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와 노도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 증인!
남해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무인이 이순신 장군이라면, 문인으로는 서포 김만중이 아닐까.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나룻배로 건너가면 닿을 수 있는 섬, 노도로 유배되어 온 문인 김만중은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 증인이다.
(출처: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자료)
지난 2년 전의 기록 이어짐...(방문: 2019.3.30.)
사적 제232호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에 이어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로 간다.
벽련항 연락처로 전화하니 오후 2:30배가 뜬다고 하니 다행이다.
오래 전부터 한 번 가 보고 싶었던 섬 노도이지만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자꾸만 미룬 터였다.
날이 그리 청명한 편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곳이니 고고~~~
노도(櫓島)
삿갓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삿갓섬으로 불리었고,
배 젓는 노를 만드는 데 쓰이던 목재를 많이 생산해서 노도라 불리었다.
남해 상주면 벽련항에서 2km도 안 되는 듯,
배(노도호. 당시 하루 4번 운항. 지금은 하루 6회 운항인 걸로 안다.)로 10분 정도 거리.
주민들은 섬 북쪽의 선착장 주변 가까운 곳에 모여 살고 있다.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지은 서포 김만중(1637~1692)의 유배지이다.
김만중은 1689년(숙종 15년) 남해 노도로 유배 왔고,
1692년(숙종 18년) 4월 30일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김만중이 직접 팠다고 전해지는 우물, 시신을 잠시 묻었던 허묘, 초옥터가 남아 있고,
김만중문학관이 세워졌다.
김만중은 이곳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을 썼다.
서포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김만중(1637-1692)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 호는 서포.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 김집(金集)의 손자.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 당시 김상용을 따라 강화도에서 순절하여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년) 문과에 장원 급제.
1687년(숙종 13년) 소의 장씨(장희빈) 일가를 둘러싼 사건에 연루되어 선천에 유배.
선천 유배 시절에 '구운몽'을 썼다.
'구운몽'은 어머니 윤씨 부인의 시름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하며,
한국 고소설의 대표 작품이다.
1687년 왕자(후일 경종)의 탄생 후 1688년 11월에 유배에서 풀려남.
장희빈의 소생을 세자로 삼으려 하는 것에 반대한 서인은
기사사화를 당하고 김만중도 다시 탄핵을 당한다.
3개월 뒤인 1689년 2월 남해 노도에 유배되었고, 이곳에서 사망(1692년).
서포가 이곳으로 유배오던 해에는 어머니상을 당하여
대성통곡을 하다 마당으로 몸을 던져 혼절했다고 하며
서포의 효심이 잘 나타난 ‘사친시(思親詩)’는 이곳 남해 유배지에서 지었다고 한다.
또 이곳 노도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을 썼다.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삼은 사건에 대하여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썼다고 한다.
'서포만필'에서 김만중은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우리나라의 참된 글이라고 표현하며
한시보다 우리말로 씌어진 작품의 가치를 높이 인정했다.
한글로 쓰여진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수필집이자 평론집인 ‘서포만필’을 쓴 서포 김만중은
한글을 향한 깊은 애정을 나타낸 학자이며,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분이다.
아래 사친시는 남해의 유배지에서 어머니 생신일에 지은 시라고 한다.
사친시(思親詩) - 서포 김만중
금조욕사사친어(今朝欲寫思親語) -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는 말 쓰려 하니
자미성시누기자(字未成時淚己滋) - 글자도 쓰기 전에 눈물 이미 넘쳐나네
기도유호환복척(幾度濡毫還復擲) - 몇 번이고 붓을 적셨다가 다시 던져 버렸으니
집중응결해남시(集中應缺海南詩) - 문집 가운데 해남시는 응당 빠지게 되네.
서포 김만중 문학관
김만중의 일대기와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전시실, 영상관,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방문 당시에 옛 초옥 자리에 문학관을 짓고 있었다.
이 자리는 유배지 느낌이 나는 옛 모습으로 복원하고
문학관은 마을 초입 등 다른 곳에 지었으면 어땠을까~~~
생뚱맞게 문학관이 들어선 느낌이 들어서 사실 좀 실망했다.
유배지 느낌이 전혀 안 나서......
현재 문학관은 완공되었지만 코로나19로 문을 열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서포 김만중이 남해로 유배올 때의 심경을 대신 표현한 시가 있어 소개해 본다.
남해 가는 길 (유배시첩 중~) / 고두현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宣川)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 쉬는 것들 모아
화전(花田)을 만들고, 밤이면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九雲夢)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작품)
야외전시장
소설의 주요 장면을 모티브로 동상을 세워 이야기를 엮은
구운몽원과 사씨남정기원이 있다.
그리움의 언덕 전망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이 아련하다.
참 오래 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노도~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 내내 미루다가
2년 전에야 가게 되었었네.
벽련항 연락처로 전화하여 배가 뜨는 걸 확인하고 갔었는데,
날씨는 그리 청명하지 않았고,
처음 생각하고 갔던 옛 초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포문학관이 들어서고 있었지...
옛 초옥이 있던 자리, 유배지 느낌이 나던 때를 생각하고 갔었는데,
그 흔적이 사라져서 아쉬움...
서포문학관은 다른 곳을 물색해서 지었으면 어땠을까~~~
노도를 방문하는 이들이 먼저 서포문학관에 들러
서포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고 유배 당시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한 후
유배지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도록......
유배지에 생뚱맞게 문학관이 들어선 것 같아서 사실 좀 실망했다.
유배지 느낌이 전혀 안 나서......
내가 너무 늦게 간 거구나!
세월이 흐르면 새 초옥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갈까~~~
어쨌든 문학관도 들어섰고,
야외전시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테니
한 번은 더 가 보고 싶어진다.
기다려라~ 노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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