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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칠곡] 구국의 현장 / 다부동전적기념관 2 - 외부 전시 자료

다부동전적기념관

 

 

내부 전시 자료를 먼저 본 후 외부 전시 자료들을 돌아봅니다.

 

계단 없는 길로 오르면 만나는 곳입니다.

대형 태극기가 걸린 국기 게양대에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과 거룩한 뜻을 받들어 길이 이어가고자

국기를 게양하고 추모의 뜻을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2010년 12월 31일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설립자 이종환)에서 기증했네요.

며칠 전에 관정 이종환(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 방면에 기부를 많이 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출연한 장학금 규모가 1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 대단하신 분이네요.

 

 

이어서 구국용사충혼비, 옛 전우의 넋을 기리며(비), 지게부대위령비, 제1사단전사자명비가 이어집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글씨, 구국용사충혼비.

1995년 6월 24일 세워졌네요.

 

 

구국용사지묘

수많은 이들이 피로 지킨 나라~

우리가 잘 이어가야겠습니다.

 

 

옛 전우의 넋을 기리며~

 

 

지게부대원 위령비

지게부대원은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노무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포탄과 식량, 부상병들을 나르는 역할을 했다지요.

포화 속을 누비다 전사한 이들~ 이름 없는 영웅들...

고이 잠드소서!

 

 

제1사단 사령부의 장병들 외 전사자 명단

다부동전투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UN군 전사자들의 명단도 있습니다.

이역만리에 와서 희생한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건립 개요, 공사 지원, 비문

 

 

 

기념관 옆 야외 전시장

아래 파란색 부분은 다부동전적기념관의 설명 자료입니다.

75mm 곡사포

6·25전쟁 당시 다부동전투에서 사용된 야포라고 합니다.

전시관 앞 양쪽에 전시되어 있네요.

 

 

T-37C TWEET

미국 CESSNA사가 개발한 쌍발엔진의 기초훈련기로서

제트기의 조종과 계기형태 및 야간 비행술을 교육시키도록 고안된 최초의 제트 훈련기이다.

원 모델인 T-37C는 1955년 첫 비행하였고,

1957년(T-37A)과 1959년 (T-37B)에 실전배치 되었으며

총 1,300여 대가 제작되었다.

한국공군은 1973년에 무장능력이 추가된 T-37C TWEET 20여 대를 도입한 이래

총 60여 대를 도입하여 전투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용으로 이용하였다.

이곳에 전시된 80930은 1966년 브라질에서 생산된 기체로서

1983년에 도입하여 20년간 10,500시간을 비행하여 전투조종사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국산 훈련기인 KT-1(웅비) 항공기에 그 임무를 인계하고 2002년 6월 30일 퇴역.

 

 

122mm 곡사포

소련에서 개발한 견인포로서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던 곡사포로서

한국군의 155㎜ 야포와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57mm 직사포

6·25전쟁 이전부터 우리 국군의 유일한 포병화기였으며,

북한이 전차를 앞세우고 남침했을 때, 우리 국군은 이 포로 적에게 대항하여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37mm 직사포

6·25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화기로서

적의 진지 및 차량, 장갑차, 병력 등이 집결되어 있는 지역을 사격하여 치명타를 입혔던

아군의 주력화기로 유명했던 야포였습니다.

 

 

45mm 직사포

6·25전쟁 당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이 포를 대량으로 공급받아 남침시 사용하였는데,

1951년초 경기도 용문산 전투에서 우리 국군 제6사단이 북한군을 물리치고 노획하였습니다.

 

 

UH-1H 헬리콥터

1955년 미국에서 개발하여 베트남전에서 맹활약한 기종으로

우리나라는 1967년에 미국 원조로 6대를 도입하였다가

이후 방위성금으로 122대를 구입하여 병력 및 화물 수송으로 운용하였고,

70여 대가 남았으나 노후화에 따라 2020년까지 전원 퇴역하였습니다.

 

 

40mm 대공포

1962년 4월 미국에서 생산되어 1983년 5월 한국군에 도입되었으며,

2006년 2월 현역에서 퇴역한 대공포입니다.

 

 

호크(HAWK) 미사일

미국 RAYTHEON사에서 1953년 제작된 저고도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로

1964년 우리 군에 도입되어 방공포병에서 운용중인 미사일입니다.

 

 

한 단 아래로 백선엽 장군 동상이 보이고,

더 아래로는 구국관(사무실/강당)이 보입니다.

 

 

구국경찰 충혼비 앞에서 바라본 다부동전적기념관

 

 

 

구국경찰 충혼비

구국경찰 충혼비

 

 

구국경찰 충혼비 앞에서 비행기 전시장 가는 길 옆에 전시된 자료들~

한국전쟁 당시의 이모저모가 현재의 우리로서는 실감나지 않는 모습이네요.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듯이

전쟁을 겪은 사람만이 그 실상을 알겠지요.

 

 

한국전쟁 당시의 대통령들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왼쪽에 미국의 트루먼, 오른쪽에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 동상...

제가 방문하기 며칠 전인 2023년 7월 27일에 동상이 세워졌네요.

 

 

왼쪽: 미 대통령 트루먼의 말  / 오른쪽: 한국 대통령 이승만의 말과 글이 동상 옆에 쓰여 있습니다.

 

 

두 동상 가운데에 놓인 비에는

'우리는 바로 여기서 자유세계를 지켜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F-86F 전투기

이 전투기는 NORTH AMERICAN사에서 제작되었으며 6·25전쟁 당시 MIG-15 격추기로 명성을 얻었던 전투기입니다.

 

 

 

백선엽 장군 동상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구해낸 명장입니다.

간도특설대 복무 전력으로 친일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

올해 7월에 한국전쟁 당시 한미 두 대통령과 같은 날에 세워진 모양입니다.

 

다부동전투에서의 이 말은 감동적이네요.

 

 

839고지, 837고지, 674고지, 천평계곡, 466고지, 소야고개가 두루 바라보이는 곳이네요.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전투 관련 장면들이 동상 주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도 안 되겠지만

만약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과연 우리가 이렇게 피흘려 싸울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재의 우리는 피흘리며 지킨 우리나라를 영원히 잘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하겠지요.

동족간에 다시 싸우는 한국전쟁은 없어야겠지요.

영원한 남북화해 모드가 오길 간곡히 바래봅니다.

 

 

오른쪽 비는 백선엽 장군 호국구민비

 

 

 

다부동전적기념관 아래 백선엽 장군 동상 뒤편의 비들

조지훈의  <다부원에서> 시를 유영희님이 적은 시비네요.

 

(다부동전적기념관 자료)

 

 

<전우야 잘 자라> 진중가요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예전에 교련 시간에 불렀거나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은 잘 아는 진중가요지요.

 

 

<학도병의 일기/이우근> 비

일기 중 일부를 적은 비입니다.

 

소년병 이우근의 일기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은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 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1950년 8월 포항 전투에서 숨진 소년병 이우근(李右根)의 일기다.
이우근은 국군 제3사단 소년병으로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전사했다.
이 일기는 그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됐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자료를 불러왔습니다.)
아픈 역사입니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다부동전투의 주역들 소개

 

 

맨 아래 단의 전시장과 구국관

나이키 유도탄, 전차와 장갑차, 구국관이 보입니다.

 

 

맨 아래 단의 구국관

사무실과 강당이 있습니다.

어느새 문 닫을 시간(18:00)이 되었네요.

 

 

 

칠곡군 관광 안내도도 있습니다.

아직 못 가 본 곳이 많고요.

좁은 나라 같지만 참 넓은 나라~ ㅎㅎ...

 

 

오른쪽이 나이키 유도탄

 

 

제일 아래 광장에 나이키 유도탄, 전차와 장갑차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8인치 자주포, M60A3 전차, M48A2C 전차, M113 장갑차, CM6614 장갑차

이런 무기들이 한반도에서 절대 쓰이질 않길 바라며 퇴장합니다.

 

(방문: 2023.08.02.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