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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남 담양] '인조대왕 계마행'으로 불리는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전남 담양] '인조대왕 계마행'으로 불리는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45호 담양후산리은행나무 (潭陽后山里銀杏나무)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높이는 30m에 이른다.

일명 ‘인조대왕의 계마행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조선시대 인조(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호남지방을 돌아보던 중

이곳 후산에 사는 오희도라는 분을 방문하러 왔는데,

그 때 인조가 타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맸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이 나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히는 명옥헌으로 들어가는 길에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으로 버티고 서 있다.

은행나무 오른편으로는 오희도의 생가 터가 있으며,

뒤편으로는 노거수가 자리하고 있어

주변의 옛 영화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출처 : 문화재청)

 

 



 

지난 해에 명옥헌원림과 함께 돌아본 후산리 은행나무이다.

(2015.07.26)



은행나무의 자손들도 많이 보인다.













은행나무 뒤편의 오희도 유허비

 


유허비 주변의 배롱나무꽃


 

이 주변에 오희도의 집터가 있었으리라...


오희도(1583 선조 16년~1623 인조 1년)

 

 

본관은 나주(), 호는 명곡().

1602년(선조 35) 사마시에 합격,

1614년(광해군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

효성이 남달리 지극했다고 한다.

1623년(인조 1)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관직에 나간 바로 그 해에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오희도와 관련된 문화재로

'명옥헌원림'과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가 있다.

명옥헌은 오희도가 자연을 벗삼아 지내던 곳에

그의 아들 오이정이 지은 정자이고,

은행나무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호남지방을 돌아보던 중

오희도를 방문했을 때 인조의 말을 맸던 나무라고 한다.


 

 


후산리 은행나무 앞쪽에 이렇게 멋진 집이 있어 담아보았다.


'청예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기억이 되는데,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왼쪽 뒤로 후산리 은행나무가 바라다보인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은행나무가 참으로 장하게 느껴진다...

명옥헌원림 들르면서 같이 돌아보면 된다.


2015.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