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 일 > 2008.01.08(화) * 06:00 기상 * 07:00 조식 미역국, 빵, 토마토, 오이, 인도카레 등. 서띠여 작품인 미역국, 닭고기를 넣어서 끓였는데 너무 맛있었다. 닭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은 처음이라 한 숟가락만 떠 와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더 먹었다. 감탄 또 감탄. 한국인보다 더 한국요리를 잘 하시는 박사님! * 07:30 투어 출발 아침 날씨가 좋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타지마할에 가는데 날이 흐려서 기분 다운. 그 동안 내내 날씨가 좋기만 하더니... [오전 1 코스] * 사랑의 기념비 타지마할(Tajmahal, 마할의 왕관) 타지마할에서 좀 떨어진 곳에 버스를 대고 우리는 전기자동차로 갈아탔다. 타지마할의 오랜 보존을 위해 자동차의 접근을 막는 셈. 타지마할 입구에 도착하여 소지품 검사대를 통과하다. 검색이 철저했다. 물, 치약, 비디오카메라 등... 소지 금지품들이 많았다. 카메라는 가지고 들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외부 문을 통과하여 들어섰을 때 보이던 그 아름답던 모습...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앉아 있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며칠간 인도에 대한 좋지 않던 인상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던... 200여m쯤 되는 거리 가운데에 물이 있고 분수가 있고 양쪽으로 나무가 도열해 있었다. 그 가운데에 단이 있고 양옆에 분수가 있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다. 아쉬운 점은 안개가 끼어서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점이었다. 타지마할은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엄청난 건축 비용이 들었지만 이 하얀 대리석의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은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간곡한 사랑의 기념비가 된 것.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무굴제국 5대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명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 사망한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하여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653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좌우 대칭의 총대리석으로 높이 5.5m, 종횡 94m의 기단. 기단 위 중앙에는 높이 58m의 사당, 기단의 네 각에는 높이 42m의 첨탑이 세워져 있다. 중앙 사당보다 첨탑의 높이가 낮아서 중앙탑이 더 높고 웅장해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국고를 탕진해 가며 타지마할을 완성했지만 샤 자한은 아들인 아우랑제브 황제에 의해 아그라성에 갇혀 멀리(아그라성과 2km 정도 거리) 타지마할을 보며 살다가 죽었다고... 아우랑제브는 자신의 무덤은 돌과 나무를 쓰지 말라고 하며 아버지의 건축을 비판하였다고 한다. 그 시대에 이런 황제도 있었다니... 우리 일행은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컷씩이나 찍었다. 갑자기 어느 신사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였다. 얼떨결에 고마워서 디카를 건넸더니 사진을 두어 컷 찍더니 돈을 달라는 거였다. 할 수 없이 1달러 건넸다. 장삿속인 줄도 모르고 ㅋㅎ...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면 덧신을 꼭 신어야 해서 서띠여 박사가 준비해 온 부직포 덧신을 하나씩 신었다. 이슬람교 신봉자들은 맨발로 들어가는 모습. 중앙탑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구멍 뚫린 철판이 보였다. 그곳이 지하묘로 내려가는 곳. 지금은 입장 금지라 실제묘까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묘가 보였다. 담장처럼 둘러쳐진 틈 사이로 바로 보이는 것이 뭄타즈 마할 왕비의 가묘이고 왼쪽으로 좀 더 높이 만들어진 것이 샤 자한의 가묘라고 하였다. 그 위치 그대로 지하 5~6m에 똑같이 만들어진 진짜 무덤이 있단다. 파괴를 막기 위해 그렇게 건축했다고. 이 사원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외곽도 내부묘도 세계 제일이라는 마크라나(markrana) 대리석을 써서 건축했단다. 마크라나 대리석은 강도가 매우 강해서 햇빛에도 강하고 물이 흘러도 스며들지 않는단다. 이 불가사의한 건물은 바람이 잘 통하고 실내 온도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특이한 건축물이란다. 여름에도 25~6도를 넘지 않고 겨울에도 21도 정도를 유지한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가! 내부와 외부 벽화도 잔잔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중앙 사원 밖으로 나와 이슬람 사원을 보며 뒤로 돌아가니 야무나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에서 타지마할을 찍으면 사원 앞에 바로 강물이 보이는 멋진 풍경이 되겠구나 싶었다. 여기서 2km 떨어진 강변에 샤 자한이 유폐되었던 아그라성이 있을 텐데... 안개가 낀 때문인지 아쉽게도 아그라성은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 가득했으나 어쩌랴... 다시 한 번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찾으라는 것인지...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으나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다. 타지마할을 등 뒤에 두고 나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그 때마다 타지마할은 다른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전경이 눈에 밟혀서 정말 떠나기 싫었다. 타지마할만 보러 오자면 다시 올 용의가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타지마할이여 안녕! 한참을 머문 터라 모두 화장실로. 이곳은 화장실도 특급이었다. 나가는 길, 행랑으로 걸으니 인도의 유명 관광지 사진이 걸려 있어서 좋은 눈요기가 되었다. 게 중에는 우리가 직접 본 곳도 있어 흥미를 더했다. 한쪽에선 장인들이 직접 타지마할을 제작하는 과정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까지 보고 사진도 찍느라 일행보다 좀 떨어져서 나중에는 달리기를 해야 했다. [무굴제국](1526~1857) * 1대 바부르 : 티무르의 5대 손 * 2대 후마윤 : 바부르의 아들 * 3대 악바르 : 무굴제국의 기초 마련. 아프가니스탄, 벵골만, 데칸까지 영토 확장. 무굴의 가장 위대한 황제로 평가받음. 후마윤 묘, 아그라성, 파테푸르 시크리성, 라호르성 등 건축. * 4대 자한기르(제항기르) : 자한기르가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못 했던 페르시아인 누르 자한, 과부가 된 그녀와 다시 결혼한 것으로 유명. * 5대 샤 자한 : 뭄타즈 마할과의 사랑의 결정체 타지 마할 건축. 뭄타즈 마할 이외의 후궁에게선 자식이 없다는~~~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8년간이나 아그라성에 유폐.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 지내다 죽음. * 6대 아우랑제브 : 이슬람 데칸 왕국을 합병. 권력욕은 대단했던 모양. 형제간의 피비린내나는 왕위 계승 전쟁 끝에 승리. 아버지 샤 자한을 아그라성에 유폐시킴. 자기 묘는 돌과 나무를 쓰지 말고 아주 간단히 만들라고 했단다. 아우랑제브 이후 이후 무굴은 쇠퇴하기 시작. . . . *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 : 1857년에 폭동과 반란에 연루되어 양곤으로 추방. [오전 2 코스] 10:50 * 대리석 제품 가게 Marble of markrana 대리석을 재단하고 일일이 보석같은 유색돌을 다듬어서 상감기법으로 제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일꾼들의 손은 닳고 닳아서 보기에 안타까웠다. 상점 주인만 배부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상점을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고 딱히 쓰임새도 없어서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덕주, 자경이와 의논하여 몇 만원하는 타지마할 모형만 하나씩 구입했다. [중식(호텔식)] 12:10 카레, 밥, 감자, 토마토. 카레맛이 괜찮아서 식사에 지장이 없었다. 어떤 종류의 카레는 정말 구역질이 나서 먹지를 못했는데... [오후 1 코스] 13:00 * CIE 캐시미어 가게 정부가 운영하는 가게라 할인율이 낮다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우리 감각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포기. [오후 2 코스] 14:30 * 100년 전부터 건축 중인 다얄 바그 힌두사원 관람 = 앞으로 100년 더 걸릴 거란다... Dayal Bagh (Soami Bagh) 아그라 북부 약 10km에 자리잡고 있는 다얄 바그는 1861년 시리 시브 다얄 싱르(Shri Shiv Dayal Singh)가 세운 라다소미(Radhasoami) 종파의 본부란다. 다얄 바그는 ‘스와미지 마하라지(Swamiji Maharaj)’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단다. 최고의 창조자를 기념하기 위해 약 500만 루피의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세워진 백색 대리석 사원으로, 1904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100년이 넘는 건축기간으로 유명하다. 약 500명에 달하는 열렬한 신봉자들이 사마디(Samadhi)에 인접하여 살고 있다. 현재에도 약 10만 루피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돔을 만들고 있는데, 사원이 완성되면 타지마할과 비교될만한 웅장함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는 카메라 입장 금지 구역. 한쪽에선 직접 대리석을 깎아 모양을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장인들의 끈질긴 노력, 인내 없이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그러나 보는 우리는 장인들이 너무 불쌍하기만 했다. 손가락 끝이 닳도록 일만 하는 잔인함... 건축 기간을 200년으로 잡고 공사중이라니 아직 100년이 남았다. 으윽~ 그럼 저승에 가서라도 꼭 찾아봐야지...... * 아그라 시내를 통과하며... 아그라 시내는 교통이 매우 복잡하였다. 사고로 사람이 죽은 모양. 길가에 흰 천으로 싸인 시체가 보이고 서로 편이 되어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경찰관의 모습도 보였다. 기자인 듯한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 모습도 보이고... 무질서가 질서니 사고가 빈번할 것이다. 참으로 특이한 나라, 여기도 소가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사거리에 버스가 서 있으니 차창으로 손을 내미는 아이들... 어딜 가나 거지들이 득실거렸다. 파테푸르 시크리로 가는 길, 아그라성을 못 보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서띠여 박사에게 아그라성이 보이는 곳으로 지나가기라도 하자고 간청하였지만 버스 기사는 아그라 시내가 너무 복잡해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전부터 아그라성 타령을 하였는데...... 개인 생각으론 다얄 바그를 가지 않고 아그라성을 가거나, 그게 안 되면 상점 한 곳 안 가고 아그라성 옆으로 드라이브라도 했으면 하는 거였다. 타지마할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아그라성! 아그라성에서는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샤 자한은 말년에 자식에 의해 이 성에 유폐되어서 매일 아내의 묘를 바라보며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내게도 아그라성에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도 역사상 대제로 불리는 악바르 황제의 요새, 건축광 샤 자한의 뭄타즈 마할에 대한 사랑의 종말이 함께 숨쉬는 아그라성을 못 본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여행사에 다음부턴 아그라성을 꼭 넣으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복잡한 아그라 시내 사고가 난 모양. 카메라 기자까지 등장... 차 위에 올라탄 사람들의 모습... 무너지는 거리의 집... 자전거, 마차, 보행자, 동물들이 모두 같은 길을 이용한다. [오후 3 코스] 16:00 * 승리의 도시이자, 유령 도시인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 시크리성 관문을 통과하여 버스주차장에 도착. 다시 그곳 버스로 갈아타고 본 성으로 이동. 버스 이동 중에 외국인 서너명도 탔다. 차창밖으로 성벽이 허물어진 곳이 많이 보였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아그라에서 37km 거리. 1571~1585 사이에 무굴 황제 Akbar에 의해 건설. 이 성은 무굴 제국과 힌두 건축의 최고봉을 엿볼 수 있는 곳이란다. 높이에서도 무굴 건축물의 웅장함이 잘 나타나 있다. 사암으로 된 성이라 성 전체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주변 지역엔 붉은 사암이 많다고. 이곳은 원래 악바르가 수도로 계획한 지역이었지만 물 부족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도시가 건설된 지 20년 후 무굴의 수도는 Lahore(지금의 파키스탄 펀잡주)로 천도되었으니 그 영화는 얼마가지 못하였단다. 제국의 영화가 덧없음을 느끼게 하는 곳. 파테푸르 시크리의 모스크는 메카 사원의 견본이 되어 페르시아와 힌두 건축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곳 화장실은 다른 곳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세 칸이 다른 형태였다. 웨스턴식, 인디안식, 도시식. 옆 트인 공간에선 인도 여인이 바닥을 물로 씻고 있었다. 아마도 화장실 관리인인 듯. 성 안에는 왕의 궁전, 터키부인의 방, 심지어 학교도 있었다. 터키부인의 방 내부는 장식이 매우 다양하였다. 바람과 소음을 막는 방식의 벽구조물이 여기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학교 앞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 공연 무대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연못과 성이 어우러진 곳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오늘날 이 도시에는 약 3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단다. 도시는 황폐해졌지만 아그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가 파테푸르 시크리성이란다. 정말 거대한 성이었다. 마구간이라는 곳이 궁만큼 큰 규모였으니... 도시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해질 무렵에는 그 아름다움이 최정점에 이른다고. 우리는 무너진 성벽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한 컷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복순언니와 여기저기 사진 찍느라 다른 사람들을 놓쳐서 엉뚱한 문으로 나갈 뻔한 에피소드를 남긴 웅장한 규모의 성이었다. * 바랏뿌르(라자스탄주)를 향해 다음날은 자이푸르 투어 일정이 잡혀 있지만 자이푸르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바랏뿌르에서 투숙한단다. 바랏뿌르로 가는 길, 양떼구름 사이로 석양이 하늘을 은은하게 물들이는 바깥 풍경. 더러는 덜 익은 유채가 일렁이고... 도로는 공사 중인 곳이 많았다. 파테푸르 시크리 지역에 붉은 흙이 많이 있는 모양. 도로에 붉은 흙을 두껍게도 깔았다. 인도는 공사 중이라고 해야 하나... U.P주를 지나 18: 50 라자스탄주 바랏뿌르에 도착. 바랏뿌르는 작은 시골도시였다. [석식(호텔식)] 빵, 가지튀김, 치킨, 토마토스프, 오이, 감자, 럼주. 나로선 이번 여행 중 가장 맛없는 식사였다. 식사 후 로비 밖에 있는 모닥불 앞에 대전 부부, 서울 부부와 주욱 둘러앉아서 잠시 대화. 악사 둘이 다가와서 연주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계속 들었던 터라 우리끼리 대화한다고 하였다. 덕주는 잠이 너무 온다며 먼저 숙소로 들어가고 나는 저녁 10시까지 모닥불 대화. 여행지 이야기, 느낌 등... 객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탁구대가 있길래 대전팀과 똑딱볼 몇 번 두드리고 방으로... 그 먼 곳에 가서 탁구를 다 쳐 보고... * 숙소 UDAIVILAS PALACE HOTEL ☎ 91-5644-233-161(짝 덕주) 덕주는 피곤한지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살금살금 샤워소리도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밤잠이 적은 탓에 피곤한데도 괜히 일정표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11:30 취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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