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봉화] 봉화 기행 8 - 억지 춘양에서 만난 문화재들2(권진사댁, 서동리 삼층석탑)

[경북 봉화] 봉화 기행 8 - 억지 춘양에서 만난 문화재들2

(권진사댁, 서동리 삼층석탑)


<봉화기행 여정>

<봉화읍> 닭실마을(청암정, 충재박물관)-후토스 촬영지

-석천계곡(석천정사)-삼계서원-유기마을

<물야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계서당(이몽룡 생가)-축서사-오전약수

<춘양면> 백두대간수목원 주변-각화사-(동궁식당-석식)-(춘양-1박)

-(강남회관-조식)-춘양시장-한수정-만산고택-권진사댁-서동리 삼층석탑

<소천면>분천 산타마을




2015.12. 26(토)


만산고택을 거쳐 권진사댁으로 이동하였다.

만산고택과 함께 춘양에 있는 대표 고택이니...

권진사댁을 돌아본 후에는 서동리 삼층석탑을 보게 된다.



봉화 의양리 권진사댁 (奉花 宜陽里 權進士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81호


성암 권철연(1874∼1951)이 살던 집으로

건너마을 운곡에 살던 그의 아버지가 1880년경 이곳에 지은 건물이다.

선생은 조선 고종 17년(1880)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생원이 되었으며,

문인명사와 애국지사들이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건물은 만성봉을 뒤로 하고 동향하고 있으며,

一자형 행랑채 중앙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다.

왼쪽에는 3칸 서당이 있고 행랑채 맞은편에 ㅁ자형 정침이 있다.

정침은 앞면 7칸·옆면 8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쪽 허리 부분에 토담을 쌓아 내외마당으로 공간구분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봉화 의양리 권진사댁은 춘양목으로 지은 66칸의 구조를 자랑한다.







솟을대문




권진사댁 사랑채와 사랑마당.

건물은 만성봉을 뒤로 하고 동향 구조를 보인다. 

당당한 사랑채와 넓은 사랑마당, 뒷산의 금강송이

옥죄었던 숨통을 트게 한다.

금강소나무 숲은 산책 코스로도 좋을 것 같다.


뒷산의 소나무를 보니 강릉 선교장 생각이 난다.

정말 멋진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하는 선교장 아닌가!

그보다는 못하지만 권진사댁 뒷산의 소나무도 나름 멋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3칸 짜리 서실이 있다.




독립운동을 한 권상경 표창장이

서실 앞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분명 자랑스러운 일일 것이다.


권상경은 이곳에 살던 권철연의 장남이자

청암 권동보(권벌의 장자)의 후손으로

현 종손의 조부라고 하신다.

권상경은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아버지 권철연의 영향을 받아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하며

그 공을 인정받아 2005년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고 한다.

 


 

솟을대문과 행랑채





정침은 앞면 7칸·옆면 8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쪽 허리 부분에 토담을 쌓아 내외마당으로 공간구분을 하고 있다.



안채

이 집 안주인은 서울 분이신 모양이었다.

고택을 그냥 묵힐 수 없어 도시 생활을 접고

여기에 들어오신 모양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마침 고택에서 하루 묵은 젊은 부부가

이 방에서 나왔다.

겨울이라 고택체험이 없는 줄 알았더니

찾는 사람에겐 방을 내어 주는 모양이었다.


청송의 송소고택에서 하루 잔 경험이 있다.

뜨끈하게 군불을 때 주어서 좋았고,

아침 밥상을 거나하게 받아서 좋았던 기억.
가을날이라 감도 따 먹고,

사과밭에서 사과따기체험도 해서 더 기억에 남는 모양...

언제 또 고택체험을 한 번 해 보고 싶다.




안채.

이쪽 말고도 반대편에도 문이 있다.

안주인은 우리에게 그곳도 보여주셨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짓는 담


 

사랑채


 

바깥주인의 위엄이 느껴지는 듯~

 

 


건물의 가운데에 안채로 통하는 문이 있다.

안주인이 알려주시던 그 문이다.

예전에는 안채 드나드는 것도 남녀 구분이 되었다나...


<봉화 의양리 권진사댁>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35





권진사댁을 나와 발걸음 한 곳은 춘양중학교...

현재의 춘양중학교

옛 남화사 옛터라고 전해지는 곳...



봉화 서동리 동ㆍ서 삼층석탑 (奉化 西洞里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52호

춘양중학교 안에 동·서로 마주 서있는 2기의 탑으로

쌍탑 형식을 띤다.

이 곳은 신라의 옛 사찰인 남화사의 옛터로 알려져 있는데,

신라 문무왕 16년(675)에 원효대사가

여기서 서북쪽으로 6㎞ 정도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이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 모두 같은 양식이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층으로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어

뚜렷한 체감율을 보인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대기의 머리장식은 서쪽 탑에만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남아있을 뿐이며,

동쪽 탑은 모두 없어졌다.

기단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년 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비례와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자료)

 



남화사의 옛터에 세워져 있는 서동리 삼층석탑.

각화산 각화사는 남화사를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각화사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쌍탑이 있을 정도라면 남화사도 꽤 번성한 사찰이었을 텐데,

원효대사는 왜 각화사로 이전하였을까~

이곳은 무슨 연유로 폐사되었을까~~~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




봉화 서동리 동ㆍ서 삼층석탑


 

동서탑을 한 바퀴 휭하니 돌아본다.



기단은 아래·위층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

위층으로 갈수록 뚜렷하게 규모가 줄어드는 형태.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동탑의 높이 3.9m, 서탑의 높이 3.97m


 

기단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년 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단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동리 삼층석탑.

 

남화사 옛터에 있는 서동리 삼층석탑을 마지막으로 춘양 일정을 마쳤다.

이어서 소천면의 분천 산타마을로 향하게 된다. 


< 봉화 서동리 동ㆍ서 삼층석탑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원촌길 8-14 (서동리)(춘양중학교 내)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전화번호 : 054-679-6114



2015.12.2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