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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부산 여행] 몰운대, 다대포 객사, 다대포해수욕장

[부산 여행] 몰운대, 다대포 객사, 다대포해수욕장


< 2017년 6월 4일 >

해운대 영화의 거리 - 유엔묘지 -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길 - 송도(거북섬)

- 아미동 비석마을 - 아미산 전망대 - 다대포(몰운대, 다대포객사, 해변, 꿈의낙조분수)


(2017.6.4.일)


아미산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대포로 왔다.

아직은 해가 좀 남아있다 싶어서

다대포해수욕장부터 들르지 않고

몰운대 섬 다대포 객사까지 다녀오기로 하였다.


옛날에는 이곳이 섬이었다고 한다..


몰운대 설


몰운대 유원지 안내도를 보면서...

몰운대 시비를 지나 다대포 객사를 거쳐

전망대까지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몰운대의 볼거리들~


다대포의 볼거리들을 읽어 보고~


몰운대 트레킹 시작~

우거진 소나무숲 사이로 걷는 길, 힐링 장소로 손색이 없는 곳...


첫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서 이춘원의 몰운대 시비를 만났다.


이춘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07년(선조 40), 동래 부사로 부임.

해운대, 태종대, 몰운대 등

동래 지역의 여러 명승과 고적을 둘러본 후

시를 썼다고 한다.


沒孤台

浩蕩風濤千萬里 (호탕한 바람과 파도가 천만리 이어지는데)

白雲天半沒孤台 (하늘가 몰운대는 흰 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 (새벽 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常見仙人駕鶴來 (언제나 신선이 학을 타고 오는구나)


걸어온 길~ 이렇게 빼곡히 우거진 숲속이다.


조금 더 걸으면 헬기장이 보이고,

조오기 숲 사이로 다대포 객사가 보인다.


다대포 객사



다대포객사 (多大浦客舍)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것으로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도 한다.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다.

이 객사를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대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객사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 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였다.

옛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요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욱 중요시되었다.

다대포 객사는 이 지역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선시대 객사 건축물이다.

(출처 : 문화재청)


다대포 객사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다고 하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단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단다.


이 객사를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대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란다.


다대포 객사에는 '懷遠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객사가 왜 이런 곳에 있을까 의아했는데,

문화재청 설명 자료를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다대포 객사를 지나 전망대쪽으로 향하였다.

몇몇 분들이 이곳을 걷고 있다.

객사를 지나 정운공 순의비쪽은 출입통제 중...


정운공 순의비 (鄭運公殉義碑)


몰운대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1592년 9월 1일)에 우부장(右部將)으로 출전하여

공격의 맨 앞에 서서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 장군의 의로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었던 정운 장군은

적병이 호남에 이르기 전에 먼저 나아가 칠 것을 주장하고,

맨 앞에 서서 공격할 것을 스스로 청하였다.

또한 옥포·사천·한산도 해전에서 공을 세우고,

왜적의 군영이 있던 부산포를 공격할 때에도

다시 맨 앞에서 공격을 하였다.

비문에는 장군이 수군 선봉으로 몰운대 아래에서 왜적을 만났을 때

몰운(沒雲)의 운(雲)자가 자기 이름자 운(運)과 음이 같다하여

 이곳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충장공실기(忠壯公實記:‘충장’은 정운 장군의 시호)』와 『충무공전서(忠武公全書)』에는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직사각형의 비는 윗변을 둥글게 다듬은 간략한 형태이다.

정조 22년(1798) 정운 장군의 8대손 정혁이 다대첨사로 왔을 때 세운 것이며,

비문은 이조판서 민종현이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썼다.

1974년 부산시가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전망대 가는 길...


자갈마당


모래마당


몰운대 전망대

지금은 문이 열려 있지만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통제하는 모양이다.


부대 주둔 흔적~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자섬


모자섬


동섬과 쥐섬


동섬


쥐섬



몰운대 유원지 전망대에서 본 풍경


흔적들~


몰운대 전망대에서...



몰운대 유원지 길을 따라 걸으며...


전망대에서 뒤돌아가려고 했다가

이왕 온 거니 조금 더 돌아가기로 하고 걷는다.


아무래도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



서식 동물들을 위해 빗물을 받아두는 곳...


화손대와 유원지 입구로 가는 갈림길 앞 간이운동장에서는

부자간에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도 보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었던 정운 장군은 

수군 선봉으로 몰운대 아래에서 왜적을 만났을 때

몰운(沒雲)의 운(雲)자가 자기 이름자 운(運)과 음이 같다 하여

 이곳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순절하였단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조오련 선수는

대한해협을 건너기 위해 다대포 선창에서 물에 뛰어들었고

13시간 16분만에 대마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몰운대 유원지를 돌아나오며 바라본 낙동강 하구...

전망대까지만 다녀오려다가 조금 더 돌아오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금방 보였던 해는 어디로 갔을까나~~~


아직은 해가 남아있는 듯 보이는데...

분수쇼 시작 시각이 조금 남았지만  벌써부터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얼른 해변 보러 가야지...

꿈의낙조분수 광장을 지나 다대포해수욕장으로 내달린다.



드넓은 다대포해변~



다대포해변 끝으로 방으로 보이는 사람 조형물이 보이고

몰운대 해안산책로가 보인다.

사람 조형물은 가까이 가면 형상이 달라진다는...

그나저나 저어기 몰운대 해안산책로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몰운대를 한 바퀴 돌다 오느라~~~ ㅠ.ㅠ...


꿈의낙조분수를 보려면 몰운대 해안 데크길을 걷지 못하겠다.

주말과 휴일에는 두 번(8시, 9시) 분수쇼를 보여주지만

나중 것을 보려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데크길 포기...

아마도 나 혼자였으면 그냥 뛰어서라도 다녀왔겠지...


 대신 해변에서 잠시 머물며...


다대포 해수욕장의 강아지 조형물을 잠시 감상하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했어...ㅎㅎ..


다대포해변에서...


노을이 바알갛게 물든 시각에 다대포해변에서...


전화기 너머로 '안 오냐?'는 목소리~


혼자서 다대포해변을 잠시 둘러본 후

꿈의낙조분수쇼를 보러 가는 길에 바라본 해수천...

천변을 슬슬 걸어도 좋겠다...


다대포 해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모여든 사람들의 수도 늘어만 갔다.


저녁 8시...


드디어 환상적인 다대포 꿈의낙조분수쇼가 시작된다.


2017.6.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