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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발트3국+러

[발트 3국+러시아] 16. 리투아니아 빌뉴스 구시가(세계문화유산 지구) 돌아보기 2 - 시청광장~대성당~대통령궁~빌뉴스대학교

빌뉴스 대성당과 게디미나스 기념비 (2018.8.5. 일)


 

 

새벽의 문~시청 광장에 이어지는 구시가 골목 탐방.

시청광장~대성당~대통령궁~빌뉴스대학교 편...

빌뉴스 구시가 시청광장~대성당~대통령궁~빌뉴스대학교 주변 걸어보기
빌뉴스 시청과 시청 광장을 지나고~
광장 끝에서 동쪽으로 난 빌뉴스 구시가의 골목(Narrowest Street)을 보며 걸음을 이어간다.
Hotel PACAI도 보이고...
왼쪽 끝 건물에 프랑스 국기가 걸린 걸 보니 프랑스 대사관이 있는 모양. 오른쪽 끝으로는 Vilnius Picture Gallery.
성 파라스케바 교회(Saint Parasceve Orthodox Church.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동방 정교회 교회란다)를 만난다.
성 파라스케바 교회 앞 노점
성 파라스케바 교회 앞 노점
성 파라스케바 교회 앞 작은 광장. 구시가의 모습 사진들이 전시된 공간
성 파라스케바 교회를 지나오고...
빌뉴스 대성당 방향으로 향하는 길~ 이 거리는 필리에스(성) 거리(Pilies g.)라네...
가다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 교회...
오른쪽으로 리투아니아 국기가 걸린 건물이 보인다. 서명자의 집(서명국 하원)이다.

 

서명자의 집(Signatories House, The House of Signatories)

서명자의 집. 독일 지배 때인 1918.2.16. 3층 위원회 사무실에서 리투아니아 평의회 위원 20명이 독립 조약에 서명. 스스로의 독립 선포.
독립 선포 이후 소련-나치-소련의 지배.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박물관, 2000년에 일반 공개. 2003년부터 리투아니아 국립 박물관의 한 분과
서명자의 집(서명국 하원). 리투아니아의 독립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구나 싶었다.
빌뉴스 성 요한 교회. 빌뉴스 구시가에는 교회가 정말 많기도 하다. 안쪽으로 빌뉴스대학교가 있다.
성 요한(세인트 존스) 교회. 세인트 존 세례와 성 요한 사도와 전도자
걸어온 길~
진행 방향 끝에 게디미나스 성 타워가 보인다.
유럽의 간판들을 보는 재미~
게다미나스 대공이 수도를 빌뉴스로 옮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게다미나스 성과 타워
필리에스 거리 끝의 'Grey' 라는 음식점.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할 거라니 기억하라는 인솔자님 말씀...
'Grey' 앞을 지나 리투아니아 대공 궁전과 빌뉴스 성당으로~
왼쪽부터 빌뉴스 대성당 종탑과 대성당, 앞으로 게디미나스 동상, 오른쪽으로 리투아니아 대공 궁전

 

빌뉴스 대성당과 종탑, 대성당 광장

빌뉴스 대성당

1251년 목재 건물로 지어짐.

1387년 리투니아의 대공과 폴란드의 왕이었던 Jogaila가 이곳에 성당을 건축했고,

화재로 인해 손상된 교회를 1419년에 재건축,

1769년에 자연재해로 파손됨.

현재의 성당은 주교 Ignotas Masalski에 의해

구체비치우스(Laurynas Storca Gucevicius)의 설계로 재건축.

지붕에 성 헬레나, 성 카시미르, 성 스타니슬라우스 성인상 배치.

지하 납골당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주요한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대관식 장소로 사용되었다.

1950년 소련 점령 시에는 창고로, 나중에는 화랑과 콘서트홀로 사용,

1989년 2월 5일 본래의 성당 기능,

 

높이 57m의 종탑이 성당 앞에 세워져 있는데,

원래 구시가지 방어탑의 일부였으나

16세기에 도시의 확장에 따라 대성당의 종탑이 되었단다.

탑에는 두개의 종이 달린 시계가 걸려 있다.

큰 종은 정시에, 작은 종은 매 분기마다 소리를 낸단다.

 

대성당 남쪽으로 넓게 펼쳐지는 광장이 대성당 광장이다.

빌뉴스 대성당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기념비
빌뉴스 대성당. 대성당 안에는 대공들의 무덤이 있고, 이곳에서 왕의 즉위식도 열렸단다. 구 소련 시절에는 인물화 박물관으로 쓰였단다.
게디미나스 (1275년경-1341. 리투아니아의 대공. 게디미나스 왕조를 연 왕. 재위 1316-1341). 리투아니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게다미나스 대공이 수도를 빌뉴스로 옮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게디미나스 성. 언덕 위에 3층 타워가 우뚝 서 있다.
대성당 광장과 종탑. 대성당 광장은 19세기말 성당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리투아니아의 주요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
대성당 광장. 건너편으로 호텔(Grand Hotel Kempinski Vilnius)
대성당 광장
57m 높이의 대성당 종탑. 시계는 10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네. 원래 구시가지 방어탑의 일부, 16세기에 도시의 확장에 따라 대성당의 종탑
대성당 건너편으로 빌뉴스의 주요 거리인 게디미나스 대로. 대로 양쪽으로 1890~1910년때까지 유럽에 풍미했던 아르누보 건축물들.
게디미나스 대로. 동쪽 대성당에서 서쪽 국회의사당까지 약 2km. 정부청사, 국회의사당, 국립 연극장, 국립 도서관 등이 위치.

 

발트의 길(Baltic Way)

대성당 앞 발트의 길을 상징하는 발자국. 리투아니아 빌뉴스, 라트비아 리가, 에스토니아 탈린을 잇는 620km의 인간 띠 상징. 발트의 길 시작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국의 자유 갈망을 상징하는 발자국.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은 세 나라의 수도를 잇는 620( 675.5?)km 거리에

당시 발트 3국 전체 인구의 1/4인 200만명이 인간 띠를 만들어 참가,

폭력이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으로

구 소련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쳤다.

그날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소련에 편입된지 50주년이 되는 날~.

이 사건으로 발트 3국이 독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단다.

당시 인간 띠 지점에 이런 발자국을 표시.

1989년 8월 23일, 리투아니아 빌뉴스-라트비아 리가-에스토니아 탈린을 잇는 620km의 인간 띠(발트의 길) 모습 일부 (빌려온 사진)

발트의 길 마법의 벽돌(Magical brick). 기적(stebuklas)이라는 단어로 장식된 타일. 인간 띠 잇기로 독립을 이루어낸 기적의 표시. 마법의 벽돌이 있는 이곳에 서서 소원을 빌고 세 번 돌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 라트비아 리가에서 만난 발트의 길 발자국 : https://blog.daum.net/leeke2000/16509463?category=913865 

 

[발트 3국+러시아] 3. 라트비아 리가 구시가 관광 1 - 자유의 여신상, 화약탑, 구시가 성벽, 야곱의

[발트 3국+러시아] 3. 라트비아 리가 구시가 관광 1 - 자유의 여신상, 화약탑, 구시가 성벽, 야곱의 병영, 스웨덴 문 (구글지도로 알아본 발트 3국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위치) 둘째날부터

blog.daum.net

빌뉴스 대성당. 최초 건물은 13세기, 현재 것은 재건. 리투아니아 내 가장 큰 성당으로 민족 정기 서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대관식 장소로도 사용.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문을 기리는 표시. 독립 100주년(1918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100년) 맞은 발트3국 순방 
빌뉴스 대성당 내부
기도 중인 분들이 많아서 뒤에서만 바라보고...
다시 밖으로~ 종탑에는 두개의 종과 시계. 큰 종은 정시에, 작은 종은 매 분기마다 울린단다. 붉은 화강암 바닥은 옛 게디미나스 성벽 자취 표시라네.
종탑 아래 옆의 # popiezius lietuvoje (교황, 리투아니아). 교황의 방문을 나타내는 표시겠지...
빌뉴스 대성당과 오른쪽으로 리투아니아 대공 궁전, 뒤로 게디미나스 성 언덕
빌뉴스 대성당과 오른쪽으로 리투아니아 대공 궁전, 뒤로 게디미나스 성 언덕. 오른쪽 산 위에 세 십자가 기념비
광장 건너편의 관공서. 왼쪽 붉은색 지붕이 우리가 점심 먹으러 가게 될 'Grey'
빌뉴스 대성당 주변을 휘이 돌아 대성당 광장 앞 관공서 옆을 지나고...
호텔(Grand Hotel Kempinski Vilnius) 옆도 지나 대통령궁으로...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길~ 상점 벽에 아이디어 만점인 대형 리투아니아 국기
시티투어 버스가 이 좁은 골목을 지나가네...
슈아젤리아이 궁전(de Choiseul Palace, de Reuss)을 지나오고...
대통령궁 앞에 도착하고 있다. 왼쪽으로 빌뉴스대 철학 학부와 역사 학부 건물이 이어지고... 오른쪽은 공원.

 

리투아니아 대통령궁

Vilnius Andrzej Jastrzębiec의 초대 주교의 후원 하에 14세기 후반에 건축되었고,

빌뉴스 주교 관저였단다.

1795년 제정 러시아에 합병된 후 러시아 총독관저로 사용.

파벨1세, 알렉산드르 1세, 나폴레옹 등이 묵어간 곳이기도 하단다.

현재의 신고전주의 건물은 1834년에 개조된 것이란다.

1997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

건물 앞에 # LT 100가 보이는데,

리투아니아 독립 100주년(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단다.

대통령궁. Vilnius Andrzej Jastrzębiec의 초대 주교의 후원 하에 14세기 후반에 건축되었고, 빌뉴스 주교 관저였단다.
1997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 # LT 100은 리투아니아 독립(러시아로부터의 독립) 100주년(2018)을 의미한단다.
1795년 제정 러시아에 합병된 후 러시아 총독관저로 사용. 파벨1세, 알렉산드르 1세, 나폴레옹 등이 묵어간 곳이기도 하단다.
현재의 신고전주의 건물은 1834년에 개조된 것이란다.
리투아니아 국기~ 노란색은 태양, 초록색은 들판, 빨간색은 피를 나타낸단다. 바닥에 리투아니아를 나타내는 LIETUVA
대통령궁을 지나 빌뉴스대학교 옆으로 이동 중~

 

빌뉴스 대학교

1568년 리투아니아의 귀족들이 예수회에 빌뉴스나 카우나스에

고등교육 기관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후 빌뉴스에 인문학, 철학, 신학을 가르치는 빌뉴스 학당이 설립됨.

1570년 빌뉴스 학당 최초의 졸업생 배출.

1575년 리투아니아의 귀족들에 의해 학당 내에 인쇄소 설치.

1579년 폴란드의 국왕 겸 리투아니아의 대공인 스테판 바토리가

빌뉴스 학당을 폴란드의 크라쿠프 학당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킴.

17세기까지 성장, 대홍수로 쇠퇴.

1795년 제3차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

1803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칙령으로 빌뉴스 제국대학교로 명칭 변경.

한때 유럽 최대 규모의 대학교로 여겨짐.

1823년 러시아 제국 황제에 반대하는 비밀 결사 학생들 체포,

1832년 11월 봉기를 계기로 니콜라이 1세가 대학교 폐쇄.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를 공공장송에서 사용하는 것 금지,

대학교의 재산 몰수.

1918년 12월 리투아니아 국가 평의회가 대학교를 재건,

1919년 1월 수업 재개.

적군의 리투아니아 침공으로 수업 중단.

1919년 4월 폴란드가 빌뉴스 지역을 점령.

1919년 8월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에 의해 스테판 바토리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

1920년 10월 12일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건국.

1922년 빌뉴스가 폴란드에 편입되면서 리투아니아인 교수들은

당시 리투아니아의 임시 수도였던 카우나스의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수업 중단.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편입되면서 몇몇 교직원들은 반동분자로 몰려 체포.

1941년 나치 독일의 점령으로 폴란드인을 위한 고등 교육 기관은 폐쇄.

몇몇 폴란드인 교직원들은 자신의 밀실에서 강의와 시험을 진행,

몇몇 폴란드인 학생들은 1944년 새벽의 문 작전에 가담했지만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에 의해 체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다시 개교.

학교 교육을 받은 폴란드인들은 폴란드로 송환,

폴란드인 학생들과 교수들은 폴란드의 대학교로 전학.

1991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자치권을 회복.

 

워낙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대학교여서 검색한 내용을 주욱 모아 보았다.

우리글과 말 사용을 제한한 일제강점기가 생각났고,

리투아니아의 역사도 참 파란만장하다 싶었다.

빌뉴스 대학교. 패키지 일정상 전망타워에 올라가 보지는 못 했네. 세 십자가 언덕에 올라가면 시가지를 잘 볼 수 있을 거니까...
크리스티요나스 도넬라이티스(프로이센 리투아니아인 시인이자 루터교 목사. 최초의 고전 리투아니아어 시인 '사계 The Seasons(리: Metai)'를 썼다.
빌뉴스대 철학부. 빌뉴스대의 도서관이 아름답다던데, 그곳도 못 보고 간다.
빌뉴스 대성당에서 대통령궁을 거쳐 걸어온 길
이제 문학의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대통령궁 건물 벽에 리투아니아 공화국 대통령실을 뜻하는 글씨가 쓰여 있다.
대통령궁과 빌뉴스 대학교 사이 골목길. Universiteto g.(대학로로 해석하면 될 듯)
대학 거리의 서점 표시 간판. 유럽에는 이렇게 그림으로 표시한 간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알아보기 쉽고 장식도 되고...
성 요한 거리를 만난다. 성 요한 교회 타워. 어느 골목을 걸어도 교회가 보이는 빌뉴스의 구시가...
빌뉴스 대학교 도서관을 지나고, 성 요한 교회의 종탑을 만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곳은 문학의 거리와 성 안나 성당이다.

 (2018.8.5.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