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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 걸어보기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 걸어보기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를 나와

페어샵이 늘어선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

 

'덕수궁 돌담길, 옛날의 돌담길~'로 시작되는

혜은이의 노래 <옛사랑의 돌담길>이 생각나는 길...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이문세의 <광화문연가>가 생각나는 길...

 

올해 14번,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는

돌담길의 페어샵 가게들을 보며 걷는다.

더러는 눈길을 더 주게 되는 샵도 있어 잠시 눈요기를 즐기고...

 

 

돌담길 바닥에 새겨진 주변의 문화재들 타일도 바라보며...

돌담길을 따라 더 걷는다.

 

 

이환권님의 '장독대'란 작품을 만난다.

겨울나기 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한다.

조부모, 부모, 자녀 3대의 가족 모습...

 

'장독대' 작품이 있는 길 건너 안쪽으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입구...

붉은 장미 형상을 보는데 왜 마릴린 먼로가 생각날까! ㅎ

서울시립미술관... 고흐전이 열릴 때 가 보았던가~

오래전 기억을 슬쩍 들추어본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덕수궁 돌담길을 이어서 가게 되면 미국대사관저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길을 건너 직진 방향으로 가게 되면 정동길 메인 도로이다.

맞은편으로 정동교회가 보인다.

 

 

로터리에 세워진 배형경님의 '삼미신'상을 보며...

 

원래 정동길만 걸으려고 마음먹었었는데,

마음과 달리 미국대사관저가 있는 곳으로 걷게 된다.

전경이 지키고 있다.

사진 찍기가 괜히 두려워서(?) 그냥 보기만 하면서 걸었다.

 

 

덕수궁 돌담길 따라...

몇몇 사람이 나처럼 그 길을 그렇게 걷는다.

얼른 이 사진 한 장만 찍었다.

 

 

그래도 가다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입구는 찍었다.

 

 

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길...

미국대사관저 입구도 지나고 영국대사관 골목길도 지난다.

역시 주변에는 전경이 지키고 있다.

사진은 안 찍고 패스~

몇 걸음 더 옮기면 구세군중앙회관과 덕수초등학교가 나온다.

 

 

구세군 교회와 구세군 중앙회관을 만난다.

 

 

탄탄한 외관을 자랑하는 구세군중앙회관.

 

 

구세군중앙회관 (救世軍중앙회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

한국 구세군의 본관으로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한국 구세군의 중흥기인 근대화 과정까지

한국 구세군의 혼과 정신이 뿌리깊게 배어 있는 건물이다.

1928년에 지어져서 세부적인 개조가 있었고

건물 뒷면을 증축하였지만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관의 4개의 기둥과 지붕이 당당한 인상을 주는 건물로,

현관 쪽의 바닥은 물갈기 슬래브이나 복도 및 계단 난간은 목조로 되어 있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집회·예배당이 있고

목조 트러스가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보인다.

이 건물은 구세군 활동 일부라는 종교적 역사성 뿐만 아니라

근대건축으로서 좌우 대칭의 안정된 외관이 잘 보존되어

근대 건축의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구세군중앙회관.

 

중앙 가운데 위에 구세군사관학교, 아래 문 위에 구세군중앙회관 글씨가 쓰여 있다.

19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구세군이

사관 양성 및 선교와 사회사업 본부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1928년 완공된 건물.

 

 

구세군중앙회관

 

회관 한켠의 구세군박물관은 구세군이 한국에 선교한지 100주년을 준비하며

산재해 있던 선교 문화유산들을 전시하고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가 생각난다.

 

 

구세군중앙회관에 이어 덕수초등학교를 만난다.

교사는 신축했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이다.

 

 

덕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본 조선일보 건물.

미술관도 보고 싶어지지만......

 

 

덕수초등학교 건너편은 구 경기여고 자리로 덕수궁 선원전 터였다.

지금은 가림판으로 둘러놓았다.

 

 

피곤해서 사실은 정동길 주변만 돌아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덕수궁길을 따라 더 걷게 되었다.

내친김에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이동하게 되었고

경교장 앞을 돌아 다시 정동길로 가게 된다.

이 사진은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강북삼성병원 앞 정동사거리에서 정동길로 접어들었다.

정동사거리 주변은 옛 서대문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정동길 우거진 숲 사이로 우리 역사의 한자락을 보는 듯하다.

중국인 최초교회인 한성교회 골목길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성프란치스코 교육회관쪽도 바라보면서...

 

 

 

캐나다 대사관과 고목이 된 회화나무를 만난다.

캐나다 대사관이 있던 자리에는 아담한 하남호텔이 있었다고 한다.

고목은 굴곡진 우리 역사를 다 기억하고 있으리라...

 

 

창덕여중 담 길가에 아래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관립법어학교(1895~1910)터.

개화기에 법어(프랑스어)를 가르치던 학교가 있던 터라는...

 

이화여고 앞에서 뒤돌아본 주변 풍경...

저만치 반가운 고목이 다시 보인다. 

 

 

손탁호텔

이화 100주년 기념관 자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의 처형이었던 손탁은 고종 황제에게 커피맛을 알게 했고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에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을 세웠다.

호텔 1층 정동구락부에서는 당대의 여러 회합들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화 옛 대문.

안쪽으로 이화 100주년 기념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등록문화재  제3호 )

 

1915년 미국인 사라 J. 심슨(Sarah J. Simpson)이 위탁한 기금으로 세워졌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로 6.25전쟁 때 붕괴, 1960년대 초 복구.

남쪽 건물의 외관은 처음 건축할 때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뒷부분은 현대적인 외관으로  처리하였다. 

현재는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심슨기념관

 

 

 이화여고 건너편의 예원학교.

왼쪽 옆길 안쪽으로 구 러시아공사관이 있다.

 

 

예원학교

 

 

예원학교 옆 길을 따라 구 러시아공사관 가는길...

이곳은 현재도 여러 나라의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예원학교 옆 언덕진 길을 올라가 공원을 만났다.

이 지역은 한국가톨릭수도원 첫자리(정동수녀원)란다.

사진 왼쪽 벤치 뒷쪽에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공원 언덕 위에 자리한 구 러시아공사관탑이 보인다.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서울 舊 러시아公使館)

 

정동공원 언덕 위에 남아있는 구 러시아공사관탑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서울 舊 러시아公使館)

 

사적  제253호

고종 27년(1890)에 지은 르네상스풍의 2층 벽돌 건물이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심하게 파괴되어 탑과 지하2층만이 남아있었으나

1973년에 복구되었다.

한쪽에 탑을 세웠으며, 정문은 개선문 양식이다.

일본군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1896년 2월부터 1897년 2월까지

고종이 황태자와 함께 피신하여 있던 곳이다.

이 기간동안 친일파인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고

친러시아적인 박정양 내각이 조직되었으며,

서재필이 주도하는 독립협회가 결성되었다.

고종이 거쳐했던 방의 내부는 건물과 같은 르네상스풍의 실내장식을 했다.

(문화재청)

 

3층탑 부분만 남아있는 구 러시아공사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이 세자와 함께 이곳 아관으로 피신하였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고 한다.

 

 

 

 

 

 

 

 

 

 

 

 

 

 

 

 

 

 

 구 러시아공사관이 위치한 언덕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지금은 정동공원이 되었다.

 

 

 

 

구 아관(러시아공사관)

 

 

 

 다시 이화여고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왔다.

여기서 길을 꺾어 왼쪽으로 향하게 된다.

 

구 신아일보사 별관을 만난다. 

 

 

구 신아일보사 별관

 

등록문화재  제402호

1930년대에 지하1층 지상2층으로 건축된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미국기업인 싱거미싱회사(Singer Sewing Machine Company) 한국지부 등으로 사용되다,

1969년 신아일보사로 매각되어 1975년 사세확장에 따라 3·4층을 증축하고,

1980년 언론기관통폐합으로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되기 전까지

신아일보사 별관으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민간건물 건축기법으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던 철근콘크리트조로 건축된 건물로

일방향 장선 슬라브(One-way Joist Slab) 구조 및 원형철근 사용 등

일제 당시 건축구법·구조 등이 잘 남아있어 근대건축기술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1980년 신군부 언론통폐합 조치로 폐간되어 언론수난사 현장을 대변하는 등

근현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문화재청)

 

구 신아일보사 별관, 신아기념관을 지나고...

 

 

 

정동극장을 만난다.

정동극장 왼쪽 골목 끝에 중명전이 있다.

시간은 늦었지만 그곳으로 향한다.

 

 

중명전

 

 

 

 

왕실 도서관이었던 중명전.

이곳에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고,

이후 1907년 고종이 헤이그만국평화회에사를 보내게 된다.

 

원래의 이름은 수옥헌.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고종은 이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 뒤 화재, 재건, 국유재산, 정동극장, 문화재청 등으로 관리 전환됨을 거쳐

현재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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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골목을 돌아나와 정동극장을 바라본다.

 

 

정동극장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맥을 잇는 극장으로 탄생했다.

1995년 개관.

한국 전통공연예술의 대중화, 세계화, 명품화를 위해

2010년 전통뮤지컬 <춘향연가>를 창작·초연.

상설공연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런칭하여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세계 곳곳의 무대에 전통예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주력.

2011년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경주의 브랜드 공연<신국의 땅, 신라>를 선보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콘텐츠 공동개발의 첫 사례로 꼽히며

지역문화발전은 물론 문화관광 활성화에 기여해오고 있다.

(정동극장 홈페이지 내용 발췌)

 

 

 

 정동극장 맞은편의 정동제일교회

 

 서울 정동교회 (서울 貞洞敎會)

 

사적  제256호

고종 광무 2년(1898)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본래는 십자형으로 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부분을 넓혀서

현재는 175평의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늘려지었기 때문에

건물의 원래모습에는 손상이 없다.

벽돌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 아치형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은 조선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있어 주목된다.
이 교회당의 종은 장식없는 내부 기둥들의 겉모습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북미계통의 단순화된 교회건물이다. 

(문화재청)

 

 

정동제일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곳...

 

 

거리에는 지난 5월 29일(금)과 30일(토) 정동야행 행사를 알려주는 깃발이 붙었다.

이때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움만 가득~~~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바라본 정동극장 주변 풍경

 

 

정동제일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 건물이라는...

 

 

정동교회의 아펜젤러 목사 흉상.

아펜젤러는 미국의 선교사이자 교육가로

정동제일교회(설립 당시 벧엘 예배당)와 배재학당을 설립하였다.

 

 

아펜젤러상 옆에 감리교회 조선선교 오십주년기념비도 세워 놓았다.

 

 

정동제일교회 최초의 한국인 담임목사였던 최병헌 목사 흉상도 세워 놓았다.

 

 

안쪽 계단 끝 옆으로 100주년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올해가 130주년이라는......

 

 

다시 정동교회를 바라보며...

 

 

정동교회 앞 원형로터리에서 미국 대사관이 있는 쪽  돌담길을 다바라본다.

 

 

조금 전에 지나온 길, 어둠이 내리는 정동길도 다시 바라본다.

 

 

고개를 돌리니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의 장미가 더욱 붉게 보인다.

미술관 앞 주변 소공원은 옛 독립신문사 자리였단다.

옛 대법원청사였다는 서울시립박물관~

거기까지 갈 시간은 부족하여 다음으로 미루고...

배재학당도 다음으로 미루고...

 

 

한복을 곱게 입은 아가씨들이 어여뻐서 한 장...

 

 

다시 덕수궁길을 따라 걷는다.

저기 다르게 보이는 돌담은 인화문으로 통하는 자리였으리라...

 

저녁이 되어 덕수궁길 페어샵은 모두 철수를 한 상태라 한적한 길로 변했다. 

 

 

덕수궁길을 빠져나가 버스를 타려고 보니 숭례문 근처까지 가야 했다.

 

 

 

 

달리는 차들이 적어질 때쯤 숭례문을 찍어 보았다.

 

 

세월 따라 없어진 것들도 많고,

남아있긴 하지만 변한 것들도 많은 정동.

정동의 유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현 정동에 조성되면서 생겼다고 한다.

그 정릉은 태종 때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졌지만...

 

오랜만에 역사의 흔적이 가득 배어 있는 정동 지역을 걸어 보았다.

본 것도 많고 느낀 것도 참 많았던 시간이 되었다.

언제고 다시금 걸어보고 싶은 곳~

그 때는 내부까지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015.05.23(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