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문~시청 광장에 이어지는 구시가 골목 탐방.
시청광장~대성당~대통령궁~빌뉴스대학교 편...
서명자의 집(Signatories House, The House of Signatories)
빌뉴스 대성당과 종탑, 대성당 광장
빌뉴스 대성당
1251년 목재 건물로 지어짐.
1387년 리투니아의 대공과 폴란드의 왕이었던 Jogaila가 이곳에 성당을 건축했고,
화재로 인해 손상된 교회를 1419년에 재건축,
1769년에 자연재해로 파손됨.
현재의 성당은 주교 Ignotas Masalski에 의해
구체비치우스(Laurynas Storca Gucevicius)의 설계로 재건축.
지붕에 성 헬레나, 성 카시미르, 성 스타니슬라우스 성인상 배치.
지하 납골당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주요한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대관식 장소로 사용되었다.
1950년 소련 점령 시에는 창고로, 나중에는 화랑과 콘서트홀로 사용,
1989년 2월 5일 본래의 성당 기능,
높이 57m의 종탑이 성당 앞에 세워져 있는데,
원래 구시가지 방어탑의 일부였으나
16세기에 도시의 확장에 따라 대성당의 종탑이 되었단다.
탑에는 두개의 종이 달린 시계가 걸려 있다.
큰 종은 정시에, 작은 종은 매 분기마다 소리를 낸단다.
대성당 남쪽으로 넓게 펼쳐지는 광장이 대성당 광장이다.
발트의 길(Baltic Way)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국의 자유 갈망을 상징하는 발자국.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은 세 나라의 수도를 잇는 620( 675.5?)km 거리에
당시 발트 3국 전체 인구의 1/4인 200만명이 인간 띠를 만들어 참가,
폭력이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으로
구 소련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쳤다.
그날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소련에 편입된지 50주년이 되는 날~.
이 사건으로 발트 3국이 독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단다.
당시 인간 띠 지점에 이런 발자국을 표시.
* 라트비아 리가에서 만난 발트의 길 발자국 : https://blog.daum.net/leeke2000/16509463?category=913865
리투아니아 대통령궁
Vilnius Andrzej Jastrzębiec의 초대 주교의 후원 하에 14세기 후반에 건축되었고,
빌뉴스 주교 관저였단다.
1795년 제정 러시아에 합병된 후 러시아 총독관저로 사용.
파벨1세, 알렉산드르 1세, 나폴레옹 등이 묵어간 곳이기도 하단다.
현재의 신고전주의 건물은 1834년에 개조된 것이란다.
1997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
건물 앞에 # LT 100가 보이는데,
리투아니아 독립 100주년(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단다.
빌뉴스 대학교
1568년 리투아니아의 귀족들이 예수회에 빌뉴스나 카우나스에
고등교육 기관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후 빌뉴스에 인문학, 철학, 신학을 가르치는 빌뉴스 학당이 설립됨.
1570년 빌뉴스 학당 최초의 졸업생 배출.
1575년 리투아니아의 귀족들에 의해 학당 내에 인쇄소 설치.
1579년 폴란드의 국왕 겸 리투아니아의 대공인 스테판 바토리가
빌뉴스 학당을 폴란드의 크라쿠프 학당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킴.
17세기까지 성장, 대홍수로 쇠퇴.
1795년 제3차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
1803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칙령으로 빌뉴스 제국대학교로 명칭 변경.
한때 유럽 최대 규모의 대학교로 여겨짐.
1823년 러시아 제국 황제에 반대하는 비밀 결사 학생들 체포,
1832년 11월 봉기를 계기로 니콜라이 1세가 대학교 폐쇄.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를 공공장송에서 사용하는 것 금지,
대학교의 재산 몰수.
1918년 12월 리투아니아 국가 평의회가 대학교를 재건,
1919년 1월 수업 재개.
적군의 리투아니아 침공으로 수업 중단.
1919년 4월 폴란드가 빌뉴스 지역을 점령.
1919년 8월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에 의해 스테판 바토리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
1920년 10월 12일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건국.
1922년 빌뉴스가 폴란드에 편입되면서 리투아니아인 교수들은
당시 리투아니아의 임시 수도였던 카우나스의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수업 중단.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편입되면서 몇몇 교직원들은 반동분자로 몰려 체포.
1941년 나치 독일의 점령으로 폴란드인을 위한 고등 교육 기관은 폐쇄.
몇몇 폴란드인 교직원들은 자신의 밀실에서 강의와 시험을 진행,
몇몇 폴란드인 학생들은 1944년 새벽의 문 작전에 가담했지만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에 의해 체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다시 개교.
학교 교육을 받은 폴란드인들은 폴란드로 송환,
폴란드인 학생들과 교수들은 폴란드의 대학교로 전학.
1991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자치권을 회복.
워낙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대학교여서 검색한 내용을 주욱 모아 보았다.
우리글과 말 사용을 제한한 일제강점기가 생각났고,
리투아니아의 역사도 참 파란만장하다 싶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곳은 문학의 거리와 성 안나 성당이다.
(2018.8.5.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