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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영국령 지브롤터] 스페인의 한쪽 끝 영국땅 지브롤터

[영국령 지브롤터] 스페인의 한쪽 끝 영국땅 지브롤터

 

지브롤터(Gibralta)

 

베리 반도 서남쪽, 지브롤터 해협의 북쪽 해안 있는 영국 식민지.

지브롤터 해협은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데,

지브롤터는 이 해협을 지키는 영국 해군·공군의 견고한 기지이다.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개입한 영국 1704년에 점령하였다.

면적 5.8㎢, 인구 31,000(1995).

18세기 이래 지브롤터는 영국 해군력의 상징이었으며, '바위산'으로 알려졌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에 따라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군 주둔지와 해군 조선소는 계속 이곳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해상훈련작전 때 종종 이곳의 항구시설들이 이용된다.

지브롤터는 영국의 한 식민지로, 방위만 제외하고는 모든 문제를 자치적으로 해결한다.

1981년 지브롤터인들에게 완전한 영국 시민권이 주어졌으며,

18세가 넘은 남녀 지브롤터인들과 영국 민간인으로 6개월 이상 거주한 자들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영국 국왕이 임명한 총독은 행정부의 수반이며 지브롤터 위원회의 자문을 받는다.

토지가 부족하여 농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담배·음료수·통조림 등의 경공업이 행해지고

선박·군인의 수송, 관광업, 재수출 무역 등이 주수입원이다.

호텔과 해변의 편의시설을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관광업이 발달했다.

1973년 영국과 함께 유럽 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여객선과 화물선들은 지브롤터 항구에 머물고 카페리가 매일 모로코의 탕헤르를 내왕한다.

지브롤터와 런던 및 탕헤르를 잇는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차량교통용으로 더록 밑에 도로와 터널들이 나 있다.

케이블카는 능선 중앙의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인구의 2/3가 지브롤터인인데, 이들은 1925년 이전에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약 1/5 정도가 거류 외국인들이며, 나머지는 영국군 가족들이다.

지브롤터인들만이 이 식민지에서 영주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체류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지브롤터인의 대부분은 제노바·영국·스페인·몰타·포르투갈인의 피가 섞여 있다.

인구의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교를 믿고 있다.

대부분의 지브롤터인들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지만 스페인어가 모국어이다.

교육은 5~15세에는 무상·의무제로 실시되고 있다.

더록에 있는 석회암 동굴들을 발굴한 결과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슬람교 지도자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711년 이곳을 정복했으며,

그후로 모든 점령자들이 이곳을 요새로 삼았다.

이슬람교도의 점령은 1462년 스페인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1501년에 이사벨 1세가 스페인령으로 병합했다.

그러나 1704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중에 조지 루크 경이 지브롤터를 점령했으며,

스페인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에 의해 이곳을 정식으로 영국에 양도했다.

스페인은 이곳을 재탈환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며,

특히 1779~83년에는 장기간에 걸쳐 포위 공격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지브롤터는 1830년에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20세기초 더록에 터널을 뚫어 이 반도의 동서간 교통이 원활해졌다.

제1·2차 세계대전중에 지브롤터는 연합군 호위함의 수리·조립항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1960년에는 스페인 정부가 지브롤터의 '비식민지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1967년 영국이 지브롤터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식민지 주민들에게

스페인의 통치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물었다.

투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1만 2,138 대 44)로 영국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9년 영국이 지브롤터를 위해 작성한 새로운 헌법은

지브롤터인들에게 완전한 대내 자치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영국과 지브롤터의 유대관계를 명백하게 재확인했다.

이에 스페인은 지브롤터에서 무역을 하던 스페인 거류민들과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을 철수시키면서

지브롤터와의 경계지역을 폐쇄했다.

스페인은 1985년에 국경 봉쇄를 해제했다.

(다음 백과사전)

 

 

이곳 주변 지브롤터해협~

1902년에 영일동맹을 맺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키자

어려움에 몰린 러시아에서는 최강 함대인 발틱함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발틱함대는 지중해를 거쳐 수에즈운하를 통해 극동지역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나 영일동맹의 힘으로 발틱함대가 지브롤터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발틱함대는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가게 되었으니

긴긴 항해 끝에 얻은 무력함을 안고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그래서 이곳이 참 보고 싶었다.


우리 여행 일정에는 없었던 곳~

지브롤터가 꼭 보고 싶었던 나는 가이드님께 특별히 부탁을 했고,

같이 간 일행에게도 지브롤터를 선택하자고 설득했었다.

지브롤터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의 말에 응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지브롤터~~~

멀찍이서부터 늘어선 차들...

 

차 안에서 본 모습...

 

항구의 모습

 

지브롤터... 바위산의 모습.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무척이나 많다.

 

면세 지역을 찾아 스페인에서도 많이 오는 곳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국경 역할을 하는 관문을 통과하려는 중...

 

 

안개 구름이 바위산을 휘감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곳이 지금은 중요한 관문이 되고 있다.

스페인으로선 매우 아까운 땅...

 

수속 통과 중...

 

환전소가 보인다.

 

지브롤터 지도와 가이드

 

버스를 타고 가며 본 모습이 이어진다.

산 위로 무어인의 성이 보이고...

 

포도 보이고...

 

더록 꼭대기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케이블카를 타지 못하였다.

아쉬움...

 

지브롤터 유로파 포인트 주변에서...

 

지브롤터 유로파 포인트 주변에서 본 어퍼록(upper rock)

 

지브롤터 유로파 포인트를 나타내는 곳...

 

유로파곶에 위치한 등대

 

지브롤터 해협은 대서양과 지중해의 관문...

 

 

 

 

이런 석회암 바위산이 지브롤터를 형성하고 있다.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면세 구역을 향해 걸어가는 길...

 

TAX FREE... 면세 지역임을 알리는 글씨가 보인다.

 

지브롤터 총독부

 

 

지브롤터 총독부 건물

 

 

 

총독부 건물 주변을 지나고...

 

 

성당도 지나고...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결혼식을 올린 성당이라는...

 

성당 내부를 휘이 돌아본다.

 

 

길 따라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사진이 영국령임을 알려주는...

 

이곳에선 내 사진이 많네...

 

 

가끔은 이렇게 구경꺼리가 보인다.

 

광장.

시간이 부족하여 이 광장 한켠에 자리한 버거킹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개도 팔자 좋게 쉬고 있네..

 

다시 일행을 만나러 가는 길에...

 

스페인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로 이동 중...

 

국경 관문 구역...

 

지브롤터 공항

지브롤터는 워낙 좁은 지역이라 길을 가로질러 활주로가 있다.

영국 본토와 매일 몇 편의 항공편이 이어지고 있단다.

몇 시간만에 지브롤터를 휭하니 돌아보니 아쉬운 마음이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지~ 여행의 끝은 언제나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는 길이다.

다음 일정은 스페인 론다...

 

2012.08.09(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