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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중국

[백두산+고구려 유적] 18. 심양 3 - 청태종의 능, 북릉(청소릉) / 귀국 (여행 끝)

청태종의 능인 북릉(청소릉)

(2024.07.07.일)

 


 

북릉공원 투어 중~

본격적으로 북릉(청소릉) 관람이 이어진다.

북릉은 북릉공원의 메인 구역이다.

능 바로 앞 방성까지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따로 끊어야 한다.

 

 

청소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명나라 12대 황제의 능도 소릉이라 명(明)소릉(昭陵),

청나라 2대 황제릉인 소릉은 청(淸)소릉(昭陵)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이곳은 청소릉(淸昭陵)이다.

 

신교를 건너간다.

신교는 1651년(순치 8년) 처음 건축.

길이 47m, 폭 12m.

해방(현 공산정권 수립) 후 재건.

 

 

 

인공호수에 놓인 다리(신교)를 건너 청소릉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해 배산임수를 맞추려고 능 앞쪽에 이 거대한 호수를 만들고

여기서 파낸 흙을 북릉 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북릉(北陵, 청소릉 淸昭陵)

청나라 2대 황제 홍타이지와 황후의 무덤.

 

공식 명칭은 소릉(昭陵, 자오링)이지만, 선양 시민들은 북릉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1643년 건설하기 시작해서 1651년 완공되었다. 능을 짓기 시작한 해에 청나라 2대 황제인 홍타이지가 묻혔고, 황후는 1650년에 안장되었다. 총 면적 330만㎡ 중에서 현재는 절반 이상이 시민 공원으로 개방돼 있다. 능묘가 실제 차지하는 면적만 해도 16만㎡로, 아버지인 누르하치의 능보다 훨씬 크다.

 

넓은 공원에는 큰 호수와 정자, 수목이 우거져 산책 삼아 걷기 좋다. 호수에서 세월을 낚는 할아버지들과 정자에 모여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시민들로 분위기가 명랑하다. 공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북릉이 나타나는데, 시민 공원과 황릉이 연결된 모습이 마치 황제와 황후가 백성들을 굽어 살피는 듯하다. 풍수지리로 볼 때 북릉이 선양 최고의 명당이라고 한다.

공원 한복판에 늠름하게 서 있는 홍타이지 동상에서 북릉이 시작된다. 동상 뒤로 하마비(下马碑)가 이어지고, 뒤이어 정홍문(正红门)을 통과하면 북릉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중앙에 곧게 뻗은 신도(神道) 양쪽에는 동물 석상이 놓여 있다. 말, 낙타, 코끼리 등의 석상은 각기 다른 돌로 조각해서 색깔이 서로 다르다. 뒤이어 나타나는 누각 안에는 홍타이지의 업적을 새긴 신공성덕비(神功圣德碑)가 서 있다. 융은문(隆恩门)을 지나면 신도가 끝나고, 네모난 성곽, 즉 방성(方城)으로 입장하게 된다. 방성 끝에 북릉의 중심인 융은전(隆恩殿)이 있다. 홍타이지의 위패가 안치된 융은전에서 역대 청나라 황제들이 제사를 지냈다.

 

북릉의 하이라이트는 방성 위로 올라가 봉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융은전 뒤편에 있는 봉분은 회백색 시멘트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믿기지 않지만, 일부러 심은게 아니라 저절로 자랐다고 한다.

 

[다음백과] <인조이 중국>에서...

 

 

패방(석패방 石牌坊).

신교를 지나 신로를 따라 석패방이 조금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능묘의 영역을 알리는 문으로 돌로 만들었다.

네 개의 기둥에는 석수들이 지키고 있네.

현재 무너지지 않게 지지대를 괴어둔 상태다.

 

 

 

정홍문 앞에서 바라본 석패방

 

 

 

패방을 지나면 정홍문이 보인다.

정홍문.

메인이 되는 붉은색 정문으로 삼문 형태이다.

1649년(순치 6년) 건축.

가운데문은 신문(神門), 동쪽은 군문(君門), 서쪽은 신문(臣門)이란다.

현재 관람은 동쪽문으로 드나든다.

정홍문 동서쪽 벽에 화려한 용 장식(청룡, 흑룡)이 있다.

 

 

 

정홍문을 통해 들어간다.

 

 

 

정홍문을 지나면 양쪽으로 날개 달린 돌기둥인 화표가 세워져 있다.

 

 

 

중앙에는 곧게 뻗은 신도(神道)가 있고,

신도 양쪽에는 동물 석상이 놓여 있다.

가운데 공사 중인 곳은 비루(신공성덕비정 神功圣德碑亭).

 

 

 

뒤돌아보아 바라본 정홍문

 

 

 

정홍문을 지나 비루로 향하는 길 양쪽의 동물 석상들~

사자상, 해태(해치)상, 기린상, 말상, 낙타상, 코끼리상이 놓여 있다.

말, 낙타, 코끼리 등의 석상은 각기 다른 돌로 조각해서 색깔이 서로 다르다. 

 

 

 

비루(비정, 신공성덕비정 神功圣德碑亭)에는

홍타이지의 업적을 새긴 신공성덕비(神功圣德碑)가 세워져 있다. 

1688년(강희 27년)에 세웠으며 만주어와 한자로 기록해 놓았다.

청태종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쓰여 있다. 

비의 꼭대기에 '대청소릉신공성덕비(大淸昭陵神功聖德碑)'라고 쓰여 있다.

 

 

 

비정을 지나 왼쪽 옛 과방에서는 유물전시,

오른쪽 다기방에서는 청대 황제와 황후상 등 전시 중이었다.

이곳은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우리는 그냥 통과~

 

 

 

방성(네모난 성)이다.

안쪽으로 청태종의 위패를 모신 융은전이 있는 곳이다.

입구에 청대 황가 복식 매장이 있어

중국인들이 의상을 빌려 입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방성의 정문인 융은문

아치형 문 가운데 위에 '융은문'이라고 3글자의 문액이 새겨져 있는데,

몽골어, 만주어, 한자의 3가지다.

 

 

 

융은문(隆恩门)을 들어서면 네모난 성곽인 방성(方城)으로 입장하게 된다. 

방성은 청태종 홍타이지의 무덤 앞 제례 공간을 둘러싼 성곽이다.

융은문 안쪽으로 융은전이 보인다.

융은전 뒤로 보이는 높은 건물은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석비가 세워져 있는 명루이다.

 

 

 

방성(方城)의 입구인 융은문(隆恩门)을 둘어서서 방성 안쪽 공간을 담았다.

방성 안 융은문 좌우로 동배루 서배루.

 

 

 

방성

순치 원년(1644년) 건축.

소릉의 주 제사 공간이다.

성 높이 6.15m, 남북 길이 146m, 동서 길이 120m.

 

 

 

방성 안 서배전, 융은전, 동배전.

가운데가 청태종의 위패가 있는 전각인 융은전.

융은전 뒤로 명루 봉분이 이어진다.

오른쪽의 동배전은 축판과 제백을 받들어 저장하던 곳으로

정전인 융은전 수리 시 위패를 잠시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던 곳.

왼쪽의 서배전은 청태종 기일 대제 때 라마교 의식으로 기도하던 곳이란다.

서배전과 융은전 사이의 작은 대리석 건물은 분백정으로
제례 때 사용된 비단, 종이, 축판 등을 태우는 곳.

 

 

 

융은전(隆恩殿).

향전(享殿)이다.

홍타이지의 위패가 안치된 융은전에서 역대 청나라 황제들이 제사를 지냈다.

융은전 아래에 옥계석이 놓여 있다.

1643년(순치 7년) 처음 지었고,

1650년(강희 31년)에 융은전으로 이름 정함.

1692년에 고쳐 지음.

무덤의 주인인 홍타이지(황태극)와 황후 효단문황후의 신위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주요 장소이다.

 

 

 

방성 입구에 청대 황가 복식 매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빌려 입은 모양이다.

 

 

 

융은전을 돌아 뒤편의 명루로 이동한다.

명루(대명루)

1665년(강희 4년) 건축.

전체 높이 23.6m.

소릉에서 가장 높은 건물.

건물 편액은 '소릉' 두 글자이며

몽골어, 만주어, 한자의 3가지 문자로 쓰여 있다.

1937년 5월 29일 벼락으로 소실,

1939년 재건.

 

 

 

융은전 뒤편, 방성 북쪽의 명루 편액.

명루 현판은 소릉(昭陵)으로 한자, 만주어, 몽골어로 쓰여 있다.

명루 안에는 홍타이지의 무덤임을 알려주는 석비가 세워져 있다.

 

 

 

융은전 뒤편의 다섯 가지 제기인 오공제대.

명루 아래를 통과하여 월아성으로 향한다.

 

 

 

융은전에서 나와 명루 아래를 통과하며 융은전쪽을 바라본 모습.

제사를 올리는 제단에 다섯 가지 물건을 올리는 제기(오공제대)가 보인다.

 

 

 

방성의 북문 명루 아래를 통과하면

청태종 무덤을 둘러싼 보성과 방성 사이의 특수 공간인 월아성이 있다.

보이는 벽 뒤 위에 청태종 무덤.

붉은색 영벽이 묘의 입구라고 한다.

 

 

 

월아성.

초승달 모양.

높이 약 6m, 둘레 길이 약 96m.

보이는 누각은 방성의 네 귀퉁이에 세워진 각루이다.

 

 

 

명루

월아성에서 명루로 오르는 계단이 양쪽으로 있다.

방성의 융은문 안쪽에도 양쪽으로 계단이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 명루의 비석을 보러 간다.

 

 

 

명루에는 홍타이지의 무덤임을 알려주는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에도 한자, 만주어, 몽골어 세 가지 문자로 쓰여 있다.

명루의 소릉비(청태종 무덤비)와 명루에서 바라본 청태종 능

 

 

 

'대청(大淸)' '태종문황제지릉(太宗文皇帝之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소릉비(청태종 무덤비)

홍타이지의 묘호가 태종, 시호는 문황제.

* 시호: 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융도현공문황제
(應天興國弘德彰武寬溫仁聖睿孝敬敏昭定隆道顯功文皇帝)

 

 

 

명루에서 바라본 청태종 무덤

앞쪽 공간은 월아성.

 

 

 

명루에서 바라본 청태종 무덤과 융은전

 

 

 

명루에서 나와 방성 성벽 위를 걸으며 바라봄.

왼쪽부터 청태종 능 보정(봉분), 명루, 융은전

 

 

 

북릉(청소릉), 월아성, 방성 명루

 

 

 

소릉 방성 안.

방성 성벽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방성 네 귀퉁이마다 있는 각루.

능을 보호 감시하는 역할을 한 곳.

 

 

 

북릉(청소릉), 월아성, 방성 명루 융은전

 

 

 

각루 앞을 지나 보정 둘레의 보성길 따라 가는 길~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덤 뒤 바깥에는 수령 400년 가까이 되는 고송 2,000여 그루가 생장하고 있단다.

 

 

 

보성은 능을 둘러싸고 있는 반원형의 성으로 높이 6m, 둘레 길이 202m.

보정은 봉분을 뜻하며 높이가 7m,  둘레 약 110m이며,

삼합토(석회, 모래, 황토)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궁은 지하궁전, 즉 지하무덤이라는 뜻으로

보정 지하에 홍타이지와 황후의 관과 부장품 등이 안치되어 있단다. 

 

 

 

우리와는 달리 봉분을 흙무더기처럼 쌓았다.

만주족의 장례 풍습인가보다.

보정(宝顶)에 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다.

원래부터 심은 나무가 아니고 저절로 자라난 나무란다.

 

 

 

보성을 따라 청태종 홍타이지의 묘 봉분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

전에는 전체가 시멘트 바른 듯한 흙무덤처럼 보였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꼭대기뿐만 아니라 주위에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반원형의 보성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명루쪽으로...

왼쪽 보이는 건물부터 각루, 융은전, 명루.

 

 

 

보성으로 둘러싸인 보정 앞쪽으로 초승달 모양의 월아성,

그 앞으로 네모난 모양의 방성이 있는 구조를 다시 본다.

왼쪽 끝에 잡상이 보이는 각루 앞을 지나 방성 성벽 위를 걸어서 나가도 되고

명루에서 월아성으로 내려가 나가도 되고

반대편 각루 앞 방성 성벽을 걸어서 나가도 되는 구조이다.

 

 

 

방성의 융은문, 융은전, 명루가 보이는 모습.

전체 구조를 보려고 명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명루의 잡상들

 

 

 

방성 성벽 위에서 바라본 방성과 청태종묘

 

 

 

명루와 명루 서쪽의 각루를 지나 융은전 서쪽의 각루로 가는 중간에서 담아본 방성과 청태종묘

 

 

 

융은문과 좌우의 각루.

방성 안쪽의 동배루와 서배루.

 

 

 

앞쪽으로 서배전, 오른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동배전이 보인다.

뒤로 멀리 명루. 그 앞이 융은전.

 

 

 

융은전과 방성

 

 

 

융은문에서 바라본 비정(보수 중).

이렇게 방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간다.

 

 

 

방성 안에서 마지막으로 동영상~

 

북릉공원의 메인 건물인 북릉을 돌아보았다.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를 안겨준 청태종의 묘라 속상했지만

청나라 초기 황제의 능 구조를 알아본다는 생각으로 보았다.

규모가 대단하긴 했다.

 

북릉공원은 심양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많이 찾는 공원이다.

워낙 넓은 규모라 여러 가지 탈것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호수에서는 배를 타고 즐기기도 한다.

북릉 관람을 마친 후 우리팀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전동카를 타고 내려갔다.

우리는 못다본 주위 경치를 보며 걸었다.

 

북릉을 끝으로 이번 백두산+고구려 유적 일정을 모두 소화했고

2024.07.07.(일) 18:00 비행기로 귀국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을 생각해보면 비로 인해 아쉬움이 많은 여정의 연속이었던 만큼

'백두산' 하면 '비' 라는 생각이 오래 남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가야 할 장소까지는 모두 다 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