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산성
지안 평지성(국내성)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져 있다.
성 내부에서 바깥으로 계곡이 흐르는 포곡식 산성.
남쪽 계곡 입구가 정문, 험준한 산 능선을 따라 석축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7km.
성문은 남쪽에 3개, 북쪽에 2개, 동쪽과 서쪽에 각 1개씩 총 7개 확인.
성 내부에는 지안 평지성(국내성)을 조망할 수 있는 석축 장대가 있다.
장대의 동북쪽에서는 3단의 대지가 조성된 흔적이 확인되었고,
이곳에서 건물지 여러 동과 기와 및 와당 등 다수의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이곳을 궁전지로 보기도 한다.
환도산성
집안 산성하 고분군(고구려 고묘박물관)
통구고분군을 이루는 6대 고분군의 하나.
우산북록의 환도산성 남쪽과 통구하(通溝河) 사이에 밀집되어 있다.
봉토분류(封土墳類)와 적석분류(積石墳類)가 약 1,600기 분포.
절천정총(折天井塚)·귀갑총(龜甲塚)·산성하1411호분 등이 유명하다.
초기 적석총이 축조되는 2∼3세기부터
대형 봉토석실묘가 다수 축조되는 6세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고구려 고묘박물관 (산성하 고분군)
(2024.07.06.토)
14:31, 압록강변에서 환도산성으로 이동한다.
국내성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환도산성이 있다.
국내성과 짝을 이루는 도성이다.
국내성은 평지성 수도, 환도산성은 산성 수도.
산성교를 건너고 곧 환도산성 주차장에 다다른다.
압록강변 유람선부두에서 15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14:45, 환도산성 입구 도착.
여기도 입장료가 있다.
중국 관광지 등급 중 최고인 5A등급 유적지니
그만큼 중요하다는~ 볼만한 곳이라는 거겠지...
환도산성 안내도의 산성을 표현한 그림을 보니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위용을 보인다.
더러는 돌을 높이 쌓기도 하고
산세가 험한 지형은 산세를 이용한 모습이다.
이 안내판 너머로는 산성하 고분군이 수많은 세월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고구려 고묘박물관 화살표가 보인다.
이곳은 고구려 고분군(통구 고분군) 중 산성하 고분군 지역이다.
수많은 적석총과 봉토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 장관인 곳이다.
먼저 환도산성부터 가야 하기에 입구만 잠시 휘리릭 보고 나와
다시 일행과 보조를 맞추어간다.
내려와서 여길 따로 들를 수 있을지......
환도산성 안에서 흘러내려오는 골짜기물이 산성의 해자 역할을 했다 한다.
이 물은 산성의 남쪽 바로 아래의 압록강의 지류인 퉁거우허(통구하 通沟河)로 흘러들어간다.
왼쪽으로 산성 옛 우물(산성고정) 가는 길,
오른쪽으로 남옹문, 남쪽과 동쪽 성벽, 궁전유적지로 가는 길...
끝에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낮게 깔린 구름이 신비로움을 더하네...
이곳 환도산성 안내판의 설명을 아래에 옮겨 본다.
환도산성
환도산성은 고구려 초기와 중기의 수도이고
기원 3년에 창건되었으며,
최초의 이름은 위나암성이었다.
기원 198년, 산상왕이 이곳을 도읍으로 정했고, 환도성이라고 명명하였다.
기원 342년, 환도산성의 건축물은 전쟁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었다.
산성은 불규칙적인 장방형 모양으로 성지 둘레는 6,947m이고,
성벽은 산세의 흐름에 따라 건축되었다.
성내에는 대형궁전지, 전망대, 수졸주거지 등 건축물이 있고
문지, 저수지, 고분이 있다.
성내의 고분은 산성이 폐기된 후 건설된 것이다.
환도산성과 국내성을 지키는 존재로 고구려 성도의 특색을 돋보이고 있다.
(환도산성 안내판의 설명)
아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찾은 내용이다.
환도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이다. 유적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다. 지안시 북쪽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198년(산상왕 2년)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개축을 거쳐 342년(고국원왕 12년)까지 도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 중반 이전에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환도성은 고구려 198년(산상왕 2)에 축조되었고, 209년에 산상왕이 환도성으로 천도하면서 도성으로 사용되었다. 47년간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환도성은 246년(동천왕 20)에 조위(曹魏)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毋丘儉)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그 기능을 잃었다가, 342년(고국원왕 12)에 수리된 뒤 고국원왕이 옮겨가 살기도 하는 등 도성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전연(前燕)의 침공으로 다시 파괴되었다.
산상왕 대에 환도성을 축조하고 그곳으로 천도한 배경으로 공손씨의 침공에 대한 대비를 지적하기도 하고, 고국원왕이 환도성을 수리하고 옮겨가 살았던 배경 역시 전연의 침입에 대한 대비로 해석되는 등 환도성은 군사적 방어에 유리한 곳으로 추정된다. 또, 『삼국지』에서 '환도'가 산으로 묘사됨으로써, 환도성은 평지 도성 인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 이래의 고고조사에 의해, 늦어도 산상왕 대 이후의 고구려 도성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으로 비정되었고, 특히, 1906년에 지안시 북쪽의 소판차령(小板岔嶺)에서 「 관구검기공비」가 발견됨에 따라 환도성은 지안의 산성자산성으로 비정된다.
한편, 『삼국사기』에서 드러난 환도성의 기능과 역할이 위나암성과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주서』에 묘사된 "성 내부에 군량과 무기 등을 비축해 두었다가, 구적(寇賊)이 이르는 날에 모두 들어가 굳게 지킨다"는 평양성의 기능과도 부합한다. 이는 고구려 도성의 중요한 특징을 비상시에는 방어 기능과 평상시에는 통치 기능을 분담하는 산성과 평지성의 조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지안 평지성(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져 있는 환도성은 성 내부에서 바깥으로 계곡이 흐르는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이다. 남쪽 계곡 입구를 정문으로 삼고 주변의 험준한 산 능선을 따라 석축 성벽을 쌓았다.
2001~2003년의 발굴 조사에 따르면,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7km이다. 성문은 남쪽에 3개, 북쪽에 2개, 동쪽과 서쪽에 1개씩 총 7개가 확인되었다. 남문을 통해 성 내부로 진입하면, 올라서서 지안 평지성을 조망할 수 있는 석축 장대가 있다.
장대의 동북쪽에서는 남북 95m, 동서 62m 범위에 3단으로 구성된 대지가 조성된 흔적이 확인되었고, 이곳에서 건물지 여러 동과 기와 및 와당 등 다수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곳을 궁전지로 보기도 한다. 환도성 정문 앞으로는 동북쪽에서 흘러온 통구하(通溝河)가 방향을 틀어 동남쪽으로 흘러 지안 평지성(국내성)의 서쪽 성벽 옆을 지나 압록강과 만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환도성은 2세기 말에 축조된 이래 파괴와 개축이 반복되어서, 축조 연대를 알 수 있는 유구나 유물이 잘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01~2003년의 조사에 따르면, 환도성의 성문지 혹은 내부 건물지 등에서 출토된 와당 가운데, 4세기에 유행한 권운문 와당이나 4~5세기에 유행한 구획선 연화문 와당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른바 궁전지의 가장 아래 문화층과 성문지 등에서 5세기 후반 이후 유행하는 구획선 없는 연화문 와당이 대거 출토되었고, 또 이곳에서 출토된 양이부호 역시 남한 내 여러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5세기 중후반으로 편년되는 양이부호와 동일한 형태로 파악된다. 이러한 고고학적 정황에 따라, 현전하는 환도성 유적은 평양도읍기인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성 내부에서 적석총 36기와 석실봉토분 2기로, 총 3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대체로 4~5세기 초로 편년됨에 따라 이때에는 환도성이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고고학적으로는 환도성이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3세기 전반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전연에 의해 파괴된 이후 고분이 조영되는 등 사실상 폐기되었다가, 6세기에 다시 개축되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 양원왕 13년(557)조 '환도성간주리(丸都城干朱理)'의 반역기사가 참고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 내용)
남옹문 자리 표시.
남쪽에만 3개의 문이 있었다고 하며
남옹문이 정문 역할을 했단다.
남옹문은 남쪽 성벽 凹자 모양 가운데에 위치.
옹문 형태라 외세의 침략을 대비하기에는 좋았을 것이다.
남옹문 주변 남쪽 성벽
문을 들어서서 오른쪽 남벽을 따라 동벽쪽으로 이동한다.
산성의 가운데에 있는 조망대나 궁전유적지 등은 성벽 투어 후에 돌아볼 것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산성 내부를 바라본다.
앞 개울 건너 가운데로 보이는 저 계단은 전망대, 연화지, 대형 궁전지 등 가는 길.
옆으로 평평하게 난 길을 따라가도 된다.
남벽 따라 조금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저곳으로 갈 예정이다.
들어온 곳 남옹문쪽을 바라보며...
성벽을 따라 고구려의 5부족 연맹을 표시하는 깃발이 걸려 있다.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관노부, 순노부~
이 부족 이름들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이름이란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는 계루부를 나타내는 이름은 보이지 않고
비류부, 연나부, 관나부, 환나부~
이 넷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다.
아마도 주몽 이전에는 4부족 연맹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부여 출신의 주몽이 이 지역으로 오면서 계루부를 형성하고
다른 4부를 장악했을 거라는......
환도산성 성벽에서 옛 고구려의 흔적을 느끼며...
성벽을 따라 더 오른다.
오른쪽 트인 공간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이던가!
성벽 아래로 고구려의 고묘들이 살아 숨 쉬는 듯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통구하(퉁거우허)와 산성교도 보이고 주차장도 보인다.
산성에서 내려가서 저길 볼 시간이 있어야 할 텐데......
집안 산성하 고분군
통구고분군을 이루는 6대 고분군의 하나이다.
총 1,582기의 고분이
우산북록(禹山北麓)의 환도산성(丸都山城) 남쪽과
통구하(通溝河) 사이에 펼쳐진 평탄한 계곡 위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고분군을 이루는 고분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이분하여 봉토분류(封土墳類)와 적석분류(積石墳類)로 나눌 수 있는데,
대형의 봉토석실묘 8기를 포함한 봉토분류가 1,052기이며
나머지 530기는 적석분계통이다.
이 고분군에 속한 유명한 고분으로는
절천정총(折天井塚)·귀갑총(龜甲塚)·산성하1411호분 등이 있다.
산성하고분군은 비교적 다양한 유형의 고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로 보아 초기 적석총이 축조되는 2∼3세기부터
대형 봉토석실묘가 다수 축조되는 6세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이곳의 안내 설명에는 고구려 고묘박물관이라 표기되어 있다.
'짜잔~' 하고 나타난 산성하 고분군(산성 아래에 있는 고분군).
마치 거대한 적석총, 봉토분들이 세월을 타고 넘어 나타난 것 같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구려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사진에서만 보던 이 광경을 어찌 이리 만날 수가 있단 말인가!
환도산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산성하 고분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비록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멕시코의 마야 유적, 페루의 마추픽추 유적을 만날 때처럼
흥분을 가눌 수 없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선조들의 유적이라니
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더한 감동이었다.
두 눈 가득 이 광경을 담아가리라...
감동의 박수 짝짝짝!
신비롭기까지 한 산성하 고분군~
우리 역사와 문화의 한 축이었음이 자랑스럽다.
딱 한 가지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은
고구려를 중국 속의 지방정부로 간주하며 역사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조금 더 걸었다.
박석길-데크길-박석길~
산성은 계속 이어져 있는데,
오는 분들이 아무도 없다.
이제 내려가자는 가이드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혼자만 자꾸 가기가 미안하여 조금만 더 가다가 돌아내려가기로 한다.
일행과 너무 떨어져도 곤란하니......
봉토분들이 밀집되어 고분들이 대부분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나온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오~ 산성하 고분군!
감동의 장면을 뒤로 하고 내려간다.
부지런히 뒤쫓아 내려오니 처음 들어왔던 길이 보인다.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전망대-조망대-연화지-궁전지 등을 돌아보러 이동한다.
처음 올라갔던 남벽쪽을 바라봐주고~
관경대(전망대) 입구.
아래 계단 입구에서 관경대를 패스하고 옆으로 난 좋은 길로 가는 분들도 많았지만
가파르지만 계단길 따라 관경대 가는 길로 올랐다.
관경대에서 바라본 환도산성 모습.
산성 옛 우물과 성벽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집안 시내도 바라보인다.
관경대를 지나 연화지-요망대(조망대)-깃대유적-궁전유적지로 향한다.
개망초와 애기범부채꽃이 넘 예뻤다.
신안 압해도 천사섬분재공원에서 본 애기범부채의 화려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만큼의 감동은 아니더라도
비가 내린 데다가 안개구름이 내려앉은 산성의 고즈넉함이란~~~
그냥 발길을 붙들게 하는 모습이네......
늦게까지 피어나던 금계국도 반가웠고......
한 폭의 수채화라는 표현이 나을 듯
이리저리 둘러봐도 감탄사만 나오는 풍경이다.
가히 산상의 화원, 신선의 세계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연지 유적
말뚝으로 구역을 표시한 연지 유적.
지금은 형태가 온전하지는 않다.
조망대(요망대)를 향하여 간다.
저만치 나무 사이로 보이는 곳이다.
골짜기마다 내려앉은 구름이 풍경을 더 수려하게 한다.
이 순간만은 모든 시름이 다 잊혀지는 듯 행복감이 몰려오네.
자연이 주는 치유란 바로 이런 것인가 싶다.
이런 데서 그냥 갈 수는 없지...
얼른 찍고 돌아나온다.
수졸거주지와 조망대 이정표를 만나고...
수졸거주지
수졸거주지
료망대(瞭望台) - 전망대, 점장대, 조망대
안내판 설명에 한자로는 요망대(료망대 瞭望台)로 쓰여 있고
전망대를 나타내는 모양이다.
좀 전 이정표에는 조망대라고 쓰여 있었다.
점장대라고도 한다네.
전망대를 두루 돌아본다.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적의 침입을 관찰하는 유적이다.
요망대까지 지나 이제 마지막으로 궁전유적지로 간다.
가운데로 보이는 곳~
주변의 꽃들이 얼마나 고운지 발걸음이 더디어진다.
일행 대부분은 여기서 내려가겠다고 한다.
저기 궁전유적이 보이는데......
가이드님께 얘기하고 빨리 다녀오기로 한다.
나 포함 셋이서......
궁전지
환도산성 내 궁전유적지이다.
이곳의 안내로는
'198년에 건축되었고, 342년에 전란으로 불탔다.
남북 길이 95.5m, 동서 폭 75m, 3단의 테라스가 있다.
배수로도 있었던 모양이고
팔각형 건물 등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깃대유적과 궁전유적 표시
깃대유적
깃대유적이라는데, 풀이 무성한 이곳~
설명만 보고는 자세히 알아보기 어려웠다.
환도산성 궁전지
혼자서 궁전유적지 끝단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넓은 궁전지에는 야생화와 이름모를 풀들만이 반기고 있었다.
옛 시절의 모습은 어땠을까~~~~
집안박물관에서 본 모형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것도 정확한 고증이 없으니......
두고 내려오는 아쉬움에 사진만 연신 찍어댄다.
궁전터 가는 길 주변에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궁궐에 옥수수밭이라니~~~ 이건 조금 아쉬움......
유적 관리를 더 잘 해줬으면......
처음 들어왔던 성벽으로 내려왔네.
집안 산성하 고분군(고구려 고묘박물관)
산성하 고분군
1,582기의 고분들(봉토분류와 적석분류)이 무리를 이루는 고분군이다.
초기 적석총이 축조되는 2∼3세기부터
대형 봉토석실묘가 다수 축조되는 6세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고분군을 따로 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산성에서 내려다본 걸로 대신하는 모양이다.
얼른 뛰어가서 눈으로 한 번 쳐다보고 찍고 나왔다.
다른 분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해우소 이용 시간에 잠시 기념품점에 들어가 보았다.
내가 모으고 있는 살만한 것은 없어 얼른 돌아나온다.
환도산성을 끝으로 집안의 예정된 관람지는 다 들렀다.
집안의 유적지들에 대한 마지막 아쉬움은 나의 몫~
이제 심양(선양)으로 갈 일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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