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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북 남원] 소리의 고장 남원 5 -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 실상사 2

[전북 남원] 소리의 고장 남원 5 -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 실상사 2


황산대첩비지 - 송흥록 박초월 생가 - 국악의 성지 - 실상사



 

구산선문

 

신라 말 당나라 유학승들에 의해 전래된 선종은
신라말 고려초의 사회·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불교의 새로운 사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 들어온 선종 사상을 초석으로 아홉개의 산문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산선문이다.

구산선문은 골품제도의 중심인 귀족 중심의 화엄 사상에서 벗어나

신분의 차별을 부정하고

백성들은 누구나 참선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간 평등을 강조함으로써

왕권으로부터 소외된 지방 호족 세력과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실상산문이 개설된 828년(신라 흥덕왕 3)부터

마지막 수미산문이 만들어진 932년(고려 태조 15)까지는

실로 104년이란 긴 세월...

현재 우리 불교의 종가를 이루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맥도

바로 이 구산선문에서부터 비롯되었단다. 

 

 

실상산문(實相山門, 남원 실상사)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된 것이 실상산문.

개조 홍척스님(?∼828)은 중국 서당의 법을 얻어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해 828년에 산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삼층석탑(보물) 2기와 석등(보물),

창건주의 유골을 모신 증각대사응료탑(보물)과 탑비(보물)가 있는 곳...

실상사는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보물을 가진 절로 유명하다.  


보광전 구역을 돌아본 후 왼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극락전 구역으로 간다.

 

 
 

극락전으로 가기 위해 옛 해우소 옆을 지나며...




옛 해우소




이곳에도 지리산프로젝트가...

소리 들음...



스님들의 수행 공간과 주거 공간




지리산을 바라보며...



극락전 구역



극락전 앞에 세워져 있는 증각대사(홍척스님)탑비.

홍척스님은 실상사를 처음 세운 분으로

사후에 임금이 증각이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현재 비몸은 없어지고

비 머리와 받침돌만 남아 있다.





보물  제39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 (南原 實相寺 證覺大師塔碑)


증각대사는 일명 홍척국사 ·남한조사로 불리며,

통일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흥덕왕 1년(826)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형상화 하지않고

거북의 머리를 그대로 충실히 따랐다.

머릿돌은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조각을 보여주는데,

앞면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비명칭을 새겨 두었다.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의 신라 무열왕릉비와 같이 한국 석비의 고전적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사의 묘탑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 제38호)은

탑비의 뒤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


당나라에 다녀온 홍척스님은 선종을 널리 전파하였다.

실상산문의 개창자 홍척스님의 비몸은 어디로 갔을까

아쉬워하며...








극락전 왼쪽 담장 밖에 세워져 있는

보물 제38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 (南原 實相寺 證覺大師塔)


홍척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팔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탑이다.

홍척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시호는 ‘증각’이다.

탑은 기단(基壇)은 팔각형의 석재를 여러층 쌓은 뒤

연꽃이 피어있는 모양의 돌을 올렸다.

각 면의 조각들은 닳아 없어져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고

윗받침돌의 연꽃잎만이 뚜렷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는데 낮은 편이다.

몸돌은 기둥 모양을 새겨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아치형의 문(門)을 새겼다.

그곳에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목조건축의 처마선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자료)




보물 제38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 (南原 實相寺 證覺大師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실상사 극락전

 

지리산에 위치한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이 처음 지은 절이다.

 

당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홍척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다시 지어졌다.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순조 31년(1831)에 지어졌다고 한다.

(문화재청 자료)



어느 조각연구회에서...

연꽃봉오리                                             활짝 핀 연꽃                                                 연밥

 

 


어느 조각연구회에서 극락전 마당에...





 


극락전 부처님 뒤에 광배 프로젝트 설치...



극락전

 


 

극락전 바깥 오른쪽 구역.

수철화상탑 정밀안전진단 중이라는 안내....







보물 제33호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 (南原 實相寺 秀澈和尙塔)


수철화상은 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번째 창건주가 되었다.

진성여왕 7년(893)에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하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내리었다.
(문화재청 자료)




수철화상탑 아래 기단 부분에 정밀진단 표시가 보인다.

오래도록 잘 보존이 되어야겠는데...







수철화상은 실상사 개창자인 홍척스님(증각대사)의 제자로

실상사를 유명사찰로 일으키는데 공헌한 분이다.

현재 비문의 글자는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물 제34호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南原 實相寺 秀澈和尙塔碑)


머릿돌에는 ‘능가보월탑비’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수철화상의 출생에서 입적까지의 행적과

사리탑을 세우게 된 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실상사에서 입적하였으나 심원사의 승려이었기 때문에

비문에는 ‘심원사수철화상’으로 적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보물 제34호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뒷면                



수철화상 탑비 옆에서 극락전을 바라보며...



신라 말, 신분의 차별을 떠나

백성들 누구나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간 평등의 정신을 내세웠던  

구산선문의 새로운 사상...

실상산문은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된 산문이었다.

긴 세월 흘렀으나

홍척스님과 수철화상의 승탑과 비가 남아

옛 흔적을 더듬게 한다.


2016.05.06(금)


 

<실상사 극락전>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