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세계/동유럽,발칸

음악과 함께한 발칸 여행 21 - 지상의 낙원이 여기일까,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2(구시가 돌아보기)

음악과 함께한 발칸 여행 21 - 지상의 낙원이 여기일까,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2(구시가 돌아보기)

루자광장

( 종탑 성 블라이세 성당)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플라차 거리(스트라둔)

300m에 걸쳐 펼쳐지는 플라차 대로(스트라둔)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건물들이 포진해 있다.

(2017.8.3.목)



두브로브니크(Dubrovnik)

 두브로브니크는 작은 숲, 떡갈나무 숲(dubrava)을 뜻한다고 한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는

7세기에 라우사 또는 라구시움이라고 불렸다고 하며

로마가 망한 후에는 비잔틴의 지배를 받았다.

9~12세기에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쳤으나

이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다.

1358년 * 라구사(Lagusa)라는 도시 국가로 탈바꿈.

1667년 대지진으로 서서히 쇠퇴했으며,

1808년 나폴레옹의 점령으로 독립 국가로서의 면모를 상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 크로아티아 영토가 됨.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공격해

도시의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 학술원장 장 도르메종 등 유럽의 지성들이

인간 방패를 자처하고 나섰고

그 결과 두브로브니크가 일부나마 지켜질 수 있었다고 한다.

내전 후에는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원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 라구사(Lagusa) 공화국

두브로브니크를 중심으로 한 도시 국가로

현재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역에

14세기부터 1808년까지 이어졌던 작은 공화국이다.

수도 라구사는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 해당된다.

15~16세기에는 해상무역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나폴레옹의 정복으로 1808년에 멸망.

총 인구는 3만명 가량이었으며,

그 중 약 5,000명이 라구사 시를 둘러싼 방어벽 안에 살았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안내도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내려와 구시가로 들어간다.

레벨린 요새 지역을 지나

입장은 플로체 으로...

요새의 문은 도개 형식이어서 쇠사슬 줄을 끌어올리면

들리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슬로베니아의 동굴 요새인 프레드야마성처럼...


줄지어 선 보트가 인상적인 올드 항구를 바라보며~


  

  

 

구시가로 들어가는 중~

레벨린 요새 지역을 통과하고 플로체 문을 지나게 된다.

문 위의 동상은 성 블라이세 상...


레벨린 다리에서...


도미니크회 수도원을 만나고...


  

물론 내부는 보지 못 하고 외관을 보면서

루자광장으로 향한다.


 

성 이반 요새쪽을 바라보며(왼쪽)...

본격적으로 구시가를 돌아보기 전에

잠시 올드 타운 항구로 나가서 바다를 한 번 접하고...

다시 구시가 성 안으로(오른쪽)...


 

올드 타운 항구와 통하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루자 광장이다.



루자 광장(Trg Luža)

필레 문과 이어진 플라차 대로의 한쪽 끝에 자리한 광장.

구 항구인 플로체 항구와 통하는 문 바로 안쪽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종탑, 구시청사, 렉터 궁전,성 블라이세 성당, 스폰자 궁전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롤랑(Roland, 올란도 Orlando)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구시가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 대부분이 이 루자 광장에서 열린다고 한다.


루자 광장의 종탑(시계탑)

이 종탑은 1440년에 처음 세웠고,

이후 대지진 때 파괴된 것을 1929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종탑의 꼭대기엔 2명의 두브로브니크 그린맨이 있는데,

종을 치는 사람 모형을 말한다.

 매 시각 정시와 30분에 종이 울린다고 한다.

종탑 옆 문으로 '루자Luža' 글자가 뚜렷이 보이고...

롤랑의 기둥이 광장 중앙을 장식하고 있네...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

종탑 아래 오른쪽 샘에는 사람들이 물을 받으려고 모여 있다.

플라차 대로의 양 끝에 세워진 분수(샘) 중 작은 분수.

장식 조각은 밀라노의 조각가인 페타르 마르티노브의 작품이란다.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 옆, 구시청을 지나고 렉터 궁전 가는 길...


루자광장에서 남쪽으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성모승천성당)을 바라보며...

대성당 앞 왼쪽으로 구시청렉터 궁전,

오른쪽 초입에는 성 블라이세 성당, 안쪽으로 Palača Ranjina

푸른 하늘과 멋지게 어울리는 풍경~~~


성 블라이세(블라시우스) 성당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를 기리는 성당이다.

이곳은 원래 14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교회가 있었는데,

1667년의 대지진과 1706년의 대형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후 1715년에 베네치아의 건축가에 의해 성 블라이세 성당이 지어졌다고 한다.

오래전 성 블라이세는 두브로브니크를 침투하려는 베네치아 선박의

위장 정박을 알려 이 도시를 구했다고 하여

이후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이 되었단다.


성당 꼭대기에 위치한 성 블라이세  조각상(모조상)

왼손에는 대지진 전의 구시가 성의 모습을 나타낸 조각품이 올려져 있다.

진품은 은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대형 화재에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손에 든 성의 모습은 1667년의 대지진 이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단다.

성 블라이세 좌우로는 성 제롬과 성 요한의 석조 조각상이란다.


 

성 블라이세 성당 내부

14세기의 순교 성인인 성 실반 마르티르( St. Silvan Martyr)의 유해인데,

부패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오른쪽)



성 블라이세 성당 제단과 파이프 오르간


성 블라이세 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 내부 장식이 호화롭고 환상적이어서

두브로브니크 연인들의 결혼식 장소로 인기를 끄는 곳~


종탑(시계탑) 앞에서 본 플라차 대로(스트라둔)
300m에 이르는 플라차 대로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다.

반질반질 빛이 나는 거리~

이곳은 종일 사람들로 붐비는 모양...


스폰자 궁전

종탑 아래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 바로 옆으로 스폰자 궁전이 자리하고 있다.

필레문에서 들어오면 플러차 대로의 끝부분에 위치.


스폰자 궁전

16세기 초에 지어졌으며 17세기 중반의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곳들 중 하나.

처음 건축 당시 물건을 거래하던 장소였다가 조폐국, 은행, 세관 등으로 운영되었고,

지금은 국립 기록 보관소라고 한다.


 

루자 광장. 롤랑(올란도)의 기둥


롤랑(올란도)의 기둥

밀라노 출신 조각가 보니노의 작품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사 롤랑이 조각되어 있어

롤랑의 기둥(Roland Column)이라고 부르는데,

루자 광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 이 기둥에 깃발을 내건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 종합예술축제의 개식선언도 이 기둥 위에서 한단다.

롤랑이 칼을 쥔 손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는 51.2cm~

그것은 두브로브니크의 표준길이 단위인 1엘(ell)에 해당되어

의미를 두고 있는 기둥...

롤랑의 발 아래 바닥에 길이를 표시해 놓았다.


* 롤랑은 778년 이슬람과의 스페인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를 구하고 전사한 기사였는데, 

이 전투를 묘사한 프랑스 최초의 서사시 <롤랑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성 블라이세 성당 옆에서부터 스트라둔 거리를 따라 골목골목에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스트라둔 거리의 가게...

가게 문 입구가 특이해서 담아보았다.

어느 가게는 왼쪽이, 어느 가게는 오른쪽이 트여 있는 구조.


 

 스폰자궁부터 스트라둔을 따라 스르지산쪽으로 난 골목길에도

온통 레스토랑이 가득~

안쪽으로는 숙소나 살림집이 있기도 하다.


은행 문도 반 형태의 문이네.

은근히 거리와 건물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스트라둔(Stradun, 베네치아어로 큰길)~

이탈리아어 스트라다에서 왔다고 한다.

플라차(Placa) 대로라고도 한다.

원래 좁은 해협이 있던 자리인데,

섬과 해협 사이를 메워 길을 만들었으며

1468년 경에  대리석으로 포장을 한 것이란다.

생선뼈 모양을 한 대리석 도로는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서 반질반질하다.


플라차 대로(스트라둔) 종탑쪽


스트라둔의 거리 양편에 서 있는 건물들은

1667년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급하게 재건한 것이어서

일률적인 건물 구조를 보여 조금 아쉽다는 평을 듣는다.

예전의 다양한 건물들을 그대로 복원했더라면

더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텐데~~~


플라차 대로(스트라둔)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쪽


어쨌거나 이런저런 골목길을 보며 대로를 걸어서

필레문 가까이에 다다르게 된다.


 

플라차 대로의 끝(필레문쪽애서 보면 처음)에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성 사비오르 교회를 만났다.

오른쪽은 성 사비오르 교회와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당 사이의 약국 가는 길~

1938년에 세웠다는 박물관 입구...


프란체스코 수도원 박물관 (말라 브라차 약국)

입장료가 따로 있는 곳이어서 내부는 들어가보지 못 하고

밖에서만 안쪽을 잠시 살피고 나왔다.

안쪽은 촬영금지인 것 같아서 밖에서만 한 컷~


박물관은 약국과 전시장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 예배드릴 때 사용되던 물건들과 예수상들을 전시하고 있단다.

1317년 문을 연 이곳의 약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연 곳이지만

현재까지 운영되는 약국으로는 가장 오래된 거란다.


프란체스코 수도원 큰 오노프리오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

13세기 초에 흑사병(페스트) 환자를 치료했던 곳으로

공공의료 복지의 시초였다고 한다. 

1317년에 설립된 말라 브라차(작은 형제들) 약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방송에 힘입어 장미크림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이곳에서 오노프리오 분수 등에 대한 설명도 듣고,

다음 이어질 일정도 들었다.


수도원 성당 입구 문 위의 조각상

가운데로 피에타 상이 보인다.



파스코야 밀리체비차 광장


(큰) 오노프리오 분수

성 사비오르 교회 앞에 위치한 돔 형태의 오노프리오샘

1448년에 두브로브니크에서 12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들인 수도시설로

이탈리아 건축가 오노프리오(Onofrio)가 만들어서 오노프리오 샘이라고 부른다. 

오가는 사람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성안 두 곳에 샘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큰 오노프리오 분수이고

종탑 옆 분수가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이다.

16면의 샘 각각의 면에는 다양한 얼굴의 조각상이 있고,

관에서는 지금도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원래는 돔 위에 커다란 쿠폴라와 조각상이 장식되었는데,

1667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단다.

오노프리오 분수


 

오노프리오 분수 강아지상


큰 오노프리오 분수 성 사비오르 교회


  

필레문성벽투어 오름길 입구 

성벽투어는 필레문과 플로체문 주변, 성 이반 요새쪽으로 진입할 수 있는데,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탄 후 성벽투어를 하기로 했다.


 

필레문(안쪽문)

구시가로 통하는 중심문으로 이중의 문 중 안쪽문이다.

15세기 중반에 만들어졌단다.

이 문은 플라차 거리의 끝과 연결되는 안쪽문.


일단 점심 식사를 한 후 조금 더 돌아볼 것이라 필레문 밖의 음식점으로 향한다.

바깥문으로 통하는 오르내리막길...


필레문(바깥문)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3개의 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이 문은 1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문이란다.

필레문에도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이 있다.

이렇게 견고하게 이중 성벽을 쌓아 도시를 보호했다니

당시로서는 참 대단한 공화국이었다 싶었다.


필레문 성 블라이세 상

플로체문에도 필레문에도 성 블라이세 상을 세워둔 걸 보니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블라이세 성인이 참 대단한 분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MIMOZA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 후 유람선을 타러 가는 길에

구시가 투어를 이어간다.

 큰 오노프리오 분수 옆을 지나~


다른 골목길을 향해~


주얼리, 의류가게, 아트 스튜디오 등이 늘어선 골목길을 지나간다.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왼쪽은 전쟁사진기념관...

1991년 6월 25일 크로아티아의 독립 선포로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들의 반란이 시작되었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주축으로 한 군대가 이곳에 들어와

10월에는 세계유산인 두브로브니크를 전면 봉쇄했고, 

12월에는 대대적인 파괴가 자행되었다. 

당시에 구시가 건물의 50% 이상이 파괴되었다니

그 참상을 알만하다.

이런 소식을 접한 유럽연합은 세르비아에 제재를 가했고, 

세계의 지식인들은 인간 방패를 만들어 세계유산을 지키려고 했다.

이후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지만

아직도 폐허로 남은 곳이 많다.


 

세르비아 정교회 교회도 지나간다.


  

좁은 골목길이라 물건을 운반하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

군둘리치 광장 근처를 돌아서

이렇게 구시가를 조금 더 돌아본 후 유람선을 타러 간다.

유람선을 탄 후에는 성벽투어를 하게 되는데,

성벽투어 이후에 부자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래는 성벽투어 후 부자카페를 찾아가보는 과정이다.


나는 성벽을 온전히 한 바퀴 돌았고,

팀원들은 반 바퀴만 돌고 구시가를 더 즐기다가

성 블라이세 성당 앞에서 만났다.

부자카페는 만원이라 자리가 없어 다른 곳을 찾을 거란다.

팀원이 카페를 찾아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부자카페를 찾은 후에 합류하기로 했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성모 승천 대성당)

12세기에 영국의 리처드 1세가 로크룸 섬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지만 다행히 구조되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한 헌금으로

원래 있던 교회 자리에 증축해 지어졌단다.

이후 17세기 대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고

바로크 양식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단다.

성당 안 보물실에는 성 블라이세의 유물과

두브로브니크의 금 세공사가 만든 금 세공품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과

라파엘로의 ‘마돈나’라는 작품도 볼 수 있단다.

거리 상점의 입구가 역시 재미있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성모 승천 대성당) 내부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 성화(가운데)가 그려져 있다.

이 성당이 성모 승천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대성당에서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 성화만 본 후 부자 카페로 향하였다.

가이드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주변 사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머릿속에 담으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팀원들과도 약속 장소에서 만나려면 서둘러야 하니까...

잠시라도 시간이 남으면 차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으리라...


 

부자(buza) 바 입구

골목길을 더듬고 더듬으며 감으로 찾아냈다.

팀원의 위치 설명을 들은 데다가

성벽투어를 하며 위치를 대충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칫하면 엉뚱한 곳 찾다가 못 찾고 돌아설 수도 있었으니까......


성벽에 이런 구멍을 뚫은 이유는

답답한 성곽 안에서 벗어나 수영이나 낚시를 즐기

배로 물자를 쉽게 조달받기 위해서였단다.


부자(buza, 구멍을 뜻함) 바 Mala Buža Bar

내가 성벽 완주 투어를 하는 동안 일행이 이곳과 옆 카페에 다녀오긴 했지만

앉을 자리가 없어서 돌아갔다고 한다.

수영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적나라하게 보여 사진 찍기가 미안하여

한가해보이는 쪽으로 한 장~


성벽에서 내려다보았던 다른 부자(buza) 바도 찾아보았다.


성벽의 부자(buza).

연신 사람들이 드나드니 한 장 찍기도 어려웠지만

이렇게라도 잽싸게 한 장 건졌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쉼터를 만나게 된다.


이쪽 부자 카페(Buza Bar)도 초만원.

이곳이 한국 TV에 나온 곳(꽃보다 누나)이라 한국인에게 인기란다.

자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우리 일행도 돌아갔을 것이다.

프로그램에 소개된 레몬 맥주는 한국인에게 최고의 메뉴라는...

'우리는 오파티아에서 마신 걸로 위안을 하자.'

유람선으로 돌아본 로크룸 섬이 가까이 보인다.


드디어 부자 카페까지~ 일단 구시가에서 보고 싶은 곳은 다 보았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부자카페에서 푸른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차도 마시고 바닷물에도 들어가보고

일몰까지 바라보는 호사를 누렸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이번에는 가능한 일이 아니니 마음을 접고...

이제는 일행을 만나러 부지런히 돌아갈 일만 남았다.

루자 광장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주위의 골목길을 확인하며 왔으니

무사히 잘 찾아가겠지......


부지런히 달려서 닿은 곳~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성모 승천 대성당)쪽에서 바라본 풍경...

정면 아래로는 스폰자 궁전이, 위로는 스르지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렉터 궁전이 보인다.


 

두브로브니크 출신의 극작가이자 교육자인 마린 드르지치 동상(왼쪽)

렉터 궁전 안,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에 수많은 돈을 기부한 미호 프라차트 동상(오른쪽)


몇발짝 더 걸으면 왼쪽으로 성 블라이세 성당,

정면으로 스폰자 궁전, 오른쪽으로 구시청사,

스르지산 정상에는 전망대와 요새(임페리얼 요새)가 보인다. 

하늘의 구름도 한몫하는 멋진 풍경...


다시 루자 광장...

일행이 머무는 카페를 찾아 구시가 마지막 발걸음을 옮긴다.


플라차 대로(스트라둔)를 따라 일행이 머물고 있는 카페로 향하였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두고 가기 아쉬워 다시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저만치로 종탑이 멀어지고 있다.

아쉬운 마음이야 말로 할 수 없지만

이만큼이라도 두브로브니크를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

무사히 일행을 만나 마무리로 주스 한 잔~~~

(2017.8.3.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