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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스페인 세비야]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친숙한 이름, 세비야(Sevilla)

 

[스페인 세비야]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친숙한 이름, 세비야(Sevilla)

 

 

론다를 떠나 세비야 주의 주도인 세비야에 도착했다.

세빌리아=세빌랴=세비야...

우리에겐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친숙한 이름을 가진 도시. 

콜롬버스가 이사벨여왕의 후원으로 인도를 발견하러 떠난 출항지.

스페인 출신 유명화가인 벨라스케스와 무리요의 고향이기도 한...

 

학창 시절에 접했던 오페라 중 하나인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생동감 넘치고 익살이 가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쌍벽을 이루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은 모두 프랑스의 작가 보마르셰의 희극이 원작.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로시니의 대표작.

 

시각을 살피니 론다에서 약 두 시간 정도 걸린 모양이다.

해 떨어지는 시각이 한국보다 늦어서 저녁 8시가 넘었는데도 환하다.

근처에는 현대적인 느낌에 가까운 분위기의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숙소에서 내려다본 주위 동네 풍경.

집들의 외관 모습이나 색깔 등 깔끔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왠지 반할만한 모습...

 

이슬람 분위기가 살짝 느껴지는 숙소의 모습...

 

알람브라(알함브라)궁의 사자분수를 본뜬 모습...

 

저녁 식사 후 수영장에 가는 중~ 건물 높이만큼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나무가 인상적이어서...

수영장은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저녁 8시 이후는 close란다.

 

숙소 건물 내부의 천장이 곱다.

 

 

[세비야, Sevilla]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 주의 주도로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 항구도시이다.

이곳은 문화 중심지로서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수도로서,

스페인의 신세계 탐험의 중심지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는 히스팔리스로 알려졌으며

서(西)고트족의 중심지였다가 711년에 무어인들에게 점령당했다.

아바스 왕조 및 그후의 알모라비드와 알모아드 동맹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문화 중심지였다.

1248년 페르난도 3세가 이끄는 스페인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이슬람교도들이 쫓겨난 뒤

이 도시는 급속히 지위가 격상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이 도시는 새로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1503년 카사데콘트라타시온(무역관)의 설립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과의 해외교역에 있어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17세기에 들어서 교역업이 쇠퇴한 반면 문화활동이 활발해졌다.

이 도시 출신의 화가인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와 조각가인 후안 마르티네스 몬타녜스,

시인 페르난도 데 에라라 등은 스페인이 자랑하는 예술가들로 꼽힌다.

18세기에 부르봉 왕조가 이 도시의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19세기에 일어난 프랑스의 침략, 혁명, 내전 등으로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1847년에 부활절에 이은 연례 축제로 4월 축제가 마련되었다.

1929년에 개최된 이베리아 아메리카 박람회는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며,

주변의 습지는 경작지로 개발되었다.

20세기에는 항구가 확장되었으며, 공업·상업의 요지로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다.

주교관구로서의 지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대학교(1502 설립)가 하나 있다.

주요 수출품은 포도주·올리브·과일·코르크·광물이며,

공업으로는 담배·무기·섬유·도자기·기계류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세비야 대성당(1403~1506 설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인구 704,203(2004). (다음 백과사전)

 

2012.08.09(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