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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서울 종로] 늦가을,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1 - 부용지, 불로문과 애련지, 연경당 권역

[서울 종로] 늦가을,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1

- 부용지, 불로문과 애련지, 연경당 권역


* 관람동선 경로(약 2.1km)후원입구~부용지~불로문, 애련지

~연경당~존덕정과 폄우사~옥류천~(연경당)~향나무~퇴장

90분 코스이다.


* 혹서기(7~8월) 및 혹한기(1~2월)에는

후원입구~부용지~애련지~관람지(존덕정과 폄우사 )

~연경당~향나무길~퇴장하는 70분으로 운영된단다.


입구에서 잠시 안내를 받고 입장하게 되는데,

아직 남아 있는 단풍이 무척이나 고왔다.

(2017.11.19.일)




창덕궁 후원


1406년(태종 6) 4월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1459년에는 후원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을 세웠고,

1463년에는 후원을 확장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옥류천 주변에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건설

1704년(숙종 30) 대보단 건설

1776년(정조 1) 2층 누각을 세워

위층에는 주합루, 아래층에는 규장각이라 함

(출처 : 창덕궁 홈페이지)



<후원의 영역>

*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주합루·영화당·사정기비각

·서향각·희우정·제월광풍관 등의 건물들이 있는 지역

* 기오헌·운경거·애련지·애련정·연경당이 있는 지역

* 관람정·관람지·존덕정·승재정·폄우사가 있는 지역

 * 옥류천을 중심으로 취한정·소요정·어정·청의정·태극정이 있는 곳


후원 입구

왼쪽이 후원 입구이고, 오른쪽은 창경궁과 통하는 문


후원 너머로 보이는 창덕궁에 아직 남은 단풍이...

이 정도라도 고맙기만 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후원 입장구역을 돌아보며~~~

잘 익은 햇살에 비친 고운 단풍에 취하고...


부용지 권역에 들어서며...


부용지 권역의 주합루와 영화당

같이 이동 중인 관람객들의 모습...

문화유산해설사님의 해설을 듣는 중...


부용지와 주합루


부용정(보물:1763호)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300평(약 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었다.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으로

 2012년 보물 제 1763호로 지정되었다.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주합루도 2012년 보물 제 1769호로 지정되었다.

하나하나의 건물도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이다.

현재는 어수문을 중심으로 생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출처: 창덕궁 홈페이지)



주합루(

1층이 규장각, 2층은 누마루), 왼쪽 건물은 서향각,

오른쪽 가려진 곳이 천석정(天石亭), 아래로 어수문.
천석정은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란 현판이 걸려 있어

제월광풍관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효명세자(순조의 아들)가 학문을 닦았던 곳.

갑자기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부용지에는 얼음이 얼었다.


주합루(보물 제 1769호)

주합루는 학문을 연마하던 곳...

정조 원년에 건축된 누각으로 1층은 규장각이고 2층은 누마루.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과 서향각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다.

어수문 옆으로는 생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해 놓았다.   


 

어수문과 주합루


어정인 듯~~~


사정기비각

세조 때 만들었다는 네 우물에 관련된 내용을 새긴 비인

사정기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


어수문과 주합루



어수문(魚水門)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통치자들은 항상 백성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영화당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한 곳...

앞쪽 춘당대 마당은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곳...


영화당

이 앞으로 펼쳐지는 마당에서 특별과거가 치러졌다.

앞마당을 곧장 가게 되면 창경궁 춘당지쪽으로 이어지게 된다.

예전에는 춘당대 마당이었던 곳...

지금은 창경궁과 담을 두었지만

예전에는 같은 공간이었을 테지...


영춘문

부용지 권역을 벗어나 영춘문 앞에 다다른다.

담장 건너는 창경궁 온대실(식물원)과 춘당지 사이 근처이고,

앞쪽은 의두합, 애련지 권역이다.



불로문(不老門), 애련지, 의두합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원래 이곳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출처: 창덕궁 홈페이지)


의두합 권역은 보수공사 진행중~

의두합, 운경거, 협문 해체 수리, 석축 및 담장 보수 중...

(2017.4.10~2018.8.2까지 예정)

의두합은 효명세자의 독서 공간이었다.


의두합, 애련지 권역 안내


불로문

통돌을 깎아내어 만든 것이란다.

양 옆에 홈이 파인 것으로 보아

원래는 문을 달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불로문 안쪽

얼마 전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도

이곳을 방문했었던 모양이다.


불로문 안 오른쪽으로 애련지를 만나게 된다.


의두합과 운경거

1827년(순조 27)에 효명세자(순조의 아들)가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은 곳으로

북향의 의두합에서 추위를 이기고 독서를 하며 백성의 고통을 헤아렸단다.

의두합에는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는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


주합루가 있는 과 담장을 마주한 곳~

늦가을 풍경이지만 햇살을 받은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네...


의두합 권역


애련지와 애련정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섬이 없고 연못 북쪽에 정자를 두었다.


연경당 사랑채의 동문인 소양문

안쪽으로 선향재가 보인다.


연경당 앞, 계단을 통하여 나가는 길이기도 한다.




연경당(演慶堂)(보물:1770호)과 선향재(善香齋)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후원 높은 곳에 있는 농수정(濃繡亭)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연경당은 2012년 보물제 1770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창덕궁 홈페이지)


연경당


‘연경(演慶)’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궁궐지』에는 순조 28년에 총 120칸으로 건립하였다고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비고』,『한경지략』에는 순조 27년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자

1827~8년(순조 27~8)경 지은 효심이 담긴 집이다.

창건 직후 연경당에서는 효명세자가 신하를 접견하거나 진작례를 거행하였다.

헌종 대 이후에는 익종(효명세자)의 어진과 모훈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다가

1857년(철종 8)에 터가 서늘하고 습하다는 이유로

익종의 초상화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 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 고종 대에 이르러 외국 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중요한 정치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연경당


연경당 안내도


연경당의 정문인 장락문(長樂門)은 낙선재의 대문 이름과 똑같은데

‘길이 즐거움을 누린다’라는 뜻이다.


마굿간과 뒷간


뒷간


연경당의 사랑채 문으로 솟을대문으로 만들어진 장양문(長陽門)

 ‘길이 볕이 든다’는 뜻...


사랑채(연경당)


사랑채와 선향재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선향재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


장락문을 들어서면 두 개의 문이 나오는데,

하나는 사랑채로 통하는 장양문이고,

이곳은 안채로 바로 통하는 문인 수인


왕비를 비롯한 여인들이 드나들던 문이라고 한다.


안채의 행랑채


안채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정추문

사람들 보이는 곳이 사랑채쪽이고, 이쪽은 안채


이쪽은 안채쪽, 건너로 멀리 보이는 곳이 사랑채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지었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안채 뒤편의 통벽문 안으로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


농수정과 선향재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한 선향재


연경당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농수정(濃繡亭)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남긴 퍼시벌 로웰(미)이

이곳 농수정 앞에서 고종의 사진을 처음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에 따라 연경당을 돌아본 후

태일문을 나와 관람지 권역으로 향하고 있다.

곧이어 존덕정과 폄우사 등이 있는 관람지 권역을 만나게 된다.


참 오랜만에 다시 후원을 찾았었다.

추운 날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창덕궁 후원 관람~

우리 것을 바로 알려는 참여자 분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유산이 오래도록 잘 보존이 되었으면~~~.

(2017.11.19.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