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인천 강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인 교동향교와 읍내리 비석군~화개사

교동향교 (2021.09.03.) (2023.06.11.일)

<1박 2일(2023.06.11.~12.) 강화 일정>

* 1일: 교동도(신분증 필수) - 화개정원(연산군 유배지)과 화개산전망대, 화개산뜰(점심), 교동 순례자의교회, 대룡시장, 교동망향대,

난정저수지 보리밭과 전망대, 남산포구(삼도수군통어영지), 교동읍성, 화개사, 교동향교, 월선포, 박두성생가, 석모도 자연휴양림(숙소)

* 2일: 석모도 - 석모도 자연휴양림, 석모도수목원, 뜰안에정원(점심), 스카이랜드비치, 민머루해수욕장, 나룻부리항(석포리 선착장),

강화도 - 외포항, 분오리돈대, 동막해수욕장, 서해촌(저녁)

 


 

교동읍성을 돌아나와 교동향교로 향한다.

교동향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다.

교동향교 입구 오른쪽에는 읍내리 비석군이 자리잡고 있다.

먼저 읍내리 비석군을 본 후 향교를 돌아보고

이웃한 화개사까지 잠시 들른다.

 

 

 

읍내리 비석군

조선시대에 선정을 펼친 교동 지역의 목민관들의 영세불망비 등 40기의 비석.

교동면 관내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 관리하고 있다.

2010년에 갔을 때는 향교와 화개사 갈림길 사이에 있더니

이번에 가 보니 향교 앞으로 옮겨 놓았네.

(2021.09.03.) (2023.06.11.일)
(2010.05.02.일)

읍내리 비석군

2010년 당시에는 화개사와 교동향교 들어가는 삼거리에 모아져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

교동향교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수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서울의 각 읍에 조상이나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과 제기고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문화재청 자료)

앞쪽에 주차장, 자리가 여러 면 마련되어 있다.

산 위를 올려다보면 새로 생긴 화개산 전망대가 보인다.

하마비, 홍살문을 지나 교동향교로 들어간다.

하마비에는 '수령변장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라고 쓰여 있는데,

수령과 변장(변경을 지키는 장수)이 교동도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이었으니

그들도 내리라는 뜻. 지위 낮은 사람은 당연히 내려야겠지... 

보통 향교의 하마비에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이라고 해서

대소인원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적혀 있다.

 

 

교동향교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처음 세워졌으며,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 향교에 처음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다.

 

 

교동향교 외삼문

 

 

교육 공간인 명륜당

 

 

명륜당, 뒤편 대성전 담장 아래에는 노룡암이 있다.

 

 

노룡암 번역 내용 안내

 

 

노룡암

노룡암은 원래 교동현 동헌 북쪽뜰 층계 아래에 있었는데,

위에는 울창한 숲속에 늙은 소나무가 있고 아래에는 축단이 있었다.

정유 1717년(숙종 43년)에 충민공 이봉상이

'노룡암'이라고 3자를 지었는데,

그 후 57년 계사 1773년(영조 49년)에 그의 손자 달해가

그 고적에다 글 지은 것을 새겼다.

경진 1820년(순조 20년) 통어사 이규서가

'호거암장군쇄풍(虎距巖將軍灑風)'이라는 7자 글제를 새겼다.

신묘 1831년(순조 31년) 봄에 기틀 석대로 쌓아 있었던 것을

정묘 1987년(대한민국 40)에 교동향교에 옮겨놓았다고 한다.

* 호거암장군쇄풍(虎距巖將軍灑風): 호거암장군이 풍기를 깨끗이 하였다.

 

 

동재와 서재는 다른 향교에 비해 규모가 크네.

대부분은 일자형 건물인데 반해,

ㄱ자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별하게 와닿았다.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한 바퀴 돌아 대성전으로 향한다.

 

 

명륜당 뒤로 나 있는 내삼문이 닫혀 있어

오른쪽 계단을 올라 옆문을 통해 대성전으로 들어간다.

 

 

내삼문 앞에서 바라본 대성전, 앞 양쪽에 동무 서무가 있다.

제사 공간이다.

 

 

대성전에는 동국 18현(최치원, 설총,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이, 성혼, 송시열, 송준길, 김장생, 박세채, 김인후, 조헌, 김집)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는데,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보지는 못 했다.

 

 

 

성전약수

교동향교 대성전 서측에 위치.

담을 따라 관리사와 화장실 있는 곳으로 가면

향교 담장 아래에 성전약수가 있다.

 

 

성전약수예로부터 현대 남북의 경향인들이 애용하여

위장병 치료에 효험이 큰 용출우물로 전래되어오고 있으며,

근본 원정이 대성전 밑에서 발원하여 이름을 성전약수로 불리어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의 명륜당 유학생들이 이 물을 음용 수학하여 문성(文成)을 이룬 이가 많아 

교동을 문향이라 칭함도 이 약수의 효험과 무관하지 않으며

특히 근간에는 교동의 청정 환경과 더불어

이 물이 아토피성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이기도 하다.

(안내문에서...)

 

아쉽게도 지금은 물이 마른 듯 보였다.

 

 

 

 

 

 

교동향교와 화개사 가는 갈림길에서 화개사로 가 본다.

2010년도에 처음 가 본 화개사이다.

화개산을 병풍삼고 석모도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고즈넉한 절~~~

 

 

화개사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17세기 말의 『강도지(江都志)』와 18세기에 편찬된 『가람고(伽藍考)』에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40년경 화재로 소실되었고,

1915년에는 붕괴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등사(傳燈寺)의 말사였는데,

1928년 3월 승려 정운(晶雲)의 불사(佛事) 기록이 남아 있다.

1967년 다시 화재를 겪었고 다음 해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고려 말의 문신 이색(李穡, 1328-1396)이 이 사찰에 머물면서 독서를 했다고 한다.

화개사에는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도금 불상 2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아 있는 유물로는 팔각원당형 부도 1기가 있으며,

수령이 200년 된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다음백과에서...)

 

가운데 오름 계단 옆으로 '대한 불교 조계종 화개사'라고 쓰여 있다.

고려 때 창건된 사찰로

고려 말의 문신 목은 이색이 이 사찰에 머물면서 독서를 했다고 하네.

처음 와 보았을 때는 참 서글퍼 보였었는데,

그때보다는 잘 가꿔진 모습이네.

 

 

왼쪽 오름길을 통해 오르니 늦게 피는 영산홍이 객을 맞이해준다.

수령이 200년 된 보호수 소나무는 경내를 수호하고 있고...

 

 

정갈하게 가꾸어진 모습의 화개사.

오래전 돌아본 기억으로는 대웅전 아래에 이런 잔디밭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숲 속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산사,

외로우리 만큼 한적했던 산사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화개사 대웅전

 

 

처음 방문했을 때는 보이는 덧문같은 것도 없었던 것 같다.

낡은 건물 하나 달랑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여기도 사람 오가는 곳이라 세월을 뛰어넘어 조금씩 변하고 있네.

 

 

대웅전 옆으로 건물이 보이는데, 스님의 거처겠지. 

일반인은 출입금지.

건물 옆 끝에서 스님이 잔디를 정리하시는 모습...

축대 아래로 태양열 이용 해우소가 나란히 보이네...

 

 

아래를 내려다보면 대웅전 아래 오른쪽으로 들어오는 길~

고목과 약수가 맞이해주는 곳...

 

 

잘 가꾸어진 대웅전 앞마당~

스님의 마음이 정갈하신 모양이다.

대웅전 앞에서도 잔디마당에서도 바다 건너로 석모도가 보인다.

'성주산아, 친구하자'~

서로 마주보며 인사 나누기라도 할 듯 가까이 보인다.

(2021.09.03.) (2023.06.11.일)

 

 

 

 

* 2010년 교동도 

https://leeke2000.tistory.com/16505029?category=1092154 

 

2010.05.02(일) 강화 교동도

강화 교동도 < 교동도 > 38선 근처 황해상에 있는 섬으로 강화도보다 서쪽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2012년 완공되는 교동대교를 통해 강화도와 연결되면 육지와도 연

leeke2000.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