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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안동] 퇴계선생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곳 / 한국정신문화의 성지 / 도산서원

도산서원 (2023.11.04.토)

 

 

숙박페스타 기간에 할인을 받아서 숙소를 구하여 하루를 유하고

도산서원으로 향합니다.

몇 번이고 찾았던 도산서원이지만

가을의 도산서원을 건너뛸 수 없어 또 들릅니다.

아쉬운 건 날이 좀 흐리다는 거~~~

 

 

 

도산서원 가는 길 주변 도로변에는 단풍나뭇잎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보는 내내 눈이 환해집니다.

'역시 다시 오길 잘했다!'를 연발합니다.

 

 

도산서원 매표소 앞에서 설명과 안내도를 봅니다.

 

 

안동 도산서원 (安東 陶山書院)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적 문화재.

 

Ο  세계유산등재: 한국의 서원(2019. 7. 6.)

소수서원(영주, 1543), 남계서원(함양, 1552), 옥산서원(경주, 1572),

도산서원(안동, 1574), 필암서원(장성, 1590), 도동서원(달성, 1605),

병산서원(안동, 1613), 무성서원(정읍, 1615), 돈암서원(논산, 1634)

 

(문화재청 자료)

 

 

도산서원 관람요금과 관람시간이고요.

 

 

표를 끊고 곱게 잘 다져진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바닥에 떨어진 단풍이 너무도 고왔던 기억이 나는 길입니다.

 

 

해설사님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여러 번 간 곳이기에 그냥 주욱 돌아보기로 하고 지나쳐 갑니다.

 

 

어느 가족이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가네요.

참 바람직한 모습이로군요.

확실히 해설을 들으면 머리에 남는 게 많지요.

유난히 고운 단풍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을 것 같네요.

 

 

 

천광운영대

천광운영대에 도착했습니다.

퇴계 선생이 산책하던 곳으로 서쪽 절벽입니다.

당시에는 산기슭 절벽 느낌이 많이 났겠지만

안동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졌으니

퇴계 선생 살아계실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겠지요.

아무튼 주변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트이는 느낌이 드네요.

여기서 시사단을 바라봅니다.

 

 

시사단 (試士壇)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과거시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정조(재위 1776∼1800)는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조판서 이만수에게 도산별과를 새로 만들어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거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정조 20년(1796)에 영의정 채제공의 글로 비문을 새기고 시사단을 세웠다.

그 뒤 순조 24년(1824)에 고쳐 세우고,

1974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서 지상 10m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비각과 비를 옮겨지었다.

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 사이 벽 가운데를 가로질러 댄 나무인 중방 아래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판벽을 둘렀고,

추녀 4곳에 얇은 기둥을 받쳐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문화재청 자료)

 

 

 

시사단

강 가운데 보이는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정조가 퇴계 이황 선생의 유업과 학덕을 추모하여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였는데 응시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채제공이 지었다고 합니다.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서 지상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옮겨지었다고 하지요.

 

 

천연대

천광운영대에서 바라본 천연대 방향이고요.

 

 

천광운영대 뒤편의 전망대 주변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도산서원 앞 너른 마당에도 단풍이 아주 곱습니다.

특히 이 고목의 자태가 절정의 모습이지요.

 

 

도산서원 전경이고요...

 

 

도산서원 배치도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됩니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생전에 강학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후학들이 그의 학덕을 기리고자 지은 서원과 사당을 포함합니다.

서원의 배치 형태는 교육시설인 강당이 앞에 있고 제사 시설인 사당이 뒤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로서,

후대의 많은 서원들이 이를 본받았다고 하지요.

 

 

 

아래는 도산서원 홈페이지의 도산서원 연혁입니다.

 

  • 1557년(명종 12) 승려 법련(法蓮)에게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건립케 함
  • 1561년(명종 16) 승려 정일(淨一)이 도산서당 완공
  • 1570년(선조 3) 퇴계선생 70세를 일기로 역책
  • 1572년(선조 5) 상덕사(尙德祠)에 위패 봉안 결정
  • 1574년(선조 7)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짓고 서원 설립(진교당, 동.서재)
  • 1575년(선조 8) 서원 낙성, ‘도산서원(陶山書院)’으로 사액됨
  • 1576년(선조 9) 도산서원 완공, 위패 봉안, 시호 문순(文純)
  • 1610년(광해군 2) 문묘에 종사(從祀)
  •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 선생을 종향(從享)
  • 1792년(정조 16)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림, 도산별과(陶山別科)시행
  • 1796년(정조 20) 시사단(試士壇)을 세움
  • 1819년(순조 19)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 건립
  • 1870년(고종 7)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 보호됨
  • 1930년(경오년) 서광명실(西光明室) 증건(增建)
  • 1932년(임신년) 하고직사(下庫直舍) 이건
  • 1963년 전교당(보물 제210호), 상덕사(보물 제211호) 문화재 지정
  • 1969년 도산서원 일대를 사적 170호로 지정, 문화체육부 복원.정리사업 시행
  • 1970년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 건립
  • 1973년 시사단,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 33호로 지정
  •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 설치, 관리운영조례 제정 공포
  • 2003년 장판각(藏板閣) 목판 2,790장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
  • 2019년 세계유산 등록(「한국의 서원」 전국 9개소)
  • 2020년 도산서당(보물 제2105호), 농운정사(보물 제2106호) 문화재 지정

 

 

열정

 

도산서당 시절부터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인 <열정>입니다.

네모난 형태의 이 우물은 <역경>의 ‘정열한천식(井冽寒泉食)’ 구절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샘물과 같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원래 한 나무인데

흙을 북돋우다보니 이렇게 덮여서 네 나무처럼 보인다는군요.

해설사님이 말씀하시는 걸 곁에서 듣습니다.

 

 

먼저 도산서당으로 가 봅니다.

왼쪽 건물은 퇴계의 제자들의 기숙사였던 농운정사이고,

오른쪽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도산서당입니다.

가운데로 매화원 화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 (安東 陶山書院 陶山書堂)

퇴계 이황이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랍니다.

우리나라의 보물 문화재입니다.

 

도산서당과 정우당(연못)

퇴계가 직접 기본 설계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개별로 다녔지만 필요한 해설을 골라 듣습니다.

 

 

<陶山書堂>~

퇴계 이황의 글씨라고 합니다.

도산서원에는 퇴계의 글씨가 여러 개 있습니다만

이 '도산서당' 글씨는 좀 특별하네요.

특히 山자를 산모양으로 표현한 건

이 서당에 오는 후학들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라니

퇴계의 인간됨을 알려주는 글씨인 것 같습니다.

원판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다고 하네요.

 

 

퇴계가 머물던 방, 완락재~

완락재는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는 뜻.

제자를 가르치던 마루, 암서헌~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해서 바위에 깃들어 조그마한 효험을 바란다.'

라는 겸손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왼쪽의 빈 공간은 서고로 쓰이던 공간.

당시에 이곳에 책을 빼곡히 쌓아두었다고 합니다.

퇴계의 자취가 오래도록 남아 있는 곳이지요.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 (安東 陶山書院 隴雲精舍)

퇴계의 제자들이 머물면서 공부하던 기숙사입니다.

우리나라의 보물 문화재입니다.

 

 

농운정사

'공(工)'자 모양의 건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왼쪽은 서쪽 마루인 관란헌, 가운데는 지숙료, 오른쪽의 동쪽 마루는 시습재.

지숙료 뒤편으로는 하고직사가 있고요.

 

 

 

서쪽 마루는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고, 관란헌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가운데 마루 안쪽은 지숙료.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머물렀다고 합니다.

<농운정사> 편액이 걸려 있네요.

 

 

동쪽 마루는 공부하는 공간으로 시습재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농운정사 앞에서 낙동강쪽을 바라봅니다.

고운 단풍과 더불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네요.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농운정사를 돌아 나갑니다.

 

 

농운정사 뒤에는 하고직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원의 고직사는 상고직사, 도산서당 권역의 이 고직사는 하고직사라고 불립니다.

 

 

이제 서원 구역으로 가 봅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지요.

서광명실, 진도문, 동광명실.

진도문은 몸을 낮춰 겸손하게 들어가라는 의미로 문 높이를 낮게 했다 합니다.

 

 

광명실

책을 보관하고 열람하던 곳.

 

동광명실

광명실은 서책을 보관하고 열람할 수 있는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됩니다.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라고 합니다.

진도문을 가운데 두고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네요.

 

 

서광명실

원래는 동광명실만 있었으며 서광명실은 근대 들어 증건하였다고 하네요.

 

 

진도문에서 올라온 곳들을 바라봅니다.

가을빛이 너무도 고운 날이군요.

 

 

진도문을 들어서서 바라본 동서광명실

 

 

 

진도문에 걸린 북인데, 명고(鳴鼓)라고 하네요.

도산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할 때 

이 북을 쳐서 규율을 바로잡았다고 합니다.

 

 

진도문을 들어서면 동서 양쪽으로 박약재(博約齋)와 홍의재(弘毅齋)가 있고,

가운데로 전교당이 보입니다.

 

 

동재 - 박약재(博約齋)

박약재는 도산 서원의 원생이 기숙하던 곳으로,

동쪽 편에 위치하므로 동재(東齋)로도 불립니다.

정면 3칸 ·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강당과 함께 교육 공간의 중심을 이루며

앞마당을 가운데로 하여 서재(西齋)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동재에는 서재의 원생보다 선배가 거처했답니다.

* 박약(博約) - 학문을 넓게 배워 예로 행하라 (博學於文 約之以禮)

 

 

서재 - 홍의재 (弘毅齋)

홍의재도 원생의 기숙소입니다.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 서재(西齋)라고도 합니다.

동재에 기숙하는 원생보다는 후배가 거처했답니다.

두 건물은 규모나 장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지 않고요,

동서재 모두 전면의 반 칸을 내어 쪽마루를 달았네요.

* 홍의(弘毅) -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그 책임은 무겁고 도학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

(士不可以不 弘毅 任重而道遠)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安東 陶山書院 典敎堂) 

 

우리나라의 보물 문화재

 

서원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은 것을 1969년에 보수한 것이며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이고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간소하게 지은 건물로

선조가 서원에 내려준 ‘도산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문화재청 자료)

 

 

전교당

서원의 강학 건물로 원장실과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쪽 1칸짜리 온돌방은 원장의 거실, 명칭은 한존재(閑存齋)라고 합니다.

마루 가운데에 '典敎堂', 왼쪽 방 입구에 '閑存齋' 현액이 걸려 있습니다.

전교당 정면의 도산서원 현판은 조선 중기의 명필 한석봉(韓石峰)의 글씨로

1575년 선조로부터 사액(賜額)받은 것이랍니다.

서쪽 계단 옆의 돌기둥 위 돌은 정료대로 밤에 행사를 할 때 불을 밝히던 대입니다.

기단부가 높아 위엄이 느껴지는 전교당입니다.

 

 

어느 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네요.

해설사님이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 주십니다.

 

 

담 너머로 보이는 고운 단풍에 눈이 가서 찍어 봅니다.

 

 

담 너머로 유물전시관인 옥진각 건물이 보입니다.

역시 주변은 가을빛이 완연한 모습이네요.

 

 

장판각

서원의 출판소로 목판(冊版)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장판각은 전교당 오른쪽(동편)에 위치합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고요.

벽체 사방을 모두 나무 판벽으로 만들고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아

습기 방지에 유리하도록 하였답니다.

바닥도 지면에서 띄우고 전면 위쪽으로는 살창을 내어

통풍이 잘 되도록 하였고요.

퇴계의 문집, 유묵, 언행록, 도산십이곡, 선조어필, 병서(屛書) 등

2,790여장의 판각(板刻)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체계적인 분류와 안전한 관리를 위해 광명실 서책과 함께

2003년 4월에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되었다고 하네요.

 

 

장판각쪽에서 바라본 전교당옆면 2칸이고,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 형태입니다.

팔작지붕은 아무 곳에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지요.

대궐의 법전이나 사찰의 금당(대웅전)과 같은 중요건물에

주로 팔작지붕이 쓰이지요.

역시 품위가 느껴지네요.

왼쪽 건물은 동재,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건물은 상덕사 삼문입니다.

 

 

전교당 뒷모습.

뒤에 툇마루를 낸 형태네요.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 (安東 陶山書院 尙德祠 및 三門)

상덕사는 퇴계선생과 그의 제자인 월천 조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삼문은 사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고요.

도산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산서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의 보물 문화재입니다.

 

상덕사 사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삼문.

문이 닫혀 있네요.

 

 

상덕사

사당으로 들어가는 삼문이 닫혀 있어 

담 너머로 들여다본 <상덕사> 현판 모습입니다.

 

 

 

전사청

상덕사 행사 시 제주와 제수를 보관하던 곳입니다.

2칸으로 된 각각의 건물이 동.서로 나누어져 있으며

상덕사 서쪽에 자리합니다. 

왼쪽의 온돌방은 제수(祭需)를 준비하는 유사가 하룻밤 지내는 공간,

마루는 제상을 마련하여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오른쪽의 제기고(祭器庫)는 제기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문이 달린 마루칸과 전돌이 깔려 있는 봉당은

제수와 제기를 옮기기 편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전사청의 모습이고요.

 

 

상고직사를 향해 가 봅니다.

 

 

홍의재(서재)와 상고직사 사잇길이고요.

 

 

상고직사

서원의 관리와 식사 준비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노비들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일반 살림집의 형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네요.

남북으로 긴 'ㅁ' 자형이고 온돌방 7칸에 창고, 부엌 등을 합쳐 총 21칸입니다.

전사청과 연결되어 있는 동쪽 통로와 하고직사로 연결되는 남쪽 통로 옆에

각각 부엌을 배치하여 생활에 편리함을 더하였습니다.

서당 영역에서의 고직사와 구분하기 위해 서원의 고직사를 상고직사라고 한답니다.

상고직사

 

 

상고직사 마루 가운데 벽에 도산서원 옛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제일 위의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는 도산서당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으로

우리나라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김창석 作 <도산도>는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주변 경치를 그린 것이랍니다.

강세황 <도산서원도>는 도산서원의 실경을 그린 것으로

성호 이익이 병상에서 자신에게 도산서원을 그리도록 특별히 부탁하였다는 것과

자신의 소감 및 제작시기 등을 적어 놓았습니다. 

끝에 최남선의 글이 덧붙어 있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었고, 극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작자미상 <도산지도>는 도산서원 부근의 경치를 묘사한 것으로

옛 애일당, 분강촌까지 잘 묘사되어 있네요.

 

 

이호신 作 <도산서원> (2019년)

 

 

이제 상고직사를 나가 옥진각으로 향합니다.

 

 

왼쪽으로 하고직사, 오른쪽으로 옥진각이 이어집니다.

 

 

옥진각(퇴계선생 유물전시관)

도산서원은 1969년부터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습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옥진각은 퇴계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1970년에 완공되었고요.

‘옥진’은 ‘集大成 金聲玉振’을 줄인 말로 ‘집대성했다는 것은 금소리에 옥소리를 떨친 것이다.’라는 의미라네요.

옥진각에는 퇴계 선생이 생전에 쓰던 베개와 자리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매화 벼루, 옥서진, 서궤, 청려장, 매화등, 투호, 혼천의 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입구의 몇 장만 찍었는데 내부는 촬영 금지라고 되어 있네요.

전에도 이곳은 촬영 금지였던 것 같은데 여전히......

유묵, 유품 등 더 많은 자료들이 있으나 두루 돌아보기만 했습니다.

 

 

옥진각을 나오니 옆마당에 천원권 지폐모양이 보입니다.

투호를 즐기라는 안내가 되어 있네요.

퇴계 선생이 투호를 즐기셨나 봅니다.

 

 

 

역락서재

도산서당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건물로 도산서당의 기숙사입니다.

 

담장이 둘러져 독립된 공간으로 되어 있네요.

도산서원의 가장 아랫쪽 왼쪽(서쪽)에 위치합니다.

실제 도산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아랫쪽에 보이니

이곳을 먼저 들를 수도 있지요.

처음에 해설사님을 잠시 따라다니며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부터 보느라

마지막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역락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정한 건물로 현판글씨는 퇴계선생의 친필이랍니다.

퇴계의 제자 정사성을 비롯한 뜻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고 해요.

온돌방의 서쪽 반 칸을 비워 아궁이를 설치했네요. 

 

* 역락(亦樂)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 有朋(유붕) 自遠方來(자원방래)하면 不亦樂乎(불역락호)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두루 돌아보고 내려와 도산서원 전경을 다시 한 번 바라봅니다.

언제 찾아도 마음의 평안을 주는 도산서원이네요.

다시 찾길 참 잘했습니다.

 

 

천연대 방향입니다.

 

 

이제 강가 동쪽 절벽인 천연대로 이동합니다.

 

 

천연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뒤돌아본 풍경입니다.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아니~ 수채화로 표현해도 이리 아름답진 않겠죠...

눈이 호강하고 가슴이 뜁니다.

 

 

천연대

퇴계 선생이 산책하던 곳 중 동쪽 절벽을 말합니다.

천연대에 대해 알아보고요.

 

 

천연대에서 시사단을 바라봅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게하는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옆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요.

 

 

천연대에서 나와 다시 도산서원 앞마당으로 갑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에요.

 

 

고목을 배경으로 인증사진도 몇 장 찍습니다.

두고 떠나오기 싫어서 더 그랬죠.

 

 

돌아나가는 길에 고목 주변을 다시 바라봅니다.

이 고목을 중심으로 어느쪽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주변 경치를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요.

어쩜 이리도 고울까요?

한국의 서원들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 도산서원인데,

사계절 중 도산서원의 가을은 정말 감동 그 자체입니다.

(2023.11.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