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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서울 종로] 늦가을,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2 - 관람지(존덕정과 폄우사~), 옥류천 권역, 향나무

[서울 종로] 늦가을,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2

- 관람지(존덕정과 폄우사~), 옥류천 권역, 향나무


관람정과 관람지

(2017.11.19. 일)


연경당을 나와 관람지 권역으로 향하였다.

날이 좀 추운 것 같아 옷을 따뜻하게 입었더

한기가 느껴지지는 않았고 걸음도 가벼웠다.

폄우사 못 미처 오른쪽 언덕에는 승재정이 곱게 앉아 있다.

한 칸의 작은 정자이지만

날렵하게 올라간 지붕, 건물 난간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가이드님을 따라 가려니 얼른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이어서 폄우사와 존덕정을 만난다.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닌 폄우사는

효명세자가 자주 머물며 독서하던 곳이었단다.

원래는 왼쪽 앞으로 이어지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일자 형태의 건물만 남아있다.


승재정과 폄우사

맞배지붕의 폄우사,
존덕정쪽에서 폄우사로 오르는 길에 팔자형의 박석이 놓여 있는데,

왕세자 걸음걸이를 연습할 수 있는 박석이란다.



존덕정(尊德亭)과 폄우사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ㄱ’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출처 : 창덕궁 홈페이지)


'덕을 높인다’는 뜻을 지닌 존덕정

독특하게 겹지붕을 한 육각형 정자의 모습이다.


존덕정 안 북쪽 벽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 22년(1798)에 정조가 직접 지은 글...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오직 하나인데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는 달을 따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라는 강력한 내용.

평생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준엄한 꾸짖음을 듣는 것 같고

중앙에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역시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은행나무 

동궐도에서 존덕정 뒤편에 보이는 은행나무로

둘레 5m, 높이 22.4m, 수령 약 250년.

정조가 존덕정을 정비하면서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인

행단의 예에 따라 은행나무를 심어

학문을 받들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된단다.


존덕정

2층의 지붕 처마, 6각형의 독특한 건물.

천장에는 청룡과 황룡 그림이 그려져 있다.


관람정과 승재정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단다.

이 주변에는 원래 세 개의 연못(둥근 것 1, 네모난 것 2)이 있었으나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전에는 한반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반도지라고 잠시 불렸었다.


관람정과 관람지

관람정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부채꼴 형태의 정자란다.
이곳은 대한 제국 때 재조성 되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곳...


관람정

관람지 가장자리에 세워진 정자로

독특하게도 부채꼴 형태를 하고 있다.

숲 사이 담너머로 창경궁 대온실이 보이는구먼...


  

관람정과 관람지, 존덕정


관람정과 관람지, 승재정

관람정과 관람지 이곳 주변이 경치가 참 좋았는데,

마음대로 다닐 수 없어 좀 아쉬운 감이 들었다.

승재정은 아래로 관람지와 관람정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관람정, 관람지, 승재정

가는 가을이 아쉬워

관람지 주변의 가을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한참 더 머물고 싶었던 곳~


관람정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승재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모두가 아름다워서 저기에 오르면 모두가 신선이 될 것 같았다.

귀로는 해설사님의 말을,

눈으로는 관람지 주변의 풍경을~


 

관람지 구역을 벗어나 취규정을 거쳐 옥류천으로 향하였다.

취규정은 임금의 휴식처와 독서처로 쓰인 곳이란다.


옥류천 권역 안내도


취한정도 지난다.

옥류천 주변에 있는 정자로 임금의 휴식처와 독서처로 쓰인 곳



옥류천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漪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루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淸漪亭)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이다.

<동궐도>에는 16채의 초가가 보이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청의정만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로 남아 있다.

(출처 :문화재청)


소요암 소요정


소요암과 옥류천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를 깎아 내고

그 위에 곡선형 수로를 팠으며,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을 벌이기도 했단다.


 

소요암과 옥류천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위의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폭포수 물길은 삼백척)
遙落九天來(요락구천래-멀리 하늘에서 떨어지네)
看是白虹起(간시백홍기-이것을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飜成萬壑雷(번성만학뢰-만 골짜기에 우레 소리가 가득하다)

(숙종 어제시)


소요암 뒤 양쪽으로 어정청의정이 보인다.


소요정

인조 때 이 정자를 세우고 처음에는 탄서정이라 하였다가

나중에  ‘구속 없이 천천히 노닌다’는 의미의 소요정으로 고쳤다고 한다.


옥류천 권역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이동하다보니 복잡하긴 하다.


유일한 초가로 남아 있는 청의정과 오른쪽의 태극정


‘청의’란 ‘맑은 물결’, '물이 맑다'란 뜻으로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형상화한 정자이다.

농민의 삶과 정서를 체험하려는 임금의 마음이 드러난 곳...

청의정 앞 터에서 임금이 매년 직접 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지붕은 추수 후 나온 짚으로 다시 이었다고 한다.


태극정은 세상 만물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지은 정자란다.
태극정을 읊은 시로 정조의 ‘태극정시’, 숙종의 ‘상림삼정기’가 전해진단다.

상림삼정=태극정, 청의정, 소요정.


농산정

창덕궁 후원 북쪽 깊은 골짜기에 있는 이곳에서

정조는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 쓸 가마꾼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농산정

정조 임금은 재위 시 이곳에서 세 차례나 잠을 청했다고 전해진다.


 

소요정 옆으로 흘러내린 옥류천이 이어지는 곳,

창덕궁 후원 옥류천에서 만난 늦가을 풍경~

작살나무인지 좀작살나무인지 보라색 열매가 예쁘게도 달렸네...

돌아나가는 길에 취규정을 한 번 더 바라보며...


 

숲 사이로 보이는 몇몇 다른 정자들~

지금은 통제 중인 곳들...

 

옥류천을 거쳐와 연경당으로 가는 오솔길 옆에 있는 빙천(氷川)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춥다고 알려진 곳으로

햇볕이 가려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하단다.


빙천
이곳으로 흐르는 물은 연경당 서쪽 행랑 마당을 지나

장락문 앞을 흐르는 명당수를 이룬다고 한다.


조금 춥긴 했지만 햇살이 좋아 다니기엔 괜찮았던 날~


연경당 옆으로 나가는 길...


 

 

위는 연경당, 아래는 나가는 길, 오른쪽은 주합루 주변


 


 

서북문인 요금문(曜金門).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어 궁궐을 나갈 때 이 문을 통하여 나갔다고 하며

돌아올 때도 큰 문을 마다하고 나갔던 문으로 다시 들어왔다고 한다.

오른쪽은 선원전 가는 길, 현재 출입금지 지역이다.


 

복영천


의풍각

 재궁(왕실에서 미리 제작하여 준비해 두었던 장례용 관) 등 제사용품을 보관하였던 창고 건물


  

책고 옆


천연기념물 제194호 창덕궁 향나무

수령 약 750년.

2010년 태풍의 피해로 인해 손상된 모습




 봉모당(규장각의 주요 시설)과 향나무




오랜 세월을 창덕궁의 역사와 함께한 창덕궁 향나무

더 오래 남아 역사의 산 증인이 되기를 빌어 본다.


창덕궁 향나무를 끝으로 후원 관람은 끝이 났지만

90분 동안의 관람 시간은 아직도 눈 안 가득 어리어 있다.

특히 긴 시간 열심히 해설해주신 홍** 해설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년에는 단풍이 더 좋은 시기에 다시 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2017.11.19.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