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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남 통영] 118년만에 복원되었다는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4 - 응수헌, 중영청 외

[경남 통영] 118년만에 복원되었다는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4 - 응수헌, 중영청 외

 

공방 구역을 돌아나와 우후군 구역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복원 전에 통영세무서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통제영이 원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멋진 모습이었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중영청

 

 

중영청 

 

 

 

 

중영 안의 영빈관인 응수헌

 

응수헌 뒷편의 결소당

 

 

통제영 구역을 모두 돌아본 후 다음 여정을 이어간다.

통제영 앞에는 통영시 향토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통영시 향토역사관

향토역사관

통영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가야, 신라, 고려, 조선, 근대 등 각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통제영 산하 12공방 관련 자료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나전칠기, 소목장, 통영 갓, 문발, 부채, 연, 누비 등 공예품과

오광대, 승전무등 무형문화재의 제작 및 공연과정도 볼 수 있다.  

 

 

김봉룡옹의 집터표시

 

이곳은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 기능보유자였던 김봉룡옹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안쪽으로 주차장의 모습이 보인다.

통제영과 향토역사관을 찾을 때 이곳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충무시문화동벅수 (忠武市文化洞벅수)=통영 문화동 벅수

 

 

내리막길 끝에는 문화동 벅수가 서 있다.

 

 

 

충무시문화동벅수(통영 문화동 벅수)

 

세병관(국보 제305호)으로 오르는 길가 오른쪽에 서 있는 석장승이다.

장승이라는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전승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벅수’라고도 한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 등에 세워져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역할도 한다.

남녀 한 쌍이 짝을 이루어 서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장승은 하나만 있는 독장승이다.

이 부근의 위치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낮은 지대로

기(氣)를 보강해주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졌다.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있고

둥근 눈은 튀어나왔으며

코는 삼각형으로 뭉툭하다.

머리 위에는 벙거지를 쓰고

턱 밑에는 굵은 선으로 세 가닥의 수염이 표시되었다.

활짝 웃고 있는 입에는 송곳니가 길게 삐져나와 있는데

험상궂은 모습이기보다는 익살스럽다.

벅수의 앞면에는 ‘토지대장군(土地大將軍)’이라는 글자가 새겨있다.

뒷면에는 '광무십년병오팔월일동낙동 입(光武十年丙午八月日同樂洞 立)'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벅수가 고종 10년(1906)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장승은 험상궂은 듯 하면서도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민간 특유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유례가 드문 독장승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출처 : 문화재청)

 

우리나라 유일의 채색 돌장승이란다.

 

 

원래의 위치는 도로 아래 35m 지점에 있었으나

도로확장으로 인해 이곳으로 옯겨 세웠다고 한다.

 

2014.03.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