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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봉화] 봉화 기행 7 - 억지 춘양에서 만난 문화재들1(한수정, 만산고택)

[경북 봉화] 봉화 기행 7 - 억지 춘양에서 만난 문화재들1

(한수정, 만산고택)


<봉화기행 여정>

<봉화읍> 닭실마을(청암정, 충재박물관)-후토스 촬영지

-석천계곡(석천정사)-삼계서원-유기마을

<물야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계서당(이몽룡 생가)-축서사-오전약수

<춘양면> 백두대간수목원 주변-각화사-(동궁식당-석식)-(춘양-1박)

-(강남회관-조식)-춘양시장-한수정-만산고택-권진사댁-서동리 삼층석탑

<소천면>분천 산타마을

 

 

2015.12.26(토)

 

춘양시장을 돌아본 후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춘양의 몇 곳을 더 돌아보았다.

장터 가까운 곳에 한수정이 있고,

만산고택, 권진사댁, 서동리 삼층석탑까지

모두 인접해 있어서 차례로 돌아보았다.



봉화 한수정

한수정은 충재 권벌 관련 정자이다.

보호수 느티나무가 오랜 역사의 흔적을 알리며

우람하게 서 있다.



봉화한수정 (奉化寒水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조선 선조 31년(1608) 동촌마을에 세워진 정자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충재 권벌(1478∼1548) 선생이 세운

거연헌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없어지자

그의 손자인 권래가 이 정자를 세웠다.

권벌은 중종(재위 1505∼1544) 때 사람으로

예조판서 등을 지내고 죽은 후에 좌의정에 올랐다.

건물은 T자형 평면으로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에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과

바닥을 한단 높여 온돌 2칸과 사방에 마루를 둔 건물이 붙어있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하여

 ‘한수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며,

3면에 연못이 둘러져 있고

주위에 수목이 정자와 잘 어우러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



쓸쓸함이 감도는 겨울날의 한수정은

빗장을 채우고 제 모습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충재 권벌 선생이 세운 거연헌이라는 건물이 있던 자리.

화재로 없어지자 그의 손자인 권래가 이 정자를 세웠단다.

석천 권래는 석천계곡의 석천정사를 지은 이...





담 안으로 정자 외에 연못, 넓은 바위, 회나무가 있다.

봉화 닭실마을 주변에만 권벌 관련 유적이 있는 줄 알았더니

춘양에도 권벌 관련 유적이 있구나! 

 

<봉화 한수정>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번지



 

봉화 만산고택 (奉化 晩山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279호

조선 후기 만산 강용(1846~1934)이 1878년에 건립한 가옥으로

측면출입형 ㅁ자 형태의 본채와 서실, 별채, 대문채 등

사대부가 상류주택의 구성을 고루 갖추고

경북 북동부의 지역적 건축 특성을 잘 보여준다.

만산(晩山)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하사,

서실 처마 밑에 있는 한묵청연(翰墨淸緣) 편액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로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별채 칠류헌은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말기의 여러 문인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11칸의 대문채 규모 등으로 보아

당시 사회·경제상을 잘 반영하고 있고,

주거민속 등 전통 주생활 문화가 잘 보전되고 있다.

(문화재청)



봉화에는 고택이 참 많다.

고택만 찾아다닌다 해도 며칠 걸릴 정도이다.

그 중 춘양의 만산고택에 들렀다.





만산고택은 현존하는 조선말기 개인 한옥 중에서

대단한 건축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곳이란다.



솟을대문



만산고택 사랑채와 마당.

만산고택을 지은 이는 고종 때의 문신인 만산 강용으로,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1878(고종15)년에 이 가옥을 지었다고 한다.

춘양목으로 지은 99칸 집이란다.



만산(晩山)은  대기만성을 의미하는 말로

흥선대원군이 썼단다.

흥선대원군이 내려준 만산이 강용의 호.

원본은 서울의 연대 박물관에 있고, 이것은 탁본이란다.

도난 때문에...



대원군 낙관



'정와'



'존양재'-독립운동가인 오세창의 글씨.

오세창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



'차군헌'

만산고택에는 20여 개에 달하는 편액이 걸려 있다.



대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서실.



서실에 걸린 ‘한묵청연翰墨淸緣’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씨라고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별채가 있다.



별채 칠류헌(七柳軒)

안쪽의 칠류헌 현판도 오세창의 글씨.

안쪽의 가장 왼쪽으로는

영친왕의 서예 스승 해강 김규진 선생이 쓴

 ‘白石山房(백석산방)’이 있다.



별채 칠류헌은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말기의 여러 문인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장소로 활용.

현재인문학 강좌가 열리기도 하며 숙박도 가능하단다.



응달에는 잔설이 남아있었던 날...






칠류헌을 돌아나와 다시 사랑마당으로...



장독과 기와로 장식된 사랑마당



사랑채와 별채에 비하면 무척 소박하게 느껴지는 안채



조금 좁은듯한 ㅁ자 구조의 안채.

추위에 견디기 좋게 이렇게 좁은 공간으로 배치했을 듯...



서실 앞에서 바라본 행랑채.

솟을대문을 가운데에 두고,

양옆으로 11칸이나 되는 긴 행랑채가 이어진다.





대문 밖으로 나와 담밖에서 바라본 별채 칠류헌.

만산고택은 고택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만산고택 바로 옆에는 성암재가 있다.

만산고택의 주인과는 윗대 어른이 서로 형제간인 집이라 했던가...



이 집도 고택체험이 가능한 집이었다.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성암재의 사랑채와 사랑마당...

겨울철이라 좀 쓸쓸한 감은 있었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집...

주인 어르신은 수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이곳에 들어와 사신다.

지금 도시에 사는 아드님이 앞으로 이 고택을 관리할 수 있을지~

이 집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택의 보존 문제가 위기다!



성암재 안채에는 도예를 하는 안주인의 작품들이 구석구석 즐비하다.






성암재 역시 안채는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ㅁ자 구조를 보이고 있다.



성암재 사랑마당에서 바라본 만산고택.

집과 집 사이에 난 작은 문이 한 집안임을 느끼게 한다.

진주 강씨...

주인장의 얘기로는 강씨는 본관이 진주 하나뿐이란다.

고집으로 유명한 성씨들인 '안 강 최' 이야기도 나누고...



성암재에서 바라본 만산고택의 모습...

그리고 성암재를 찾은 주인의 손자들...

어르신은 손자들의 추억만들기를 위해 모닥불을 피웠다.


주인어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즈넉한 산골의 고택을 바라보노라니

앞으로 우리 것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목조 문화재의 단점... 그것이 걱정이다.



<봉화 만산고택>

경상북도 봉화군 서동길 21-19 (춘양면, 만산고택)

(구주소)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88

전화번호 : 054-672-3206



 

2015.12.2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