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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공주] 유구 전통시장, 벽화거리, 섬유역사전시관, 운보 김기창 화백 집터

유구 섬유역사전시관. 색동실을 걸어 놓은 직조기. 유구는 국내 유일의 원조 색동옷감 생산지라네...

 

 

(2022.06.22. 수)

유구 색동수국정원을 돌아나와 섬유역사전시관으로 간다.

전통시장 주차장에 차를 댄다.

유구 전통시장, 벽화거리, 섬유역사전시관이 가까이 모여 있어서

함께 돌아보면 되고,

운보 김기창 화백 생가지까지 묶어서 돌아보아야지.

유구 전통시장, 벽화거리, 섬유역사전시관, 운보화백 생가지의 위치

 

 

유구 전통시장

1928년에 생긴 전통시장.

지금은 평일에도 시장이 열린다.

3일, 8일 오일장날에는 광장까지 좌판이 들어서서 크게 붐빈다고 한다.

오일장날에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네.

유구 전통시장
평일에도 시장이 열리는 유구시장. 유구 전통시장 광장 무대도 보인다. 3일과 8일에는 오일장이 서는 모양이다.

 

 

유구 벽화거리

유구 전통시장과 이웃해 있다.

유구는 직물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다.

전성기에는 유구에 160곳이 넘는 직물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유구 벽화거리는 오래된 직물공장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공주의 섬유산업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벽화가 눈길을 끈다.

특히 직물공장 벽에 그려진 베 짜는 할머니의 모습이 압권이다.

2014년 유구문화예술 만들기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중앙2길의 직물공장들과 벽화
직물공장 벽에 유구 옛 동네 모습을 나타낸 벽화가 보인다. 전성기에는 유구에 직물공장이 160개나 있었다고 한다.
대신직물과 황금직물 사이 시장길. 유구 직물은 저렴한 수입 직물이 들어오면서 옛 명성을 잃었다.
직조기 소리가 가득했던 골목에 생기를 불어 넣는 벽화
하얀색 목화솜과 실타래가 이어지는 타일벽화의 모습.
중앙2길 황금직물 건물의 벽화; 포토존도 만들어 놓았네.
직물공장의 벽을 따라 그려진 벽화. 색동옷 입고 베 짜는 모습은 색동천을 생산한다는 의미겠지.
황금직물 벽을 가득 메운 벽화들

국내에서 유일하게 색동천을 짜는 곳~

15세, 17세에 직조공이 된 남녀가 20대 중반에 부부가 되어

지금까지 색동천을 짜 오고 있다네...

황금직물은 유구 직물업체 중 가장 오래된 공장. 한복지 단일 품목과 실크를 생산한단다.
'베 짜는 할머니'.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
시장길 벽장식을 보며 섬유역사전시관으로 향한다.
전통시장 앞 시장길 벽을 따라 타일벽화. 세종대왕 벽화도 있고, 스페인의 가우디가 생각났던 의자도 있다. 주차된 차들 때문애 사진 찍기 어려움.

 

 

유구 섬유 역사

벽화거리의 끝쯤에 유구 섬유역사전시관이 있다.

유구는 8.15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변모하기 시작했단다.

이곳이 정감록에 나오는 *조선 십승지지(십승지)라 하여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피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북에서 직물업을 했던 사람이 수족기를 직접 제작하여 직조를 한 것이

유구 직물의 시발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중국의 값싼 직물류가 대량으로 수입되어 경기가 떨어졌고

결정적으로 IMF 한파가 닥쳤다.

2001년까지 조금 회복은 되었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된다.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유구직물협회~

2002년에 뜻을 같이 하는 사업주들이 모여 준비하기 시작,

2003년도에 조합을 설립하였단다.

국내 여성 고급 한복지의 최대 생산지(전국 80%),

국내 유일의 원조 색동옷감 생산지.

 

* 조선 십승지 *

조선 최대의 예언서  '정감록'에 나타난 곳으로

3재(전쟁, 흉년, 전염병)가 들어올 수 없는 청정하고 안전한 지역을 말한다,

'정감록'에서는 조선 십승지로

영주시 풍기읍, 봉화군 춘양면, 속리산 주변(보은군 속리산면+상주시 화북면),

남원시 운봉읍, 예천군 용문면, 공주시 유구읍, 영월군 영월읍, 무주군 무풍면,

부안군 변산면, 합천군 가야면을 꼽았다. 

 

 

 

유구 섬유역사전시관

1980년대까지 국내 직물산업의 부흥을 이끈 유구 직물의 우수성과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섬유역사 전시관이 공주시 유구읍에 개관했습니다.
유구섬유역사전시관은 대지면적 951㎡, 건축규모 324.36㎡, 단층구조로 신축됐으며, 외부 쉼터에는 유구를 상징하는 비둘기, 베틀 등 상징조형물로 이뤄진 포토존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수직기, 달랭이감기, 작태기, 해사기, 자카드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섬유관련 전시품으로 꾸며져 있으며, 현재 생산되는 섬유를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촉감체험 공간, 유구의 섬유역사 및 생활사 등을 알 수 있는 홍보영상관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 섬유직조방식, 공장 직물제직과정을 디오라마로 제작·전시해 과거 섬유제조방식과 현대적 섬유제조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전시관 방문객들이 미니베틀을 이용해 인테리어 제품, 인형, 파우치, 장갑 등을 직접 만들고 가져갈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며 대표적인 섬유도시 유구를 재조명 해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주시 유구읍 유구섬유역사전시관에서 섬유역사의 발자취를 만나세요

(출처: 유구섬유역사전시관 홈페이지)

 

유구섬유역사전시관 입구
안내 센터, 유구사랑방
전시관 안내도
첫 공간 전시관. 왼쪽 벽에 유구 섬유 역사, 오른쪽 벽쪽으로 섬유 디오라마 전시
사랑방을 지나 왼쪽 벽에는 유구 섬유 역사를 알려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연도별 유구 섬유의 역사
국내 여성 고급한복지의 최대 생산지(전국 80%), 국내 유일의 원조 색동옷감 생산지...
가운데 공간에는 직조기와 물레 전시
직물공장의 직기북과 꾸리깍지, 황금직물의 일반사업자등록증과 취업규칙서 등
섬유디오라마 장면 1: 목화 재배와 누에 기르기-삼찌기
섬유디오라마 장면 2: 베매기-베짜기-시장 거래
섬유디오라마 장면 3: 직물공장의 베짜기 과정
꾸리깍지에 실을 감기 위한 꾸리감기. 일반 가정집에서 주로 쓴 거란다. 고장난 자전거 바퀴 이용.
유구는 국내 유일의 원조 색동옷감 생산지이다.
다음 방에는 자카드 직물 소개, 유구 섬유업체 소개, 유구 섬유 소재 등이 전시되고 있다. 커튼 안쪽은 작업 공간.
직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카드 직물 소개
색동실, 자카드실을 이용하여 짠 색동옷감과 자카드 이중직물 등이 전시되고 있다.
유구 직물 공장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도 전시되고 있다.
황금직물은 유구 직물업체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공장이란다.
전성기에는 160개가 넘는 직물업체가 유구에 있었다니 가히 섬유산업의 메카라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원단들도 소개되어 있다. 패션 원단, 산업용 원단, 인테리어 원단 소개
패션 원단. . 돋보기를 두어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놓았네. 오른쪽은 산업용 원단
업체별 패션 원단들
산업용 원단과 인테리어 원단
실이 엉켜진 직조기. 아이들이 만지다가 헝클어진 모양이다. 아이들을 데려가면 주의가 필요하겠다.
국내 유일의 색동옷감 생산지. 유구 색동수국정원이라는 이름도 이 색동옷감에서 온 모양이다.

근무하시는 분의 말씀에 의하면

전성기에는 유구에만 160곳이 넘는 직물업체가 있었다고 하며

3,000명이나 되는 직조공이 근무했다고 한다.

유구 직물이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밀집해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네.

유구 섬유역사전시관에서 유구 섬유의 역사를 알고 나니

섬유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부심이 대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유역사전시관을 나와 유구천 다리(유구교)를 건너 운보 김기창 화백 집터로 이동한다.

충북 청주 운보의 집은 가 본 적이 있지만 유구의 생가터는 처음이다.

청주는 운보의 어머님의 고향인데,

1976년 부인(故 우향 박래현 화백)과 사별 후

1984년 운보의 집을 완공하여 정착,

타계하실 때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하며 노후를 보내신 곳. 

운보미술관에서는 운보와 우향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청주 운보의 집 가 본지도 아주 오래되었는데,

언제 한 번 다시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에는 운보의 고향으로 가 본다.

 

 

운보 김기창 화백 생가터

운보는 1913년 서울에서 출생.

이곳의 안내 설명에는 유구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고,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고 되어 있다.

보통학교 입학 이전까지의 유년기를 유구에서 보낸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7세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으나

이당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워 

6개월 만에(18세)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첫 입선했다.

8.15 광복 때는 고향에서 해방을 맞기도 했다.

세종대왕 표준영정을 그렸고,

1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초상화를 그렸다.

이곳 집터는 1950년대까지 '감나무집'으로 통했고

초가집의 문간채, 사랑채, 안채, 헛간채와 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은 없단다.

'바보산수'라는 작품으로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연 대표적인 화가이다.

주요 작품으로 '세종대왕 초상', '군마도', '청산도, '소와 연인', '호랑이' 등

 

운보 화백 집터. 초가집의 문간채, 사랑채, 안채, 헛간채와 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은 없단다.
운보 김기창 화백 집터 설명
이곳 집터는 1950년대까지 '감나무집'으로 통했다고 한다. 이 나무가 그 감나무겠지...
고목이 된 감나무의 우람한 자태~ 이 감나무는 옛일을 기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