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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발트3국+러

[발트 3국+러시아] 14.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숙소 주변 돌아보기 - 빌뉴스 중앙역

리투아니아 빌뉴스(빌니우스) 중앙역

빌뉴스(Vilnius, 리: [ˈvʲɪlʲnʲʊs])

빌니우스라고도 하는데, 리투아니아 발음은 빌뉴스에 가깝다고 한다.
예전에는 빌나로 불렸다고 한다.
리투아니아 대공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이기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
현재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수도,
인구는 54만여 명.
인구의 57.8%가 리투아니아인, 17.8%가 폴란드인, 13.9%가 러시아인, 4.0%가 벨라루스인.
상트페테르부르크∼바르샤바 간을 연결하는 국제철도의 요지,
발트해로부터 항행이 가능.
정밀기계·공작기계·전기제품 등의 공업이 성하단다.

도시의 이름인 빌뉴스는 빌니아강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네.
원래는 발트인 정착촌이었으며 슬라브인들도 거주.
적어도 11세기부터는 유대인들도 거주하기 시작.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323년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Gediminas)가 성채를 세우면서이다.
리투아니아의 대공이었다가 폴란드의 왕을 겸하게 된 브와디스와프 2세는
1387년 빌뉴스에 도시 자치법에 따른 권리를 부여하였다.
당시 빌뉴스의 주민들은 리투아니아인들 외에도 루신인(근대의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독일인, 유대인을 포함.
1503년에서 1522년 사이 빌뉴스는 아홉 개의 성문과 세 개의 성탑을 갖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빌뉴스는 지그문트 2세가 1544년 그곳으로 왕궁을 이전하면서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스테판 바토리는 1579년 빌뉴스 대학교를 설립.
이 대학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학문, 특히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빌뉴스 시는 급속도로 성장하며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폴란드인, 벨라루스인, 유대인, 러시아인, 독일인, 카라이파 유대인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각 시의 발전에 기여.

1655년 러시아군이 빌뉴스를 함락시켜 약탈하고 불태웠고, 주민들은 학살되었다.
그 후 빌뉴스의 성장은 주춤했으나 인구 수는 다시 회복되어
19세기 초에는 북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1795년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 빌뉴스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어 빌나 현의 현도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1915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군이 점령하였다.
독일군이 물러난 후에는 폴란드 자위대, 볼셰비키군, 폴란드군, 다시 소비에트 연방군의 손으로 넘어가며
그 지배자가 여러 번 바뀌었다.

1920년 바르샤바 전투에서 폴란드군에 패한 소련군은 그해 7월 12일 평화 협정을 통해
새로이 독립국으로 재탄생한 리투아니아에 빌뉴스를 넘겨주었다.
10월 9일에는 루찬 젤리고프스키 장군이 이끄는 폴란드군의 리투아니아·벨라루스 사단이
연출된 쿠데타를 통해 빌뉴스를 장악하였다.
빌뉴스 시와 주변 지역은 폴란드의 괴뢰 국가인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이라는 독립된 국가로 선포되었다.
1922년 2월 20일에는 이 지역이 모두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카우나스의 리투아니아 정부는 폴란드가 불법적으로 빌뉴스를 점령하고 합병했다고 보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와의 관계는 1938년까지 단절된 상태로 계속되었다.
그동안 빌뉴스는 다시 빠르게 성장하였다.
당시 빌뉴스의 주민 대다수는 폴란드인과 유대인이었고 리투아니아인들은 소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3% 미만, 1930년대에는 1% 미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소련 불가침조약의 비밀 조항에 따라
소련은 1939년 9월 19일 빌뉴스를 장악하고 합병하였다.
1939년 10월 10일 소련의 최후통첩을 받은 리투아니아는 빌뉴스를 얻는 대신
소련이 리투아니아 각지에 군사 기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였다.
곧 수도를 카우나스에서 빌뉴스로 이전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미처 끝내기도 전인 1940년 6월 소련은 리투아니아 전국을 점령하였다.
새로 설립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된 빌뉴스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졌다.
4만명에 달하는 수가 소련의 비밀 경찰 내무인민위원회에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1941년 6월에는 빌뉴스가 독일군에 함락되어 구시가에는 유대인 주민들을 위한 게토가 두 군데 세워졌다.
이 가운데 작은 게토는 같은 해 10월에 이미 ‘제거’된 상태였고,
두 번째 게토의 주민들은 이른바 악티오넨(독: aktionen)의 일환으로 수시로 학살되었다.
1943년 9월 1일 게토 반란이 실패로 끝난 후 두 번째 게토도 파괴되었다.
265,000명에 달했던 빌뉴스의 유대인 인구의 95% 정도가 독일군과 리투아니아인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많은 수는 구시가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파네리아이(리: Paneriai)에서 죽음을 맞았다.

1944년에는 폴란드 향토군과 소련군이 차례로 빌뉴스를 장악하였다.
빌뉴스는 다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의 수도로 소련에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은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의 폴란드인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농촌의 리투아니아인들과 소련의 타 공화국에서 러시아인들이 도시에 이주하면서
전후 빌뉴스는 주민 구성, 문화, 전통이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리투아니아 공화국을 회복시켰다.
소련은 1991년 1월 9일 군 병력을 투입하여 이에 대응했고
1월 13일에는 국립 라디오·텔레비전 건물과 빌뉴스 텔레비전 철탑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14명이 죽고 700명 이상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소련은 결국 1991년 8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그 후 빌뉴스는 소련 시절의 흔적을 지우고 현대 유럽 도시로 탈바꿈하려 노력하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옛 건물들은 수리되고 네리스 강 북쪽에는 새로운 시 중심가가 될 새 상업 지역이 발달되고 있다.

1997년 4월 1일부터는 빌뉴스 시의 구 시가지 지역과 빌넬레(빌니아) 강의 경계에 있는 지역에 예술가들이 모여서
우주피스 공화국
(Republic of Užupis)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세워, 만우절마다 기념하고 있다.

(위키백과 내용 정리)

 

아침 산책. 숙소에서 빌뉴스 중앙역까지 다녀오기

 


 

(2018.8.5. 일. 여행 3일차)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구름이 살짝 끼었지만

그리 나쁜 날씨는 아니다.

주변은 온통 구시가의 성당들과 주황색 지붕이 보이는 풍경이라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식사 후에 돌아볼 곳들이 대충 바라보이는 셈이다.

붉은색 지붕의 건물들과 많은 성당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중세도시를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와닿았다.

곧 마주하게 되리라...

우선 아침 식사 전에 잠시 빌뉴스 중앙역까지 산책하게 된다.

 

호텔에서 바라본 리투아니아 풍경

빌뉴스 구시가지. 아침에 일어나 호텔 주변을 바라보니 빌뉴스의 역사적인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빌뉴스 구시가지. 네리스 강 건너편으로는 신시가지가 형성된 듯...
빌뉴스 구시가지
빌뉴스 구시가지
숙소를 나와 주변을 산책하기로 한다. 빌뉴스 중앙역이 가까이에 있으니 그곳을 돌아보려고...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숙소 앞에서 본 택시

 

리투아니아 빌뉴스 중앙역으로 가면서 바라본 풍경

맥도널드는 전세계적으로 뻗어 있네...
리투아니아 빌뉴스 철도역 가는 중~
거리의 전차
거리의 버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는 사람들...
버스 두 대를 연결한 버스도 보인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중앙역

리투아니아 빌뉴스 중앙역
빌뉴스 중앙역. 전차가 연신 역 앞을 지나간다.
철도박물관이 있다는 표시도 보이고...
빌뉴스 중앙역사
빌뉴스 중앙역사 한 켠에 전시된 리투아니아의 철도가 뻗은 지역을 나타낸 조형물
빌뉴스 중앙역사
역 플랫폼으로 가 보았다. 바(Peronas)의 거인 조형물이 보여서 한 컷.
리투아니아 각지로 갈 수 있는 기차역
아침 6시 40분을 지나고 있다.
마침 기차가 들어온다.
열차. 2층으로 된 곳이 있어 찍어 봄

 

리투아니아 철도박물관(Lithuanian Railway Museum)

1860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자료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사진, 고대 서적, 장비, 철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엔진, 증기 엔진의 모델뿐만 아니라

전기 기관차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리투아니아 철도박물관
역 한 켠에 길게 전시되고 있는 철도박물관
안에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 휘이이~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열차들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열차들
리투아니아 철도박물관
철도박물관 옆을 돌아서 다시 중앙역사로...

 

 

아침 식사

7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한다.
같이 먹을 과일, 야채류. 식사 후 빌뉴스 구시가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2018.8.5.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