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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제주

[제주 서귀포 대정읍] 다크 투어리즘 2 - 4.3유적지(섯알오름 양민학살터-일본군 탄약고터),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알뜨르비행장 일대를 돌아본 후 다크 투어리즘 다른 구간으로 간다.

섯알오름 양민학살터(섯알오름 옛 일본군 탄약고터),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등을 차례로 돌아보게 된다.

 

작품 '파랑새'. 다시 파랑새 작품 앞으로 돌아와 섯알오름 양민학살터부터 돌아보게 된다.
최평곤 作 '파랑새' 작품 설명
격납고, '파랑새' 작품,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다시 처음 차 댄 위치에...
안내도도 다시 보고...
섯알오름과 셋알오름 지역을 돌아보기로 한다.
제주의 다크 투어리즘 성지 알뜨르비행장 일대 일제 군사시설 안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전쟁이나 테러, 인종 말살, 재난처럼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이다.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 이라고도 한다.

 

제주 지역의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군사 기지화를 위한 군사시설과

제주 4.3 사건의 잔혹한 현장을 들 수 있다.

특히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일대는 제주의 다크 투어리즘 성지로

역사 교육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의 세계적인 장소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들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생체실험실, 고문실, 가스실, 처형대, 화장터와 함께

희생자들의 머리카락과 낡은 신발, 옷가지 등을 담은 거대한 유리관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과 나치의 잔학상을 기록한 영화 관람 등을 통하여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유적지 내 설명 안내에서...)

한 번 더 기억하려고 읽어 본다...

 

알뜨르비행장 일제전적지
알뜨르비행장과 섯알오름 학살터 위치도 다시 확인하고, 섯알오름 학살터로 이동...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한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섯알오름 일제 탄약고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제주도내 최대의 탄약고였던 자리.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 폭파된 곳.

1948-1949년 '제주사건(통칭 4.3 사건)'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 무렵에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의 불법적 예비검속 광풍이 몰아쳐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경찰에 의하여 강제검속을 당하고

예비검속자들 중 약 천명으로 추정되는 제주인들이 무참히 총살되었다고 한다.

이곳 섯알오름 양민학살터에서는 252명이 2차에 걸쳐 총살당하고 암매장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한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설명
섯알오름 양민학살터(옛 일본군 탄약고터)
증거 인멸의 장소를 만난다. 희생자들의 유품을 모아 불태운 장소라고 한다.
증거 인멸의 장소 설명
불법주륙기(不法誅戮記) - 불법으로 없는 죄를 몰아 사람들을 살육한 내역을 새긴 기록

불법주륙기

아래 내용은 불법주륙기에 기록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6~7월, 모슬포 관내 예비검속 344명.

(예비검속: 범죄 혐의자를 미리 잡아 가두는 것...)

1950년 7월, 섯알오름에서 20명 학살. 41명은 정뜨르비행장 학살 추정.

1950년 8월, 섯알오름 191명 학살. (2차에 걸쳐 252명 학살)

1956년 3월, 만벵디(만벵듸) 유족회 60여구 발굴 안장.

1956년 5월, 백조일손 132구 안장하고, 확인된 17구는 타소 안장하였으며,

1961년 6월, 23위를 타소로 강제 이장,

2002년 4월, 강제 이장 23위 중 7위 재이장.

2006~2010년, 섯알오름 학살터 성역화 사업.

2007년 11월, 섯알오름사건 218명 희생자로 결정.

 

명예회복진혼비와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고무신이 놓여 있다.(이곳은 원래 일본군 탄약고터)
風悲日曛沒만벵디諸位鎭魂.  뒤로 보이는 곳이 학살터이고, 시신이 수습되어 백조일손과 만벵디(만벵듸) 묘역에 묻힘.
유해발굴터(원래 일본군의 탄약고터.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 폭파된 곳). 콘크리트는 유해 발굴 시 드러난 탄약고 잔해들
백조일손 유해 발굴(1956.5.18.)터. 149구 발굴. 시신의 뼈들이 얽혀 누구인지 몰라 '백명의 다른 조상, 하나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백조일손이라 함.
만벵디 묘역 유해 발굴(1956.3.29.)터. 62구 발굴. 62구 중 46위가 만벵디 묘역에 안장됨.
무고한 양민들의 한이 서린 이곳 양민학살터. 정자쪽으로 올라가서 학살터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 억새로 덮인 알뜨르비행장 활주로쪽을 바라봄.
상공에서 본 알뜨르비행장 활주로터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 자료 중~) - 길이 1.4km, 폭 70m, 활주로 2개가 있었단다.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설명판
부대에서 차출되어 총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대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앞쪽 큰 웅덩이가 백조일손 묘역(백조일손지묘) 유해 발굴터, 작은 웅덩이가 만벵디 묘역 유해 발굴터
아픈 역사의 현장 섯알오름 양민학살터에서 제주의 또 다른 아픔을 느끼고,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로 간다.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일제의 탄약고터였던 곳, 해방 이후 미군이 폭파한 곳...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대륙 침략 발판 기지로,

태평양전쟁 때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의 방패막이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예비검속 양민학살터로~

이중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던 곳이었기에

무거운 걸음으로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올레길 10코스와 같이 하는 길이다.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고사포진지

국가등록문화재 제316호.

이 시설물은 당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 알뜨르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다.

1945년 무렵에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구축된 고사포 진지로,

5기의 고사포 진지 중 2기는 완공되고, 나머지 3기는 미완공된 상태이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군 군사 시설의 하나로

태평양전쟁 말기에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 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문화재청)

 

일제 고사포진지 - 일제 강점기에 미군 항공기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 시설

일본군은 적기의 공습에 대비하여 셋알오름에 고사포진지를 구축했다.

고사포는 항공기를 사격하는 데 쓰는 앙각(仰角)이 큰 포를 말하는데,

달리 고각포라고도 한단다.

1937년 중일전쟁 초기에 구축된 고사포진지~

이후 1940년대 중반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롭게 정비.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 일제 침략의 저항 기지 증거...

고사포는 360도 회전 가능하여 어느 곳의 적이라도 조준할 수 있다.

알뜨르비행장을 공격하는 적기들이 원거리에 있을 때는 40mm 대공포를 이용했고,

근거리로 접어들면 별도의 기관포 부대를 이용해서 공격했다고 한다.

 

아픈 역사의 흔적 일제 고사포진지를 지나 걸음을 이어간다. 가파도와 마라도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런 치욕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름답게 만 보이는 섬 제주~~~
산방산. 한라산도 보인다.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로 가는 길은 올레 10코스에서 살짝 산을 내려가야 한다. 찾기가 살짝 어려워 폰 GPS를 켠다.

 

제주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국가등록문화재 제310호.

1943년 무렵 건립.
치밀한 계획 아래 구축된 이 시설물은

제주도 내 동굴 진지 가운데 동공의 크기가 가장 크다.

형태는 격자 미로형으로 출입구가 6곳이며,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부터 전투사령실, 병사(兵舍),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 수리 공장, 어뢰 조정고, 통신실 등

중요 군사 시설을 지하에 감추기 위한 용도로 구축되었다.

일제 침략상을 보여주는 전쟁 유적이자,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화재청)

 

산을 내려가 동굴진지를 찾아간다. 찾기 어려웠지만 무사히 찾아서 동굴 1로... 길은 여러 갈래 미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네. 3~5 동굴은 출입금지.
알뜨르비행장 군사시설 배치 현황도(셋알오름 주변의 일제침략 근거지.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 자료)

셋알오름의 일제 동굴진지는 총연장 1.35km라고 한다.

폭 4m, 높이 3m나 되니 트럭같은 중장비도 다닐 정도.

제주도민과 육지에서 징용된 분들이 죽을 고생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미로같이 생겼는데, 위의 배치도에서 보듯이 전체가 연결되도록 시도했던 듯...

완공 전에 일본 패망.

완공이 되면 비행장에서 쓰는 물자를 빠르게 운송하거나

다른 군수품들을 빠르게 운송하는 지하 통로로 쓰려고 했을 듯하단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 본토로 전선이 이동되어

제주 상공에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의 출현이 잦아지자

알뜨르비행장의 무기와 병력을 공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건설한 듯.

유사 시 적재적소에 안전하게 투입하는 일이 중요해져서

그 희생양으로 셋알오름 지역이 선택되었단다.

 

섯알오름, 셋알오름~?

그 이름이 궁금하다.

제주에서는 나지막한 구릉 형태의 크기가 작은 오름을 알오름이라 부른단다.

송악산 옆으로 나란히 있는 세 개의 작은 오름들 중

동쪽의 것은 동알오름, 가운데 것은 셋알오름, 서쪽의 것은 섯알오름이란다.

참 재미있는 이름이다.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입구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 자료. 카메라로 찍었는데, 사진이 사라져서...)
동굴진지 입구가 몇 개 있으나 그 중 동굴 1입구로 들어가 본다. 안전을 위해 철골 구조물을 세워 놓았다.
남편은 가기 싫다며 강 건너 불구경. 올 생각을 안 한다.
폰 불빛에 의존하며 조금 들어가니 다른 쪽으로도 동굴이 뚫린 게 보인다. 몸이 오싹오싹...
내부 가운데는 군데군데 격자로 미로처럼 얽힌 굴들이 이처럼 이어져 있다고 한다.
조금만 더 가 보자. 그러나 으으~ 전기도 없고 안내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 너무 무서워서 결국 돌아나오게 된다.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안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누가 뒤에서 끌어당기는 것 같이 무서운 느낌~ 얼른 도망가자!

결7호 작전으로 일본 본토는 살리고 제주를 방패막이로 삼은 그 치욕의 흔적들~

분하고 아픈 마음 금할 수 없다.

앞으로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노력이 더 필요하리라...

 

* 결호 작전

- 1945년 2월, 패색이 짙어진 일본이 본토 방어를 위한 비밀 작전에 돌입

-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 작전

- 7개 길목을 사수해 연합군으로부터 본토를 지킨다는 내용(1~7호 작전)

- 일본 본토가 아닌 곳이 한 곳 있는데, 그곳이 제주(결7호 작전)

 

오싹했던 동굴진지에서 빠져나오니 푸르른 들판도 보이고 바다도 보여 살 것 같다.
모슬봉을 바라보며 걷는 중... 관광화된 입장지가 아니라 제대로 돌아볼 루트가 없으니 무서워서 2입구로 들어가는 것은 포기.
주차해둔 곳('파랑새' 작품 있는 곳)으로 이동 중~ 유채가 보여서 한 장. 뒤 위쪽 너머로 섯알오름 학살터
다시 주차해 둔 곳에...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산방산 아래 유채밭에는 유채가 한창이었다.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본~

알뜨르를 비롯한 제주 전역을 요새화하고 연합군과의 일전을 준비했지만

일본의 예상은 빗나갔다.

연합군이 제주 대신 오키나와를 점령했으며(3개월 간의 오키나와 전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희생자 15,000명, 일본군 희생자 65,000명,

오키나와 주민 희생자 120,000명(당시 오키나와현 인구가 약 45만명).

조선인 징용자도10,000명 희생된 것으로 추정.

몇년 전 오키나와를 여행했을 때 들은 이야기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얘기~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유지되던 류큐왕국이

1879년에 일본에 강제병합되었는 데다가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에 의한 주민학살이나 집단자결이 자행되어

(적을 막지 못 하면 가족도 죽이고 모두 자결하라고 함. 반대하면 죽임 당함.)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니

오키나와 주민으로서는 일본에 대해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질 듯......

만약 일본의 예상대로 미군이 제주에 들어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미국과 일본의 전투가 제주에서 벌어졌을 것이고,

오키나와 전투가 말해주듯 그 희생자는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늘은 3.1절~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독립운동가들과 백성들~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치던 만세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무게를 삭이고 삭이며

나라 위해 참아내셨던 그분들의 희생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일제의 만행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제주의 여러 유적지에서

힘이 없어 당하기만 했던 지난 날의 아픔을 생각해 본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길 바라는 마음......

 

(방문일: 2019.2.19.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