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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안동]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2023.11.04.토)

 


 

 

그라스원에서 핑크뮬리를 본 후 안동시 길안으로 이동~

용계리 은행나무와 만휴정, 묵계서원을 만나러 갑니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들 중 하나이지요. 

목적지 가까이 길가로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는 절정의 단풍을 보여주었고,

어떤 나무는 절정을 지난 모습이었고,

또 어떤 나무들은 아직 물이 덜 든 상태였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용계리 은행나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용계리 은행나무 앞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은 따로 없고 길가에 주차해야 합니다.

길가에도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고운 모습이었습니다.

 

 

다리 건너 은행나무와 어우러진 주변 풍경이 예술이네요.

'와~' 소리가 절로 납니다.

입을 다물 수 없네요...

 

 

다리 가까이 가니 용계의 은행나무(용계리 은행나무) 표시가 보이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데크길이 보입니다.

다리 건너로 은행나무가 보이네요.

은행잎 단풍 절정 시기 즈음이라 찾는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용계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 용계리 은행나무를 만나러 갑니다.

마치 섬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색감의 단풍이 어서 오라고 잘 왔다고 팡파레를 울리는 것 같아요.

 

 

잎이 좀 떨어져 은행나무 발아래로 노오란 융탄자가 깔렸군요.

은행잎 단풍이나 동백꽃은 떨어진 모습도 아름답지요.

고운 단풍나무와 함께여서 더 화려한 풍경입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安東 龍溪里 銀杏나무)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1.0m, 둘레 13.67m이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契)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하여 온 나무로서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에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용계리 은행나무 앞에 안내 설명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700년 정도.

원래는 용계초등학교(길안초 용계분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심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이 옛 용계초등학교 자리네요.

예전에 초등학교 교정에 있을 때는 아이들의 학습장이자 놀이터가 되었을 것 같아요.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은행나무였다고 하고요, 

다시 심는 과정에서 가지가 잘려 원래의 규모를 잃었다고 해요.

나무의 높이 31m, 가슴높이 둘레 13.7m,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의 폭은 동서 방향이 26.9m,

남북 방향이 27.3m라고 합니다.

프레임에 의지한 모습이 안타까워 보입니다.

 

 

사방으로 돌아가며 담아봅니다.

상식 후에 이리 잘 살아남아서 참 다행이에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임진왜란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계를 만들고

나무 밑에 모여 친목을 다졌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또 한말 일본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의병의 궐기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안동 의병장에 추대된 척암 김도화는 이 나무에 북을 걸어 놓고 치면서

의병을 모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으며

나라에 안 좋은 일(한일합방, 한국전쟁  등)이 생기면 울음소리를 냈다고도 합니다. 

 

 

 

은행나무전시관

임하댐 건설로 인한 용계리 은행나무 상식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 상식 : 올려심기

은행나무 전시관

이 자리 앞쯤에 옛 학교 건물이 있었겠지요.

1973.03.01.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장이 설치되었었네요.

1990.03.01.자로 폐교되었으니 17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지닌 용계분교장이었군요.

은행나무전시관 왼쪽 바로 옆으로 용계분교 교문 자리였는지 초록색 문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은행나무전시관에서 본

용계리 은행나무 상식 이전 모습, 상식 중 모습, 상식 이후 모습입니다.

임하댐 건설 전 옛 용계분교와 용계리 은행나무.

은행나무의 위세가 아주 당당합니다.

예전에는 이 은행나무 뿌리가 하천까지 뻗어 있었다고 하네요. 

하천이 바로 옆이니 그럴 수밖에요...

 

 

상식 이전의 용계리 은행나무.

잎도 많고 가지도 아주 튼실해 보입니다.

 

 

상식 이전의 은행나무 모습.

상식을 주도하셨던 (주) 대지개발 고 이용호 회장님이 둘레를 가늠해주고 계시네요..

 

 

수몰 전의 옛 동네, 용계리 은행나무 옮기는 작업 중인 모습

 

 

상식 공사 중~

보기만 해도 엄청난 공사라는 걸 알 수 있네요.

 

 

 

 

 

상식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축대를 쌓고 올려심기(상식, 上植) 중인 용계리 은행나무, 다리 건설 중인 모습

 

 

다리 건설, 동산 조성, 상식 이후의 용계리 은행나무.

상식 완료 몇 년 후부터 조금씩 회복되어온 용계리 은행나무입니다.

 

 

 

 

 <용계리 은행나무~ 임하댐 건설과 올려심기(상식, 上植) 내용>

◎ 상식 사유 : 임하댐 건설로 인한 수몰에 따른 신목(神木) 보존 및 보존 관리

공사 기간 : 1990.11.06.~1994.10.08.(4년)

공사비 : 약 20억(1,985,500,000원).

시공자 : (주) 대지개발

      * 공사시 특약 : 상식공사가 실패할 경우 전액변상하기로 공증서 제출

◎ 상식 높이 : 현 위치에서 15m 상식

◎ 상식 방법 : 특허공법인 요철(凹凸)뿌리돌림 및 생명토공법. HB 공법 

◎ 연도별 공사 내용 

    (1) 1차년도 (1990.11.06.~1991.01.30.) : 뿌리돌림, 가지치기, 약제살포, 작업대 설치

    (2) 2차년도 (1991.07.10.~1992.02.15.) : 차수벽 설치, 방풍대 설치, 제방축조

    (3) 3차년도 (1992.03.05.~1993.02.19.) : 겹분짜기, 상식용 철골제작, 상식, 관수시설 설치

    (4) 4차년도 (1993.09.07.~1994.03.08.) : 방풍 및 조경수목 식재, 관리사 신축

    (5) 마무리공사 (1994.09.~1994.10.18.) : 주변 정리

◎ 상식 후 관리

     (1) 목적 : 은행나무의 완전한 생육과 관광자원화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보호사업 필요

     (2) 사업내용 : 은행나무 생육활착사업, 병충해방제사업, 주변정비사업, 편의시설 설치사업 등

 

공사비가 약 20억~

억억~ 소리가 나는 나무네요.

가장 비싼 은행나무라는 별명이 붙을만합니다.

공사시 특약으로 상식공사가 실패할 경우 전액변상하기로 공증서를 제출했다고 하니

시공자 입장에서는 꼭 성공해야만 하는 공사였겠네요.

시공자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이리 볼 수 있네요.

 

 

상식 이후 모습.

(주) 대지개발 고 이철호 회장님 외.

이 은행나무는 이식한 나무 중 가장 큰 나무로

기네스 세계 기록(2013년 4월 15일 등재)에 올려졌다고 합니다.

1994년 10월 19일에 상식공사 준공식과 고유제가 올려졌다고 하네요.

 

 

전시관에서 상식 이전부터 상식 중, 상식 이후 모습까지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수몰 위기에서 살아남은 귀한 용계리 은행나무입니다.

전시관을 나와 주변을 돌아봅니다.

기념 식수, 기념비석, 동산의 단풍나무 등이 있네요.

 

 

기념 식수

용계 은행나무에서 2,000개의 종자를 받아 안동시 직영양묘한 것으로서

시민에게 2세목 2,000그루를 처음 분양하여

용계 은행나무가 제2의 번성기를 맞이한 기념으로 식수한 것이랍니다.

2007년 4월 5일에 식수했네요. 

 

기념 식수. 2세목들

 

 

봉림수 은행나무 비석.

이철호 회장이 세웠다고 하네요.

 

 

옆으로 동산 가는 길에 화장실도 있습니다.

 

 

동산의 단풍잎들~

어쩜 이리 고운지요.

그 화려한 자태에 반하게 됩니다.

 

 

용계 은행나무 상식공사 완공기념비도 한켠에 세워져 있습니다.

 

 

돌아나가며 바라본, 차를 댄 도로변 주변 모습입니다.

 

 

옛 교정의 단풍나무도 화려한 옷을 갈아 입고 나들이객을 맞이한 날이었답니다.

 

 

 

나들이객 적을 때 얼른 인증사진 찍어줍니다.

 

 

잎이 많이 떨어져서 보는 사람은 살짝 아쉬운 모습이었지만

나무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진 11월 초 방문이었고요.

더 절정의 시기에 방문하고 싶은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입니다.

어렵게 자리를 지켜온 기특한 용계리 은행나무가

더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며 돌아나옵니다.

이어서 만휴정으로 갑니다.

 

(2023.11.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