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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논산] 논산명재고택, 노성향교, 노성궐리사, 노성산 애향공원

논산 명재고택 (2022.01.20. 목)


 

지난 1월, 논산 선샤인랜드를 주목적지로 하여 간 김에 돌아본 곳들~

종학당 일원과 윤황고택, 유봉영당 등을 돌아 명재고택에도 들렀다.

명재고택은 워낙 여러 번 가 본 곳이라 그냥 지나치려 했었는데,

근처에 간 김에 그냥 또 들렀네...

시간 되면 사색의 길도 걸어 보면 좋겠네...

 

 

 

논산 명재고택 (論山 明齋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이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후대에 수리가 있었던 듯 하며 그 세부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 산의 산자락에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고, 왼쪽 1칸 뒤로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자리잡고 있다.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어서,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그 앞에 인공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또한 안채 뒷쪽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지정 당시 명칭은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이었으나, 조선 숙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명재 윤증(1629-1711)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인 점을 반영하여 그의 호를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문화재청 자료)

 

논산 명재고택 안내도
명재고택. 명재 윤증은 종학당을 세운 윤순거의 아들로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의 분립 과정에서 소론의 영수로 활동했던 문인.
명재고택 앞 연못
명재고택. 사대부 집이면서도 행랑채가 없는 살림집.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아 백의정승이라 일컬어졌던 소론의 영수 윤증 선생이 터를 잡고 지은 집
명재고택 담 너머로 노성향교가 보인다.
명재고택의 우물
명재고택 안채 들어가는 입구. 코로나로 인해 고택 외부인 출입금지 중...
명재고택 안채, 사랑채, 사당
명재고택 사랑채. 전면에 돌출한 사랑채 누마루는 마루나 온돌방에 비해 한단 높게 구성되어 있다.
명재고택 사당과 장독. 담장 밖에 사당을 두었다.
도서관
명품 장독
아름드리 나무와 장독, 그리고 고택
명재고택 사당
명재고택 사랑채와 안채, 장독대
명재고택 뒤편의 전망대, 선비계단 가는 길
명재고택

* 명재고택 설명 : https://blog.daum.net/leeke2000/16504913

 

2009.07.28(화) 논산 명재 윤증 고택

2009.07.28(화) 논산 명재 윤증 고택 조선 숙종 때의 학자 윤증 선생 고택. 사대부 집이면서도 행랑채가 없는 살림집...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아 백의정승이라 일컬어졌던 소론의 영수 윤증 선생이 터

blog.daum.net

* 명재고택 안채 설명 : https://blog.daum.net/leeke2000/16507881

 

[충남 논산]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 논산명재고택 (論山 明齋 古宅)

[충남 논산]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 논산명재고택 (論山 明齋 古宅) 2013.02.16~17 설연휴 지난 다음 주말을 맞아 1박 2일 논산 익산 여행을 계획하였다. 이미 가 본 곳이 많지만 더러는 남편이 못 본

blog.daum.net


 

열녀 공주이씨 정려

명재 윤증의 어머니 공주이씨는 병자호란 때

남편과 시어머님과 함께 강화로 피난하였다.

강화가 함락되자 이씨부인은

"오랑캐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으리라"

하며 강화도에서 순절하였다.

아들 윤증은 학문이 높았으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왕의 직접 요청에도 불구하고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순절에 대한 보답이 아닌 줄 아옵니다."

라며 사양하였다.

이후 윤증은 '백의정승'이라는 대우를 받게 되었으며,

공주이씨에게는 정경부인을 증직, 

1681년(숙종 7)에 정려를 세웠다.

공주이씨(윤순거의 아내, 윤증의 어머니) 정려. 노성면 소재지에서 명재고택으로 가다가 명재고택 못 미처 길가에 위치
공주이씨 정려. 뒤로 노성향교가 보이고, 향교 오른쪽에 명재고택이 있다.
열녀 공주이씨 정려


 

노성향교 (魯城鄕校)

충청남도 기념물.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노성향교는 본래 지금의 노성초등학교 자리에 세웠다고 하나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1700여 년경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단지 조선 인조 9년(1631)에 대성전을 보수하였다는 명륜당 현판의 기록으로 보아 오래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대성전, 동재, 서재, 삼문 등이 남아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안쪽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증자·맹자·안자·자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동무에는 송나라 1현(賢)과 우리나라 9현을, 서무에는 송나라 1현과 우리나라 9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명재고택 옆의 노성향교
문이 닫혀 있다.
안내판 설명
앞쪽이 대성전, 뒤에 대성전
교육 기능을 담당했던 명륜당
문이 닫혀 있어 밖에서 바라본다.
가장 안쪽(뒷쪽)의 대성전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 대성전
남천 열매가 붉은 웃음을 보여주네.


 

노성궐리사 (魯城闕里祠)

충청남도 기념물.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궐리사라는 이름은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것이다. 숙종 13년(1687) 우암 송시열이 궐리사를 세우려고 했으나 2년 뒤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숙종 42년(1716) 권상하·김만준·이건명 등의 제자가 현 위치에서 서쪽방향으로 있는 노성산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정조 15년(1791)에는 송조 5현을 봉안하였고 순조 5년(1805)에 관찰사 박윤수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지금 있는 영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 외에 강릉, 제천, 화성에도 궐리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과 화성(현재 오산)에만 남아 있다.

(문화재청 자료)

노성궐리사 홍살문
노성궐리사. 궐리사라는 이름은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
궐리사 현송당
현송당 뒤 높은 곳에 궐리사
관리사
궐리사. 왼쪽은 관리사
기둥에 '궐리'라고 쓰여 있는 궐리탑
공자상. 5성상이 함께 세워져 있다.
위: 자사, 안자, 아래: 증자, 맹자
노성궐리사


 

노성산 애향공원

논산시에서 2015년부터 국, 도, 시비 30억 여원을 들여

노성면 교촌리 노성산 입구의 산림 25,207㎡에 공원 조성.

여러 가지 편의시설과 체육시설, 주차공간 등을 갖춤.

인근에 노성산성, 명재고택, 노성향교, 노성궐리사 등이 있다.

흔들다리
애향탑, 정자 애향정, 선비상, 풍류마당
노성산 등산도 좋겠다.
노성산 애향공원 전망대 (2022.01.20. 목)

명재고택, 노성향교, 노성궐리사, 노성산 애향공원, 노성산, 노성산성 등이 서로 인근에 있어

여유를 가지고 함께 돌아보면 더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