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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동유럽,발칸

[동유럽 여행 둘째날 3 - 폴란드] 폴란드 오슈비엥침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1)

[동유럽 여행 둘째날 3 - 폴란드] 폴란드  오슈비엥침(오시비엥침)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1)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나치 독일유대인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로

나치가 세운 강제 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

래 이곳은 폴란드군의 병영으로

수용소가 된 후 새로 지어진 건물들 이외에는 모두 폴란드군의 벽돌 막사.

전체 28동.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유대인을 비롯하여 로마 집시, 소련군 포로,

정신질환자, 동성애자, 기타 나치즘에 반대하는 자들.

1945년 1월 27일 소비에트 연방붉은 군대의 진주로 인하여 해방됨.

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됨.

크라쿠프에서 약 70km ,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에 위치.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구가 붙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입구

 

 

 

 2015.07.31(금)

 

말로만 들어왔기에 그 참상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나치가 세운 강제 수용소 중 최대 규모였던 곳...

그곳을 찾아가는 그 기분은 무엇이라 말하기도 어려웠다.

 

가이드님이 그곳에서는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비극의 장소에서 웃음을 보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

 

아우슈비츠에 도착했다.

다른 날보다는 관광객이 적은 편이란다.

이곳에서 A4 용지 정도 크기 이상의 가방은 휴대 금지다.

여권과 카드 등 중요한 물건만을 넣은 작은 가방만 메고서 차에서 내렸다.

다행히 디카는 휴대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에 들어선다.

 

 

박물관 입구 표시를 보고 들어가는 길...

 

 

우리는 오후 1시 30분 타임에 예약이 되어 들어가고 있다.

화면에는 타임별로 국적과 방문자 수를 표시하고 있는데,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에는 우리팀도 안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관리 건물을 나가니 실제 수용소 입구가 보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왼쪽으로 여러 개의 굴뚝이 달린 취사장,

오른쪽으로 조금 전에 들어온 관리 건물이 보인다.

 

 

수용소 입구의 고압 전류 철조망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관리 건물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살아서는 문을 나갈 수 없었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일행이 입구 한쪽에 모여서 설명을 듣고 있는 사이에 나도 설명을 들으며 한 장 찰칵.

 

 

취사장 건물이 길게 보인다.

 

 

탈출을 꿈꾸지 못 하게 설치해 놓은 고압 전류 철조망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1 수용소의 건물은 28동에 달한다.

 

 

악대 연주를 하던 장소

 

 

노동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악대의 연주에 맞추어 줄을 서서 이동하게 했다고 한다.

감시 차원이 컸다고 한다.

 

 

우리는 안쪽으로 몇 동의 전시관을 보러 간다.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건물동들을 바라본다.

군데군데 그룹으로 모여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던 아우슈비츠 1수용소.

 

 

폴란드 현지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먼저 4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의 귀에는 수신기가 꽂혀 있어서 조금 뒤에서도 잘 들리니 다행이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으면 촬영 가능하다.

1번 방부터 관람 시작하게 된다.

 

 

먼저 미국의 철학자인 조지 산타야나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


 

 

게토, 수용소 캠프와 감옥 지도.

유대인과 다른 국적의 죄수들은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아우슈비츠는 유럽 중앙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의 가장 큰 수용소이며 죽음의 캠프이다.

1940~1945년에 적어도 130만명이 아우슈비츠로 강제추방되었다.

이들 중 110만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고, 그들의 약 90%가 유대인이었다.

나치 친위대는 그들의 대부분을 가스실에서 살해했다.

 

 

"폴란드인, 러시아인, 유대인, 집시로부터 독일 민족을 해방시켜야 한다'"

- 독일 제 3국 법무부 장관 Otto Thierack의 말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문구다!

 

 

 

 

아우슈비츠 비극의 역사가 된 1940~1945

 

 

2번 방은 유대인 멸종 관련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유대인은 모두 없어져야 할 민족이다."

- 나치의 폴란드 점령지 총독이었던 Hans Michael Frank의 말이 섬뜩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나치스는 1940년부터 시작하여 폴란드 정치범, 유대인, 로마 집시 등을 아우슈비츠로 모으기 시작했다.

 

 

헝가리로부터 데려온 유대인들 - 1944년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1940년 6월 폴란드 정치범을 필두로 이후 소비에트 죄수, 로마 집시 등이 끌려 왔다.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의 대략적인 수는 100만명이 넘는다.

헝가리 43만, 폴란드 30만, 프랑스 6만 9천, 네덜란드 6만,

체코 4만 6천, 슬로바키아 2만 7천, 벨기에 2만 5천, 오스트리아와 독일 2만 3천,

유고슬라비아 1만, 이태리 7천 5백, 노르웨이 690, 기타 다른 캠프 추가 3만 4천

 

 

  각지에서 끌려온 유대인들...

 

 

1942~1944년에 각지에서 끌려온 유대인들 

 

 

끌려온 사람들 명부

 

 

  위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는 방의 모습

 

 

 

3번 방은 죽음의 길 관련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헝가리로부터 도착한 유대인들 - 1944,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헝가리로부터 도착한 유대인들 - 1944,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선택 전 - 1944,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여자, 노약자 등과 일할 수 있는 남자 등으로 분류하는 모습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기차 모형

 

 

  헝가리로부터 온 유대인들을 분류하는 모습 - 1944,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들 - 1944,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들 - 1944,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앞날을 예상하지 못 한채...

 

 

벽난로

 

 

  분류 후  - 1944, 아우슈비츠 2수용소(비르케나우)

 

오슈비엥침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위치

1수용소, 2수용소(비르케나우), 3수용소(모노비츠)

 

 

4번 방에는 살해 방법에 대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스실로 내몰리는 유대인 여자들

 

 

 철로 플랫폼에서 선택과정을 거친 후에

가스실로 보내질 사람들은 샤워를 하러 가는 줄 알았다.

가스실 천장에는 샤워꼭지처럼 보이는 것이 고정돼 있었다.

나치 친위대의 구타와 위협을 당한 2,000명의 희생자는

210평방미터(약 60평) 공간의 가스실로 밀어넣어졌다.

가스실 문이 잠기고 치클론 B가 투입되었다.

(그들은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죽은)그들의 몸에서 금니와 보석을 떼냈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들의 몸은 화장장에서 태워졌다.

희생자의 개인 기록은 없앴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났다.

과연 이런 일을 인간으로서 할 수 있을까~~~

 돌아보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 쉬는 것조차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여러 그룹이 있었지만 주위에는 정적만이 감돌뿐이었다.

 

 

 

치클론 B  

 

 

이거 한 통이면 400명을 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만큼이라면?

상상하기조차 싫다.

 

 

1943.3~1944.11 가동된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의 가스실과 화장장 모형

 

 

 

 

인간의 잔인함... 그 끝은?

일본이 행한 악랄함이 같이 오버랩된다.

내 몸이 그냥 오그라든다. 

 

 

5번 방은 더 기가 막혔다.

 촬영금지였다.

 

 

머리카락이 2톤 정도 전시되고 있다.

시체로부터 모은 머리카락이 7톤이 넘었다고 하며

머리카락으로 천을 짠 것이 전시되고 있다.

일행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숨 쉬기조차 어려웠던 시간...

다음 방으로 이동 중에 창밖을 한 번 내다보았다.

 

 

6번 방은 약탈 관련 방이다.

 

 

  Camp Warehouse

 

 

가스실과 화장장 사진

 

 

Camp Warehouse에서 분류된 소유물들

 

 

4동을 돌아본 후 밖으로 나왔다.

새로운 팀이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고...

우리 팀은 묵묵히 가이드님을 따라 다음 동으로 이동한다.

 

2015.07.31(금)