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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터키,그리스+UAE

그리스 여행 2 - 아테네 2(근대올림픽경기장, 의회의사당, 신타그마 광장)

그리스 여행 2 - 아테네 2

(근대올림픽경기장, 의회의사당, 신타그마 광장)


< UAE+그리스 전체 여정 >

2019.1.8.(화) 00:15 인천 출발~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두바이~아부다비(1박)

~그리스 아테네(1박)~산토리니(1박)~고린도(코린트)~올림피아(1박)~델피(델포이)

~메테오라(1박)~아테네(1박)~아부다비 경유~기내(1박)~1.16.(수) 11:45 인천 도착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던 근대 올림픽 경기장

(2019.1.9.수)


아크로폴리스를 나와 근대 올림픽 경기장으로 가는 길...

유럽에서 흔히 보는 도로~

전차와 일반차가 같은 길을 이용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근대 올림픽(제1회 아테네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경기장에 도착하고 있다.


제 1회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던 근대 올림픽 경기장, 파나티나이코 경기장



근대 올림픽 경기장(파나티나이코 경기장)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던 근대 올림픽 경기장으로

칼리마르마로( '아름다운 대리암으로 장식한'이라는 뜻)로도 불리며,

세계의 올림픽 주경기장 중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곳은 이 곳뿐...


고대에는 파나텐(아테나를 기리는 축제) 경기장으로 쓰였고,

고전기에는 나무 좌석이었단다.

기원전 329년에 대리석으로 새로 지었으며,

기원후 140년에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증축하면서

좌석을 5만 개로 늘렸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 자파스가 올림피아 경기 부활을 위해

이곳의 고대 경기장을 발굴, 정비 대금을 댔으며

1870년, 1875년에는 자파스 올림픽이 열렸다.

1895년에는 1896년 아테네 하계올림픽 준비로 고쳤고,

현재 현재 대리석 계단 50개, 6만 명 수용, 최대 8만 명까지도 가능하단다.

1896.4.6.~15 첫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열렸다.

금메달 수는 미국이 11, 그리스 10, 독일 6개의 순,

전체 매달은 그리스가 가장 많이 땄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에는 양궁장으로 사용되었고,

마라톤 결승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양궁팀은

여자 박성현이 금메달, 여자단체,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1896년, 그리스 아테네의 파나티네코 경기장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의 개막식

ⓒ wikimedia | Public Domain

<출처: 위키백과, 다음백과에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올림픽의 역사를 말할 때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1863~1937)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의 교육자였던 그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 자체 올림픽을 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국제적인 올림픽을 구상하게 된다.

1892년에 근대 올림픽 대회를 열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1894년에 근대 올림픽 구상 계획을 밝힌다.

각국 스포츠 대표 참석자들의 의견에 따라

고대 올림픽의 도시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 대회(1896년)를 열기로 정한다.

393년에 중단된 고대 올림픽은 약 1,500년 만에

근대 올림픽 경기로 부활하게 되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의 초대 위원장 역임.


전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파나티나이코 경기장



6만명을 수용한다는 경기장이다.


2004년에도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렸는데,

새로운 경기장을 지어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을 치렀다.

당시 이 경기장에서는 양궁 경기가 치러졌다.

이때 우리나라 양궁팀은 금메달 3개 획득.

현재 스포츠와 관련된 다른 행사를 치르는데 쓰이기도 하는 곳...



근대 올림픽 경기장에서...



그리스 고궁, 그리스 국회의사당(의회의사당)

 원래 그리스의 군주가 사용하던 궁전으로

프레드릭 본 가트너 의해 1843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리스 의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1909년 화재 피해.

1924년까지 왕실 사람들 거주.

왕정 폐지로 병원, 박물관 등으로 쓰임.

1934년, 이곳에서 의회 소집.

이후 의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스 의회의사당(그리스 고궁)


가운데에 무명용사비


빨간 모자를 쓴 호위대가 경비를 서고 있다.

빨간색은  오스만제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 시에  흘린 피를 의미한단다.

위병 교대식이 볼만하다는데,

우리가 방문한 때는 시간이 맞지 않아 볼 수 없었던 아쉬움...


무명용사비와 호위대원

의사당 건물 앞 벽에는 무명용사비가 자리하고 있다.

벽의 부조는 애기나섬의 아페아 신전에 있는 조각의 복제품이란다.

그리스어로

'군인에게는 어디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는데,

읽기는 어려웠다.


무명용사의 무덤에 한국을 뜻하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눈길!

그리스가 참전한 나라들을 새겨놓았다.

KOPEA KOREA


한국전쟁(1950.6.25.~1953.7.27.) 때 참전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회원국인 그리스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참전했다. 

1950년 12월,

851명의 보병 대대, 62명의 공군 수송단과 7대의 C-47기...

참전 총인원은 군인 5,532명, 간호 장교 8명...

사상자는 전사자 186명, 부상자 610명...

자국도 아닌 먼 이국 땅 한국까지 가서 흘린 피~

그들의 고귀한 희생도 우리나라를 지켜낸 원동력이 되었으니

그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리스 의회의사당



그리스 의회의사당



의사당 앞 거리 도로의 보도블럭 파인 모습.

그리스 국가 부도 위기, 긴축안 발표 시에

시위대가 이 도로의 보도블럭을 깨서

진압 경찰에게 던지는 돌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공공부문 민영화, 재정 지출 감축, 세금 인상, 연금 삭감 등의

긴축안 반대 시위가 열렸던 곳...




신타그마 광장 (헌법 광장)

그리스 의회의사당 앞 광장이 신타그마 광장이다.

신타그마가 헌법이란 뜻이란다.

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

광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오렌지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제주에서 귤나무를 보는 것처럼...


의회의사당 앞 도로를 건너 아래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

도로 아래로 지하철역이 있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바라본 의회의사당





신타그마 광장에서...


의회의사당


의사당 앞 거리


마침 지나가는 아테네 시티투어 버스


그리스 국회의사당(의회의사당)을 뒤로 하고~



저녁 식사

저녁 식사를 한 '서울하우스'


'조국(國)'이라는 글씨를 보니 가슴이 뭉클~

먼 이국 그리승스에 와서 장사를 하시는 주인장도

늘 고국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살아가겠지......


몇 가지 반찬에 된장국~

소박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식사...

한식은 이번과 마지막 날 한 번 더 있단다.

앞으로 며칠간 속 편치 않은 음식들을 대해야 하니 

더 맛있게 먹어둬야겠지...



아테네에서의 숙소

크세노폰 호텔




캐리어 가방을 올리는 모습이 이채로워서 담아 보았다.

오른쪽은 좁은 엘리베이터...


그리스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간다.

다음날은 그리스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가장 머물고 싶은 곳 중의 하나인 산토리니로 간다.

비록 1박 하며 짧은 시간 머물게 될 거지만

그곳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커서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날씨가 쾌청하면 참 좋으련만......'

(2018.1.9.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