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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봉화] 봉화 기행 6 - 억지 춘양의 고장 춘양장터와 주변 벽화 풍경

[경북 봉화] 봉화 기행 6 - 억지 춘양의 고장 춘양장터와 주변 벽화 풍경


<봉화기행 여정>

<봉화읍> 닭실마을(청암정, 충재박물관)-후토스 촬영지

-석천계곡(석천정사)-삼계서원-유기마을

<물야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계서당(이몽룡 생가)-축서사-오전약수

<춘양면> 백두대간수목원 주변-각화사-(동궁식당-석식)-(춘양-1박)

-(강남회관-조식)-춘양시장-한수정-만산고택-권진사댁-서동리 삼층석탑

<소천면>분천 산타마을


봉화 춘양장터



2015.12.26(토)


아침에 숙소를 나와 춘양시장으로 향하였다.

전날 저녁에 시장 안 '동궁'에서 식사를 했으니

춘양시장엔 안 가겠다는 남편~

식사할 때쯤 연락하기로 하고

결국 혼자서 밖으로 나섰다.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잠이 덜 깬 시장 앞에 청소차가 먼저 와 춘양시장의 잠을 깨운다.

현재의 춘양장터 입구 중 한 곳...



옛 춘양시장의 모습

춘양시장, 쌀시장, 소시장 등이 있었다는 사진.

예전 1960~70년대에 가장 성황을 이루었다는 춘양시장~

당시에는 쌀과 소시장까지 열리는 대단한 장이었단다.



예전에는 오일장(4,9일장)이었는데,

현재의 춘양시장은 현대식 상설시장으로 바뀌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은 조용하다.



입구도 여러 곳...



한 바퀴 돌다보니 하나둘 문을 여는 가게들이 나오고...

옛 시장 상황을 물어보는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상인분들...
역시 예전에 춘양목을 실어나르던 시절,

농경문화가 발달된 그 시절에

시장이 성황을 이루었다는 얘기다.



인 아카데미도 있구나!

요즘은 어느 곳이든 신식이다.


 


전날 저녁을 먹었던 동궁도 보이고...

아직 연탄을 때는 가게도 있어서

더 정다운 풍경~

 


장날(4일, 9일)에는 차량 통행금지이고,

노점도 많이 들어선단다.



특이하게 휘어진 전신주...

건물의 위험을 고려한 모양이다.


 

시장 입구가 여러 개였던 춘양시장.

장날이면 공연이 열린다는 무대.

이곳 주변에는 가판대가 많이 놓여 있었다.




춘양시장 밖으로 나가 벽화가 있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파인토피아 봉화를 소개한 모습.

송이, 은어, 사과, 고추, 춘양목, 춘양장터...

 

 

조선십승지 봉화 춘양

 

벽화에 나타난 설명을 옮겨 보면,

조선십승지란 재난이 일어날 때

피난을 가면 안전하다는 열 군데의 지역으로

재난이나 환란을 피해 숨어들어가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곳.

'정감'이란 사람과 '이심, 이연'의 대화를 기록한 '감결'이 유명하며,

그 밖에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기, 삼한산림비기,

무학비결, 도선비결, 토정가장비결, 피장처' 등이 있다.



조선십승지는 조선 최대의 예언서 '정감록'에서

3재(전쟁, 흉년, 전염병)가 들어올 수 없는

청정하고 안전한 지역을 말한다,

조선십승지로 영주시 풍기읍, 봉화군 춘양면,

속리산 주변(보은군 속리산면+상주시 화북면),

남원시 운봉읍, 예천군 용문면, 공주시 유구읍, 영월군 영월읍,

무주군 무풍면, 부안군 변산면, 합천군 가야면을 꼽았다.



봉화의 자랑거리 소개


 


춘양의 벽화는 무척 깔끔하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타일로 되어 있어서

오래도록 보존하기도 쉬울 것 같았다.





춘양시장 가운데쯤 문을 통해 동네쪽으로 나가면

억지 춘양의 유래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이 고장은 '억지 춘양'의 발원지라고 한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억지 춘향'인데...

'억지 춘양'은 어떤 이야기인지 한 번 들어보자...

 


동네 한 바퀴...

춘양목의 고장에서 알아보는 억지 춘양 이야기...



춘양면 의양리 춘양시장 바깥 동네 담벽에 억지 춘양 타일벽화가 조성되어 있다.



'억지 춘양' 타일벽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에 일본이 영춘~내성(지금의 봉화) 철로 건설,

시운전 개시 무렵에 일본의 패전(1945.8.15)으로 철도 건설 중단

 


해방 후 삼척 지역 탄전 개발로 무연탄 물동량 급증,

1949년 영암선(영주~철암) 부설공사 재개



1949년 4월 공사를 시작해

1950년 2월에 영주 ~ 내성 간 14.1㎞ 개통.

한국전쟁(6·25)으로 운행 중단.

 


여러 차례 시련,

1953년 영암선(영주~철암) 산업철도 건설 재개.

원래 춘양면 소재지를 거치지 않고 방전삼거리로 직진 건설 예정.



'잠깐, 멈추게나!'


 

내용은 당시 자유당 원내총무였던 故 정문흠 국회의원과

주민들의 요청에 의하여

춘양 외곽으로 가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다는 것.

담 앞에 차들이 세워져 있어 틈 사이로 겨우 찍었다.


 


"춘양목을 쉽게 운반하려면 춘양을 지나게 해야 돼..."

그래서 철도가 엄지손가락 형태로 억지로 휘게 되었단다.

 


 

일반적으로 쓰는 '억지 춘향'은

않는 어쩔 없이 이르는 말로 쓰여 왔다.

 

봉화 춘양이 배경이 된 '억지 춘양'은

더 효과적인 일을 위해,

혹은 잘못된 일을 억지로라도 수정해서 바로잡거나

성사시킬 때 사용하는 관용어이다.

 

<억지 춘양>- 속요

왔네 왔네 나 여기 왔네

억지 춘양 나 여기 왔네

햇밥 고기 배부르게 먹고

떠나려니 생각나네

햇밥 고기 생각나네

울고 왔던 억지 춘양

떠나려니 생각나네

 

속요에서 보는 '억지 춘양'은

가기 힘든 발걸음을 나타내고 있다.

춘양이 오지였던 시절,

여기로 시집을 온 여자들은 친정 나들이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살다보니 정이 들고

춘양목, 광산 등에서 나오는 수입이 좋아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게 되자

춘양을 떠나려니 오히려 서운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듯...

 

또 다른 '억지 춘양'의 의미는 

위의 벽화 설명에서와 같이

더 효과적인 일을 위해,

혹은 잘못된 일을 억지로라도 수정해서 바로잡거나

성사시킬 때 사용하는 관용어...

 

세월이 더 흐르면 사전에서도 '억지 춘양'이 등장하지 않을까~~~

 


'억지 춘양' 유래 담벽 타일벽화.

전국에 수많은 벽화마을이 있는데,

봉화 춘양시장 옆 동네는

억지 춘양 이야기 타일벽화가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이다.


2015.12.26(토)


<춘양시장>

전화번호 : 054-672-3225

주소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36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