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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봉화] 봉화 기행 3 - 문수산 축서사, 오전약수

[경북 봉화] 봉화 기행 3 - 문수산 축서사, 오전약수


<봉화기행 여정>

<봉화읍> 닭실마을(청암정, 충재박물관)-후토스 촬영지

-석천계곡(석천정사)-삼계서원-유기마을

<물야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계서당(이몽룡 생가)-축서사-오전약수

<춘양면> 백두대간수목원 주변-각화사-(동궁식당-석식)-(춘양-1박)

-(강남회관-조식)-춘양시장-한수정-만산고택-권진사댁-서동리 삼층석탑

<소천면>분천 산타마을



봉화 축서사



2015.12.25(금) 봉화 기행 3


가평리 계서당을 나와 축서사로 향하였다.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기에 쉽게 갈 수 있었다.



봉화 축서사


봉화 물야면 문수산에 위치한 축서사는

예전부터 기도처로 이름이 난 절이다.

나 역시 전부터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던 절...

가까운 영주 부석사는 자주 갔으면서도

축서사는 늘 목록에만 있던 절이었다.

 

축서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지림사에서

문수산 자락에 서광이 비치는 것을 보고

그곳을 찾아 절집을 지었는데,

그게 바로 축서사라는...

(지림사의 스님이 서광을 보았고,

그 얘기를 들은 의상이 찾았다고도 한다.)


의상대사가 축서사를 창건하고

3년 후에 부석사를 지었으니

두 절은 형제사찰로 불리기도 한다.

거리도 서로 가까워서

차로 30분 안쪽이면 닿을 정도이다.

이번에는 부석사는 패스...



문수산 축서사 일주문.

날씨는 춥고 내리기 싫어서 차 안에서 한 컷...

산길이지만 포장이 되어 있어서 오르기는 쉬웠다.




문수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보탑성전'이라는 위풍당당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내가 가 보고 싶었던 그 축서사는 이미 아니었다.

너무 늦게 찾은 이유에서겠지...



보탑성전과 범종각

깊은 산중에 이런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는 게 못마땅하지만

보탠 것도 없는 내가 사찰에서 하는 일을 어찌 관여할 수 있으리...

예전의 영광을 찾고, 대중을 인도하려고 한 것이려니...



보탑성전 건물 아래에서 축서사의 유래를 만난다.



축서사의 ‘축(鷲)’은 ‘수리 취’자인데 ‘축’이라고 읽는다.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영축산을 본따 '축'으로 읽는단다.



문수산 축서사 설명을 접하고...



대웅전 아래 앞마당에 놓인 보탑(사리탑)을 만났다.

영 모양이 다르긴 하지만

언뜻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아름다운 모습이긴 하다.



5대 적멸보궁은 알고 있지만

그 외에도 워낙 많은 진신사리탑이 있으니

진위 여부가 잠시 궁금해진다.



보탑을 중심으로 이쪽저쪽을 바라본다.

종무소가 있는 심검당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대웅전, 보광전, 선원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리탑, 대웅전, 보광전...

문수산 아래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모습이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높은 계단.

부석사처럼 축서사도 층계형으로 돌담이 많다.



현재의 대웅전.



대웅전 내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하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관세음보살을 안치하였다.









보물  제1379호 축서사 괘불탱

현재 대웅전에 보관 중이란다.


  •  

    축서사괘불탱 (鷲棲寺掛佛幀)


    보물  제1379호

    괘불탱이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 축서사 괘불탱은 모시바탕에 채색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으로,

  • 정면을 향한 입불상을 화면에 가득 차도록 그린 다음

  • 광배 주위로 화불과 보살상을 배치한 독존도형식이다.

  • 원래는 보광전에 걸어두고 예배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나

  • 지금은 대웅전에 보관 중이다.

  • 불은 얼굴 형태가 원만하고 사용된 색채 또한 선명하고 화려하여

  • 전반적으로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편 괘불탱에 걸려 있던 복장주머니에서

  • 후령통(1구)을 비롯하여 사리(2과)와 씨앗류,

  • 다라니(4종 4매), 괘불원문(1매) 등이 발견되었다.

    그림의 아래쪽 부분에 있는 기록과 조성내용을 밝혀주는

  • ‘괘불원문(掛佛願文)’에 의하면,

  • 이 괘불탱은 조선 영조 44년(1768)에

  • 정일(定一)스님 등 10명이 참여하여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축서사 괘불탱화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며,

  • 인물과 문양의 세련된 표현 및 화려하면서도

  • 조화로운 색채의 사용 등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 그리고 복장주머니에서 사리를 비롯한 복장품과 함께

  • 다른 불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괘불원문’이 발견되어

  • 학술적으로도 자료 가치가 높다.

  • (문화재청)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보광전





현재 대웅전이 중창되기 전에 대웅전으로 쓰였다는 보광전.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전각이다.






보광전과 축서사 석등.

축서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라는 보광전.


지금은 주변이 정말 말끔하게 정비되었다.

그래도 난 오래된 느낌이 나는 것이 더 좋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가 생각난다.

오래된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서 그렇게 반가웠던......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奉化 鷲棲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및 木造光背)


보물  제995호

문수산(文殊山) 정상 가까이에 자리잡은 축서사에 모셔져 있지만,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의 높이는 1.08m이며,

얼굴은 가는 눈, 꼭 다문 입, 반듯하고 넓은 신체에서

고요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주름이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어

다소 형식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주름은

다른 불상들의 U자형과는 달리 물결무늬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평행 계단식 옷주름과 함께 9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대좌(臺座)는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8각으로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에는 각 면에 사자 1구씩을 새겼고,

중대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상을,

상대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현재 불상 뒤에 나무로 만들어진 광배(光背)가 있는데

기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원래의 돌로 만든 광배는 윗부분만 남아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비로자나불상 가운데 하나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과 동일한 특징을 보여주어

당시 조각수법과 신앙형태를 알 수 있다.

석탑기에 의해 9세기 후반에 만들었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져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보물  제995호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석조 불상이라는데, 회칠이 되어 있으니 석재 느낌이 덜난다.

현재 불상 뒤에는 목조 광배가 있고

거기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원래의 돌로 만든 광배는 윗부분만 남아있어

불상 아래에 모셔 놓았다.



보광전에서 기도하는 분이 계셔서

조심스럽게 돌아보기만 하고

멀찍이 문밖에서 이거 한 장만 찍고 돌아섰다.





축서사석등 (鷲棲寺石燈)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

축서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8각 석등으로,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는데,

꽃잎의 끝마다 작은 꽃조각이 달려 있다.

그 위에 세운 가운데기둥은 약간 짧은 편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을 이어주고 있다.

윗받침돌의 밑면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연꽃조각을 두었다.

화사석은 네 곳에 창을 두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는데,

짧은 가운데기둥에 비해 몸집이 커 보여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다.

심하게 부서진 지붕돌은 특별한 조각을 두지 않았고,

꼭대기에는 지붕을 축소한 듯한 머리장식을 올려놓았는데

여덟 귀퉁이마다 조그마한 꽃조각이 솟아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자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 축서사 석등

이 석등은 아래에 3단의 받침돌을 두고,

가운데에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위에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담하고 소박해서 더 정감이 간다.


보광전 앞에서 바라보는 산줄기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축서사 대웅전과 보광전

아늑하니 이런 느낌이 좋다.





보광전 옆의 축서사 문수전과 부속 건물.

담이 많은 축서사...

이곳은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다.




가장 높은 곳에 적묵당이 있다.

수좌스님들이 정진하는 선원...

저곳에 삼층석탑이 있을 터인데~

볼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미리 연락해 놓은 것도 아니고

겨울 수행정진 기간이니 떼를 쓸 수도 없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7호 축서사삼층석탑

복원된 모습이다.

(축서사 홈페이지 사진)


  •  

    축서사삼층석탑 (鷲棲寺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7호

    선방(禪房)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 원래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이

  • 놓여 있었을 것이나

  • 지금은 아래층 기단의 일부와 탑신의 2층 지붕돌 이상을

  • 잃어버린 상태이다.

  • 위층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으며,

  • 탑신의 1층 몸돌을 괴는 곳에 얕은 받침을 새겨 놓았다.


  •  2층 몸돌까지만 남아있는 탑신은 1층 몸돌만 따로 만들었고

  • 1층 지붕돌과 2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단에서와 같은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고,

  •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새겼다.

  • 2층 몸돌 위에 놓인 길쭉한 석재는 그 용도를 알 수 없다.
    탑신의 2층 몸돌이 1층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긴 하였으나

  • 단정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다.


  • 탑 안에서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만든 사리그릇이 발견되어

  •  이 시기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 (문화재청 자료)


종무소에서 일하는 분께 여쭈니 지금은 보기 어렵고

다음에 미리 이야기하고 오라신다.




보광전 뒷편으로 살짝 보이는 복원된 삼층석탑의 상륜부...

삼층석탑... 저것이로다!




이곳은 대웅전 옆마당




대웅전 옆마당 뒷편 위에 자리한 응향각은

큰스님 주석공간이란다.




응향각에서 바라본 축서사 전각들

역시나 산줄기의 모습들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대웅전 옆마당에서 응향각으로 오르는 길




다시 대웅전 옆마당...




내려가는 길에 바라본 사리탑

겨울 오후지만 햇살이 강하게 비친다.




부속건물과 안양원




범종각 주변




왼쪽으로 대중의 처소인 안양원.

 가운데가 공양간, 오른쪽이 심검당.


축서사는 길손이 묵기 편한 절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것은

주지 무여스님의 불사 덕분이란다.




종무소, 신도회와 소임자의 거처로 쓰이는 심검당




심검당과 마주보는 대중 선방인 선열당




주차장 아래 옆길의 운수각(보현선원)은 시민선원이란다.


오래 전부터 들르고 싶었던 축서사...

산간오지에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남아

긴긴 역사의 흔적을 보여줄 거라는 마음 속 그림은

내게 물거품이 되어 돌아왔지만

대중과 가까이 하려는 사찰의 여러 모습에서

그나마 위안을 느낀 시간이 되었다.



< 봉화 축서사 >

경북 봉화군 물야면 월계길 739, 축서사 (개단리)




축서사를 나와 오전약수터로 향하였다.

멀리서 차를 타고 내려온 데다가

춥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차로 올라가는 데까지 올라가기로 하였다

여기 아래 오른쪽으로

오전약수터 표지를 보고서도

차로 더 가까이 접근해서 가려다가

더 올라가게 되었다.

여름에는 폭포가 되는 모양인지...




결국 동네 위쪽쯤에 위치한 박달식당 약수터까지 가 보았다.




이곳에도 오전약수 표시가 보인다.




그런데 역시 겨울철에 약수는 영 아니네...




식당 위쪽의 썰렁한 약수...

따뜻한 날에나 제 모습을 찾으려나~~~

박달식당 앞 오전약수터를 내려가기로 한다.

다시 원 약수터 입구를 향해...



박달식당 앞 약수터.

 여기를 내려가면 아래 길 건너로 약수탕이 있다.

그러나 겨울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거기도 휑한 모습...





오전약수


오전약수는 조선시대에 어떤 보부상이 발견하였다.

조선 제9대 성종 때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되었으며,

조선 제11대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 선생이

즐겨 이 약수를 찾았다고 하며

4편의 찬양시가 전해지고 있다.

오전약수탕이 소재한 지역의 자연부락명은 물집마을이라 불려지고 있다.

(봉화군청 문화관광 자료)



오전약수터와 보부상




피부병과 위장병에 좋다는 오전약수.

이곳 약수터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원래 쑥밭약수로 불리었다고 한다.

맛은 톡 쏘는 사이다맛.

탄산, 마그네슘,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단다.

한 모금 먹어 보니 정말 사이다맛 비슷하다.




오전약수 보부상 동상.

조선 성종 때 보부상에 의해 발견된 오전약수...

주세붕 선생이 이 약수를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

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단다.



오전약수터 앞 개울 주변 풍경.

약수터 앞 빈터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몇 가지 나물 등을 놓고 파는 모습만 보일 뿐

영 휑한 모습이었다.




오전약수 주변 풍경.

나목, 그리고 빈 상가...

여름철에는 약수관광지로 이름 높을만한 이곳도

겨울나기는 참 쓸쓸해 보였다.


< 오전약수>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2015.12.25(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