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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강원

[원주] 치악산 국형사와 동악단

[원주] 치악산 국형사와 동악단

(2018.9.1.토)


어느 해 겨울, 국형사에 들르려다 포기한 적이 있었다.

눈이 온 데다가 차가 미끄러져 혼이 나서

결국 관음사도 국형사도 모두 가지 못 했었다.

 

국형사 입구의 부도

오른쪽 승탑은 전 주지였던 석우당 보영대선사의 것인 모양...


아래 주차장

바로 위에는 찻집이 자리잡고 있고,

그 뒤로 국형사이다.

여기서 위로 더 올라가

찻집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간다.


오른쪽 계단길로 진입하여 들어서면

국형사 마당 오른쪽 입구에 위치한 종무소를 보게 된다.


범종각과 종무소 사이 가운데 마당~

여기까지도 차가 들어오는구먼...


대웅전쪽을 바라보니

뒷산 소나무숲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강릉 선교장 뒤 솔숲이나

군산 동국사 뒤 대숲처럼

이곳 솔숲도 그렇게나 좋더라는...

한참을 바라보아도 질리지가 않더라는...


종각 옆에 국형사 유래 설명판이 있다.


국형사의 유래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당시에는 고문암(古文庵) 혹은 보문암(普門庵)이라 칭함.

조선 태조 때 산신각인 동악단이 만들어지고

 매년 원주, 횡성, 영원, 평창, 정선 등

5개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향을 봉행함.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의 둘째 딸 희희공주가 폐병으로 치료가 불가능했지만

이곳 국형사에 와서 정성스럽게 100일 기도를 드린 후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 절을 크게 지었고

동악단에서 춘추 호국대제를 지내게 하였단다.

조선 숙종 때 어명으로 국형사(國亨寺)라 바뀜.

조선 후기에 페사.

20세기 초에 중창


범종각


일본 목련이 왜 여기에 심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목련이라고 한다.


설법전



범종각과 설법전


대웅전


국형사 뒤 치악산 천연 소나무숲


유난히도 푸르른 빛을 자랑하던 소나무~

가슴 속 감동으로 다가왔던 기품 높은 소나무숲~

아마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듯...


대웅전에서 새로 생긴 수광전 가는 길...


신축한 수광전

아직 마무리가 덜 된 모양인지

인부의 손길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 강렬한 색이 칠해지는 단청 말고

이대로 고풍스러운 모습이면 더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


수광전 내부


수광전 앞에서 바라본 풍경


다시 내려와서 바라보아도 저 소나무숲은 일품이야!

아마 저 소나무숲 때문에라도

다시 한 번 찾게 될 것 같은 국형사...


국형사






국형사를 나서며...


국형사 설법전


 

 동악단 가는 길...


동악단

공주 계룡산 중악단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한 동악단...

토단만 남아있어 동악단을 다시 지었는데,

2001년에 불에 타서 또 복원했단다.

지금도 주변 작업 중...


동악단

조선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폐병이 들어

치료가 불가능했지만

이곳 국형사에 와서 정성스럽게 100일 기도를 드린 후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 절을 크게 짓게 하였고

동악단에서 춘추 호국대제를 지내게 하였단다.

의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신의 뜻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동악단


오악단

조선시대에 사찰의 역사와 국태민안을 빌었던 오악단이 있었다.

무학대사가 계룡산에 머물며 산신을 현몽한 뒤

왕에게 진언하여 세웠다고 한다.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치악산 동악단, 황해도 구월산 서악단,

지리산 남악단, 평안도 묘향산 북악단이 그것이다.

 동서남북중을 의미하는 곳인 오악단에서

오악제라는 국가적인 제사를 봉행했다고 한다.

이곳 동악단이 그런 곳 가운데 한 곳인 걸 보면

조선 초기에는 꽤나 유서 깊은 곳이었으리라......


 

동악단을 내려와

국형사 아래 솔바람 카페에 들렀다.

실내 공간도 있지만 실외 공간도 제법 널찍하다.

바깥 테이블에 손님이 꽤 많다.

이런 산골에 웬 사람들인가 싶을만큼.

잠시 놀라움 가득...

야외 공간에 자리를 잡고 산골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

잠시 쉼을 가지는 것은 참 여유로운 일이다...

(2018.9.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