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북 남원] 소리의 고장 남원 2 -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 생가

 [전북 남원] 소리의 고장 남원 2 -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 생가


황산대첩비지 - 송흥록 박초월 생가 - 국악의 성지 - 실상사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 생가.

이곳에 살고 있던 10가구의 주민을 이주시키고

그 시대의 초가 형태로 복원했다고 한다(2000년).




황산대첩비지를 나와 바로 오른쪽의 비전마을로 이동하고 있다.




비전마을.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 일부구간이다.



 

비전마을에 복원된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 생가 입구.


입구의 설명을 아래에 옮겨본다.


송흥록(1780년경~1863년경)은 12세에 월광선사에게 공부.

철종10년(1859년) 정3품 통정대부 벼슬.

계면조, 진양조 완성. 판소리의 중시조. 가왕.

춘향가의 옥중가 중 귀곡성이 장기.

제자 박만순과 동생 광록, 광록의 아들 우룡,

우룡의 아들 만갑에 이르기까지 송문일가(宋門一家)를 이룸.


박초월(1916~1983)은 12세에 김정문에게 흥부가를,

송만갑에게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를 전수하였고,

한국국악예술학교 설립,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수궁가 보유자로 지정됨.

1983년 별세. 경기 양주 신세계공원 안장.

2000년 남원 운봉으로 이장.




문을 들어서면 곧은 길 끝에 창을 하는 가왕이 보이고

왼쪽으로 둥근 조형물이 놓여 있다.






 

왼쪽으로 승흥록 생가, 오른쪽으로 박초월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가왕 송흥록 생가지라는 설명인데, 잘 보이지 않는다.
 

 

 

가왕 송흥록과 생가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송흥록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송흥록의 소리는 동생인 광록과 수제자 박만순에게 전승되었고,

광록의 아들인 우룡, 손자인 만갑에도 이어졌다.

만갑은 박초월에게 판소리를 전수하기도 한 분...

 

 

 


송흥록(宋興祿. 생몰 미상)

조선 말기의 판소리 명창.

판소리의 중시조 또는 가왕(歌王)으로 꼽히고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리에서 태어났으며,

판소리의 진양조를 창시한 김성옥(金成玉)은 그의 매부이고,

광록(光祿)은 동생이다.

또한 동편제 판소리를 확립하여 동편제 소리의 시조로도 꼽힌다.

그의 소리는 동생 광록과 수제자 박만순(朴萬順)에게 전승되었다.

19세기 판소리 전기 8명창 중의 한 사람이며 판소리의 중시조로서

가왕(歌王)으로 일컬어졌으며,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송흥록이 판소리사에 공헌한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진양조 장단을 완성한 것이며,

두 번째는 산유화조를 도입한 것이다.

산유화조는 경상도 민요의 선율형이다.

송흥록은 진양조의 완성을 통해 양반들의 음악적 요소를 판소리 속에 도입하고,

산유화조의 개발을 통해 다른 지역의 음악적 요소를 판소리 속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가 계급적,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민족의 음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송흥록을 판소리의 중시조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판소리사에 대한 공헌 때문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모란이 곱게 피어서 객을 맞는다...

이웃한 박초월 생가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박초월(1916~1983)


본명은 삼순(三順). 아호는 미산(眉山).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전북 남원시 운봉면 갈계리에서 성장하였다.

김정문(金正文)·송만갑(宋萬甲)에게서 판소리를 배웠고,

임방울(林芳蔚)·정광수(丁珖秀)에게서도 배웠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좋은 목소리에 성량도 풍부하여

일찍부터 이름을 떨쳤다.

 1930년 전주에서의 전국남녀명창대회에서 1등을 한 뒤

여러 음반회사와 계약을 맺고

「흥보가」·「심청가」·「춘향가」등을 취입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초월 생가



 

가수 조관우는 박초월의 손자.

조관우의 부친은 국악인 조통달로

박초월의 수제자라고 한다.

조통달은 나중에 박초월의 양아들이 됨.

 



아직도 명자나무꽃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가왕 송흥록과 박초월 생가



람천 둑방에 올라 바라본 송흥록과 박초월 생가 구역



송흥록 박초월 생가 앞 람천 둑방.

벚꽃이 필 때면 이 둑방도 벚꽃이 흐드러지리라...

생가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이 지리산 둘레길을 걷겠지...



람천 둑방에 비전마을의 유래 설명판이 붙어 있어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황산대첩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될 것이고

송흥록, 송만갑, 박초월 등의 판소리 명창들이

태어나거나 자란 훌륭한 고장임을 알게 될 것 같다.


 

생가 앞리산 둘레길 일부 구간.

지리산 둘레길 표시가 되어 있고,

저쪽으로 정자가 보인다.



 

정자에는 송흥록의 단장곡 '맹렬아 잘 가거라'가 걸려 있다.



 

송흥록과 맹렬의 사랑 이야기


맹렬은 대구 감영 소속의 관기였다고 하는데,

10년 소리 공부를 마친 송흥록의 명성으로

대구 감영에서 송흥록을 초청하게 되어 만나게 됐다고 한다.

 소리판에서 모든 이들이 송흥록의 소리에 감탄했는데,

 맹렬이라는 기생만이 칭찬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맹렬은 당시 경상감사의 수청기생었는데,

 절색에다가 가무가 뛰어났다고 한다.

송흥록이 맹렬을 찾아가 그녀를 만날 수 있었지만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냉혹한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송흥록은 고향(전라도 운봉)으로 돌아와 다시 소리 공부를 하게 된다.

목이 붓고, 잠기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 끝에

결국 득음을 하게 된다.

송흥록은 다시 대구에서 소리를 할 기회를 만들었고,

맹렬이 송흥록을 찾게 된다.

둘은 부부의 연을 맺지만 부부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단다.

둘의 자존심 싸움 때문이었으리라...

어느 날 맹렬은 집을 나가려하게 되고~

송흥록은 자신의 성품으로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로 터져 나오니

이것이 바로 '단장곡(斷腸曲)'이라고 한다.


맹렬아 잘 가거라.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잘 가거라.
날 버리고 가랴거든 정마저 가려무나

몸은 가고 정만 남아

쓸쓸한 빈 방안에 애를 태우니 병 안될소냐.

 

이 소리를 들은 맹렬이 다시 들어와 사죄하고 화해했다 하는데,

송흥록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 소리가

진양조 장단을 완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송흥록과 맹렬은 다시 불화에 시달려 헤어진다는...



영화 '도리화가'를 보고

동리 신재효와 제자 진채선의 사랑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일었었는데,

송흥록과 맹렬의 사랑은 또다른 장르로 다가온다...

 


2016.05.06(금)

 

<비전마을 송흥록 박초월 생가>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7(화수리 338)

전화번호 : 063-625-6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