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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논산]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석등, 석문(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石燈, 石門)

[충남 논산] 논산8경 중 제1경을 자랑하는 논산 관촉사

 

관촉사... 참 오랜만이다.

전에 와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니까 참 세월이 많이 흘렀나 보다.

은진미륵...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했던 기억에 남는 문화재다.

처음 이 미륵을 접했을 때의 감회가 새삼 떠오른다.

그 거대했던 입석불의 모습...

지금도 그 감동이 여전히 느껴진다.

 

관촉사는 논산8경 중 제1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며

968년(광종 19) 혜명(慧明)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名僧) 지안(智眼)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법당은 1386년(우왕 12) 건립해 1581년(선조 14)과 1674년(현종 15)에 중수했으며

1735년(영조 11) 다시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조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석등(보물 제232호)을 비롯해 사리탑·연화배례석·사적비 등이 있다.

논산 관촉동 반야산 기슭에 위치.

 

* 위치: 충남 논산시 관촉로 1번길 25 (관촉동)

 

경내 주차장 바로 앞에 위치한 스님들의 거처 주변.

이 건물 오른쪽 살짝 언덕진 길을 따라 올라간다.

날이 어두워지는 시점이라 시간이 촉박하여 아래 주차장에 대지 않고 이곳까지 올라왔다.

 

거대한 미륵불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거대함...

 

조금 더 걸으면 석등도 보인다.

미륵불 옆으로 사적비도 보이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서 본 석탑, 석등, 미륵보살입상

 

석등과 미륵불.

석등은 남한에서 두번째로 큰 것이고, 미륵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다.

 

미륵불 앞으로 석등과 석탑이 보이고, 옆으로는 비석들이 보인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8호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으로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며 높이가 18m에 이르는데,

당시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만든 관음보살상이라 전해지는데,

연대 고찰을 위해 참고할 만하다.

이 보살상은 경기·충청일대에서 특징적으로 조성되었던 토착성이 강한 불상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문화재청)

 

높이가 18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으로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린다.

 

조성 당시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란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높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이중의 네모난 갓 모양으로 보개(寶蓋)가 표현되었으며,

모서리에 청동으로 만든 풍경이 달려 있다.

 

옆으로 긴 눈, 넓은 코, 꽉 다문 입, 긴 귀... 토속적인 느낌...

 

체구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 이마에는 구슬이 박혀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옷주름선이 간략화되어 있고

불상의 몸은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든 느낌을 준다.

 

주변에 비해 손 주위의 조각은 섬세한 편...

 

발가락도 밖으로 드러나게 표현하였다.

고려 광종 19년(968)에 만든 관음보살상이라 전해지는 입석불이다.

 

조각 수법이 섬세하진 않으나 이렇게 거대한 불상을 조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상 주변을 둘러싼 낮은 담장과 그곳에 새겨진 조각은 다른 곳에선 잘 볼 수 없었던 것.

불상의 앞쪽에는 참배단을 마련해 놓았다.

 

 

논산 관촉사 석등(論山 灌燭寺 石燈)

 

보물  제232호

 

관촉사 앞뜰의 큰 석불 앞에 놓여있는 4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 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터무니없이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는데, 조각이 두터워서 인지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뒤에 서 있는 석불 못지않게 힘차 보이나, 화사석의 네 기둥이 가늘어 균형이 깨지고,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너무 굵고 각이 없어 그 효과가 줄어든 감이 있다. 뒤의 석불 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4각 석등.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에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주는 논산 관촉사 석등.

 

미륵보살입상과 석등

 

석등과 미륵보살입상  

 

명부전이 보이는 풍경

 

 

관촉사 배례석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절을 찾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갖추는 장소로 사용된다.

직사각형의 받침돌 형태이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촉사 배례석.

옆면에는 안상을 옅게 새겼고

그 안에 고사리 무늬 같은 버섯구름 모양을 새겨 넣었다.

윗면에는 가운데 커다란 연꽃을 조각하였고

좌우에 그보다 약간 작은 연꽃 두 송이와 2개의 연줄기가 조각되어 있다.

 

관촉사 석탑과 배례석

 

 

미륵전 옆에서 본 관촉사 미륵보살입상, 석등, 석탑, 배례석

 

 

경내 한 바퀴

미륵보살입상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왼쪽으로부터 평면적으로 보아 미륵전, 대광명전, 명부전.

 

범종각. 이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범종각 오른쪽으로 바로 석문이 있다.

 

대광명전과 명부전

 

대광명전

 

미륵전. 내부에는 유리로 문을 내어서 미륵보살입상을 바라볼 수 있다.

 

미륵전과 미륵보살입상

 

윤장대와 대광명전

 

석문 

 

 

 

관촉사석문(灌燭寺石門)

 

관촉사는 고려 광종 19년(968) 혜명이 창건한 사찰로, 절내에 들어서려면 이 석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일명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문은 네모난 돌기둥을 양쪽에 세운 후, 양 기둥 뒤쪽으로 길쭉한 돌을 5개씩 쌓아 옆면을 이루게 하였다. 기둥 위로는 네모지고 넓적한 돌을 얹어 놓아 전체적으로 4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관촉사가 건립된 후 참배객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 4곳에 이러한 문을 두었는데, 그중 동쪽에 세운 이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석문을 세운 시기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관촉사가 건립되었던 고려시대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범종각 옆으로 난 석문 밖으로 나가서 본 모습이다.

 

계단으로 오르면 양쪽 기둥의 돌문이 있는데,

왼쪽에는 解脫門, 오른쪽에는 관촉사라고 씌어 있다.

 

계단을 오르면 미륵전과 미륵보살입상이 보인다.

절내에 들어서려면 이 석문을 통과해야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이다.  

 

네모난 돌기둥으로 양쪽에 문을 세운 후, 양 기둥 뒤쪽으로 길쭉한 돌들을 쌓아 옆면을 이루게 한 모습.

기둥 위로는 네모지고 넓적한 돌을 얹어 놓아 전체적으로 4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 기둥으로 해탈문(解脫門)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관촉사가 건립된 후 참배객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 4곳에 이러한 문을 두었는데,

그중 동쪽에 세운 이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해탈문에서 본 미륵전, 석등, 미륵보살입상 

 

이렇게 관촉사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익산으로 향한다.

지나가는 길에 견훤왕릉을 볼 수 있을까~~~ 

 

2013.02.1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