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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서울 강남] 서울 선릉과 정릉 (서울 宣陵과 靖陵)

선릉(성종릉)


 

전철을 이용해서 바람쐬러 갈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오랜만에 선정릉에 다시 가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선릉역에서 내려 선정릉으로~

 

선릉과 정릉 입구. 오른쪽은 주차장 입구
입장구역
선정릉 동판모형
조선왕릉은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2009.06.30.).

 

종합안내도

안내도를 보고 옆에 선릉과 정릉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그것까지 읽어본 후

일단 재실쪽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역사문화관이 그쪽이라 자세한 설명도 볼겸...

가 본 곳이라도 내용을 다 기억하기는 어려운 법~

그래서 어딜 가면 일단 설명부터 보는 버릇이 있어서다.

 

 

 

재실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해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준비하는 곳이다.

재실
마침 오후 2시에 안내해설이 있다니 들어봐야지...
우선 재실 먼저 휘리리 돌아보고...
재실 너머 오래된 은행나무도 바라보고...

마침 오후 2시부터 해설이 있네.

해설사님이 어떤 분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는데,

재실 앞에 계시는 분께 물으니 해설사님이시란다.

일단 들어보기로 하고 신청~

달랑 둘이라서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해설사님을 따라 이동한다.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
능의 역사를 지켜본 나무일 듯~

 

 

 

선릉과 정릉 역사문화관

역사문화관에서 간단하게 설명을 듣는다.

조선왕릉의 분포지며 성종과 중종의 가계도며

선정릉이 임진왜란 때 왜적들에 의해 능이 파헤쳐져

관까지 불에 타는 변을 당하였다는 것 등등~

역사관에서 간단하게 설명을 들은 후 선릉 중 성종릉으로 이동하게 된다.

 

 

서울 선릉과 정릉 (서울 宣陵과 靖陵)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1462~1530)의 능이다.
성종은 재위기간 동안 『경국대전』과 『대전속록』,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여 반포하였고, 선비들을 등용하여 기존의 훈구세력과 국정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정현왕후는 1473년(성종 4) 성종의 후궁이 되었고, 1480년(성종 11)에 왕비가 되었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 앞에서 봤을 때 서쪽 언덕이 성종, 동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의 능이다.
중종은 재위기간 동안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치와 제도를 바로 잡았고, 서적을 간행하여 인쇄 기술을 발전시켰다. 중종이 세상을 떠난 후 서삼릉에 있는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여 능의 이름을 정릉으로 바꿨으나, 1562년(명종 17)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가 장경왕후의 능(희릉)은 그대로 두고 중종의 능(정릉)만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선릉과 정릉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관까지 불에 타는 변을 당하여, 1593년(선조 26) 두 능을 다시 수리하고 장례를 치렀다.

 

(출처: 문화재청)

 

 

 

[선릉]

조선 9대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중종의 모후)의 능.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의 형태.

정자각에서 바라보아 왼쪽이 성종릉, 오른쪽이 정현왕후릉.

선릉 입구 홍살문, 향로와 어로, 정자각이 보인다. 왼쪽 언덕에 성종릉이 있다.
선릉 안내 동판

경의를 표해야 하는 신성한 구역임을 나타내는 홍살문이 서 있고,

안쪽으로 이어지는 왼쪽 길은 제향을 지낼 때 혼령을 위한 향이 지나는 길(향로),

오른쪽은 제향을 지내러 온 임금이 걷는 길(어로)이 있다.

홍살문 안 오른쪽에 임금이 절을 하는 배위(판위)가 있는데,

이곳의 배위는 유난히 크기가 작네.

 

향로와 어로 끝에 정자각, 오른쪽에 비각
진설도와 기신제 모습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정자각 내부. 일반 산소에서 상석의 역할을 하는 곳.
정자각 너머로 왕릉(좌)과 왕후릉(우) 가는 길. 두 능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어서 이렇게 배치되었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

정자각 앞에서 봤을 때 서쪽(왼쪽) 언덕이 성종의 능, 동쪽(오른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서쪽의 성종릉

 

 

선릉비와 설명

선릉비
선릉비 설명

 

 

1. 선릉 중 성종릉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성종의 능침은 『국조오례의』의 예를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언덕길을 올라와 왕릉 옆으로...
들어가서 정면에서 볼 수는 없고 옆에서만...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가 배치된 모습

문관의 형상으로 만든 석상인 문관석(문인석, 문석인)

무관의 형상으로 만든 석상인 무관석(무인석, 무석인)이 배치되었다.

 

문관석과 석마.

두 문관석 사이로 장명등(무덤 앞이나  안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보이고...

 

왼쪽부터 망주석, 혼유석,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 망주석, 석양이 보인다. 석양 뒤로는 석호가 이어진다.
혼유석(앞)과 망주석

혼유석봉분 아래 잠든 영혼이 나와 노니는 돌이라는 뜻이다.

혼유석 아래에는 둥근 북을 닮은 고임석(고석) 4개가 받치고 있다.

고석에는 잡귀를 막는 귀면이 새겨져 있다.

혼유석 아래에는 박석이 깔려 있고,

그 아래에 왕의 시신이 안치된 석실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고 한다.

이 통로는 모래 자갈 석회를 섞은 반죽으로 채웠다고 한다.

선릉과 정릉은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때 왜적에 의해 파헤쳐지는 변을 당했단다.

 

성종 선릉 망주석과 혼유석

왕릉 망주석의 주신 상단부에는 세호(細虎)라 불리는 작은 동물 형상이 고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세호의 새김은 봉분을 기준으로  좌승우강(左陞右降)의 원칙,

동측 망주석의 세호는 위쪽으로 서측 망주석의 세호는 아래쪽 방향으로 새겨졌다.

마모가 되고 다리 사이에 공간이 있어 멀리서 보니 귀[耳]의 형태처럼 보인다.

 

안쪽의 봉분에는 난간석 병풍석을 둘렀고,

봉분 바깥에 호석(석호, 호랑이돌상)과 양석(석양, 양돌상)을 각각 네 마리씩 두었다.

가장 바깥으로는 곡장(담)을 둘렀다.

 

성종릉 능침에서 바라본 정자각

해설사님은 여기서 해설을 마치고 돌아가시고,

우리는 성종릉에서 내려가 정현왕후릉으로 이동한다.

 

 

 

2. 선릉 중 정현왕후릉

정현왕후의 능침은 병풍석만 생략하였을 뿐 성종의 능침과 같은 형태.

난간 석주의 윗부분에는 초기 난간석의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고,

문무석인은 윤곽과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정현왕후릉. 망주석이 보이고, 안쪽으로 보이는 봉분에는 난간석을 둘렀다.
봉분 바깥으로 석양과 석호가 4마리씩 배치되어 있고 바깥으로 곡장을 둘렀다. 성종릉에 있는 병풍석이 여긴 없는 상태이고, 다른 것은 비슷한 형태.
왼쪽부터 보이는대로 문인석,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망주석과 혼유석
무관석, 석마(마석), 문관석

 

 

정현왕후릉에서 나와 중종릉으로 이동한다.

소나무숲이 우거져서 푸르른 구간도 지나고

낙엽진 곳도 지나 이동하게 된다.

푸르른 소나무숲
낙엽진 구간, 가파른 데크계단길
정릉으로 가는 길에 만난 안내도
정릉 능침 옆의 안내도

 

 

 

 

[정릉]

조선 11대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의 능.
처음에는 서삼릉에 있는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여 이름을 정릉으로 바꿨으나,

1562년(명종 17)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가 장경왕후의 능은 그대로 두고 중종의 능(정릉)만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문정왕후는 중종 옆에 묻히길 원하였지만 정릉(중종릉) 주위의 지대가 낮아 장마철에 물이 들어 자주 침수되니

명종은 문정왕후를 태릉에 안장하였다.

정릉 설명과 안내도
정릉 정자각과 능침. 사진 오른쪽 끝 뒤로 홍살문이 있다.
멀리서 보아야 봉분이 제대로 보인다.
더 당겨본 중종릉의 모습. 성종의 능과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정자각과 능침
정자각 내부. 선릉의 정자각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정릉은 단릉이라 정자각 뒤로 바로 능침이 보인다.
정자각 뒤로 보이는 중종의 능
정자각과 정릉
정자각과 정릉. 봉분 가까이 올라갈 수 없어서 여기서는 봉분 주변의 자세한 모습을 관찰하기 어렵다.
정릉 정자각에서 능침으로 통하는 길

 

 

정릉비와 설명

정릉비
정릉비 설명

 

다시 떨어져서 정릉 능침을 바라보며 방문을 끝낸다.

 

오랜만에 찾은 선릉과 정릉~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 이런 거대한 숲이 있다는 것이 놀랍게 생각되지만

능 조성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로선 4대문 밖에 조성된 능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선릉과 정릉이 파헤쳐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70년대에 강남 지역이 개발되면서 주위가 고층 빌딩숲으로 변했고

능 주위만 도심 속 녹색지대로 남아있다.

현재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지나온 역사적 사실을 더 깊이 알게도 된다.

 

(2023.02.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