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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예천] 예천 권씨 유적들 - 초간종택, 병암정

[경북 예천] 예천 권씨 유적들 - 초간종택, 병암정


<2015.5.24~25 문경 예천 여행>

* 2015.5.24(일) : 문경 김룡사와 대승사, 문경 대하리 소나무,

내화리 삼층석탑, 경천호, 오미자 특구,

그리고 예천 용문사. 예천 초간정 원림, 금당실 마을,

예천권씨 초간종택, 병암정, 가오실공원, 회룡포, 용궁

* 2015.5.25(월. 부처님오신날) : 문경 봉암사



금곡리의 금당실 마을을 돌아  

죽림리의 초간종택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초간종택 입구에서 죽림리 향나무를 먼저 만났다.



평소 동네 어른들의 쉼터가 되는 모양인지

주변에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예천죽림리향나무 (醴泉竹林里香木)


경상북도 기념물 제110호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도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예천 죽림리 향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0m, 둘레 0.6m로 울향(鬱香)나무라고 불리고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권오상이라는 사람이 울릉도로 유배당했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 온 향나무로

이 마을을 개척할 때 연못가에 심었다고 해서

울향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천 죽림리 향나무는

오랜 세월 대수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지내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예천 죽림리 향나무

이 향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0m, 둘레 0.6m로 울향(鬱香)나무라고 불린단다.



초간종택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죽림리 향나무


초간종택 입구의 죽림리 향나무를 지나면 바로 종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종택 앞으로 문화해설사의 집도 보인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01호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醴泉 醴泉權氏 草澗公派 宗宅)


낮은 뒷동산을 배경삼아 경사진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은 조선 전기의 기와집이다.

현 소유자의 13대조 때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건축이다.

오른쪽 앞으로 돌출한 사랑채(보물 제457호)는

높은 기단 위에 짓고 주위에 난간을 돌려 누집모양으로 꾸몄다.

왼쪽으로 후퇴시켜 'ㄱ'자로 지은 안채도 2단으로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지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 여러단의 계단을 설치하여 건물 전체가 높고 웅장해 보인다.

안채의 오른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자리잡고 있으며,

안사랑채의 마루쪽으로는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당은 안채 오른쪽 뒷편에 있다.

사당의 문틀 중앙에 수직으로 중간설주가 서 있는데,

그 단면이 T자형으로 문받이를 겸하고 있으며

윗쪽으로 밀어올려서 떼어낼 수도 있게 되어있다.

출입문에 중간설주가 있는 예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 전기의 우수한 주택으로,

조선 시대 주택의 구조와 양식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예천권씨종택(醴泉權氏宗宅)'이었으나,

초간 권문해(權文海)는 예천권씨 시조의 5세손 중 제일 끝집인 오상공(五常公)의 장손임에 따라

'예천권씨종택'으로 유지할 경우 대외적으로 예천권씨 계보상 제일 큰집의 종택으로 오인될 수 있어,

예천권씨 종친회의 명칭변경 요청과 소유자의 동의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문화재청)


잔디밭쪽으로 와서 가려진 종택의 외부 모습을 담아 보았다.

가장 왼쪽이 백승각, 가운데가 초간종택 별당,

별당 뒤로는 안채, 가장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사당.

백승각은 종가의 서고이다.


백승각(百承閣)


초간종가에 있는 서고인 백승각(百承閣)은 백세를 이어간다는 뜻.

백승각에는 예천 권씨 초간 문중의 여러 가지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지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목판, <초간일기>.

초간의 아들인 죽소 권별(權鼈)이 저술한 <해동잡록>과 <죽소일기> 등...

<해동잡록>은 국내 최초의 왕조별 성씨별 인물사전으로 알려져 있다.

<죽소일기>는 권별이 직접 쓴 1책의 일기.


백승각의 백승각기


보물 제878호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 (大東韻府群玉木板 및 稿本)


이것은 선조 22년(1589)에 권문해(1534∼1591)가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대동운부군옥』이다.

권문해는 1560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직으로 정언, 장령, 외직으로

안동과 대구의 부사와 공주목사 등을 지냈고,

후에 승지의 벼슬을 지냈다.

퇴계 이황에게서 학문을 배워 이름을 날렸고,

특히 역사에 정통하였다.

이 원고본은 책판 667판과 고본 3종 27책이다. 이

 중 책판은 초판본의 판목이 남아있는 것이며,

고본은 체재와 형식 등이 다소 다른 미완질의 3종 27책이다.

『대동운부군옥』은 중국 송나라 음시부의 『운부군옥』의 체제를 본따서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예술, 풍속, 인물 등의 분야에서

조선 명종때까지의 모든 사항을 20권 20책으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판은 순조∼헌종 때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임진왜란 이전 개인이 엮은 저서로서는 양적 또는 질적인 면으로 가장 우수한 대작이며,

그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고본은 비록 빠진 부분이 있어 완전하지는 못하나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하는데 바탕이 되는 자료인 점과

오랜 4백여년 전해진 고본이란 점에서 매우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보물 제879호 권문해 초간일기 (權文海 草澗日記)


조선 명종∼선조대의 학자이며,

관료인 권문해(1534∼1591)가 쓴 자필일기이다.

권문해는 1560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직으로 정언, 장령, 외직으로

안동과 대구의 부사와 공주목사 등을 지냈고,

후에 승지의 벼슬을 지냈다.

퇴계 이황에게서 학문을 배워 이름을 날렸고,

특히 역사에 정통하였다.

지방관으로 있는 동안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며,

학문에도 밝아『대동운부군옥』을 남겼다.

이 일기는 전 3책으로『선조일록』117장,『초간일기』90장,『신란일기』34장이다.

임진왜란 이전 관료가 쓴 일기로서

다 타고 없어진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적 자료를 보완하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이러한 것으로는 권벌의『충재일기』, 유희춘의『미암일기』가 있는데,

각기『실록』편찬자료로 채용되기도 하였다.

이 일기는 저자인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상세히 적고 있으므로

이를 통한 사대부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중앙의 관료직과 지방관을 지내면서

직무수행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다룬 일기인만큼

조정에서 일어난 일은 물론 지방관아의 기능과 관리들의 생활,

당쟁관련 인물 및 정치, 국방, 사회, 교육, 문화, 지리 등

전반에 걸쳐 살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자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 예천권씨종가문적 (醴泉權氏宗家文籍)


이 문적은 예천 권씨 종택 안의 백승각(百承閣)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이다.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죽소 권별(權鼈,1589∼1671)이 저술한 것으로

국내 최초의 왕조별, 인물사전류인『해동잡록』과『죽소일기』등 2가지이다.

『죽소일기』는 권별이 직접 쓴 본으로 1책이며,

1625년부터 1626년까지의 일기이다.

『해동잡록』은 인물을 왕조별, 성씨별로 분류하고

그들의 학문과 설화를 중심으로 14권 14책으로 엮은 문헌설화집이다.

최초의 인물사전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지는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초간종택 별당


보물 제457호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 (醴泉權氏 草澗宗宅 別堂)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의 할아버지

권오상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는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대청마루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온돌방은 다시 2개로 나뉘어 있다.

대청 앞면은 문짝 없이 열려 있지만

옆면과 뒷면은 2짝 널문을 달았으며

집 주위로 난간을 돌려 누(樓)집과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

겉모습은 대체로 소박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나

안쪽은 천장 부분에 설치한 여러 재료들을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호화롭게 꾸미고 있다.

별당 뒤 서고에는 권문해 선생이 쓴『대동운부군옥(大東韻部群玉)』의 판목 677매와

14대째 전하는 옥피리,『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전질 120권을 보존하고 있다.

일반 주택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건물 안쪽을 장식하여 꾸민

수법이 뛰어난 조선시대 별당 건축이다.

(출처 : 문화재청)


초간종택과 별당


초간종택 별당 좌측 모습


백승각과 초간종택 별당 


 초간종택 별당 우측 모습

사진 오른쪽 끝 계단을 오르면 사당이다.

가운데 건물들은 종택 안채.


초간종택 별당 앞 모습


그 옛날의 학자는 갔어도 그 학문의 향기는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니 그 아니 다행인가!

조금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지 못해 아쉬운 감은 있었으나

계속 머물 수는 없는 일인지라

다음 목적지인 병암정을 향해 출발~~~




예천 권씨 병암정 및 별묘

병암정과 별묘


예천권씨병암정및별묘 (醴泉權氏屛巖亭및別廟)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3호


병암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정자들 동쪽의 병풍처럼 생긴 큰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건물은 예천 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권원하(權元河)와 관련이 있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정자의 우측에 있는 별묘(別廟)는 3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원래는 인산서원(仁山書院)의 사당이었으나

서원이 훼철(毁撤)되자 사당만 이곳으로 이건하여

권맹손, 권오기, 권오복, 권용을 봉사하는 별묘로 사용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병암정으로 오르는 길, 게단 위 오른쪽은 별묘


별묘

별묘(別廟)는 3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원래는 인산서원(仁山書院)의 사당이었으나

서원이 훼철되자 사당만 이곳으로 이건하여

권맹손, 권오기, 권오복, 권용을 봉사하는 별묘로 사용하고 있다.


별묘 너머로 병암정이 보이는 풍경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내기를 마친 논이

유유자적 한가로운 모습으로 반긴다.


별묘를 나와 병암정으로 향하였다.

병암정은 명성황후의 측근이었던 양주대감 이유인이

고종과 명성황후를 그리며 지었다고 한다.

이후에 예천 권씨 문중에서 사들였다고 한다.


병암정

병암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정자들 동쪽의 병풍처럼 생긴 큰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건물은 예천 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권원하(權元河)와 관련이 있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병암정' 글씨는 초정 권창륜이 쓴 것이라고 한다.


조선 말기 이유인이 낙향해 옥소정이라는 이름으로 건축했고

지금의 것은 예천 권씨 문중의 병암정.


병암정에서 아래 연못 쪽을 내려다보며...


아래로 내려와 연못가를 거닐며...






병암정과 연못

전에 방영된 드라마 ‘황진이’의 중요 배경이다.


병풍을 닮은 바위 절벽 위에 있어 병암정이라는...


전에는 하천이었다는 곳인데,

지금은 연못이 되었단다.


병암정의 주인이 변하고, 강산도 변하고,...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을 때는 또 어떤 모습으로 반겨줄지~~~



2015.5.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