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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2006.01.05 예천과 안동

2006.01.05 예천 삼강주막과 회룡포 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 예천 -

 

우리 나라의 마지막 주막이라는 '삼강주막'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세 강이 합쳐지는 곳 예천 삼강,

나루터는 굳건한 다리에 자리를 내주고 주모도 떠나 쓸쓸함이 감도는 곳.

주모는 세상을 떠났지만 100년이 넘은 주막만은 남아 나그네를 맞는다.

앞으로 주모를 뽑아 그 명맥을 이을 모양...

 

 

 

 

  '회룡포 마을' 전경

   원래 '의성포'란 마을 이름을 가졌으나 의성지방으로 오인하기 쉬워서 회룡포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회룡포는 물이 350도를 돌아가는 마을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안동의 하회마을보다 더 아름답다.

   한겨울 얼음 꽁꽁 언 강을 뿅뿅이다리로 건너는 묘미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 안동 -

 

 [하회마을]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로 류운룡·유성룡 형제 대(代)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낙동강 줄기가 S자 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 돌고 있고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다. 유씨가 집단 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이 씨족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유의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한 이 마을은 크게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유서 깊고 제법 크기를 갖춘 많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 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 겸암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9호) 등 많은 건축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더할 수 없이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 나라 정신 문화의 연구·보존·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병산서원]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