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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2006.10.03 거제 지심도, 진주 남강 유등축제

2006.10.03 거제 지심도, 진주 남강 유등축제

* 거제 지심도

면적 0.356㎢, 해안선 3.7km, 너비 500m, 길이 1.5km, 최고점 97m로서

조선 현종 45년에 15가구가 이주하여 살았다고 문헌에 남아 있으며

1936년 한일 합방으로 주민들이 강제 이주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일본군 요새로서 1개 중대가 광복 직전까지 주둔,

해방이 되어 주민들이 다시 이주 현재 10여 가구가

밭농사와 과수원(밀감,유자), 민박으로 생활.

섬 주변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봄 기운이 무르익는 4월 하순경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춘다.

 

[지심도]

거제 장승포에서 배 타고 15분 거리(5km)의 지심도는

동백섬(섬 나무의 60~70%가 동백나무)으로 유명하다. 

꽃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3월.

일제 강점기의 군사 시설물이었던 탄약고와 무기고, 터널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 동백나무숲 ] 

수백년 된 동백나무숲이 허리 굽혀 길손을 반긴다.

여수의 오동도가 인공적인 모습이라면

거제 지심도는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동백섬이 아닐까 싶었다.

 

[ 피싱하우스 ]

주인 아저씨는 무척 낭만적이고 친절한 사람이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듯한 공간~.

돌연변이 하얀 동백과 곰모양 장식물과 하늘에 걸려 있는 인공 거미줄, 요기조기 살아 있는 수석들...... 

이런 오밀조밀한 장식물들이 섬에서 살아가는 그 분의 낭만을 짐작케 하는 것들이다.

사람을 맞이하는 마음 씀씀이 또한 별나다.

사람이 적은 날이라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나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품성이 원래 그러려니... 단지 고마울 뿐)

마실 것을 권하는 친절함.

스스로 돈 받기를 거부하며 굳이 내고 싶으면 한 쪽에 있는 바구니에 넣으란다.

도회의 각박함에서 훌훌 벗어나 느낀 작은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어 그날 내내 난 행복했다.

아저씨가 3년 동안 가꾸었다는 아이비터널에서도 한 컷. 

 

 

* 여차-홍포간 드라이브길

여차-홍포간 해안도로는 구간구간 시멘트포장인 도로이나 해안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전망대에서는 대소병대도와 매물도, 소매물도를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도로이다.

 

* 진주 남강 유등축제 

진주에서 남강에 띄우는 유등놀이는 우리 겨레의 최대 수난기였던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 기원하고 있다.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장군이 3,8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을 크게 무찔러 민족의 자존을 드높인 ‘진주대첩’을 거둘 때

성밖의 의병 등 지원군과의 군사신호로 풍등(風燈)을 하늘에 올리며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로 쓰였으며,

진주성내에 있는 병사들과 사민(士民)들이 멀리 두고 온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 수단으로 이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김시민 장군의 군사 신호로,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 작전을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두루 쓰였던 진주 남강 유등은

1593년6월 12만 왜군에 의해 진주성이 적의 손에 떨어지는 통한의 ‘계사순의(癸巳殉義)’가 있고 난 뒤부터는

오직 한 마음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와 겨레를 보전하고 태산보다 큰 목숨을 바쳐 의롭게 순절한 7만 병사와

사민의 매운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세세연년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