돌덩이를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는 벌을 내렸다는 이야기...


산 위를 바라다보니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의 이야기가 아직도 진행 중인가 싶기도 하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장관이란다.

이번에는 못 갔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올라봤으면...


광장에서 북서 상점가 터와 아폴론 신전을 바라보며...


서쪽 상점가

기초만 남은 B.C. 4세기에 지어진 상점 거리,

신비에 쌓인 듯 보이는 아크로코린트...


서쪽 상점가



앞쪽으로 보이는 코린트 양식의 기둥 머리(주두).

아칸서스 잎 모양의 무늬가 뚜렷하다.

코린트 양식을 말할 때 등장하는 잎 모양...


서쪽 상점가에서...


로만 아고라(ROMAN AGORA)의 서쪽 상점가


시저(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이름도 보이고,

코린트 양식의 아름다운 기둥 머리 장식도 널려 있다.


고대 그리스의 건축 양식


* 도리아 양식: 도리아(도리스)인들이 창안한 고대 그리스의 건축 양식으로,

기둥이 굵고 간결하며 장중해서 남성미가 느껴진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이곳 코린토스의 아폴론 신전이 대표적.


* 코린트 양식: 기둥이 가늘고, 주두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기둥머리(주두)에 아칸서스 잎을 조각하였고 화려하게 보인다.

아테네의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과 코린토스의 옥타비아 신전 기둥이 남아 있다.


* 이오니아 양식: 아나톨리아 서쪽에 살던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인들이 만든 양식.

기원전 6세기부터는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곳곳에 사용되었다.

도리아식에 비해 기둥이 높고 가는 편이며 우아함이 느껴진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에렉테이온 신전이 대표적.


광장의 또다른 글씨들~


코린토스와 관련된 사람 중에 괴짜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있다.

 디오게네스는 허영과 쾌락을 추구하던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절약과 절제의 미덕을 알려준 철학자이다.

디오게네스가 통나무 술통에서 살았던 것도

검소하고 간소한 삶을 실천하는 거였단다.


코린토스에 괴짜 철학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왔다.

알렉산드로스: "그대는 내가 두렵지 않은가?"

디오게네스:  "당신은 누구입니까? 선한 자입니까? 악한 자입니까?"

알렉산드로스: "물론 선한 자이지."

디오게네스: "그러면 누가 선한 자를 두려워하겠습니까?"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알렉산드로스가 총사령관이 되자

이름 있는 정치가, 철학자들이 코린토스로 몰려와 축하인사를 했지만

디오게네스는 가지 않았다.

디오게네스가 크라네이온(운동경기장)에서 햇살 아래 누워 있다는 소식에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를 직접 찾아갔다.

총사령관을 알아본 디오게네스가 일어나 앉자

알렉산드로스가 말했다.

"뭐 도와드릴 일이 없겠습니까?"

디오게네스의 말이 걸작이었다.

"있지요. 내 앞의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 조금만 비켜 서 주시오."

화가 난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들이 그에게 대들려 했으나 말리고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중해에서 인도 인더스강 유역까지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서도 

당당하고 재치 넘쳤던 디오게네스~

참 특별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이런 철학자의 이야기를 되새기는 것도

나름 흥미 있는 일이었다.



언덕 위의 아폴론 신전북서 상점가를 바라보며...


로만 아고라(ROMAN AGORA) 이모저모

북서 상점가와 끝쯤에 프로필라이아가 있던 곳...

지금 걷는 거리쯤에 경주 코스가 있었을 것이다.


로만 아고라(ROMAN AGORA)

이곳이 경주 코스였던 것 같다.

아고라가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B.C. 4세기,

 아고라에 있는 중요 유적은 대부분 로마 시대의 것들.


중앙 상가 지역


중앙 상가 지역 가운데의 비마(BEMA)


중앙 상가 지역 안내도

가운데 연단(비마)이 있고,

양쪽으로 중앙 상가가 늘어선 모습...


중앙 연단인 비마(BEMA)

로마 시대에 연설을 하던 곳...

유대인에게 고발당한 사도 바울은 이곳에 서서

갈리오 총독 앞에서 자신을 변호했었다고 하며,

후에 이를 기리기 위해 교회가 세워졌다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연단 앞 기둥은 사도 바울이 묶여 있었던 곳으로

재판과 채찍을 받았던 곳...




비마 뒤편으로 남쪽 스토아가 있다.


남쪽 스토아 열주랑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스토아(주랑)가 있던 거리


남쪽 스토아



아직도 복원 중인 모습


남쪽 주랑의 끝부분


남쪽 스토아(주랑)


비마(BEMA)

비마와 중앙 상가 뒤로 남쪽 스토아(주랑)가 자리잡고 있고,

그 너머로 남쪽 주랑을 지나 건설된 켄크레아이 길이 있었을 것이다.

아시아로 통하는 항로가 시작되는 곳, 켄크레아이 길... 

보이는 산은 아크로코린트...


비마를 지나 레카이온 대로 쪽으로 접어든다.

이 길은 레카이온(Lechaion) 항구로 통하는 길...

B.C. 5세기에는 이 길을 따라 항구까지 성벽을 쌓아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고 하며

아고라로 통하는 문인 프로필라이아가 이 앞에 있었단다.

대로 끝의 계단을 오르면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 주변이 이어지고,

사진 오른쪽 끝으로 교회가 보인다.

사도 바울이 전도한 곳이라는 고대 코린토스~

신 사도 바울의 교회는 현대 코린토스에 있단다.



레카이온 대로 프로필라이아 문이 있었던 곳...


비마에서 프로필라이아 문 지역을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페이레네 샘이 있다.

여기까지도 개들이 마중나와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마치 우리를 안내라도 하려는 것처럼~~~


레카이온 대로

대리석으로 포장된 고대의 길.

남쪽 주랑을 지나 건설된 켄크레아이 길은

아시아로 통하는 항로가 시작되는 곳이고,

레카이온 길은 로마로 가는 항로가 시작되는 곳.

당시에는 이 길 양 옆으로 공공건물 등 다양한 건물들이 서 있었을 테지... 

페이레네 샘과 로마시대의 공중화장실도 만나게 되고,

왼쪽으로는 바실리카 유적,

오른쪽으로는 아폴론 페리볼로스라는 이중 성벽 유적지도 만나게 된다.



페이레네 샘을 만난다.



페이레네 샘


시시포스가 처음 코린토스에 도시를 세우려니 물이 부족해서

강의 신 아소포스에게 샘을 부탁했다고 한다.

아소포스는 시시포스에게 자기 딸을 납치한 이가

제우스임을 알려준 대가로 샘을 만들어 주었다는 설이 있다.


페이레네가 원반던지기를 구경하고 있는데

원반이 날아와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자

슬픔에 빠져 너무 울다 샘물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시시포스의 손자인 영웅 벨레로폰(벨레로폰테스)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얻은 황금 재갈을 가지고 페이레네 샘을 찾았는데,

맑고 신선한 물을 마시러 온 페가소스(페가수스)는 이 황금 재갈을 보고

벨레로폰에게 얌전하게 잡혔다고 한다.


영웅과 신화의 나라답게

정말 다양한 영웅과 신화가 존재하는 그리스~

 내용이야 어떻든 페이레네 샘 이야기도 신기할 뿐이었다.




페이레네 샘

 


페이레네 샘으로 연결되는 고대 수로


페이레네 샘 아래로 널려진 대리석 더미에서 만난

고대 그리스에서 쓰이던 문양.

홀로 노를 젓는 뱃사공과 동그란 형태의 과일 장식~

뱃사공은 지상과 지하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강의 뱃사공이라고 하며,

동그랗게 만 과일 형태는 풍요를 상징하는 것(풍요의 뿔)이란다.


페이레네 샘 안쪽 뒤편으로 기둥이 서 있는 곳은

이중 성벽 유적 공간인 아폴론 페리볼로스 구역.

적의 침입에 대비한 고대 사람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앞쪽으로 보이는 석재에도 풍요의 뿔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북쪽 바실리카 지역에서 아폴론 신전을 바라보며...


쭉 뻗은 레카이온 대로

항구에서 들어오면 대리석으로 꾸며진 레카이온 대로와

양쪽의 건물들,

대로 끝에 웅장하게 서 있었을 프로필라이아,

뒤로 우뚝 솟은 아크로코린토스까지

고대인들의 마음을 묵직하게 사로잡았을 것 같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 보아도 당시로서는 굉장한 도시였을 것 같다.



레카이온 대로 옆 화장실 유적 주변


화장실 유적


레카이온 대로

이제는 되돌아가야 할 시간~

끝나지 않는 형벌의 주인공인 시시포스를 생각하며

너무 약은 행동은 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북쪽 바실리카 지역


비마 터와 아크로코린트를 배경으로...


비마 터, 앞쪽은 Heroon 터


비마 앞 옆의 고대 코린토스의 초기 성역 Heroon 터


비마 터에서 서쪽 상점가와 고고학 박물관 쪽을 바라보며...



비마 터에서 아폴론 신전 언덕을 바라보며...


비마 터에서 북서 상점가와 프로필라이아, 레카이온 대로 쪽을 바라보며...


사도 바울의 행로와 비마 관련 내용이 적혀 있는 안내판인데,

안내도도 낡았고 사진도 흐릿하다.


사도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 행로를 나타낸 지도


비마 터에서 남쪽 스토아 쪽을 바라보며...


남쪽 스토아 쪽에서 아폴론 신전을 바라보며...


로만 포럼 아고라에서...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뒤편의 유적지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뒤편으로

옥타비아 신전의 코린트식 기둥과 가로대가 보인다.


옥타비아 신전

로마 시대에 지어진 빼어난 건축물로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인 옥타비아를 위한 신전.

그리스 건축의 기둥 양식 중 주두가 가장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가장 잘 보존된 신전이다.

현재 세 개의 기둥이 남아 있다.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뒤편

옥타비아 신전이 있던 곳 앞에 모아 놓은 각종 건축 부재의 유물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다양한 기둥들이 전시되고 있다.



옥타비아 신전터를 나와

다시 아폴론 신전터로 향한다.

이곳은 서쪽 상점가


아고라의 이모저모


걸어나온 길~

내내 비는 내리고...


 아폴론 신전을 한 번 더 만나고...


코린토스의 아폴론 신전 앞에서 마지막으로...


글라우케 샘과 그 너머로 아폴론 신전을 바라보며

고대 코린토스 유적과 안녕을 고하게 된다.


B.C. 6세기까지 그리스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롭고 번성했으며

앞선 문명을 자랑했던 폴리스, 코린토스~~~

코린토스의 식민지 케르키라의 독립전쟁이 시발이 되어

아테네(델로스 동맹국)와 스파르타(펠로폰네소스 동맹국)가 대립한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스파르타의 강압적인 지배는

다른 폴리스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고,

결국 그리스 전체가 몰락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그리스를 차지하게 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코린토스에서 그리스의 폴리스 국제회의를 통해 그의 패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코린토스는 유대인들의 미풍양속을 깬다고 하여

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B.C. 146년 로마에 의해 폐허가 되었으나

사도 바울이 방문하였을 때는

새로운 상업의 중심도시로 급성장한 상태였다고 한다.

아크로 코린트의 최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으며,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향락을 즐기는 퇴폐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 신전에 소속된 천 명에 가까운 여사제들도 매춘을 했다니...

사도 바울이 코린토스에 온 것이 A.D. 50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퇴폐적인 모습을 본 사도 바울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된다.

그가 약 2년을 머물며 교회를 세우고 전도했으며,

코린토스를 떠난 후에도 걱정이 되어 보낸 4통의 편지 중 

현재 2편이 성경에 수록되어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로 전해진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 전서 13장 중 일부)

고린도 전서의 배경지, 사도 바울의 선교지,

아름다운 기둥머리 코린토스 양식의 발상지인 코린토스 방문을 마치며...


(2019.1.1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