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도선국사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청암사 수도암
< 1박 2일 가족모임 여정 >
제 1일 : 성주 한개마을-성밖숲
제 2일 : 김천 수도산자연휴양림-청암사-수도암-직지사
2016.10.16(일)
청암사를 슬쩍 돌아나와 수도암으로 향하였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종일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부모 형제 함께하는 나들이길인데, 하늘이 원망스러운...
수도암 가는 길 계곡에 놓이고 있는 다리...
무흘구곡 중 제9경인 용추(용소)폭포쪽으로 갈 수 있는 다리인 모양이다.
수도리 마을 버스 종점을 지나고...
수도암 못 미처에 인현왕후길 안내가 보인다.
청암사 주변이 아니고 왜 여기에?
인현왕후는 조선 숙종의 계비로 2번째 왕후이다.
본관은 여흥. 민유중의 차녀.
1689년(숙종 15) 후궁 소의 장씨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장악한 정국인 기사환국으로 폐위되었다.
5년 후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기사환국 이후 정권을 집권해온 남인이 몰락하고,
기사환국 때 몰락했던 서인(노론·소론)이 재집권했다.
이 갑술환국의 여파로 인현왕후는 왕비로 복위했다.
(1694년 음력 4월 12일).
1700년, 하반신이 부풀어 오르는 괴질이 발병해
신체가 썩어 들어가는 고통 아래 투병하다가
1701년 음력 8월 14일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사망했다.
이 여파로 무고의 옥과 신사환국이 발생하여
그녀의 오랜 연적이었던 희빈 장씨가 자진했으며
가문의 정적인 남인과 소론이 큰 화를 입었다.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明陵),
기사환국으로 궁에서 쫓겨난 인현왕후는
수도산 청암사에서 3년간 머물며
복위를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인현왕후는 외가에서 보내준 시녀와 함께
수도산 곳곳을 다니며 시문을 짓는 것으로
한많은 삶을 달랬다고 한다.
인현왕후길 안내도...
인현왕후길은 수도산 자락의 수도암과 청암사를 잇는 9㎞짜리 산길.
인현왕후가 수도암과 청암사를 오가며 기도를 올렸을 거라는
향토사학계의 추정에 근거해 조성했다고 한다.
원래 청암사를 거쳐 가는 것으로 코스를 조성하려 했으나
비구니 스님들의 거처를 외부인들에게 개방할 수 없어
이곳 수도리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청암사가 왜 빠졌나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이 풀렸다.
인현왕후길을 잠시라도 걷고 싶었으나
어른들 모시고 형제가 다 모여서 가는지라
혼자서 차에서 내려 잠시 사진만 찍었다.
수도암 입구.
비가 내리는데도 여기저기로 여러 대의 차들이 보였다.
수도암 해우소 주변
수도암 설명
수도암은 도선국사가 청암사와 함께 창건하였으나
동학혁명 때 전소되었고,
이후 1900년에 건물을 중수하였단다.
현재 본당인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약광전, 나한전, 관음전 등의 건물이 있다.
문화재로는 약광전불상, 동서삼층석탑, 석조비로자나불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봉황루로 오르는 가파른 오름 계단...
산허리에 유난히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에 눈길이 절로 가네...
봉황루에 들어서서 왼쪽부터 바라본다.
넓은 마당, 높은 곳으로 건물들이 보인다.
잘 가꾸어진 절집의 모습이다.
대적광전과 약광전이 보이는 풍경~
아래 마당이 넓어서 시원스러워 보인다.
수도암은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풍수와 선을 한 맥락으로 보았던 도선은 이 암자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칠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수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터가 없다 하여
산 이름을 수도산이라 하고 암자를 수도암이라 이름 지었단다.
봉황루에 들어서서 마당 오른쪽으로 보이는 수도암 관음전.
이리 높은 산에 위치한 암자인데,
전각의 규모가 대단한 편이라 놀랍다.
대적광전을 향해 오르는 길... 가파른 계단길...
벌써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니
이곳이 제법 고지대인 것을 느끼게 되고...
아직은 옅은 편이지만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
높은 계단길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봉황루가 장대하고 늠름하게 서 있다.
높은 계단을 올라 만난 대적광전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보물 제307호
청암사 수도암에 모셔진 높이 2.51m의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네모나며 풍만하고,
긴 눈·작은 입·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느슨하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단정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거구의 불상이면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특이한 손모양과 함께 당시 시대양식의 반영인 것 같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은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다.
맨 위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연꽃이 2줄로 교차되어 있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정제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타내는데,
위축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며 탄력이 줄어든 점으로 볼 때
신라말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대적광전에 모셔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보물 제307호이다.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 (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297호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앞 뜰이 좁아서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깝다.
동탑은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얕게 새겼다.
탑신부에서는 1층 몸돌이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각 면에는 4각형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3층의 몸돌에는 각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받침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 몸돌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5단이다.
두 탑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곳곳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동탑은 1층 몸돌의 위가 좁고 감실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고
서탑은 지붕돌 밑의 간격과 지붕돌이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 문화재청)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 (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 (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
약광전과 대적광전 앞쪽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보물 제297호이다.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 삼층석탑 (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 三層石塔),
대적광전과 약광전...
대적광전 주변
서삼층석탑, 석등, 도선국사 석비
약광전 주변
석등, 도선국사 석비, 동삼층석탑
두 탑 사이로는 석등이 하나 있고 ‘창주도선국사’ 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돌기둥이 있다.
'창주 도선국사(刱主 道詵國師)'
창건주를 나타내는 장방형 석비.
약광전 주변
약광전과 수도암동삼층석탑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菩薩坐像)
보물 제296호
청암산 수도암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54m의 고려시대 석불좌상이다.
머리에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처럼 보이지만,
광배와 대좌가 있고 신체 각 부분의 표현으로 보아 여래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단아한 모습인데 마모가 심해 세부수법을 자세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양 어깨에 걸쳐져 있는 옷의 주름은 도식적이고,
손모양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나란히 모아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덩쿨무늬·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아랫부분에는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을 조각하였다.
도식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형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생각된다.
(출처 : 문화재청)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菩薩坐像)
약광전에 모셔진 불상으로 보물 제296호이다.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문화재청 자료에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적고 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청암사에서...
수도암 절마당에 서니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신선이 노니는 곳처럼 보인다.
창주 도선국사비, 석등, 수도암 서 삼층석탑
비 오는 날 청암사 수도암에서...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약광전 앞에서 비 내리는 청암사 수도암 풍경을 바라본다.
정상 가는 길과 나한전 가는 갈림길에서...
나한전
나한전 앞에서 바라본 수도암 전경
나한전 구역
봉황루와 관음전 구역으로 돌아나온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새로운 관람객이 높은 계단을 오르고 있네...
예전에는 오고 싶어도 길이 좋지 않아서 꿈도 못 꾸었는데,
이제는 차가 절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찾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진 것 같다.
돌아나가는 길~
온 산이 안개에 휩싸여 있다.
비가 내려 불편하긴 해도 분위기만큼은 최상이다!
오가며 만난 잘 익은 사과... 와우~ 가을이다!
시원한 골짜기에서 자라는 사과라 맛도 좋을 것 같네...
증산면 소재지를 지나가며...
인현왕후...
15살 어린 나이에 숙종의 왕후(계비)가 되었으나
23살에 기사환국으로 폐위되었으니
어린 나이에 겪었을 그 고초가 얼마나 심했을까...
폐위 5년 후 복위되었으나
몇년 후에 괴질이 발병하여 35세 나이로 사망.
지아비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삶~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복위되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일찍 세상을 뜬,
그녀의 삶이 참으로 애련하게 느껴진다.
동네에 그려진 인현왕후 벽화를 보며...
35년전 처음 들러본 김천 증산은
비포장 아흔아홉고개를 넘어야 들어올 수 있는 오지였었지...
지금도 무척이나 산골인 김천 증산면~
이제는 휴양림도 들어서고 가까이에 무흘구곡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지만
인현왕후가 살던 그 시절에는 얼마나 더 골짜기였을까...
옛 기억을 더듬으며 아흔아홉 고개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다음 목적지는 식사 후 직지사...
2016.10.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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