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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논산] 윤황선생고택, 유봉영당, 파평윤씨 병사리 묘역과 재실들

명재 윤증 선생을 모신 사당인 유봉영당 (2022.01.20. 목)


 

 

지난 1월, 논산 선샤인랜드를 주목적지로 하여 간 김에 돌아본 곳들~

종학당 일원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 이어

윤황고택, 유봉영당 등을 돌아보게 된다.

 

 

윤황선생고택 (尹황先生古宅)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윤황(1571∼1639) 선생의 7대손 윤정진이

조선 영조 때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종가로 내려오고 있는 집이다.
이 집은 一자형 사랑채와 ㄱ자형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구조는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모두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간결하게 지은 옛 전통 가옥으로 중부지방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명재 윤증의 조부인 윤황 선생 고택이다.

정조로 부터 *부조지전의 은전을 받고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

사당에 정조 어제시(정조가 윤황에게 부조지전의 은전을 내리면서 지은 시)를 보관한 판이 있다.

 

* 부조지전: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모시게 하는 특전

* 불천위: 예전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윤황선생고택 사랑채
윤황선생고택 안내도
명재 윤증의 조부인 윤황 선생 고택 설명
사랑채와 안채
안채와 아래채 외부. 오른쪽 위로 사당
안채
안채와 아래채. 뒤로 사당
윤황고택 사당
윤황의 위패를 모신 사당
사당 문 위 정조 어제시가 보관된 곳
정조 어제시. 정조가 윤황에게 부조지전의 은전을 내리면서 지은 시. 문이 닫혀 있다.
사당에서 바라본 안채와 더 아래로 사랑채
안채 뒤편
안채 뒤편
왼쪽 뒤가 안채, 오른쪽이 사랑채

인근에 윤황 재실과 묘가 있다.


 

유봉영당 (酉峰影堂)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윤증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윤증(1629∼1714)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행실이 뛰어나

여러 번 벼슬길에 오를 것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였다.

40세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강당을 짓고

후진양성과 성리학 연구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죽은 뒤에 선생이 가르치던 유생들이

영조 20년(1744)에 영당과 경승제를 세우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조선시대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문화재청 자료)

유봉영당은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시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는 사당.

윤증 사후에 그를 따르던 유생들이 강당인 경승재와 함께 영당을 세우고

1744년(영조 20)에 윤증의 영정을 영당에 모심.

영당의 이름을 유봉으로 정한 까닭은 이곳의 지명이자 윤증의 호가 유봉이기 때문.

윤증의 호는 명재 또는 유봉, 파평인, 시호는 문성.

1642년에 금산에서 아버지 윤선거를 비롯하여 유계, 권시, 김집, 송시열 등에게서 배움.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나가지 않았고

성리학에 전념, 특히 예학이 밝았다.

유봉영당은 영당, 경승재, 고택 유허지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인 경승재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

영당은 경승재의 오른쪽 위에 있는데,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영정이 중앙에 모셔져 있다.

(유봉영당 입구 개별 설명)

 

유봉영당 입구. 강당인 경승재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 있다. 초가를 짓고 살았다는 곳은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뒤로 돌아가 본다.
경승재, 관리사, 유봉영당이 보이네...
명재 윤증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강당인 경승재 뒷모습. 뒤에서 보면 4칸 구조. 배롱나무꽃이 필 때 다시 한 번 방문했으면...
유봉영당
윤증 선생 사당인 유봉영당
관리사 옆으로 돌아 내려오고...
관리사쪽은 열려 있어 들어가본다.
'성모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관리사. 옆으로 협문이 보이는데, 경승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경승재. 관리사 옆으로 난 협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았다.
강당 마루 안쪽으로 '경승재(敬勝齋)'라는 현판이 붙어 있네. 가운데 마루 부분이 통으로 트여서 한 칸을 이루고 있다.
1979년의 영당중수기도 나란히 붙어 있다.
관리사 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유봉영당
노거수 향나무가 먼저 반기는 유봉영당. 명재 윤증 사당이다.
명재 윤증의 영정
오랜 세월 버티고 사당을 지켜온 향나무
노거수 향나무. 관리사 아래로 통하는 문은 닫혀 있다.
굽어지면서도 자리를 지켜온 유봉영당 앞의 거대한 향나무를 다시 보며...
유봉영당 입구 앞에 유봉영당 중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오른쪽은 작은 주차장이고, 언덕 위에 송단이 있다.
송단지(松壇址) 가는 길. 석축 아래는 작은 주차공간
송단. 장송이 빽빽하던 곳. 명재 선생이 40대에 석축으로 단을 쌓아 송단이라 명명. 하계에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강론.
송단 설명. 평상시에는 대둔산이 원근으로 보이는 것을 가늠하여 큰비와 가뭄 측정. 구름으로 일기를 살피고 시를 읊은 곳


 

파평윤씨 병사리 묘역과 재실들

 

파평윤씨재실 (坡平尹氏齋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파평 윤씨 재실은 윤순거 선생이 묘소를 지키기 위해 지었던 건물과

성경재, 영사당의 관리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소를 지키기 위해 지었던 건물은 앞면 7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영사당은 5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품위있는 건물이다.

덕포공 진의 재실은 ㄱ자형 구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이 혼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문화재청 자료)

파평윤씨 재실과 병사리 묘역이 보인다.
입구에서 만난 충헌공 윤전 재실. 건너편 산 아래에 종학당,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보인다. 꽁꽁 언 병사저수지도 보이고...
충헌공 윤전 재실을 지나 파평윤씨 재실. 재실 입구에 개별 안내 설명이 되어 있다.
파평윤씨 재실(오른쪽)과 덕포공 재실(왼쪽 안)

 

파평윤씨덕포공재실 (坡平尹氏德浦公齋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파평 윤씨 덕포공파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전에는 윤진이 거처하던 사저 건물로

파평 윤씨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9호)과 동일한 주소 내에 있었는데

덕포공 종중(宗中)의 요청으로 분리되었다.
건물은 ㄱ자형 구조로 지붕은 각각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과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화재청 자료)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 윤진이 거처하던 사저 건물로 파평 윤씨 덕포공파의 제사를 지내는 곳. 선거운동 당시 윤 당선인을 환영하는 플래카드.

 

파평 윤씨 재실(坡平 尹氏 齋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파평 윤씨 재실은 윤창세(尹昌世)가 아버지 윤돈(尹暾)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재실은 묘지기가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일명 병사(丙舍)라고 한다.

이곳 병사는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수호사(守護舍)와

덕포공(德浦公) 윤진(搢)의 재실을 포함하여

한말에 세운 영사당(永思堂), 성경재(誠敬齋),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호사는 앞면 7칸, 옆면 2칸의 납도리집*으로 네모난 기둥을 사용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영사당은 5칸 건물로 둥근 기둥을 사용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덕포공 재실은 ㄱ자형 구조로 네모난 기둥을 사용한 맞배와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 후기 재실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납도리집: 가장 간단한 목조주택 구조

(개별 안내 설명문 내용)

묘역쪽에서 바라본 파평윤씨 재실. 동토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세운 종학당이 원래 병사에 있었단다.
오른쪽이 '병사'라고 쓰인 건물인데, 丙舍는 무덤 가까이에 지은 집이라는 뜻
논산 파평윤씨 병사리 묘역. 집안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곳이겠지만 나로서야...
논산 파평윤씨 병사 묘역. 왼쪽부터 윤전 신도비, 윤창세 묘비명, 윤순거 신도비
종학당을 설립한 동토 윤순거 등의 묘소가 모여 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바라만 보네. (2022.01.20.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